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반신수영복 입고 금빛 물살 가른다
I자 풀동작 완성, 80cm 깊이에서 돌핀킥
2번 레인. 박태환이 힘차게 물살을 가른다. 그를 옆에서 쫓아가는 노민상 감독이 초시계를 들고 박자를 맞추듯 간간히 소리를 내지른다. 그리고 수영장 물 밖 또 한 명, 박태환이 뛰어 들어간 출발대 옆에 설치된 컴퓨터 앞에는 체육과학연구원 송홍선 박사가 뚫어져라 모니터를 보고 있다.
모니터 위쪽에는 박태환의 수영 장면이 실시간으로 녹화되고, 아래쪽에는 그래프가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박태환의 허리에 줄이 감겨 있다. 수영장 한쪽에는 카메라도 달려 있다. 송 박사는 “실시간 이동속도 측정 장치”라고 설명했다. 박태환이 앞으로 나갈 때마다 그의 풀(pull, 손)동작과 킥(kick, 발)동작이 시간과 속도로 기록된다. 이 장치는 송 박사가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이 장치로 박태환의 작은 수영 동작 하나하나를 분석할 수 있다. 덕분에 박태환은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고쳤다. 특히 그의 라이벌들과 영법을 하나하나 비교할 때 이 자료는 매우 유용하다.
전신수영복 입었을 때보다 기록 더 빨라
우선 박태환은 부력이 매우 좋다. 은퇴했지만 현재 자유형 400m 세계기록(3분40초08)을 보유한 호주의 이언 소프가 거의 물에 잠긴 채 수영하는 반면, 박태환은 물에 떠서 수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송 박사는 “몸이 물에 뜰수록 물에 대한 표면 저항이 작기 때문에 기록 단축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현재 박태환의 자유형 400m 최고기록은 지난 동아수영대회에서 작성한 3분43초59. 비록 3초가 넘는 차이지만 송 박사는 “해볼 만하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박태환의 스트로크(팔 휘젓기) 동작은 더욱 정교해졌다. 단거리에서는 돌핀킥이 중요하지만 400m 이상 장거리 경기에서는 풀동작이 중요하다. 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뒤로 물을 걷어낼 때 몸이 추진력을 얻기 때문이다. 팔 모양은 일(1)자에 가까울수록 좋다. 팔이 굽었을 때(S자)보다 물을 더 빠르고 깊게 걷어낼 수 있다. 송 박사는 “박태환의 풀동작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밝혔다.
돌핀킥(양발을 움츠렸다 위아래로 물을 차며 전진하는 동작)은 한층 깊어졌다. 박태환의 최고 라이벌인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는 턴 동작에서 세계 최고의 돌핀킥을 구사한다. 그는 약 1m 깊이에서 15m 이상 치고 나온다. 얕은 곳에서 돌핀킥을 하면 잔물결이 생겨 몸에 저항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승부의 관건은 깊이다. 송 박사는 “적어도 50cm 아래에서 돌핀킥을 해야 물의 저항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박태환은 80cm 깊이에서 돌핀킥을 구사하며 펠프스를 따라잡았다.
무엇보다 몸의 중심이 잡혔다. 1500m 경기에선 좌우 호흡의 균형이 중요하다. 그동안 박태환은 오른쪽 호흡 때 스트로크가 많아지고 속도가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송 박사는 “웨이트 훈련과 영법 교정작업을 동시에 진행한 결과 이제는 좌우호흡에 따라 속도 차이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스트로크 수는 30개로 왼쪽과 오른쪽이 같고, 50m의 구간기록인 28초까지 평균속도는 각각 초속 1.60m(왼쪽)와 초속 1.65m(오른쪽)로 거의 비슷하다.
