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대학시절 삼총사로 통했던 세 친구가 오랜만에 뭉쳤다.
불황이 길어질수록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식만’, 외모보다는 깊은 속을 가진
남자를 찾아 헤맨다는 외로운 솔로 ‘조아라’,
그리고 언제나 따뜻한 마음씨로 기부에 앞장서는 ‘왕선해’.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그간 쌓아뒀던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라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저마다 삶 속 선택의 순간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내세우지만,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이들이기에 빛 좋은 허울은
보기 좋게 발가벗겨진다. 그리고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한 최신 뇌과학은 이들을 더욱 꼼짝 못하게 하는데….
주식만 : 올겨울은 유난히 냉랭하네~. 세계적인 금융위기니 뭐니 해서 경제도 어렵고 말야. 그런데 이럴 때 일수록 국민들이 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냐? 정부에서도 그렇게 얘기했잖아. ‘우리나라 경제 그렇게 어렵지 않다, 국민들의 불안심리가 더 문제다!’ 사람들이 주가가 더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면서 주식을 자꾸 파니까 떨어지는 주가가 더 떨어지는 거 아냐.
조아라 : 야, 뭐야 그거 네 얘기잖아. 이번에 주가 폭락했을 때 너 주식 다 팔아서 엄청 손해 봤다면서.
당신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하자. 하나는 만원짜리 지폐 1000장으로 이뤄진 현금 1000만 원, 다른 하나는 당첨 확률이 50%에 당첨금이 2500만원인 로또 1장. 꽝이 나오면 아무 것도 받지 못하지만 당첨되면 25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이라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수학적으로 보면 로또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로또의 경우 기댓값이 1250만 원으로 현금 1000만 원보다 250만 원이나 크니까.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94%의 사람들이 현금 1000만 원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당첨금이 3000만 원 이상이 돼서야 로또를 택하는 사람이 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눈앞의 이익보다 손해를 더 무서워한다
사람들이 로또가 아니라 현금을 선택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로또가 당첨돼 2500만 원을 받게 됐을 때의 기쁨보다 꽝이 나와서 돈을 아예 못 받게 됐을 때 느끼는 안타까움을 더 크게 받아들인다. 즉 로또를 선택했다가 꽝이 나오면 ‘본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1000만 원을 ‘손해’ 보는 상황으로 파악한다는 뜻이다. 현금 1000만 원을 선택했다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이런 성향을 ‘손실회피’라고 부른다. 주가가 떨어졌을 때 주식을 파는 일이 손해인 줄 알면서도 더 큰 손해를 보는 걸 두려워해 파는 이유가 바로 손실회피라는 심리적 특성 때문이다.
퀴즈를 하나 더 내 보자.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예멘이라는 나라의 인구는 500만 명보다 많을까, 적을까? 이에 대한 답은 500만 명 보다 많다 또는 적다 둘 중 하나다. 이 질문을 한 뒤 다시 ‘예멘의 인구는 실제로 얼마일까?’라고 물으면 보통 300만~700만 명 사이의 값을 말한다.
하지만 ‘예멘의 인구가 5000만 명보다 더 많을까, 적을까’라고 물어본 뒤 예멘의 인구를 물으면 사람들은 3000만 명과 7000만 명 사이에서 답을 찾는다(이 질문의 실제 정답은 2000만 명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할 때(때로는 그것이 엉뚱하더라도) 처음 제시한 문제의 기준에 따라 답을 다르게 내놓는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준거 효과’라고 부른다.
손실회피나 준거효과는 경제 활동을 할 때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대표적인 심리 특성이다. 우리는 뻔히 아는 합리적 선택을 앞에 두고 왜 비합리적 선택을 할까.
인간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인간을 합리적 의사결정자라고 여겼다. 이런 그들의 믿음을 지지해주는 것은 수학의 ‘게임이론’이었다.
20세기 초 수학자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최대로 추구하는 최적의 전략이 존재할까’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박사과정 존 내쉬는 이 문제를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단번에 해결했다.
그는 여러 사람이 함께 경제적 선택을 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하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 또는 우리 편의 이익이 최대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가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라면 경제적 선택에서 ‘최적의 전략’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냈다.
게임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의 전략이 주어졌을 때,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가장 적절한 전략이 내 앞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것이 항상 ‘최적’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전략이라면 주어진 상황에서는 최선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게임이론에서는 이것을 ‘내쉬 평형’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이렇게 내쉬 평형대로 행동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모인 경제시스템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부터 이뤄진 심리학자들의 실험은 사람들이 결코 게임 이론이 예측하는 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뇌는 때론 다양한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며 복잡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감정적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뻔히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구매를 권하는 뇌, 이를 말리는 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양전자방출영상(PET),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등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대뇌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뇌영상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했다. 동시에 우리 뇌가 경제 활동을 할 때 비합리적 선택을 하게 하는 실체도 점차 밝혀지고 있다.
