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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꿈은 이뤄지나?

전(全)분화능 줄기세포 연구 불붙어

01 수정란이 분열해 형성된 배반포. 내부세포덩어리(화살표)를 추출해 배아줄기세포(02)를 만든다.


미분화 세포인 줄기세포는 체세포와 달리 무한에 가까운 세포증식을 할 수 있고 특정한 기능을 가진 다양한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우리 몸의 각 조직에는 소량의 성체줄기세포가 있어 새로운 세포를 계속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피를 만드는 조혈줄기세포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으로 분화할 수 있다. 골수이식은 피를 만드는데 이상이 생겨 백혈병이 걸린 환자에게 건강한 골수 속에 있는 조혈줄기세포를 이식해 병을 고치는 방법이다.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배아줄기세포를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경우 수정 후 4~5일째인 배반포(blastocyst)의 내부세포덩어리(inner cell mass)는 20여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으며 이 세포덩어리가 자궁에 착상해 하나의 개체로 분화, 발달한다. 배아줄기세포는 내부세포덩어리를 배양해 얻는데,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전분화능을 가진 내부세포덩어리 고유의 성질을 유지한 채 체외에서 증식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분화할 수 있는 종류가 한정돼 있고 증식능력도 떨어진다.

배아줄기세포는 이번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마틴 에번스 박사팀이 1981년 생쥐에서 처음 확립했고,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1998년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 박사팀이 처음 보고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이 세포를 분화시켜 우리가 원하는 기능성 세포를 만드는 방법과 이 세포를 이식한 뒤 발생하는 면역거부반응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았다.

2000년 호주의 연구자들은 생쥐에서 핵을 없앤 난자에 체세포핵을 넣고 융합시켜 수정란처럼 만드는 ‘재(再)프로그래밍’으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이 과정을 사람에 적용하면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 2004년 황우석 교수팀이 성공을 발표했으나 결국 단성생식으로 밝혀졌다. 이 방법을 계속 시도하려면 난자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대상으로는 활발한 연구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세포융합을 거치지 않고도 배아줄기세포 또는 그 정도의 전분화능과 증식능력이 있는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에 대한 기대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02 배아줄기세포 덩어리가 지지세포에 둘러싸여있는 모습

 

단성생식으로 만든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난자를 교란해 수정란처럼 행동하게 유도하면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사람에서도 성공했으나 실제 치료에 적용하기는 이르다.



생식세포에 주목
 

감수분열 중인 난자를 교란해 만든 유사 수정란. 지름이 70~80㎛(마이크로미터, 1㎛는 10-6m)다. 사이언스

 


우리 몸은 크게 체세포와 생식세포로 이뤄져 있다. 우리 몸의 대부분인 체세포는 기능에 맞게 분화돼 역할을 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수명을 다한다. 생식세포는 수컷에서는 정자, 암컷에서는 난자로 분화돼 유전 물질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생식’(reproduction)이라는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사건을 담당한다.

생식세포는 전분화능을 가진 세포로 변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로부터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생산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 줄기세포연구소 조지 데일리 교수팀은 생쥐의 난자로부터 단성생식으로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하는데 성공했고, 미국의 생명과학 회사인 ‘인터내셔널 스템 셀’은 인간 난자에서 단성생식으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난자는 정자와 만나 접합체(2n)가 되기 전까지는 반수체(n)이며 이 상태에서는 배아로 발생할 수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감수분열 중 멈추게 한 난자(2n)에 전기 또는 화학적 자극을 주어 난자의 프로그램을 교란해 난자가 수정체인 것으로 착각하도록 유도해 배아를 만들고 이로부터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줄기세포주를 확립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배아줄기세포가 수정란에서 유래한 정상 배아줄기세포와 비슷하더라도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날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인위적 조작에 따른 불완전성의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되지 않는 한 이 세포주를 임상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또 성공 효율이 높더라도 여전히 인간 난자를 이용해야 하는 생명윤리적 문제점이 남아있다. 아무튼 여성은 자신의 난자를 이용해 내 몸에 맞는 배아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있다.

