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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줄기세포, 그 분화의 비밀을 찾는다

특정 세포 분화 유도 연이어 성공

줄기세포, 그 분화의 비밀을 찾는다.



최근 배아줄기세포 또는 그에 버금가는 전분화능과 증식능력을 보이는 줄기세포를 만드는 연구가 한창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줄기세포를 많이 만든다고 해서 바로 ‘줄기세포치료’의 시대가 열리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실제 치료에 적용하기에 앞서 줄기세포를 원하는 유형의 세포로 분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며, 이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1998년 처음 인간 배아줄기세포가 만들어졌지만, 아직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세포치료를 시행했다는 소식은 없다. 그러나 최근 많은 연구자들이 줄기세포가 특정 세포로 분화하도록 ‘설득’하는데 연이어 성공하고 있으며, 이렇게 얻은 세포를 최초로 세포치료에 적용하기 위한 국내외 과학자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발달생물학에 길을 묻다
 

배아줄기세포는 제멋대로 분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배아줄기세포 덩어리의 이부(화살표)에서 분화가 진행되고 있다.


‘줄기세포 분화’는 줄기세포가 신체의 각종 장기에서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여러 종류의 세포로 변환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특히 배아줄기세포는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약 210여종이 넘는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잠재력, 즉 전분화능이 있기 때문에 세포치료에 쓰는 거의 모든 종류의 세포를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전분화능은 배아줄기세포를 실제 임상에 적용하기 힘들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배양접시에 있는 배아줄기세포는 제멋대로 여러 종류의 세포로 분화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지속적으로 억제하면서 환자에게 필요한 특정 세포로 분화하게끔 유도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210여개의 갈림길에 놓인 배아줄기세포를 우리가 원하는 한쪽 길로만 가게 설득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발달생물학의 연구 결과에서 얻을 수 있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한 뒤 세포 분열과정인 난할을 거친 배아는 모체의 자궁에 착상해 하나의 개체로 성장한다. 이 초기 발생 과정동안 배아를 구성하는 세포들은 시기별로 특정 단백질 신호를 주고받아 독특한 유전자를 발현시키며, 이들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의 통제를 받아 각기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세포와 조직이 된다.

착상하기 전 배아세포인 배반포는 내부세포덩어리와 바깥의 영양세포층으로 이뤄져있다. 이중 우리 몸으로 발달하게 될 내부세포덩어리 안에 있는 세포는 착상과 거의 동시에 최초로 분화하기 시작해 3개의 세포층인 내배엽, 중배엽, 외배엽을 형성한다. 이어서 내배엽으로부터 간, 췌장, 폐, 소장, 대장과 같은 내장기관이, 중배엽에서 근육, 신장과 더불어 심장, 혈액, 혈관 같은 심혈관 기관이, 외배엽으로부터 피부와 함께 뇌, 척수조직 등의 신경기관이 생긴다.

내부세포덩어리의 세포를 추출해 만든 배아줄기세포를 분화시킬 때도 같은 원리를 적용한다. 배아줄기세포로부터 특정 신경세포를 분화시키는 방법을 살펴보자. 신경세포하면 신경단위세포인 뉴런이 떠오르지만 뉴런도 신경전달물질의 종류와 신경계내의 위치에 따라 종류가 여러 가지로 나뉜다. 이 밖에도 신경전달 및 신경세포의 생존과 구조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상세포(astrocyte), 뉴런을 감싸 절연체의 역할을 하는 희소돌기아교세포(oligodendrocyte) 등 많은 종류의 신경세포가 있다.
 

줄기세포를 낮은 밀도로 배양하면 신경세포로 분화하는 경향이 크다



분화 도와주는 ‘촉진인자’
 

배아줄기세포 분화 과정^줄기세포에 특정 분화인자를 처리하면 상응하는 유전자가 활성화되면서 원하는 세포유형으로 분화한다. 대부분의 분화인자는 발달생물학 연구 과정에서 그 역할이 밝혀졌다. 아래는 발생 중인 생쥐 태아모습.