대뇌의 구조와 기능을 근거로 인간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탐구하는 연구 분야를 신경경제학이라고 부른다. 신경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선택을 할 때 우리 뇌에서는 ‘쾌락중추’와 ‘추론중추’가 경쟁한다고 주장한다.
쾌락중추는 뇌 가운데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측핵(nucleus accumbens)과 복측선조체(ventral striatum)로 이뤄져 있는데, 이 영역은 자극을 받으면 큰 기쁨을 준다. 아이들이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을 때나 어른들이 술이나 담배를 할 때, 또는 마약이나 섹스를 할 때 자극받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 벌루스 스키너 박사는 두 개의 레버가 달린 상자에 쥐를 집어넣고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이 상자에 있는 두 개의 레버 중 하나를 누르면 먹을 것이 조금씩 나오고, 다른 레버를 누르면 쾌락중추인 복측선조체에 전류가 흘러 쾌락을 느낀다. 스키너는 이 상자 안에 쥐를 넣어두면 그들은 쾌락중추를 자극하는 레버를 열심히 누르다가 굶어죽는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처럼 쾌락중추는 우리가 목표와 동기를 갖고 행동하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얻거나 성취했을 때 얻는 기쁨은 온전히 이 영역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 영역을 자극 받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신경과학자들은 입을 모아 주장한다.
엄마가 근사한 명품 가방을 봤을 때, 형이 멋진 스포츠카를 봤을 때 뇌가 활발히 활동하는 영역도 바로 이 영역이다. 이곳에 우리의 비합리적인 소비를 자극하는 ‘지름신’이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늘 소비의 쾌락에만 빠져 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작은 기쁨을 참고 견디기도 하며, 형편이 안 되면 구매를 미루기도 한다. 물건 구입에 앞서 ‘가격에 대비해 얻을 수 있는 유용성의 정도’를 수학적으로 따지기도 한다.
이런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은 우리 뇌 중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에서 수행하는데,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며, 다음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에 ‘추론중추’라고 부른다.
추론중추에는 쾌락중추를 억제하는 기능이 있다. 우리가 시도 때도 없이 쾌락에 빠지지 않도록 복측선조체와 측핵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전전두엽의 주요 역할 중 하나라는 얘기다. 가격대 성능비를 따지고, 자신의 형편과 상황을 고려해, 쇼핑을 자제하고 참게 하는 뇌 영역이 바로 전전두엽이다.
뇌를 들여다보면 소비자의 마음이 보인다
신경경제학자들의 이런 연구는 어디에 응용될 수 있을까? 만약 신경과학적인 접근으로 우리가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마음을 얻는데 이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뉴로마케팅’이란 분야다.
실제로 2004년 독일 다임러크라이슬러사는 남성 고객이 선호하는 차종을 파악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뇌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독일 울름대의 심리학과와 진단방사선학과 연구팀은 20~30대 남성 12명을 대상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사에서 만든 벤츠 스포츠카, 세단, 그리고 소형차 사진을 보여 주면서, fMRI로 뇌 활동 영상을 촬영했다.
그 결과 남성들은 자동차를 봤을 때 평소보다 뇌 활동이 크게 증가했는데, 그 중에서도 스포츠카를 봤을 때 사회적 지위나 보상과 관련 있는 뇌 영역이 가장 눈에 띄게 활성화됐다. 특히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젊은 남성들이 스포츠카에 ‘미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연구는 스포츠카를 광고할 때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젊은 남성들에게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컨셉으로 다가가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처럼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어떤 관점에서 홍보에 신경 써야 할지를 이해하는데 뉴로마케팅은 큰 도움을 준다.
태어난 지 5년도 채 안 된 신경경제학 연구는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아직 우리는 우리가 어떤 과정에서 무슨 근거로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지 잘 모르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제학자들의 수학적 접근과 심리학자들의 행동주의 실험만으로는 인간의 복잡한 의사결정과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의사결정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선택에 대한 연구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선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신경경제학에 거는 기대가 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재승 교수>;
KAIST에서 물리학 전공으로 학부,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예일대 의대 신경정신과 연구원, 콜롬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뇌의 의사결정 과정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데 관심이 있으며 최근 정신 질환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손해인 줄 알면서 주식 파는 이유
0.05초 만에 결정되는 첫인상
따뜻한 마음은 머리 안에 있다
대학시절 삼총사로 통했던 세 친구가 오랜만에 뭉쳤다.