박태환이 어떤 수영복을 입을지 결정할 때도 속도 측정기의 결과를 참고했다. 지난 5월 괌 전지훈련에서 박태환은 반신수영복과 전신수영복을 입고 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전신수영복보다 반신수영복을 입었을 때 기록이 6.6% 향상됐다. 박태환 본인도 “전신수영복을 입으면 어깨 쪽 근육을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고 물이 들어와 불편하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자유형 200m(8월 12일), 400m(8월 10일), 1500m(8월 17일)에 출전해 금메달에 도전한다.
송홍선 박사가 추천하는 관전 포인트
자유형 400m에서 어떤 성적을 내느냐가 나머지 종목(자유형 200m, 1500m)의 기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400m 성적이 좋으면 탄력을 받아 1500m 성적도 기대해볼 수 있다. 자유형 200m에서 자신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도 지켜보자. 박태환은 2002년 도하 아시안게임(1분47초12)을 시작으로 세계선수권대회(1분46초73), 2008년 동아수영대회(1분46초26)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기록을 계속해서 단축해왔다. 200m 세계기록은 마이클 펠프스의 1분43초86이다.
역도-S라인 허리로 금 바벨 든다
‘여자 헤라클레스’의 비결은 좌우 근력 균형
47-39-51. 키 170cm에 몸무게 118kg인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의 신체 사이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장미란은 국가대표 여자 선수 가운데 가장 큰 체구를 자랑하지만 최중량급(+75kg) 역도선수치고는 가벼운 편이다. 그의 라이벌인 중국의 무솽솽은 무려 140kg이나 나간다.
무솽솽은 지난 4월 중국 대표팀 선발전에서 합계 328kg(인상 145kg, 용상 183kg)으로 비공인 세계기록을 세웠지만, 장미란은 지난 7월 11일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는 도중 인상 140kg, 용상 190kg을 각각 들어 합계 330kg을 기록하며 앞서 나갔다. 인상은 바벨(역기)을 두 손으로 잡고 한 동작으로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며 일어서는 종목인 반면, 용상은 바벨을 가슴 위까지 올려서 한 번 받쳐 든 다음, 다시 머리 위로 드는 종목이다.
보통 역도에서 몸무게가 5kg이 늘 때마다 5~10kg을 더 들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장미란은 ‘부드러운 ’기술로 라이벌의 힘을 극복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5월 국제역도연맹(IWF)에서 ‘2007 최우수 여자선수’ 상을 받을 때 그는 자신의 몸무게에 맞게 기술을 익히고 있다고 밝혔다.
3차원 영상과 근전도검사로 동작 분석
그동안 장미란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육과학연구원 문영진 박사가 지원해왔다. 운동역학으로 무장한 문 박사는 3차원 영상, 근육 활동을 분석하는 근전도검사(EMG) 등으로 장미란의 역도 동작이 효율적인지, 부상 위험은 없는지를 분석했다.
3차원 영상 분석 결과, 장미란이 바벨을 들 때마다 몸의 중심이 왼쪽으로 쏠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중학교 시절 겪은 교통사고로 왼쪽 무릎이 아팠던 기억 때문인지 바벨을 들 때 오른쪽 무릎 근육을 주로 사용했던 것. 균형이 맞지 않자 고관절(엉덩관절), 어깨, 팔꿈치, 손목까지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문 박사는 근전도검사로 구간 동작에 따라 장미란의 좌우 근력이 어떻게 다른지도 파악했다. 검사 결과, 인상 마무리 동작에서는 승모근(어깨의 삼각형 근육)을 왼쪽만 너무 많이 써 부상이 염려될 정도였으며, 바벨을 고관절 위로 올리며 힘을 폭발적으로 쓸 때는 몸 전체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2005년부터 장미란은 오른쪽보다 근육량이 적은 왼쪽 무릎 근육과 고관절 근육을 단련했으며 습관적으로 틀어지던 동작도 교정했다. 문 박사는 “근육량뿐 아니라 힘의 분배까지 좌우 균형을 잡는 데 성공했다”며 “그 덕분에 장미란이 지난해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장미란을 비롯한 우리 선수는 인상보다 용상을 잘한다. 문 박사는 “바벨을 목에 거는 동작이 간결하고 바벨을 올릴 때 힘의 균형을 잘 잡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선수는 몸통이 앞뒤로 두꺼워 용상에 유리하다. 