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가 중학교에 다닐 때 나일론을 만드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스타킹과 ‘1도 닮지 않은’ 액체들을 복잡한 과정에 따라 섞었더니 끈적한 나일론이 나타났다. 쉽진 않았다. 사소한 실수로도 실패했다. 새로운 재료를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울 거라고, 하지만 세상의 풍경을 바꿀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교복 치마 안에 스타킹을 신지 않으면 복장 불량으로 매를 맞아야 했던 때니까.
철이나 나무 등 오래 전부터 함께 한 재료들의 구조를 밝히거나 필요한 재료를 새롭게 만드는 ‘재료과학’은 이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진면목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렵(다고들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것들이 반복되지만 똑같지는 않은 화학 구조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비전문가는 머리가 빙빙 돈다. 평생 재료 과학을 공부한 전문가가 그걸 모르겠는가. 재료와 사랑에 빠져 일상의 물건과 그 속살을 이루는 구조에 집착하고, 말 못하는 재료 대신 그들의 변(辯)을 주변 사람에게 전하길 즐기는 이 책의 저자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군다나.
‘사소한 것들의 과학’은 영국의 유명한 재료과학자가 철, 종이, 초콜릿, 거품 등 10가지 재료의 구조와 역사, 중요성을 쉽게 다룬 책이다. 처음 쓴 책이라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참신한 기획력, 깔끔한 글 솜씨, 재기 발랄한 표현력 등은 아마도 살면서 지난하게 목격해 온 재료과학에 대한 무지에 맞서는 그만의 노하
우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플라스틱을 다룬 장은 이 책의 백미다. 다른 장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때문에 영화관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말다툼을 한 개인적인 경험으로 시작한 글은, 새로운 방식으로 급변한다. ‘싸구려’ 혹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재료라는 오해를 풀고 플라스틱이 얼마나 훌륭한 재료인지 설파하기 위해 플라스틱의 역사를 재미있는 영화 시나리오로 쓴 것이다. 전문가로서의 탁월함과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이 빛난다.
흔히 “과학을 공부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기자가 보기에 재료과학은 그 ‘끝판 왕’이다. 책을 읽고나면 당신의 주변을 구성하는 알록달록한 재료들이 ‘매직아이’처럼 하나 둘 튀어나와 와글와글 말을 걸 것이다. 인류의 필요와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탄생한 자신을 좀 봐달라고.


오해 한 가지. 과학 지식을 많이 안다고 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건 아니다. 언젠가 기자가 쓴 동성애 관련 과학 기사가 나간 뒤, 한 공대 교수는 “동성애는 전염된다”고 끈질기게 e메일을 보내왔다. 반대로, 과학과 전혀 관계 없는 분야에 종사한다고 과학적인 사고를 못하는 건 아니다. 기자가 아는 어느 국어교사는 비합리적인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근거를 찾아 헤맨다.
과학적 사고는 누구에게나 유용하다. 과거 인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경험만을 했지만, 현대인은 다르다. 과학기술은 인류의 감각기관이 닿지 못하는 영역으로 뻗어 왔다. 태초부터 훈련한 본능적인 사고만으로는 이 세상을 잘, 하다못해 사기를 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한계가 있다.
대단히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외형도 전혀 다른 두 책은 과학적 사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기발한 과학책’은 단순한 일러스트를 이용해 빠르게 과학 내용을 전달하는 인기유튜브 채널(Asap SCIENCE)의 내용을 옮겼다. ‘추위와 감기,진짜 상관이 있을까?’, ‘인체의 자연 발화, 진짜일까?’, ‘털을 깎
으면 더 굵고 뻣뻣한 털이 난다는 게 사실일까?’ 등 일상생활에서 가질 수 있는 의문과 한번쯤 들어본 소문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중국인 물리학자가 쓴 ‘이공계의 뇌로 산다’는 좀 더 노골적이다. 근거 없는 상식과 비논리로 가득 찬 세상을 하나하나 물고 뜯고 씹는다. 기자도 뜨끔할 정도. 취향에 따라 골라 읽어
보자.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으로써의 과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