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저공(狙公)은 원숭이를 많이 길렀는데, 먹이가 점점 부족해지자 하루에 주는 도토리 수를 제한하기로 했다. 저공이 “이제부터 아침에는 도토리 3개, 저녁에는 4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은 불같이 화를 내며 불평했다. 이에 꾀를 낸 저공이 살짝 말을 바꿔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은 잠잠해졌다.
‘조삼모사’(朝三暮四)는 눈앞의 이익에 집착해서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말이다. 그러나 금융공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다르다.
현재의 100만원과 1년 뒤의 100만원이 같은 가치를 가질까. 연이율 5%인 은행예금에 100만원을 가만히 넣어두기만 해도 단리로 계산하면 1년 뒤 105만원이 된다. 거꾸로 1년 뒤의 100만원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95만원에 불과하다. 시간이 돈인 셈이다.
같은 원리로 하루에 똑같이 도토리 7개를 받는다면 가능한 아침에 더 많이 받는 편이 유리하다. 금융기관 사이에서는 한나절이나 하루처럼 짧은 시간 돈을 빌려줄 때도 이자를 받는다. 이때 적용하는 이자율을 콜금리라고 한다. 만약 아침에 100만원을 빌려 저녁에 갚는다면 지난 8월 9일 연 5%로 인상된 콜금리를 적용해 하루의 이자인 137원을 내야 한다.
함무라비법전에는 고대 수메르지방에서 벌어졌던 상거래에 대한 얘기가 실려 있다. 보리를 경작하는 농부가 돈을 빌릴 때는 33.3%의 금리가 적용됐지만 은을 채굴하는 광부는 20%의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금리에 차이가 존재하는 까닭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주고 못 받을 위험이 늘 존재하는데다가 그 돈이 없어서 다른 경제활동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기에 적정한 금액을 이자로 보상받아야 한다. 이 경우 은 채굴보다 보리농사가 변동이 심했기 때문에 채무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평가해 더 높은 금리가 적용됐다.
현재와 미래, 금리의 삼각관계
금리는 직각삼각형에서 밑변인 현재가치와 높이인 미래가치를 연결하는 기울기 개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라도 그림자의 길이로 그 높이를 알 수 있는데, 여기서 나무의 높이는 미래가치, 그림자의 길이는 현재가치를 의미한다.
금리는 현재 저축한 돈이 미래에 얼마나 늘어날지 결정한다. 간단히, 미래가치=(현재가치)×(1+금리)로 표현할 수 있다.
나무의 높이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지듯 미래가치를 현재시점에 투영(Projection)한 것이 현재가치다. 모든 금융상품의 현재 거래가격은 나무의 그림자 길이와 같고, 식으로 나타내면 현재가치=미래가치/(1+금리)다.
주식 같은 금융상품의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원인도 이 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현재의 주가, 즉 현재가치가 올라가고 있다면 미래의 현금 흐름이 개선되거나 성장률이 커지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줄어든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는 금리가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현재가치와 미래가치, 금리는 끈끈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개인끼리 돈을 빌려주며 이자를 받던 소규모 자산투자는 폭발적인 수요에 힘입어 특정금리와 약정기간을 가진 금융상품으로 발전했다. 특히 1970년대에 접어들자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이 등장했다. 경기변동에 민감한 금리, 환율, 주가, 상품을 기초자산? 으로 정한 뒤 미래가치를 예상하고 그 가격을 현재가치로 바꿔 상품을 만드는데,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파생금융상품은 이러한 기초자산에 선물(Futures)과 옵션(Options) 같은 조건을결합해 만든다.
‘조인성’을 ‘찜’해둘 수 있는 권리
선물은 미래 특정시점의 기초자산을 현재시점에서 거래하는 것을 뜻한다. 쉽게 예를 들어 영화배우 전지현이 조인성과 1년 뒤에 결혼하기로 계약했다고 가정하자. 이는 조인성을 기초자산으로 한 일종의 선물거래라고 할 수 있다. 1년 뒤 조인성의 ‘상품가치’가 올라가면 전지현은 행복해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손해 보는 장사를 한 셈이다.
옵션은 전지현이 1년 뒤에 조인성과 결혼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조인성이란 기초자산의 가능성을 거래하는 상품으로 전지현은 조인성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경우 과감히 옵션을 포기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권리를 얻기 위해서 그는 많은 돈(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한다.
미래의 환율이나 주가, 원유나 금의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해야 선물이나 옵션의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이때 복잡한 수학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래 시점에서 기초자산의 가격은 적어도 마이너스가 아니고, 현재의 가격을 기준으로 일정한 상승, 하락률을 갖는다는 점은 변함없다. 따라서 기초자산 가격의 변화율이 평균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는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한 뒤 여러 파생금융상품을 만든다.
금덩어리를 땅에 묻어놓는다고 부자가 되지 않듯 돈은 많이 흐를수록 불어나게 마련이다. 돈을 벌게 해준다는 다양한 금융상품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지금. 현재의 돈이 시간이라는 ‘마법’을 통과하며 어떻게 늘어날지 정확히 내다보기 위해서는 수학에 바탕을 둔 과학투자가 절실하다.
은행 금리가 최고 5% 수준에 머물러있자 투자자들은 좀 더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을 찾아 나섰다. 흔히 투자는 직접투자와 간접투자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주식이나 채권에 시기나 종목을 정해 직접 투자하면 위험은 커지지만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반면 적은 돈이라도 간접투자상품에 넣으면 금융전문가의 관리 아래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
2000포인트를 넘었던 코스피지수가 최근 폭락하며 불안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직접투자의 위험부담은 더 커졌다. 게다가 재테크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투자에 매달릴 시간도 빠듯한 까닭에 펀드 같은 간접투자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뜨는 금융상품, 수학으로 해부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말까지 국내 금융회사가 발행한 파생상품은 49조원 어치에 이르고 이 가운데 주식연계 상품이 61.4%, 금리연계 상품이 20.4%를 차지했다.
주식연계 상품의 절반 이상은 ELS였는데, 올해 상반기에만 1820여개가 발행됐다. 하루에 약 10개의 새로운 ELS상품이 쏟아진 셈이다.
ELS는 주식과 채권의 비율을 적절히 혼합해 최고의 수익을 거두려는 목적의 펀드다. 화제가 되고 있는 CMA는 은행계좌와 증권계좌의 장점을 혼합해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하고 단기적으로 돈을 운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보험 상품도 간접투자로 볼 수 있다. 요즘 생명보험 또는 사망보험을 보장자산이라 부르는까닭은 보험이 단순히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받을 수 있는 권리이자 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개인에게 불행이 닥쳐도 가족의 구성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우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에는 보험사가 가족의 역할을 대신 맡아 위험을 분산해준다. 최근에는 고객이 낸 보험료를 투자해 그 수익을 돌려줘 보장과 투자를 동시에 하는 보험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금리가 높을수록 감당해야할 위험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 이제부터는 금융상품을 선택할 때 수학적 구조를 꼼꼼히 분석하며 자신이 안정된 투자를 원하는지, 위험하더라도 수익이 높길 바라는지 판단해보자.
*기초자산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금융상품에서 거래의 대상이 되는 자산. 금이나 은, 원유, 곡물 같은 상품자산이나 주식, 채권, 환율, 금리 같은 금융자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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