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명 충분히 풀 수 있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금방 떠올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풀리지 않았다"
칠판, 책상, 벽시계, OMR카드 그리고 컴퓨터 사인펜. 모든 것이 어색하면서도 익숙하다. 심장이 조여 오는 긴장감까지도. 과학고를 졸업한 지 12년 만에 느껴보는 시험 전 긴장감. 밤새워 공부했던 학창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준비가 되지 않은 탓에 더 떨렸다.
5월 8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과학고에서 12년 만에 수학 중간고사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펼쳤다.
총 18문제, 50점 만점에 8.1점 받아
이날 시험은 세종과학고 내 수학 교실에서 진행됐다. 재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중간고사를 치른 4월 26일 이후로 시험일을 잡았고, 감독은 따로 두지 않았다.
책상에 놓인 시험지는 2019년 1학기 중간고사 수학A. 세종과학고 1학년 중간고사 수학 시험은 수학A와 수학B, 두 번에 나눠서 치러진다. 각 50점 만점으로 이를 합산해 1학기 내신 성적을 매긴다. 이 때문에 한 시험에서 삐끗해도 다른 시험에서 만회할 수 있다.
수학A에는 다항식과 복소수, 좌표평면에 관한 문제가 출제됐다. 수학B는 집합과 명제, 함수가 출제 범위였다. 수업 진도가 빠른 과학고는 여러 단원을 동시에 가르친다.
하지만 수업 내용이 정규 교과 과정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과거 기자가 과학고를 다니던 때에는 정규 과정을 훌쩍 넘어 대학교 수준의 내용을 수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차이는 시험 문제에서도 확인됐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어떤 문제가 출제됐는지 쭉 훑어봤다. 시험은 선택형(객관식) 6문제, 단답형 6문제, 서술형 6문제, 총 18개의 문제로 구성됐다. 이 정도면 해볼 만 하겠는걸. 문제조차 이해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1번을 푸는 동안 자신감은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문제가 ‘이상’하지는 않았다. 1번은 다항식의 나눗셈에 관한 선택형 문제였다.
분명 다항식의 나눗셈에 관한 개념만 이용하면 충분히 풀 수 있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금방 떠올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풀리지 않았다. 수학A를 출제한 김승룡 세종과학고 수학교사는 “최근에는 수준 높은 문제보다는 기본 개념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문제를 주로 출제한다”며 “여러 개념을 합치거나 계산을 복잡하게 만드는 식으로 난이도를 조절한다”고 말했다.
다항식은 수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학 과목에 널리 쓰이는, 기초 중의 기초다. 결국 답을 내지 못한 채 세월을 탓하며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2번은 복소수의 성질에 관한 문제였다. 복소수는 실수와 허수를 포함한 수 전체로,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래서 복소수에 관한 문제는 대개 실수와 다른 복소수의 성질을 묻는 문제가 많이 출제된다. 문제 풀이보다는 개념 자체를 얼마나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머리를 쥐어짜 겨우 풀었다.
시간을 확인했더니 두 문제를 풀었을 뿐인데 벌써 20분이 지났다. 주어진 시간은 60분. 18문제 중 2문제를 푸는 데 시험 시간의 3분의 1을 써버렸다. 급한 마음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문제를 더 풀었을까. 김 교사가 들어와 시험 종료를 알렸다. 답을 적은 문제는 선택형 4문제와 단답형 1문제, 총 5문제였다. 참담했다.
답안지를 받아 채점해보니 그마저도 한 문제는 답이 틀려 최종 성적은 8.1점이었다. 세종과학고 1학년의 이번 시험 평균 점수는 수학A와 B를 합쳐 40점대 중반이었다고 한다.
시험은 망쳤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과학고의 취지에 적합한 시험이라고나 할까. 세종과학고 학생들은 어땠을까.
권혁준 군은 “유인물에 있는 문제를 변형한 것이 많았다”며 “계산이 어려웠을 뿐 배우지 않은 내용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송민준 군도 “교육 과정을 벗어난 문제는 없었다”며 “다만 문제가 많이 변형돼 단번에 풀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