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병원이름도 재미있다. 절세가인성형외과, 하늘느낌피부과, 뿌리깊은 한의원. ‘악어새 치과’도 그중 하나다. 의자에 누워 입을 벌리며 ‘나는 악어, 의사선생님은 악어새’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웃음이 난다. 사실 악어의 입장에서 손가락(앞발가락)은 물론이고 두꺼운 혀를 놀려 이빨 사이에 낀 고기 찌꺼기를 없애기는 어려운 일. 포식을 한 뒤 개운치 못한 기분으로 입을 벌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날아든 악어새가 잇몸에 낀 고깃점을 쪼아 먹으면 그 개운함이란 솔로 이를 쑤셔대며 거품을 토해내는 인간들의 ‘양치질’과는 비교도 안 된다.
사실 악어와 악어새가 정말 공생관계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악어새가 날아와 치아를 관리해준다”는 글을 남긴 뒤 정설로 굳어진 것. 악어새가 악어 등에 올라타 벌레를 잡아먹거나 어쩌다가 벌린 입안을 들락거리는 모습이 포착된 정도다. 아무튼 오랜 진화의 세월 동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만든 공생은 두 종 사이의 확고한 동맹으로 여겨져 왔다. 과연 그럴까.
배려 소홀하면 버림받아
자기에게 도움이 될 때는 입속의 혀처럼 굴다가 이익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면을 바꾸는 사람을 보고 ‘약삭빠르다’는 말을 쓴다. 약삭빠른 짓을 하는 사람은 당장은 이익을 챙기지만 보통 끝이 안 좋다. 동물 가운데는 여우가 약삭빠름의 대명사다. 그런데 땅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식물 가운데도 ‘약삭빠르다’는 소리를 들어야할 녀석이 있다. 게다가 이 친구 역시 결국 뒤끝이 안 좋다. 약삭빠른 식물은 바로 아프리카 들판에서 자라는 아카시아.
우리나라 아카시아와는 달리 아프리카 아카시아의 가지에는 커다랗고 속이 빈 가시가 나있다. 가시를 열어보면 안에는 개미가 우글거린다. 아카시아가 개미집을 마련해 준 셈이다. 게다가 당분을 분비해 개미를 먹여 살리니 개미 하숙집인 셈이다. 물론 하숙비는 받는다. 개미는 나무에 접근하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데 다른 곤충은 물론 커다란 초식동물도 개미 등쌀에 아카시아 잎을 먹는 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생태학자들은 개미를 없앨 경우 아카시아 나무가 어떻게 되는지 관찰했다. 예상대로 얼마가지 못해 초식동물에게 잎을 다 뜯겨 고사했다. 그렇다면 초식동물을 없애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아카시아는 잎이 무성할 것이고 숲은 빽빽해질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최근까지 아무도 이런 실험을 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10여년 전 미국 플로리다대 동물학과 토드 팔머 교수팀은 아프리카 케냐의 들판에서 생태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들판을 나눠 한 구획에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를 쳐 코끼리나 기린, 영양 같은 초식동물의 접근을 막았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어느 날, 팔머 교수는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구획 안의 아카시아가 주위에 비해 오히려 부실하고 고사한 나무의 빈도도 높았던 것.
팔머 교수는 아카시아 나무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 결과 이 일대의 아카시아에는 4종류의 개미가 살고 있는데 나무 한 그루당 한 종류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카시아 가운데 절반은 크레마토가스터 미모시(Crematogaster mimosae)란 개미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전형적인 공생관계를 보였다. 나머지 절반은 3종이 비슷하게 나눠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크레마토가스터 스조스테드티(C. sjostedti)란 녀석은 알고 보니 아카시아에게 별 도움이 안 됐다. 자기도 살려다보니 아카시아를 공격하는 동물을 막기는 하지만 필사적이지는 않고 가시 속의 빈방 대신 해충인 딱정벌레 유충이 파놓은 공간에 얹혀산다.