그렇다면 남성은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 혜택을 기대할 수 없을까? 지난해 독일 연구팀은 생쥐 정소 내에 존재하는 정원줄기세포(정자를 생산하는 기원이 되는 줄기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비슷한 전분화능과 증식능력이 있는 줄기세포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현재 인간을 대상으로 이와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국내외 연구팀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필자가 참여한 국내 연구팀은 이미 비폐쇄성 무정자증 환자의 정소에서 정원줄기세포를 분리할 수 있는 기술과 이를 분화시켜 정세포 (꼬리가 생기기 전의 반수체 세포)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현재는 반대방향, 즉 정원줄기세포를 더 미분화된 상태인 전분화능을 갖는 세포로 전환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만약 인간에서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도 내 몸에서 유래한 세포를 이용해 내 몸에 맞는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생산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더욱이 정원줄기세포는 반수체(n)가 아닌 2배체(2n)이므로 유전학적인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 생식세포의 본래 프로그램을 지우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전분화능을 갖도록 유도하고 이 기전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줄기세포생물학은 물론 인간 발생학에서도 획을 긋는 커다란 과학적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정원줄기세포를 역분화시켜 만든 환자맞춤형줄기세포^생쥐의 정원줄기세포로부터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얻었다. 난자를 쓰지 않고 배아도 파괴하지 않아 윤리적 문제가 없다. 사람에서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상태.
난자에 체세포핵치환해 만든 환자맞춤형줄기세포^황우석 박사팀의 연구가 실패로 밝혀진 뒤 영장류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으나 최근 붉은털원숭이에서 성공했다.



체세포를 전분화능 줄기세포로 전환

한 단계 더 나아가 생식세포가 아닌 체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해 전분화능을 유도하는 연구가 지난 수년간 진행됐다. 지난해 일본 과학자들은 마침내 이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즉 정상 배아줄기세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 네 개(Oct4, Sox2, c-Myc, klf4)를 찾아낸 뒤 이들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실어 생쥐 체세포에 넣었다. 그 결과 이 체세포가 배아줄기세포와 매우 비슷하게 전환된 것을 확인했다.

Oct4와 Sox2는 배아줄기세포 같은 전분화능 세포에서만 발현하는 유전자이고, c-Myc과 klf4는 암세포에서 많이 발현하는 암 관련 유전자다. 즉 전분화능과 무한 증식능력을 유도함으로서 체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하게 전환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근년에 발표된 줄기세포 관련 연구 중 가장 돋보이고 중요한 연구 결과일 것이다.

내용을 종합하면, 최근 연구의 가장 뚜렷한 목표 중 하나는 정상 배아줄기세포의 전분화능 발현 및 유지 메커니즘을 이해해 이미 분화한 상태인 체세포를 분화의 반대 방향으로 재프로그래밍해 세포가 다시 분화능을 갖게 하는 것이다. 실로 과학자의 상상력은 한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미래를 상상해보자. 당뇨병을 앓고 있는 A씨의 피부조직에서 피부세포를 떼어내어 배양해 수를 늘린다. 이 세포에 적절한 유전자 조작으로 전분화능 또는 다분화능을 갖도록 재프로그래밍해 줄기세포를 만든다. 다음 단계로 이 세포를 적절한 조건에서 분화시켜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세포를 만든다. 이를 A씨의 몸에 이식해 인슐린을 생산하게 함으로써 인슐린 결핍으로 인한 당뇨병을 치료한다. 이 경우는 자신의 체세포를 원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면역거부반응의 가능성도 전혀 없는 획기적인 치료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유전자 조작의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고 또 기능을 하는 인슐린 분비 세포를 만들어야 하는 등 가야할 길은 아직 무척 멀다. 그러나 가능성이 보이는 한 과학자들은 그들의 갈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체세포를 역분화시켜 만든 환자맞춤형줄기세포^생쥐의 체세포에 역분화를 유도하는 유전자를 도입해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얻었다. 난자를 쓰지 않고 배아도 파괴하지 않아 윤리적 문제가 없다. 사람에서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상태.
체세포를 역분화시켜 만든 환자맞춤형줄기세포^생쥐의 체세포에 역분화를 유도하는 유전자를 도입해 전분화능 줄기세포를 얻었다. 난자를 쓰지 않고 배아도 파괴하지 않아 윤리적 문제가 없다. 사람에서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상태.

줄기세포 관련 주요 연구결과
인간배아줄기세포에서 분화시킨 췌장세포. 녹색이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다.



*비폐쇄성 무정자증
정자가 이동하는 관은 막혀있지 않지만, 유전적 문제 때문에 정원줄기세포로부터 정자를 생산하지 못하는 남성 불임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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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한국 줄기세포 논문의 피와 땀
PART2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꿈은 이뤄지나?
PART3 줄기세포, 그 분화의 비밀을 찾는다

200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계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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