무거운 무게를 들었을 때 옆으로 퍼진 몸보다 기둥 역할을 더 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상에서는 장미란을 포함한 우리 선수 거의 대부분이 허리 위주의 기술을 사용해 문제였다. 문 박사는 “허리를 비롯한 상체 근육만 생각하다 보니 앞뒤 움직임이 많고 균형 잡기가 힘들었다”며 “인상에서처럼 힘을 몰아서 쓸 때는 하체의 큰 근육을 잘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장미란은 바벨을 들 때 엉덩이가 뒤로 빠져 문제였다. 하체가 아니라 팔로 바벨을 들었다는 얘기다. 문 박사는 “인상의 시작 자세에서는 엉덩이를 약간 들고 허리를 S자로 해야 하체의 힘을 최대한 쓸 수 있다”며 “이외에 바벨을 넓적다리로 올렸을 때 무릎을 자연스레 바벨 아래로 넣는 동작, 앉은 채로 바벨을 머리 위로 떠받치는 타이밍 등이 인상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그동안 장미란은 인상에서 자신의 문제를 보완하며 기록을 향상시켜왔다.
4년 전 손바닥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선전했던 장미란. 그의 투혼이 베이징올림픽에서도 기대된다.
문영진 박사가 추천하는 관전 포인트
장미란은 하체 힘이 좋아 바벨을 들어 올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며 큰 시합에서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므로 무솽솽이 출전하든 안하든 충분히 승산이 있다. 좌우 균형이 잡혔는지, 허리를 S자로 시작하는지, 용상보다 떨어지는 인상의 기록은 어떨지, 세계 신기록을 세울지 주목해보자.
양궁-마음 다스리는 비법으로 금 과녁 맞힌다
자기 평가부터 셀프 토크까지 심리 훈련 매뉴얼 13종
프랑스 보에에서 열리는 양궁 월드컵시리즈 4차 대회를 며칠 앞둔 지난 6월. 양궁 대표선수 2명이 체육과학연구원 김병현 박사를 찾았다. 그 중 한 명은 “베이징올림픽이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의 ‘금메달 텃밭’으로 불리는 양궁 종목에 대표선수로 발탁될 정도면 실력은 세계 최고일 터. 그런 선수가 경기 불안을 호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박사는 “두려운 생각을 가지면 진다. 덤벼야 한다는 자신감이 생길 수 있도록 상담했다”고 말했다.
사실 올림픽 같은 세계 대회에서 메달권에 드는 선수들의 기량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래서 선수의 심리 상태는 메달의 색깔을 좌우한다. 양궁이나 사격처럼 개인이 과녁을 맞히는 종목에서는 그 영향력이 더욱 크다.
김 박사는 “얼굴 표정이나 제스처만 보면 지금 선수의 심리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역도의 장미란을 오랫동안 상담해온 김 박사는 장미란의 얼굴만 봐도 심리 상태를 짐작한다고. 그는 “메달 유망주들은 공통적으로 경기에서 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불안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나는 이긴다’ 스스로에게 ‘최면’ 걸기
문제는 선수마다 불안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 어떤 선수는 활통을 만지작거리고, 어떤 선수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그래서 김 박사는 선수별 ‘맞춤 상담’을 강조한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오기가 생긴다’는 선수부터 ‘아들 얼굴을 보면 힘이 난다’는 선수까지 김 박사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개인적인 동기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한다.
치료법은 크게 두 가지다. 평소 생활이나 연습에서 심리적인 불안을 낮추고 실제 경기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 훈련이나 실전에서 똑같이 행동해 불안을 줄이는 루틴(routine) 프로그램도 그 중 하나다. 가령 세계적인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는 ‘경기 시작 75분 전에 도착하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8자를 그리며 그린을 돌아 퍼팅을 하며, 마지막에는 첫 번째 홀에서 샷을 한다’는 식의 루틴을 따른다. 한국 수영의 희망 박태환이 물에 뛰어들기 직전까지 음악을 듣는 일도 루틴의 하나다.