평소 아카시아와 관계가 돈독한 미모시는 군집이 커서 다른 종이 함부로 침입하지 못한다. 그런데 울타리에 막혀 대형초식동물이 접근하지 못하는 ‘영구평화’가 찾아들었다. 처음에는 아카시아도 무성해지고 미모시도 한가로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변화가 찾아왔다. 더 이상 잎이 뜯길 일이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된 아카시아가 ‘약삭빠른 짓’을 하기 시작한 것. 줄기에 난 가시의 빈도가 줄어들고 크기가 작아졌다. 또 아침 이슬처럼 큼직했던 꿀물방울도 쪼그라들었다. 이제 필요가 없어진 개미를 먹여 살리는 대신 자기 몸을 불리는 데 에너지를 쓰기로 한 것이다.
아카시아의 변심에 미모시는 큰 타격을 입어 군집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다. 이러다보니 미모시도 점점 무심해졌다. 해충이 찾아들어도 싸우는 시늉만 하고 때로는 꿀물을 분비하는 곤충(아카시아에게는 해충)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스조스테드티 집단의 공격을 받아 정떨어진 하숙집에서 쫓겨나는 일도 생겼다. 10년이 지난 뒤 울타리 안에서 아카시아를 차지한 순서가 역전돼 스조스테드티가 미모시보다 약간 앞섰다. 결국 전체적으로 아카시아 군집은 빈약해지고 말라죽는 비율이 높아졌다.
지구온난화가 부추긴 산호와 조류의 공생 실패
채식주의자들은 부족한 단백질을 콩 요리에서 채운다. 콩이 단백질이 풍부한 이유는 콩과식물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콩과식물의 뿌리는 중간 중간 혹처럼 튀어나와있는데 안을 열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박테리아가 득실거린다. 콩과식물이 제공한 뿌리혹 속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는 녀석들의 이름은 뿌리혹박테리아. 물론 공짜는 아니다. 뿌리혹박테리아는 질소고정 박테리아로 식물이 흡수할 수 없는 질소(N₃)를 암모늄이온(${NH}_{4}^{+}$)이나 질산염(${NO}_{3}^{-}$)으로 바꿔 식물이 흡수할 수 있게 한다. 질소는 단백질과 핵산을 이루는 핵심원소이므로 콩과식물은 단백질이 풍부한 열매를 맺는다. 생태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를 고정하는 작업이 중노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뿌리혹 속에 갇혀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할까.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R. 포드 데니슨 교수팀은 박테리아의 태업을 유도했다. 즉 대기 중의 질소함량을 낮춰 질산염의 생산성을 떨어뜨렸다. 수일이 지나자 박테리아가 절반으로 줄었다. 알고 보니 식물이 영양분과 산소공급을 끊었던 것. 연구자들은 식물이 뿌리혹 마다 개별적으로 산소공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분고분한 박테리아가 모여 있는 뿌리혹에는 더 주고 말 안 듣는 박테리아 쪽에는 겨우 살 만큼만 공급했다. 일종의 성과급인 셈이다.
아열대 해안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산호도 상황이 다급해지면 친구를 버린다. 몇몇 산호는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인 조류에게 서식지를 제공한다. 대신 조류는 광합성 산물을 산호와 나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급증하면서 산호와 조류의 공생이 흔들리고 있다. 조류는 어느 선 이상으로 수온이 올라가면 제 몸을 가누기도 어려워진다. 이를 감지한 산호는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조류를 버리고 고온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 다른 종류의 조류를 맞아들인다. 그러나 이렇게 상대를 바꾸더라도 산호는 얼마 더 살지 못한다. 최근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로 산호초의 20%가 파괴된 배경에는 산호와 조류의 공생 실패가 있다.