신경세포가 기능을 상실하거나 소멸되면 신경계의 기능이 떨어져 각종 뇌질환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중뇌의 ‘도파민성 신경세포’가 소멸되면 파킨슨씨병이,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면 루게릭병이라 일컫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 ‘희소돌기아교세포’가 소실되면 신경섬유 보호막이 파괴돼 신경계가 잠식되며 뇌가 퇴화하는 질병인 다발성경화증이 생긴다. 따라서 특정 신경세포가 없어져서 생긴 뇌질환을 치료하려면 이에 해당하는 신경세포를 넣어줘야 한다. 그렇다면 미분화된 배아줄기세포를 특정 신경세포로 분화시키는 과정은 어떻게 될까?

배아줄기세포를 배양접시에서 떼어낸 뒤 4~8일간 배양하면 구형의 세포복합체가 만들어진다. 이 구형의 세포덩어리는 정상적인 초기 배아의 모양과 비슷한 구조를 보이기 때문에 ‘배아체’ 혹은 ‘배상체’라 부르는데, 초기 배아와 마찬가지로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분화유도의 첫 단계다.

다음으로 각종 신경세포로 분화하게 도와주는 ‘촉진 인자’ (FGFs, 레티놀산, BDNF, 소닉 헤지혹(Sonic hedgehog) 등)와 다른 세포로 분화하는 것을 억제하는 인자를 처리하면 배아체가 신경외배엽세포로 분화하는 경향이 커진다. 이렇게 형성된 배아체는 다량의 신경외배엽세포를 포함하며, 6~8일간 더 분화시키면 정상 배아의 발생과정에서 형성되는 초기 신경관의 단면과 매우 흡사한 모양의 구조물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둥근 꽃모양의 세포 배열을 ‘신경 로젯’(neural rosette)이라 부른다. 신경 로젯 주변에는 역시 배아줄기세포로부터 분화한 많은 신경전구세포(분화종료 뒤 각종 신경세포가 될 세포)가 존재한다. 이때 FGF2와 같은 세포증식인자를 처리해 신경 전구세포의 수를 증폭시킨다. 마지막 단계로 특정 신경세포로 성숙하거나 생존하는데 관여하는 분화인자를 신경전구세포에 처리해 배양하면 원하는 종류의 신경세포를 높은 순도로 다량 얻을 수 있다.

실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신경세포를 만들어 임상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커스테드 박사팀은 배아줄기세포관련 생명공학회사인 제론(Geron)사와 함께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척수 희소돌기아교세포로 순도 높게 분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척수신경이 손상된 실험동물에 이 세포를 이식해 신경을 회복시켰다. 많은 생쥐에 이식한 뒤, 일 년 동안 부작용, 특히 배아줄기세포의 이식으로 인해 유발될 수 있는 테라토마(기형종)가 생기지 않을 경우, 척수손상환자에 임상적용하기 위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획득할 가능성이 커 그 결과가 주목된다.
 

01 신경세포 분화 2일차. 둥근 꽃모양의 세포배열인 '신경 로젯'에는 신경전구세포(녹색)가 분포하고 그 사이에 분화된 세포인 뉴런(빨간색)이 보인다.
02 분화 4일차. 신경전구세포가 줄고 뉴런이 늘었다. 03 분화 6일차. 대부분의 세포가 뉴런으로 분화를 마쳤다.



