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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언어 잘 배우나

언어정보 처리방식의 차이

기술적인 숙련과 추상적인 패턴을 동시에 익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 W. W. 소여, ‘수학 서곡’

알파걸.
학업, 운동, 리더십 어느 하나도 남자에게 뒤지지 않는 엘리트 소녀를 뜻하는 말이다. 최근 대학 신입생이나 사법고시 합격자를 보면 여성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상위권은 여학생들 차지다. 이런 현상에 대해 온라인 게임이 남학생들을 망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알파걸 신드롬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뛰어난 분야가 있으니 바로 언어다.

여자가 남자보다 언어능력이 낫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는 도처에 있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보다 말을 일찍 배우고 사용하는 어휘도 더 빨리 늘어난다. 차이가 크진 않지만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언어과목의 성적이 높다. 대학에서도 언어 관련 학과의 여학생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높다. 도대체 왜 여자는 남자보다 언어에 ‘소질’이 있는 것일까.

감각적인 남학생, 추상적인 여학생

성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보면 남녀의 언어 능력 차이는 언어를 처리하는 뇌의 방식에서 비롯된다. 즉 남성은 거의 좌뇌에만 의존하는 데 비해 여성은 좌뇌 뿐 아니라 우뇌도 같이 활성화된다. 뇌졸중으로 좌뇌에 손상을 입을 경우 남성 대부분은 언어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오는 반면 여성은 상대적으로 언어능력 손상이 덜한 이유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커뮤니케이션과학과 더글러스 버만 박사팀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언어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해 신경과학저널인 ‘뉴로사이콜로지아’ 5월호에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9~15세인 남녀 각각 31명을 대상으로 언어능력을 시험했다. 하나는 한 음절로 된 단어쌍을 들려주고 철자를 쓰게 하는 시험이었고 또 하나는 단어쌍을 보여주고 발음을 하게 하는 시험이었다.

단어쌍은 4가지 유형이 있다. ‘gate-hate’처럼 첫 자음 뒤의 철자가 같고 발음도 같은 쌍이 있고 ‘pint-mint’처럼 첫 자음 뒤 철자는 같지만 발음이 다른 쌍이 있다. 또 ‘has-jazz’처럼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쌍이 있고 ‘press-list’처럼 첫 자음 뒤 철자도 발음도 다른 쌍이 있다. 4가지 유형이 임의로 섞여 있는 문제를 내고 평가한 결과 예상대로 여학생이 대체로 평균점수가 높았다.

버만 박사팀은 아이들이 문제를 풀 때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의 활동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여학생이 언어영역으로 알려진 하전두이랑(브로카 영역 존재), 상측두이랑(베르니케 영역 존재), 좌측방추이랑의 활동도가 남학생보다 활발했다.

연구자들은 개인의 성적과 뇌 활동도 비교했다. 그러자 역시 남녀차가 있었다. 즉 여학생은 성적과 언어영역의 활동도가 비례한 반면 남학생의 성적은 단어를 듣고 쓰는 시험에서는 청각피질의 활동도와, 단어를 보고 발음하는 시험에서는 시각피질의 활동도와 비례했다. 버만 박사는 “여학생은 추상적인 언어처리가 중요한 반면 남학생은 감각자극을 제대로 처리했는냐가 중요한 셈”이라며 “언어의 경우 남녀 반을 나눠 각각에 맞는 교수법으로 가르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 조지타운대 의학센터 마이클 울만 교수팀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언어 처리 방식이 다르다는 연구결과를 얻었다. 보통 여자는 남자에 비해 말을 기억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실제로 단어 기억 테스트를 해보면 여성이 점수가 높다. 울만 교수는 “여자아이는 기존 단어를 기억해 서로 연관시키는 방식으로 새로운 단어를 습득하는 반면 남자아이는 언어의 규칙에 따라 개별 단어를 익힌다”며 “대체로 여자의 방식이 더 효율적이지만 때로는 문제가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2~5살 아이들이 평소 대화 속에서 규칙동사와 불규칙동사의 과거형을 제대로 쓰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여자아이들은 ‘hold’ 같은 불규칙동사 과거형을 ‘held’가 아닌 ‘holded’로 잘못 쓰는 경우가 더 많았다. ‘fold’ ‘mold’ 같은 각운이 맞는 규칙동사와 함께 묶어서 처리하는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자의식 강하면 외국어 배우기 어려워
“외국어 습득에도 남녀차가 있지만 중요한 요인은 아닙니다. 오히려 음운인식능력이나 성격이 더 좌우하지요.”
아동 언어발달을 연구하고 있는 연세대 심리학과 송현주 교수의 설명이다. 송 교수는 “음운인식능력은 연속되는 소리를 듣고 정확히 따라 말하는 능력”이라며 “여기에는 어느 정도 타고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성격 요인으로는 사회성과 자의식이 관여한다. 사회성이 높을수록 외국어를 빨리 배우는 반면 부끄럼을 많이 타거나 자의식, 즉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민감한 사람은 외국어 습득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기질차이 역시 어느 정도 타고난다고 한다.