아쉬울 때만 찾아오는 박각시나방
봄이 되면 들판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꽃을 찾는 곤충의 모습이 정겹다. 식물은 꿀을 제공하고 곤충은 몸에 묻은 꽃가루를 퍼뜨려 수분을 시켜주는 다정스런 광경은 ‘공생’의 대명사다. 그런데 곤충이 꽃을 찾는 데도 철저한 계산이 숨어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미국 애리조나의 건조한 초원지대에 사는 박각시나방은 흰독말풀과 오랜 단짝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번데기에서 빠져나올 무렵 흰독말풀은 아직 꽃피울 준비가 돼있지 않다. 대신 주변에는 용설란 꽃이 한창이다. 먹을 게 없는 박각시나방은 아쉬운 대로 용설란을 찾아 배를 채운다.
그러나 원래 짝인 흰독말풀의 꽃이 피기 시작하면 귀신같이 알고 흰독말풀 꽃으로 옮겨간다. 미국 애리조나대 제프리 리펠 박사팀은 박각시나방이 어떤 신호를 받아 이런 행동변화를 일으키는지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박각시나방이 선천적으로 흰독말풀의 향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 식물의 꽃향기 강도는 비슷하지만 성분을 분석한 결과 조성이 달랐다.
이렇게 찾아간 흰독말풀의 꽃은 나방이 화밀을 먹기 편한 구조라 용설란은 완전히 잊힌다. 연구자들은 3월 4일자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곤충이 이용할 수 있는 꽃의 종류와 양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며 “박각시나방은 상황에 맞게 최선을 추구하는 유연성 있는 행동을 하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면역계 스파링파트너 헤르페스바이러스
며칠 잠을 설치며 시험공부를 하거나 심하게 앓고 나면 입술 주위가 간질간질하다가 물집이 부풀어 오른다. 반투명한 노란 딱지가 생겼다 없어질 때까지 1~2주는 영 보기가 좋지 않다. 물집을 일으키는 주범은 바로 헤르페스바이러스. 모든 사람들은 어린 시절 여러 유형의 헤르페스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이 녀석들을 완전히 소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체의 어딘가에는 헤르페스바이러스가 잠복해 있다. 피로나 스트레스가 누적돼 인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헤르페스바이러스는 활동을 재개한다.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2001년 미국 국립아동보건·인간발달연구소 레오니드 마골리스 박사는 예상치 못한 발견을 했다. 배양한 인간세포에 헤르페스바이러스와 에이즈바이러스를 같이 넣자 에이즈바이러스가 제대로 증식하지 못했다. 인간세포라는 삶의 터전을 두고 헤르페스바이러스가 에이즈바이러스와 경쟁을 해 우위를 점한 결과다.
헤르페스바이러스는 박테리아 감염에서 숙주를 지켜준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리스테리아 같은 병원성 박테리아를 바이러스가 없는 생쥐에 감염시키면 수일 안에 대부분 죽는다. 반면 헤르페스바이러스가 잠복해 있는 생쥐에서는 살아남은 개체가 꽤 많았다. 연구를 진행한 미국 워싱턴대 의대 허버트 버진 교수팀은 2007년 5월 17일자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을 때 숙주의 선천성 면역, 즉 감마-인터페론이 유발한 대식세포 활성화가 증진된다”며 “그 결과 침입한 박테리아를 퇴치할 확률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가끔씩 물집을 생기게 하는 대신 우리 몸의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무시무시한 병균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헤르페스바이러스는 적이 아니라 우리를 귀찮게 하는 친구가 아닐까.
영국 요크대 공생학자 안젤라 더글러스 교수는 “우리는 종간의 상호관계가 안정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관계를 상호공생, 편리공생, 기생으로 분류해 거기에 얽매여있다”며 “하지만 이제 이 관계가 얼마나 가변적인가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생은 영구적인 연합이 아니라 일시적인 데탕트(detente), 즉 긴장완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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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모래 위에 쌓은 우정
PART1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PART2 장내 미생물, 받은 만큼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