김 박사와 함께 선수들의 심리 치료를 담당하는 신정택 박사는 “좋은 루틴은 일종의 좋은 습관”이라며 “루틴을 따르다 보면 선수들이 심리적 스트레스를 느낄 틈도 없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시로 변하는 선수들의 심리를 일일이 챙기기란 불가능하다. 김 박사가 마련한 해결책은 심리훈련 매뉴얼. 지난 20여 년간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개발한 종류만 13개다.
하루 훈련을 잘 했는지 1~4단계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훈련일지부터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셀프 토크’,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심상훈련, 그리고 선수별 상황에 맞춘 세부적인 심리기술까지 선수들이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도 다양하다. 스포츠 강국인 미국 대표팀에서 사용하는 매뉴얼이 9개임을 감안하면 한국은 스포츠 심리에서만큼은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는 셈이다.
한편 양궁 대표팀은 선수들이 실전에서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베이징 양궁장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를 만들어 훈련에 사용하기도 했다.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은 이번 올림픽에서 남녀 개인 및 단체전 싹쓸이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병현 박사가 추천하는 관전 포인트
토너먼트로 열리는 양궁 개인전은 선수의 심리 상태가 메달 색깔을 결정한다. 평소 기록이 떨어지는 사람도 금메달을 거머쥘 가능성이 큰 종목이 양궁이다.
선수들이 과녁을 향해 화살을 한 발씩 쏠 때마다 루틴이 일정한지 비교해보자. 선수들의 작은 동작을 유심히 살펴보거나 초시계를 준비해 루틴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비슷한지 재보는 것도 좋다.
레슬링-맞춤 지옥훈련으로 금 굴린다
그레코로만형 99%, 그라운드에서 승부나
베이징올림픽에서 육상(47개), 수영(46개)에 이어 체조, 사이클과 함께 세 번째로 금메달(18개)이 많이 걸린 종목. 1976년 올림픽 사상 한국이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종목이자 올림픽 7연속 금맥을 이어오고 있는 종목. 바로 레슬링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전신을 공격할 수 있는 자유형보다 허리 이상의 부위만 공격하는 그레코로만형에서 강세를 보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55kg급 박은철, 60kg급 정지현, 66kg급 김민철에게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는데, 세 선수 모두 그레코로만형 종목에 출전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 끝나고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세계레슬링연맹에 관중에게 더 흥미를 줄 수 있도록 경기 규칙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이에 세계레슬링연맹은 이듬해부터 3분 3라운드에서 2분 3라운드로 바꿨고, 각 라운드마다 승자를 가려 먼저 2라운드를 따낸 선수가 최종 승리자가 되며 동점이라면 나중에 점수를 얻은 선수가 유리하도록 변화를 줬다.
특히 그레코로만형의 매 라운드는 1분간 매트에 서서 기량을 겨룬 뒤(스탠드 경기) 무릎을 꿇고 매트에 손을 짚고 있는 상대를 옆에서 30초씩 번갈아 공격하는 식(그라운드 경기)으로 바뀌었다. 경기규칙이 바뀌자 경기운영전술이나 체력훈련방식도 바뀌었다.
팔 근력 키우고 녹초상태에서도 힘 쓸 수 있어야
2005년부터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유럽선수권에서 1000경기 이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분석한 체육과학연구원 최규정 박사는 “그레코로만형의 경우 그라운드 경기에서 승부가 나는 비율이 2005년 74%에서 2007년 99%로 늘었다”며 “그라운드 경기에서도 대부분 *가로들기에 의해 승부가 가려졌다”고 말했다.