영국 배스대 교육학과 캐럴 모간 박사는 외국어를 가르칠 때는 학습자의 나이와 기질에 따라 교수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언어 자체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이해하기 쉬운 다른 일에 관심을 쏟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놀이를 하듯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교수법을 개발해야만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초등 영어교육에 회의적인 전문가가 많은 것도 이런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춘기에는 자의식이 커지면서 실수를 피하려는 성향이 커진다. 모간 박사는 “외국어 습득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며 “이들을 가르칠 때는 개인의 수준과 성향을 잘 파악해 교수법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한 반 30명 학생이 일률적으로 1주일에 2~3시간 수업을 받는 방식으로는 외국어에 유창해지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

이공계에서도 유창한 영어는 기본?

세계화는 과학기술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적인 모임도 잦고 국가간 공동연구도 느는 추세다. 게다가 융합과학의 시대라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조율해야한다. 따라서 사실상 공용어인 영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해야 하지 아닐까.
“물론 영어를 잘하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국제무대에서 낙오되는 건 아니죠.”

미국에서 35년을 살다가 귀국한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이서구 교수의 설명이다. 아무리 영어가 유창해도 발표하는 연구내용이 그저 그렇다면 학회장은 텅 비어있게 마련이다. “일본 과학자들은 영어를 못하는 편인데 얼마 전 한 학회에서 저명한 일본 과학자가 발표하는 자리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있더군요. 영어는 형편없었지만 그런 데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 요구하는 영어 구사력 기준은 오히려 완화되는 추세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수준을 요구하던 이전과는 달리 국제 공용어로서의 영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공감대를 얻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영어로 발표할 때 관사를 제대로 못써도 별 문제가 없다”며 “영어 발표에 대한 두려움만 극복한다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영어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건 아니다. 학술지 대부분이 영어로 출판되기 때문에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읽으려면 영어 독해력이 있어야 하고 논문을 쓰려면 영작을 할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연구를 시작하는 대학원에서나 필요하다. 이공계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영어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서울대의 경우 TEPS 성적이 사회대는 701점 이상, 인문대는 601점 이상인 반면 공대는 551점 이상, 자연대는 522점 이상이다.

중앙대 화학과 성재영 교수는 “진짜 심각한 건 학생들의 수학·과학 기초지식이 부실하다는 점”이라며 “고등학교 때 미적분학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오니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영어야 필요하면 나중에라도 배울 수 있지만 수학·과학 기초지식이 부족하면 4년 내내 고생한다”며 영어몰입으로 다른 과목에 소홀해지는 현상을 경계했다.

“일본은 번역이 워낙 잘 돼 있어 이공계 분야 대부분이 대학졸업 때까지 일본어 책만 봐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의 과학기술이 세계수준에서 떨어지는 건 아니죠.”

KAIST 수학과 한상근 교수 역시 영어교육에 지나치게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우리 현실에 우려를 표현했다. 한 교수는 “지금 우리사회는 모든 학생이 영어권 사람들과 시사뉴스와 업무에 관해 토론할 수 있는 수준 즉 ‘이중언어’ 능력을 갖추는 걸 목표로 몰입하고 있는 것 같다”며 “미국 교포 사회에서도 이런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는 “영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기본 지식만 갖추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사회가 사람들에게 교양으로 기대하는 영어수준이 지나치게 높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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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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