인슐린 주사에서 벗어날 희망

인간배아줄기세포로 당뇨병을 치료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특히 제 1형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드는 베타세포가 소멸돼 혈당조절이 안 되는 병으로, 지금으로서는 정기적으로 인슐린을 주사하는 방법밖엔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만일 환자에게 줄기세포로부터 분화시킨 베타세포를 넣어준다면 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로 분화시키기 위해서는 신경세포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태아의 초기 발달과정 중 신경세포가 외배엽에서 분화되는 반면, 내장기관인 췌장은 간과 함께 내배엽(장내배엽)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배아줄기세포를 췌장세포로 분화시키려면 먼저 내배엽으로 분화를 촉진시켜 다량의 내배엽세포, 특히 췌장내배엽세포를 얻어야 한다. 정상적인 배아의 초기 발생과정에서는 액티빈(Activin), 노달(Nodal), Wnt, FGF4, 레티놀산 등과 같은 인자들이 내배엽의 형성에 관여한다. 이런 발달생물학적 근거를 배아줄기세포의 분화에 적용해,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당뇨병의 세포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췌장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노보셀(Novocell)이란 줄기세포관련 생명공학회사는 단계별 유도분화방법을 통해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인슐린을 합성하는 췌장세포로 분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신경세포 분화기법을 개발해 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제론사도 역시 독자적인 췌장세포 분화기법을 개발한 뒤 이식 후 면역거부반응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필자가 속해 있는 연구실도 과학기술부 세포응용연구사업단의 연구지원을 받아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췌장전구세포로 분화시켜, 이를 당뇨병이 유발된 실험동물에 이식해 성공적인 혈당감소를 이끌어 냈다.

인간배아줄기세포로부터 신경세포나 췌장 베타세포를 효과적으로 분화시키는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임상에 적용하려면 많은 난제를 극복해야한다. 예를 들어 잔존해 있는 미분화 배아줄기세포가 함께 이식될 경우 테라토마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분화유도 뒤 원하는 세포만을 순수하게 분리해내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또 분화된 세포가 생체 내에서 오랫동안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면밀한 분석도 필요하다. 최근 줄기세포 분야의 눈부신 발전을 생각하면, 머지않은 시기에 줄기세포가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줄기세포, 터치에도 민감
 

줄기세포는 자라는 배지의 상태에 따라 분화의 운명이 달라진다. 뇌처럼 말랑한 배지에서는 신경세포(왼쪽)로, 중간 굳기에서는 근육세포(가운데)로, 단단한 배지에서는 뼈세포(오른쪽)로 분화한다.


부드러운 소파에 온몸을 내맡긴 듯 앉아 있다가도 딱딱한 의자로 옮기면 자세까지 바르게 된다. 상황에 맞게 가장 편한 상태로 몸이 적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줄기세포도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데니스 디스처 교수팀은 골수에 있는 중간엽줄기세포를 대상으로 배지의 딱딱한 정도가 줄기세포가 분화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특정 방향으로 분화를 유도하는 인자, 즉 화학 신호물질은 전혀 쓰지 않은 채 배지의 조건만을 바꿔가며 세포를 키웠다.

즉 도토리묵 가루처럼 물에 타면 젤을 만드는 물질인 폴리아크릴아마이드의 양을 달리해 각각 뇌, 근육, 아교성 뼈와 굳기가 비슷한 젤을 만들었다. 그 결과 뇌와 비슷한 부드러운 배지에서 자랄 경우는 신경세포로 분화하고 근육과 비슷한 중간 정도 굳기의 젤에서는 근육세포, 아교성 뼈와 비슷한 딱딱한 배지에서 자란 줄기세포는 뼈세포로 분화했다. 이 연구결과는 ‘셀’ 2006년 8월 25일자에 실렸다.

디스처 교수는 “줄기세포는 주변 환경과 비슷한 상태가 되는 세포로 분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것은 부분적으로 세포 골격을 이루는 미오신 분자가 세포의 촉각 센서를 조절해 세포가 분화할 방향을 알게 해주기 때문”고 설명했다. 결국 줄기세포는 분화인자라는 화학적 신호와 촉각이라는 물리적 신호를 종합해 최종적으로 분화할 세포유형을 결정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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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한국 줄기세포 논문의 피와 땀
PART2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꿈은 이뤄지나?
PART3 줄기세포, 그 분화의 비밀을 찾는다

200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종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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