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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초 만에 결정되는 첫인상

외모에 대한 직관적 판단 보완하는 안와전두엽

조아라 : 아~, 이번 크리스마스도 너희들과 함께 보내야 하다니, 정말 우울하다~! 이게 몇 년째니. 올해는 기필코 솔로 탈출하려고 했는데 말야. 아, 그러고 보니 너희들 나 소개팅 시켜준다던 게 언제인데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니? 너네도 알잖아. 나 그렇게 눈 안 높은 거. 키나 외모? 그런 거 안 봐. 나한테 첫인상 같은 것도 중요한 게 아니야. 지내면 지낼수록 따뜻한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사람, 착하고 성실하고 그냥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면 돼. 일단 소개만 시켜줘. 올해가 가기 전에 한 건씩 알지?

왕선해 : 야, 그런데 저번에 소개해 준 내 친구 한 번 보고는 못 생겨서 싫다 그랬잖아!

“Do not judge a book by its cover(책 표지만으로 책 내용을 판단하지 말라).”


외형만으로 내용을 판단하는 행태를 경계하는 서양 격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대 사회에는 외모지상주의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져 가는 느낌이다. 소개팅에 나간 자리에서 몇 분 만에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를 판단하는 일은 고사하고, 사진만 보고 소개팅을 할지 말지 결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처음’ 만난다. 그들 가운데는 사업 파트너로 오랫동안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우연히 탄 버스의 기사 아저씨처럼 한번 본 뒤에 얼굴을 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뇌는 사람들을 만나는 모든 경우 그에 대한 첫인상을 갖고 이를 다음 행동의 판단 근거로 삼는다.

 


얼굴 잘 생긴 후보에 투표한다?


2004년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알렉산더 토도로프 교수팀은 대학생들에게 위스콘신주 하원의원 선거에서 경합을 벌였던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의 선거 출마용 사진을 보여준 뒤 그들의 능력을 평가해 점수 매기게 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학생들은 불과 1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사진 속 얼굴들을 보고 점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평가한 점수는 실제 선거에서 각 후보자가 얻은 득표수 결과와 비슷했다. 즉 국가의 미래를 바꿔 놓을 수도 있는 중대한 정치적 의사결정에서도 후보자의 외모를 보고 내리는 직관적 판단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생기는 첫인상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미국 터프츠대 심리학과 날리니 암바디 교수팀은 2008년 실험사회심리학회지에 의식적으로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짧은 순간 상대방의 얼굴을 보더라도 그 사람의 특성을 상당히 정확히 예측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실험참가자들에게 시간의 길이를 달리하면서 사람들 사진을 보여 주고 사진 속 사람이 이성애자인지 아니면 동성애자인지를 가려내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0.05초라는 짧은 시간동안만 사진이 제시되더라도 실제 그 사람의 성적취향을 우연수준 이상으로 가려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참가자들에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들의 최고경영자 얼굴 사진을 보여준 뒤, 그들의 경영능력을 점수 매기게 했다. 그 결과 이들이 최고경영자의 얼굴만 보고 평가한 경영능력점수가 회사의 실제 연 매출액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암바디 교수는 이런 실험 결과를 토대로 첫인상이 사람에 대한 평가에서 상당히 정확한 예측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실험결과를 거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훌륭한 경영능력을 가진 최고경영자처럼 생긴 사람은 다른 이들의 편견에 따라 행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다시 사람들의 편견이 다시 강화되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부른다.

동성애자와 최고경영자에 대한 첫인상 판단의 정확성이 실제 판단 능력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충족적 예언 때문인지 가려내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첫인상이 상대방에 대한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로버트 자이언스 교수는 첫인상에 대한 선호판단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인지과정과 무관하게, 그리고 그 보다 앞서 자동으로 일어나는 심리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첫인상에 대한 반응은 우리 뇌의 어떤 부위에서 일어날까.






그 사람 좋은지 싫은지? 측핵에게 물어봐


지난해 필자가 속해 있는 국제 공동연구팀은 얼굴을 보고 첫인상에 즉각 반응하는 뇌부위를 찾았다. 연구팀은 실험참가자들에게 0.05초 동안 두 개의 얼굴 사진을 반복해서 보여준 뒤 이 가운데 호감이 가는 사람을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뇌의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했다.

그 결과 얼굴을 처음 본 순간 뇌 깊숙한 곳에 있는 측핵이 활성화됐다. 그리고 호감도 선택을 하는 스위치를 누를 때는 안와전두엽이 활성화됐다. 즉 얼굴을 처음 봤을 때 측핵에서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를 결정하며, 그 이후 선택하는 순간에는 안와전두엽이 관여한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다른 피험자들에게 다양한 사람의 얼굴 쌍을 보여주면서 누구 얼굴이 더 동그란지를 물었다. 그리고 10분 뒤 두 얼굴 가운데 더 좋아하는 얼굴을 고르도록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뇌의 fMRI를 찍었다.

실험 결과 그저 동그란 얼굴을 선택하라고 했을 뿐인데도 얼굴을 보는 순간 뇌의 측핵이 활성화됐다. 그리고 10분 뒤 더 좋아하는 얼굴을 고르도록 한 순간에는 측핵이 활성화 되지 않고 안와전두엽이 활성화됐다. 다시 말해 측핵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동으로 호감도에 대한 판단을 한다는 얘기다.

선호판단과 관련한 측핵의 특성은 동물의 뇌에서도 나타난다. 암수 간에 끈끈한 애정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한 초원들쥐의 경우, 측핵을 손상시키거나 약물로 기능을 정지시키면 서로 애정을 표시하는 행동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측핵은 고등인지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신피질보다 진화적으로 더 오래전에 형성된 피질하 구조로, 쾌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뇌 부위다. 이곳을 직접 전기로 자극하는 일은 먹을 것을 주는 것보다 뇌에 강한 쾌감을 준다. 즉 첫인상 판단은 오랜 진화의 세월동안 변함없이 사용돼 온 뇌 속의 보상기제 활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넘어


첫인상에 대한 순간적인 판단은 이어지는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0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잉그리드 올슨 교수팀은 실험참가자들에게 다양한 얼굴 사진을 보여 준 뒤 긍정적 뜻을 가진 단어와 부정적 뜻을 가진 단어를 가려내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매력적인 얼굴을 본 뒤 긍정적인 단어를 인식하는 속도가 빨랐다.

올슨 교수는 무의식적으로 제시됐던 매력적인 얼굴이 긍정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뇌영역을 미리 준비상태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단어보다는 긍정적인 단어를 인식하는 속도가 빨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즉 첫인상이 상대방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그 다음 상황을 본능적으로 예측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첫인상은 상대방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갖게 하는 부작용도 있다.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인종차별이나 외모지상주의는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다행히 사람들은 첫인상으로만 상대방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첫인상 정보를 만든 피질하 구조는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안와전두엽 같은 부위와 상호작용하며 더 정교한 선호판단을 내린다. 안와전두엽은 측핵에서 오는 정서적인 신호를 이성적으로 조율해 최종 의사결정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매튜 리버만 교수팀은 흑인의 얼굴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편도체의 활동이 전두엽 활동으로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흑인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과 이에 따르려는 행동을 전두엽이 억제한다는 뜻이다.

첫인상과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첫인상이 형성되는 순간 피질하 구조와 신피질 구조 사이에 일어나는 구체적인 작동원리를 밝히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전두엽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뇌 훈련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외모지상주의나 인종차별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공헌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학진 교수 >;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석사를, 위스콘신주립대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fMRI를 사용해 인간의 경제적, 사회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뇌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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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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