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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마음은 머리 안에 있다

선행하면 보상회로 작동시키는 뇌

왕선해 : 너희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는데 주머니 사정도 안 좋고, 솔로라 기분이 꿀꿀한 모양이구나. 그래도 여기 오는 길에 크리스마스 자선냄비를 그냥 지나치진 않았겠지? 얼마씩 넣었니? 어허, 표정들을 보아하니 그냥 못 본 척했구나. 쯧쯧… . 자기 기분에 따라 선행하는 사람들, 문제야. 모름지기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 건 감정에 상관없이 다 알고 있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럼 도덕적인 선택을 했어야지!

주식만: 야, 너 요새 기분 좋나 보다, 자선냄비에 기부를 다 하고? 여자친구한테 채였다고 술 먹고 자선냄비 발로 차던 작년 크리스마스가 눈에 선한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평화롭게 유지하는 바탕에는 도덕과 윤리가 있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이 그 사람이 속한 사회의 윤리기준에 합당한가를 두고 도덕적 판단을 한다.

그럼 도덕적 판단을 하는데 중요한 뇌의 기능은 무엇일까.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들은 도덕적 판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행동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고 말하며 보편적 도덕법칙을 주장했다. 그리고 인지추론의 힘으로 이를 판단해 여기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도덕적 선택에는 정서적 직관도 중요하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실용주의에 입각해 ‘도덕성은 정서에 의해 결정되며 그것이 무엇이든 관찰자로부터 찬사를 받게끔 해주는 힘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현대 과학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하고 있을까?

기분 따라 동정심도 달라진다

그동안 도덕적 선택은 이성과 감정이 서로 경쟁해 이뤄진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한 뇌 연구의 결과들을 살펴보면 개인의 정서 상태가 윤리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가 더 힘을 얻고 있다.

2008년 미국 플리머쓰대의 시몬 슈날 교수팀은 정서 상태가 도덕적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연구한 결과를 성격사회심리학지에 발표했다. 슈날 박사는 피시험자들을 둘로 나눠 지저분하고 악취가 나는 방과 깨끗한 방에 들여 보낸 뒤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에 대한 질문에 답하게 했다. 실험 결과 지저분한 방에서 답을 한 사람들은 깨끗한 방에서 답을 한 사람들보다 찬성하는 답을 더 많이 했다. 즉 더러운 환경에서 동정심도 약해진다는 뜻으로 그만큼 정서 상태가 도덕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그럼 실제로 뇌에는 도덕적 판단과 이성적 판단을 하는 부위가 나뉘어 있을까. 2001년 미국 프린스턴대의 조슈아 그린 박사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두 가지 유형의 서로 다른 딜레마 상황 60개를 제시하고, 피험자가 판단을 하는 동안 fMRI로 그들의 뇌 반응을 측정했다. 그 중 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소음을 막아주는 귀마개를 한 인부 5명이 철로에서 공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고장난 철도운반차가 그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들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선로 방향을 바꿔 운반차가 다른 선로를 향하도록 스위치를 누르는 것. 하지만 다른 선로에도 인부 한명이 귀마개를 한 채 일을 하고 있다. 5명을 구하기 위해 스위치를 눌러 1명을 희생시키겠는가?

동료 인부와 함께 철로 옆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고장난 철도운반차가 철로로 들이닥쳤다. 철도운반차를 그대로 두면 저쪽에서 일하고 있는 5명의 인부가 죽는다.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옆에 서 있는 동료 인부를 철로로 밀어 철도운반차를 막는 것. 5명을 구하기 위해 동료 인부를 밀어 죽게 하겠는가?

두 상황은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희생할 것인가’를 묻는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그린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들은 상황1에서는 ‘예’라고 대답하고 상황2에서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이처럼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린 박사는 스위치를 누르는 행위는 누군가는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5명 또는 1명을 선택하는 일이지만, 사람을 미는 행위는 무고한 한 사람을 5명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으로 두 상황을 구분했다. 즉 스위치를 누르는 상황1의 경우는 인지적 판단인 반면, 직접 사람을 밀어 죽여야 하는 상황2의 경우는 정서적 판단이라는 뜻이다.

따뜻한 마음은 전두엽 아래쪽에 있다

그린 박사는 뇌 안에 인지적 판단과 정서적 판단을 하는 부분이 실제로 나뉘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fMRI를 이용했다. 그 결과 상황1에서 피험자의 뇌는 전두엽 바깥쪽과 두정엽 위쪽의 활성이 늘었지만, 상황2에서는 대뇌의 전두엽 안쪽, 띠이랑 뒤쪽, 각이랑 부위의 활성이 늘었다.