가로들기 성공률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즉 2005년 55.6%에서 2007년 33.3%로 성공률이 떨어졌다. 가로들기로 얻은 득점도 2005년 평균 3.62점에서 2007년 평균 1.78점으로 줄었다. 또 흥미롭게 2007년에는 먼저 공격하는 선수(29.9%)에 비해 나중에 공격하는 선수의 가로들기 성공률(37%)이 높았다.
최 박사는 “최근 그레코로만형에서 1~2점으로 승부가 가려진다는 사실은 그만큼 가로들기 수비능력이 향상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며 “우리 선수들은 가로들기로 득점하기 위해 가로들기에 필요한 근력을 강화하는 훈련과 함께 가로들기에 대처할 수 있는 수비 기술을 꾸준히 해왔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지난해 6월부터 4개월간 그레코로만형 대표선수들을 대상으로 그라운드 경기에서 옆 굴리기 기술에 동원되는 근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특별히 개발한 *리스트 롤링 같은 훈련을 해 팔 근력을 강화시키는 데 성공했고, 실제 선수들의 옆 굴리기 성공률이 높아졌다.
레슬링 하면 훈련량이 많기로 소문난 종목이다. 이틀에 걸쳐 진행되던 올림픽 레슬링 경기가 하루에 끝나도록 바뀌어 선수의 체력 수준, 경기 당일 체력 관리, 경기 후 피로 회복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태릉선수촌에서는 과거의 스파르타식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레슬링 훈련을 해왔다. 남자 그레코로만형 김인섭 코치가 추천하는 ‘인터벌 서킷 웨이트트레이닝’이 좋은 예다. 러닝머신을 최고속도(보통 시속 16km)로 두고 1분을 내달린 뒤 곧바로 최대 근력의 60% 정도로 웨이트트레이닝기구를 들어올린다. 이를 1시간가량 반복하면 녹초가 되는데, 각 선수의 심박수, 젖산 농도를 측정해 개인의 피로도나 훈련강도를 파악한다. 이 지옥훈련은 녹초 상태에서도 힘을 쓸 수 있도록 만드는 무산소운동이다.
외국의 주요 경쟁선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대응전술도 개발해왔다. 최 박사는 “경쟁선수의 경기 동영상을 보면서 주특기나 버릇을 파악했다”며 “심리적으로 우리 선수의 자신감을 높이고 적절한 스파링 파트너와 모의경기를 치르는 데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금메달은 신이 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력에다 운까지 따라야 한다. 평소 실력을 갈고 닦을 뿐 아니라 경기 당일 컨디션을 잘 유지하고 대진운도 좋아야 하기 때문. 그렇지만 실력과 운에 과학으로 무장한 태극전사에게 금메달은 떼어 놓은 당상이 아닐까.
최규정 박사가 추천하는 관전 포인트
먼저 우리 레슬링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8회 연속 금메달을 따낼지, 정지현 선수가 2회 연속 금메달을 거머쥘지 주목해보자. 바뀐 경기규칙도 주의할 부분.
특히 그레코로만형 그라운드 경기에서 엎드린 선수를 뒤집으려는 선수와 이를 버티려는 선수 사이의 힘겨루기가 백미.
리스트 롤링*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채 추가 철끈에 매달린 봉을 두 손으로 돌리면서 철끈을 감았다 푸는 운동.
가로들기*
상대 선수의 허리를 가로로 잡고 들어 올리는 공격 동작.
체조-동작 찍고 속도 재고 근력 늘리고
철봉에선 자이언트 스윙 속도 빨라야 성공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한 개를 ‘도둑’맞았다. 남자 체조의 양태영이 심판의 오심으로 개인종합에서 미국의 폴 햄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것. 체조 선수들은 4년간 절치부심하며 베이징올림픽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엔 새로운 난관이 생겼다. 체조가 기록경기로 바뀌었다.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만점이 10점이었다. 기술의 난이도에 따라 심판은 9.6, 9.7 등의 방식으로 점수를 매겼다. 그런데 2006년부터 10점 만점 제도가 폐지됐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A스코어(기술과 구성)와 B스코어(완성도)를 합쳐 점수가 나온다. 15~16점대 점수를 받아야 메달을 바라볼 수 있다.