불황이 길어질수록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식만’, 외모보다는 깊은 속을 가진
남자를 찾아 헤맨다는 외로운 솔로 ‘조아라’,
그리고 언제나 따뜻한 마음씨로 기부에 앞장서는 ‘왕선해’.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그간 쌓아뒀던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라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저마다 삶 속 선택의 순간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내세우지만,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이들이기에 빛 좋은 허울은
보기 좋게 발가벗겨진다. 그리고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한 최신 뇌과학은 이들을 더욱 꼼짝 못하게 하는데….
주식만 : 올겨울은 유난히 냉랭하네~. 세계적인 금융위기니 뭐니 해서 경제도 어렵고 말야. 그런데 이럴 때 일수록 국민들이 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냐? 정부에서도 그렇게 얘기했잖아. ‘우리나라 경제 그렇게 어렵지 않다, 국민들의 불안심리가 더 문제다!’ 사람들이 주가가 더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면서 주식을 자꾸 파니까 떨어지는 주가가 더 떨어지는 거 아냐.
조아라 : 야, 뭐야 그거 네 얘기잖아. 이번에 주가 폭락했을 때 너 주식 다 팔아서 엄청 손해 봤다면서.
당신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하자. 하나는 만원짜리 지폐 1000장으로 이뤄진 현금 1000만 원, 다른 하나는 당첨 확률이 50%에 당첨금이 2500만원인 로또 1장. 꽝이 나오면 아무 것도 받지 못하지만 당첨되면 25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이라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수학적으로 보면 로또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로또의 경우 기댓값이 1250만 원으로 현금 1000만 원보다 250만 원이나 크니까.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94%의 사람들이 현금 1000만 원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당첨금이 3000만 원 이상이 돼서야 로또를 택하는 사람이 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눈앞의 이익보다 손해를 더 무서워한다
사람들이 로또가 아니라 현금을 선택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로또가 당첨돼 2500만 원을 받게 됐을 때의 기쁨보다 꽝이 나와서 돈을 아예 못 받게 됐을 때 느끼는 안타까움을 더 크게 받아들인다. 즉 로또를 선택했다가 꽝이 나오면 ‘본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1000만 원을 ‘손해’ 보는 상황으로 파악한다는 뜻이다. 현금 1000만 원을 선택했다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이런 성향을 ‘손실회피’라고 부른다. 주가가 떨어졌을 때 주식을 파는 일이 손해인 줄 알면서도 더 큰 손해를 보는 걸 두려워해 파는 이유가 바로 손실회피라는 심리적 특성 때문이다.
퀴즈를 하나 더 내 보자.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예멘이라는 나라의 인구는 500만 명보다 많을까, 적을까? 이에 대한 답은 500만 명 보다 많다 또는 적다 둘 중 하나다. 이 질문을 한 뒤 다시 ‘예멘의 인구는 실제로 얼마일까?’라고 물으면 보통 300만~700만 명 사이의 값을 말한다.
하지만 ‘예멘의 인구가 5000만 명보다 더 많을까, 적을까’라고 물어본 뒤 예멘의 인구를 물으면 사람들은 3000만 명과 7000만 명 사이에서 답을 찾는다(이 질문의 실제 정답은 2000만 명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할 때(때로는 그것이 엉뚱하더라도) 처음 제시한 문제의 기준에 따라 답을 다르게 내놓는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준거 효과’라고 부른다.
손실회피나 준거효과는 경제 활동을 할 때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대표적인 심리 특성이다. 우리는 뻔히 아는 합리적 선택을 앞에 두고 왜 비합리적 선택을 할까.
인간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인간을 합리적 의사결정자라고 여겼다. 이런 그들의 믿음을 지지해주는 것은 수학의 ‘게임이론’이었다.
20세기 초 수학자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최대로 추구하는 최적의 전략이 존재할까’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박사과정 존 내쉬는 이 문제를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단번에 해결했다.
그는 여러 사람이 함께 경제적 선택을 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하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 또는 우리 편의 이익이 최대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가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라면 경제적 선택에서 ‘최적의 전략’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냈다.
게임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의 전략이 주어졌을 때,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가장 적절한 전략이 내 앞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것이 항상 ‘최적’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전략이라면 주어진 상황에서는 최선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게임이론에서는 이것을 ‘내쉬 평형’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이렇게 내쉬 평형대로 행동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모인 경제시스템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부터 이뤄진 심리학자들의 실험은 사람들이 결코 게임 이론이 예측하는 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뇌는 때론 다양한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며 복잡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감정적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뻔히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구매를 권하는 뇌, 이를 말리는 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양전자방출영상(PET),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등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대뇌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뇌영상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했다. 동시에 우리 뇌가 경제 활동을 할 때 비합리적 선택을 하게 하는 실체도 점차 밝혀지고 있다.