여기서 인지적 판단을 하게 한 부위는 전두엽 바깥쪽으로, 특히 배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DLPFC)이라는 부분은 모든 인지과정의 기본이 되는 정보처리의 핵심 영역으로 컴퓨터의 CPU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서적 판단을 하게 한 부위인 전두엽 안쪽과 아래쪽은 정서와 행동조절을 담당한다. 특히 복내측 전전두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VMPFC)이라고 부르는 전두엽 아래쪽과 안쪽의 모서리 부분은 정서, 의사결정, 충동조절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공리적인(최대의 효용을 얻게 하는 이성적인 선택) 선택은 DLPFC에서 일어나는 반면, 비공리적(효용보다는 감성적이고 도덕적인) 선택은 VMPFC에서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브라질 도르병원의 조지 몰 박사가 2002년 수행한 실험을 살펴보자. 피험자에게 ‘희생자를 쏴서 죽였다’ 같은 도덕적인 판단이 들어가는 문장을 제시하자 VMPFC 부분이 활성을 나타냈다. 반면 ‘변기를 핥았다’처럼 도덕적 판단이 들어가지 않는 단순한 정서 유발 문장을 제시하면 DLPFC 부분이 활성을 보였다.

또 미국 아이오와대 마이클 코닉스 박사가 2007년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VMPFC가 손상된 환자들은 도덕적 딜레마를 주고 판단을 내리게 하면 비정상적으로 공리적인 선택을 한다. 예를 들어 5명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선로로 밀어 죽게 하는 것이 옳다는 선택을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들 가운데는 사고 이후 성격이 공격적으로 바뀐 사례도 있다.

선행이 주는 쾌락


흔히 도덕과 윤리는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고 얘기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특유의 사회적 행위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 도덕적 믿음에 기초해 자신의 물질적 이득을 기꺼이 희생하는 자선기부 행위를 한다. 뇌는 왜 윤리적인 선택을 하는 걸까?

미국 국립보건원 조단 그라프만 박사팀은 2006년 자선기부를 할 때 뇌에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에게 자선단체에 기부를 할지 말지를 물은 뒤 fMRI를 이용해 뇌영상을 찍었다. 그 결과 기부를 한다고 답한 사람들은 측핵과 중뇌가 활성을 보였다. 이 뇌영역들은 흔히 ‘보상회로’라고 부르는 부분으로 기쁨과 희열을 담당한다.

술, 담배, 마약 등의 물질이나 도박 같은 행위에 중독되는데, 이는 보상회로에서의 도파민 분비가 희열을 주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익명으로 기부할지 기명으로 기부할지 또는 금전적 보상이 있는지 없는지는 뇌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부위에는 큰 차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선기부시에도 뇌의 보상회로가 작동한다는 사실은 이타주의적 행위가 주는 기쁨이 쾌락적 행위가 주는 기쁨과 본질적으로 같음을 의미한다. 도덕적인 선택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이유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판단과 선택의 연속이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오늘은 학교를 몇 시에 갈까 같은 단순한 선택 상황도 있지만, 배가 고픈데 친구 도시락을 슬쩍 먹어치울까, 학교에 늦었으니 무단횡단을 해서라도 빨리 갈까 같은 도덕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도 많다.

어떤 선택이든 우리 뇌의 전두엽 바깥쪽 DLPFC는 이성적인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도덕적인 선택을 할 때는 VMPFC에서 정서 반응이 일어나 보상회로가 작동한다. 선행과 미덕을 반복하면 긍정적 정서반응을 강화시키고 보상회로까지 작동시켜 전두엽은 더욱 건강해진다.

하지만 비도덕적인 행동을 반복하면 부정적 정서반응이 전두엽의 작용에 계속 개입하면서 전두엽은 쉴 수 없게 되고, 결국 충동을 억제하는 전두엽의 기능은 약해진다. 그 결과 비도덕적인 행동을 계속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좋은 생각과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가 더 건강해지는 이유인 셈이다.

자선기부 때에도 뇌의 보상회로가 작동한다는 사실은 이타주의적 행위가 주는 기쁨이 쾌락적 행위가 주는 기쁨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암시한다.
도덕적인 선택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이유다.

긍정상쇄와 부정편향

필자의 연구팀은 정서적인 판단을 할 때 DLPFC와 VMPFC의 대비가 되는 기능을 알아보는 실험을 해 2006년 국제생물심리학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의자 사진과 컵 사진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좋은가, 싫은가 물어보면 사람들은 흔히 좋다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이처럼 자극이 별로 감정적이지 않다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긍정상쇄’라고 부른다.

하지만 귀여운 아기 사진과 흉측한 모습의 아기 사진을 동시에 보여주고 호감도를 물어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싫다고 대답한다. 긍정적인 자극과 부정적인 자극이 동시에 주어지면 부정적인 정서가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부정편향’이라고 부른다. 이 두 현상은 감정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기 때문에 인지적인 처리가 중요한 판단으로 분류한다.

만약 둘 다 귀여운 아기이거나 둘 다 흉측한 아기여서 호감이나 비호감 같은 정서적인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뇌 영상을 찍은 결과 정서적 판단에 중요한 VMPFC가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긍정상쇄나 부정편향처럼 인지적 처리가 작동하는 판단을 할 때는 DLPFC가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재진 교수 >;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91년 정신과 전문의가 됐다. 2002년 연세대 의대 교수로 부임해 현재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과장과 연세대 의대 의학행동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뇌영상 기술과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정신질환의 진단과 치료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고, 대표 저서로 ‘뇌영상과 정신의 이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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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재진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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