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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심리코드 우리 결혼했어요

계약결혼, 연상연하 커플, ‘신상’신드롬

거절당할까 두려워 앤디에게 전화를 못 하는 솔비, 연하남 현중의 의젓함에 뿌듯한 황보, ‘신상’구두만 찾는 인영 때문에 난감한 크라운J.

리얼버라이어티쇼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에서 연예인들의 알콩달콩 신혼 이야기가 인기다. 흥미로운 사실은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 출연 커플들이 실제로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게시물이 줄줄이 올라온다는 것. 커플들이 상대에 대한 진짜 속내를 내비칠 때마다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앤디가 선물한 반지를 잃어버린 솔비가 울음을 터뜨리거나, 황보가 현중을 만나러 무작정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모습이 그 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전중환 박사는 “프로그램에서 허구와 실제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며 “‘우결’을 보는 시청자는 이미 허구의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 자신의 연애전략에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그의 저서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사람은 정보 위주의 사용설명서보단 소설에 흥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구를 기초로 자신의 행동전략을 재구성한다고 설명한다.

‘우결’은 실제상황과 허구를 적절히 섞었다는 점에서 예전의 짝짓기 프로그램인 ‘사랑의 스튜디오’와 구별된다. 사랑의 스튜디오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순수 실제 프로그램이었다.

핑커 교수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연애 전략을 업그레이드 하는 셈이다.

거절당할까 두려운 소심 커플 앤디&솔비

앤디와 솔비는 이미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었다. 솔비는 방송에서 “늦은 밤 집에 돌아갈 때 앤디 오빠에게 전화하고 싶어진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를 못했다. 솔비는 앤디에게 기대고 있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이는 앤디도 마찬가지다.

둘은 상대에게 거절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소설가 이외수는 젊은 시절 길바닥 인생을 살면서도 구걸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거절당하면 절망감 때문에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이렇듯 인간은 누구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심리칼럼니스트 이남석 씨는 “솔비는 이미 앤디에게 호감을 모두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솔비와 엔디 모두 방송에서 과거에 사랑하던 애인과 헤어진 기억을 고백했다. 그 때문에 상대에게 마음을 여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말도 했다. 이남석 씨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 과거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솔비와 앤디도 만약 실제로 사랑에 빠진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솔비는 앤디에게 전화 걸었을 때 “방송도 아닌데 생뚱맞게 왜 전화를 했느냐”는 말을 들을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솔비는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구실 만들기 전략’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이는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다. 가령 시험기간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TV를 본다. 시험결과가 좋지 않을 때 ‘TV를 봤기 때문에 시험을 못 봤다’고 말할 핑계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실제 솔비는 앤디에게 “내가 오빠와 결혼하면 오빠한테만 ‘올인’할 테니 부담이 클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는데, 이는 결혼하면 앤디가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는 핑계를 갖고 그와 결혼할 수 없다는 심리를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남 탓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자신이 만들어 낸 핑계일 뿐이다.

이남석 씨는 요즘 사람들이 계약결혼에 호의적인 이유를 계약결혼은 ‘끝’을 미뤄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살아본 뒤에 결혼을 할지 안 할지 결정할 수 있어 위험부담이 줄어든다. 최근 유행하는 ‘펫 심리’(애인을 애완동물처럼 키우는 심리)도 애인과의 관계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고 언제든 끝낼 수 있다면 부담이 줄어든다고 판단한 경우다.


할리우드 톱스타인 애시튼 커쳐와 데미 무어 부부는 무려 15살 차이를 극복한 연상연하 커플로 유명하다. 데미 무어가 최근 등장한 쿠거족의 대표주자가 아닐까.


나이 안 따지는 연상연하 커플 현중&황보

현중은 황보보다 6살 어리다. 현중의 팀 멤버들이 황보를 ‘이모’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현중과 황보의 나이차가 크게 드러난다. 그러나 둘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알콩달콩 연애를 한다. 흔히 연상녀는 연하남의 어리광을 싫어하고, 연하남은 연상녀에게 흥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정반대다.

연상연하 커플이 많아지는 경향은 사회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 과거에는 커플이 되는데 나이가 중요했지만, 최근에는 나이의 중요성이 낮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나이와 남자의 능력이 비례했기 때문에 여성이 나이 많은 남자와 커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전통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사는 경우가 많아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자가 남편으로서 매력적이었다고 분석한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데이비드 버스 교수팀이 1989년 ‘행동과뇌과학저널’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세계 37개국에서 여자들은 자신보다 3.5살 많은 남자를 선호했고 실제 결혼에 골인한 커플도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 3살 많았다.

