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폐막된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이봉주 선수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 이어 남자마라톤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특히 이번 우승은 27번째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 얻은 결과여서 더욱 놀라움을 던져주고 있다. 이같은 쾌거의 밑바탕에는 이봉주 선수의 강인한 인내심과 끈기도 있지만,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마라톤과학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20g 가벼워진 마라톤화
이봉주의 마라톤과학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운동화. 스포츠화는 경기종목에 따라 특정 기능을 강화하도록 설계된다. 이를 위해 스포츠화 제작은 개발단계부터 특정 경기의 우수선수와의 협의하에 진행된다. 이봉주 선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선수는 세계적 스포츠용품 메이커인 일본의 아식스사로부터 최근 ‘마라톤 소르티 리(SORTIE LEE)’로 이름 붙여진 특수 마라톤화를 전달받았다. 일명 ‘봉달이화’라고 불리는 소르티 리는 특수화 제작의 세계적 권위자인 일본의 미무라 히토시 박사가 이 선수를 위해 특수 제작했다.
봉달이화의 특징은 크게 두가지. 히토시 박사는 이 선수의 발 크기에 딱 들어맞도록 운동화를 맞춤 제작했다. 기존에 이 선수는 2백55mm의 신발을 신었다. 하지만 발 크기를 정밀 측정한 결과, 2백55mm와 2백60mm의 사이였다. 따라서 봉달이화는 기존의 신발보다 약간 크게 제작됐다.
또한 봉달이화는 기존의 마라톤화 중에서 가장 가벼운 소재를 사용했으며, 통기가 잘 되도록 설계됐다. 42.195km의 풀코스를 쉼 없이 뛰는 마라톤 경기의 경우, 신발의 무게가 기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신발 무게가 10g 가벼워지면 마라톤기록이 1분 단축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히토시 박사는 경량화를 위해 ‘러셀매치’라는 첨단소재를 사용했다. 기존에 이 선수가 사용하던 마라톤화는 1백65g이었으나, 러셀매치를 사용한 봉달이화는 20g이나 줄어든 1백45g이다. 러셀매치는 통기성 또한 높였다. 보통 마라톤 경기중에 신발 내부의 온도는 45℃에 육박해 땀과 습기가 많이 찬다. 하지만 봉달이화는 러셀매치의 사용과 특수 설계로 내부 온도를 38℃까지 낮췄다.
한편 충격흡수를 위해서는 ‘아식스 젤’이라는 물질이 사용됐다. 아식스 젤은 실리콘을 기본으로 한 소재로, 30mm의 두께인 경우 10m 높이에서 달걀을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 흡수 능력이 뛰어나다. 이번 봉달이화 제작에는 총 7천만원이 투자됐다.
낮에도 밤처럼 ‘선글라스 효과’
이봉주 선수 2연패 달성의 밑거름에는 첨단 운동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선수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선글라스도 과학적 근거에 바탕한 ‘우승 도우미’다. 선글라스를 쓰고 뛰면 우선 생리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실험 결과에 의하면 인간은 똑같은 조건이면 낮보다는 밤에 더 빨리 달린다. 따라서 낮에 선글라스를 쓰고 달리면 인체의 생리작용으로 밤에 달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선글라스는 뜨거운 햇살도 막아준다. 그냥 달리는 것보다 더위를 덜 느낀다는 것이 마라톤선수들의 말이다. 마지막으로 선글라스는 상대선수와의 심리전에서 유용한 도구로 사용된다. 레이스 도중 상대에게 표정을 읽히지 않게 하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 선수는 초반 20km 지점까지 포커페이스로 일본선수들에게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봉주 선수의 코치인 삼성전자육상단의 오인환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처럼 덥고 습기가 많은 바닷가를 달리는 최악의 조건에서는 첨단과학이 동원된 여러가지 장비들이 선수들의 레이스를 도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