높이 나는 선수가 금메달 딴다
승부의 관건은 고난도 기술을 얼마나 완벽하게 구사하느냐는 점. 체육과학연구원 백진호 박사는 “한국 선수들이 구사하는 기술이 다양하고 평행봉이나 철봉에서는 고난도 기술도 선보이기 때문에 유리하다”면서 “고난도 기술의 성공률을 높이는 일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백 박사는 선수들의 동작을 분석했다. 체조 연습장에서 선수들의 동작을 비디오로 촬영한 뒤 선수들이 컴퓨터에서 자신의 동작을 눈으로 확인하도록 한 것. 이때 연기 분석 프로그램을 사용해 성공하는 장면과 실패하는 장면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그 자리에서 피드백을 준다.
가령 철봉에서 봉을 차고 올라가서 최고 높이에 다다른 뒤 공중에서 도는 연기를 한 다음 다시 봉을 잡고 내려오는 동작이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최고 높이다. 철봉의 기대주 김지훈의 경우 이 연기에 성공했을 때 최고 높이가 실패했을 때보다 약 24cm 높았다. 백 박사는 “봉을 차고 올라가는 ‘자이언트 스윙’의 속도가 최고 높이를 좌우한다”며 “스윙을 하며 봉을 떠나는 순간 속도가 초속 2.8m 이상이어야 연기를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은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평행봉에서 금메달을 따며 이번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백 박사는 “내리는 동작을 할 때 봉을 떠나는 순간의 속도가 초속 3.3m 이상이어야 안정적인 연기를 하기에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도 백 박사는 ‘봉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올 때 몸이 수평을 이뤄야 한다’ ‘공중돌기를 하기 직전 발끝의 높이가 철봉대와 이루는 각이 120.1°일 땐 성공했는데 113.8°일 땐 실패했다’는 식으로 김대은의 동작마다 성공과 실패 요인을 분석했다. 김대은은 성공했을 때 몸의 느낌을 기억했다가 실전에 적용한다.
선수들의 체력을 체크하는 일도 백 박사의 몫이다. 신장, 몸무게, 체지방 등 기본체격과 함께 근력을 측정해 민첩성, 유연성, 근지구력(전문체력)을 확인한다. 봉을 잡고 버티거나 도는 동작이 많은 체조에서는 각도에 따라 근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정밀체력을 측정한다.
이 데이터는 선수들에게 ‘처방전’을 내리는 데 활용된다. 대표적인 예가 좌우 근육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근육의 좌우 균형이 맞지 않으면 동작을 할 때 한쪽으로 쏠리기 쉽다. 점수도 점수지만 이는 선수의 부상으로 이어진다. 백 박사는 “개인별로 부족한 근력을 강화하거나 재활 치료를 하는 데 활용한다”고 말했다.
체조 남자 개인종목은 8월 19일 승부가 판가름 난다. 김대은과 양태영, 유원철이 평행봉에 도전하며, 김지훈, 김승일, 김수면에게도 기대를 걸고 있다. 남자대표팀 이주형 감독은 “평행봉은 금메달, 단체전은 동메달이 목표”라고 말했다.
백진호 박사가 추천하는 관전 포인트
선수들의 체형을 주목하자. 키가 작고 팔과 손가락이 짧으면 도마에 유리하다. 도마를 짚을 때 힘의 손실이 적기 때문. 왕년의 스타 유옥렬(160cm)과 여홍철(165cm)은 모두 이런 특성을 지녔다. 현재 도마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북한 체조 선수들이 이들의 체형과 유사하다. 반면 봉 종목은 팔다리가 길어야 유리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평행봉과 철봉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이주형 현 남자대표팀 감독은 신장에 비해 팔이 유난히 길고 손가락도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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