그런데 버스 교수팀의 연구에서 선진국일수록 커플의 나이 차가 작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한 빌 게이츠가 20대에 CEO가 된 것처럼 선진국에서는 남자의 나이가 어려도 능력이 뛰어날 확률이 높고, 여자가 경제적 능력을 갖추면서 남자의 능력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연애를 할 때 여자의 주도권이 높아지는 추세를 반영해 ‘쿠거족’(나이 어린 남자와 만나는 연상녀란 뜻)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황보는 프로그램에서 “현중이 어려 세대차를 느끼지만 그와 이야기하다보면 나까지 젊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가수로 성공한 황보는 물질적인 면보다는 감성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이를 연하남 현중이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물건을 살 때 뇌에서는 도파민 분비량이 늘어 흥분되고 행복해진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신상’커플 크라운J&인영

잔뜩 심통이 나도 ‘신상 구두 사러 가자’는 서방의 말에 방긋 웃는 신부 인영. 인영은 ‘신상 ’(신상품)구두라면 사족을 못 쓴다. 슈홀릭(구두 쇼핑중독이라는 뜻의 신조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크라운J도 새로운 운동화나 반지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는 집착이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행동이다. 사람은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긴장하고 손에 땀이 난다. 그러다가도 익숙한 상황으로 되돌아오면 안도감을 느낀다. 초행길일 땐 신경이 곤두서고 길을 잘 찾을 수 있을지 걱정하지만, 익숙한 길을 걸을 땐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익숙한 상황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는 있어도 행복하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사람은 익숙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남석 씨는 “사람은 뇌에서 새로운 정보를 처리할 때 행복하다”며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비율이 8대 2 정도일 때 행복감이 최대가 된다”고 말했다. 인영도 자신의 발에 길이 들어 익숙한 구두를 신을 때 만족감을 느끼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신상구두’를 신어서 행복해지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녀도 익숙함이 주는 만족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늘 새로운 구두를 찾는 인영도 사실 단골 매장만 간다. ‘8대 2’ 법칙을 지키는 셈이다.

뇌에는 신상품에 반응하는 부분이 있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신경영상학과 비안카 위트만 교수팀은 새로운 것을 볼 때 뇌의 선조체 영역이 활발해지면서 도파민 분비량이 느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성공해 지난 6월 25일 신경과학분야 국제저널인 ‘뉴런’에 발표했다. 위트만 교수는 “새로운 경험을 회피하지 않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이득을 얻을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물건을 살 때 뇌의 선조체 영역(1)이 활성화된다. 이는 새로운 물건을 봤을 때 반응하는 부위와 비슷하다(2). 이 부위에서는 도파민을 분비해 처음 본 물건을 살 때 행복을 느끼게 한다.


도파민은 뇌에서 신경을 전달하는데 관여하는 생체물질이다. 뇌에서 도파민의 분비량이 증가하면 에너지가 많이 생기고 흥분을 느낀다. 곧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사람은 한번 이 경험을 하면 이 ‘꿀맛’을 계속 맛보려고 한다. 중독이 되는 셈이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권준수 교수는 “물건을 살 때 느끼는 흥분과 설레임이 도파민 분비를 자극한다”며 “그 물건이 신상이라면 도파민의 분비가 배가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인영처럼 바쁜 스케줄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기 시작하면, 이것이 강박증으로 발전해 쇼핑중독이 될 수 있다. 신상품 쇼핑에 중독되는 현상은 새로운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심리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쇼핑습관으로 심화되는 것이다.

인영은 값비싼 명품 구두만 사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분위기가 명품쇼핑족을 만든다고 말한다. 사람은 물건을 살 때 그 본질을 사는 게 아니라 상징성을 산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4000원짜리 밥을 먹은 뒤 커피값으로 5000원을 지불하는 것은, 테이크아웃 커피가 뜻하는 여유와 풍요로움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전 박사는 “인영은 명품 구두를 사면서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결’을 보는 시청자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신세대의 심리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하고 상대방의 외적인 조건에 신경을 쓰며 새로운 경험과 마주하는 현대인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배워나간다. 나아가 출연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결’은 연예인을 출연시켜 허구로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이미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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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허라미
  • 목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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