대뇌의 구조와 기능을 근거로 인간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탐구하는 연구 분야를 신경경제학이라고 부른다. 신경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선택을 할 때 우리 뇌에서는 ‘쾌락중추’와 ‘추론중추’가 경쟁한다고 주장한다.
쾌락중추는 뇌 가운데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측핵(nucleus accumbens)과 복측선조체(ventral striatum)로 이뤄져 있는데, 이 영역은 자극을 받으면 큰 기쁨을 준다. 아이들이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을 때나 어른들이 술이나 담배를 할 때, 또는 마약이나 섹스를 할 때 자극받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 벌루스 스키너 박사는 두 개의 레버가 달린 상자에 쥐를 집어넣고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이 상자에 있는 두 개의 레버 중 하나를 누르면 먹을 것이 조금씩 나오고, 다른 레버를 누르면 쾌락중추인 복측선조체에 전류가 흘러 쾌락을 느낀다. 스키너는 이 상자 안에 쥐를 넣어두면 그들은 쾌락중추를 자극하는 레버를 열심히 누르다가 굶어죽는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처럼 쾌락중추는 우리가 목표와 동기를 갖고 행동하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얻거나 성취했을 때 얻는 기쁨은 온전히 이 영역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 영역을 자극 받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신경과학자들은 입을 모아 주장한다.
엄마가 근사한 명품 가방을 봤을 때, 형이 멋진 스포츠카를 봤을 때 뇌가 활발히 활동하는 영역도 바로 이 영역이다. 이곳에 우리의 비합리적인 소비를 자극하는 ‘지름신’이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늘 소비의 쾌락에만 빠져 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작은 기쁨을 참고 견디기도 하며, 형편이 안 되면 구매를 미루기도 한다. 물건 구입에 앞서 ‘가격에 대비해 얻을 수 있는 유용성의 정도’를 수학적으로 따지기도 한다.
이런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은 우리 뇌 중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에서 수행하는데,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며, 다음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에 ‘추론중추’라고 부른다.
추론중추에는 쾌락중추를 억제하는 기능이 있다. 우리가 시도 때도 없이 쾌락에 빠지지 않도록 복측선조체와 측핵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전전두엽의 주요 역할 중 하나라는 얘기다. 가격대 성능비를 따지고, 자신의 형편과 상황을 고려해, 쇼핑을 자제하고 참게 하는 뇌 영역이 바로 전전두엽이다.
뇌를 들여다보면 소비자의 마음이 보인다
신경경제학자들의 이런 연구는 어디에 응용될 수 있을까? 만약 신경과학적인 접근으로 우리가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마음을 얻는데 이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뉴로마케팅’이란 분야다.
실제로 2004년 독일 다임러크라이슬러사는 남성 고객이 선호하는 차종을 파악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뇌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독일 울름대의 심리학과와 진단방사선학과 연구팀은 20~30대 남성 12명을 대상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사에서 만든 벤츠 스포츠카, 세단, 그리고 소형차 사진을 보여 주면서, fMRI로 뇌 활동 영상을 촬영했다.
그 결과 남성들은 자동차를 봤을 때 평소보다 뇌 활동이 크게 증가했는데, 그 중에서도 스포츠카를 봤을 때 사회적 지위나 보상과 관련 있는 뇌 영역이 가장 눈에 띄게 활성화됐다. 특히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젊은 남성들이 스포츠카에 ‘미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연구는 스포츠카를 광고할 때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젊은 남성들에게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컨셉으로 다가가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처럼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어떤 관점에서 홍보에 신경 써야 할지를 이해하는데 뉴로마케팅은 큰 도움을 준다.
태어난 지 5년도 채 안 된 신경경제학 연구는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아직 우리는 우리가 어떤 과정에서 무슨 근거로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지 잘 모르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제학자들의 수학적 접근과 심리학자들의 행동주의 실험만으로는 인간의 복잡한 의사결정과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의사결정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선택에 대한 연구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선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신경경제학에 거는 기대가 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재승 교수>;
KAIST에서 물리학 전공으로 학부,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예일대 의대 신경정신과 연구원, 콜롬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뇌의 의사결정 과정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데 관심이 있으며 최근 정신 질환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손해인 줄 알면서 주식 파는 이유
0.05초 만에 결정되는 첫인상
따뜻한 마음은 머리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