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탁구공으로 저글링을 할 수 있나요?” 카메라 앞에 선 4명의 우주인 중 1명이 상자에서 탁구공 3개를 꺼내자 탁구공은 공중에 뜬 채 가만히 있다. 이어서 탁구공 3개를 위로 던지자 천장에 부딪혀 각자 제멋대로 튀었다. 이어서 한 학생이 음료수를 먹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한 우주인이 튜브에서 음료수를 조심스럽게 짰다. 둥글둥글 공중에 뜬 ‘음료수 덩어리’를 다른 우주인이 숟가락으로 ‘잡아’ 먹거나 빨대로 쪽 빨아 먹는다.
지난 8월 14일 미국 우주인 바버라 모건이 동료 우주인들과 함께 지구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우주원격수업’ 장면이다. 이 수업은 8월 9일 발사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엔데버에서 이뤄졌다. 수업을 듣기 위해 미국 아이다호의 디스커버리센터에 모인 학생들은 우주인 교사의 재미있는 수업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22년만에 이룬 ‘우주수업’의 꿈
이 수업을 준비한 바바라 모건은 최초의 교사 출신 우주인이다. 그녀를 태운 우주왕복선 엔데버가 궤도에 오르자, 그는 “세계의 모든 교사를 대표해 우주에 왔다”고 말하고 “나의 비행을 세계의 모든 교사와 학생에게 바친다”며 감격했다.
모건의 ‘우주수업’에 대한 희망은 1985년에 시작됐다. 당시 33살의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NASA의 ‘우주선생님 프로젝트’에 지원했지만 최종 선발에서 동료 교사 크리스타 멕알리페에 밀려 후보가 됐다. 하지만 1986년 멕알리페가 탄 우주왕복선 챌린저는 발사 73초 만에 공중 폭발하는 비극을 맞았다.
그 뒤 그는 학교로 돌아갔다가 1998년 NASA의 교육프로그램에 복귀하며 오랜 꿈에 다시 불을 지폈다. 2003년 컬럼비아가지구로 귀환하던 도중 폭발하며 그의 다음 비행이 미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우주수업’에 도전한지 22년 만에 그 꿈을 이뤘다.
모건은 이번 비행에서 3번이나 수업을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시나몬바질(꽃과 잎의 향기가 강한 꿀풀과 1년 살이 풀) 씨앗 수백만 개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가져가 중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 약 2주 동안 노출시켰다가 지구로 가져왔다. 이씨앗을 받아 키운 학생들이 미래에 달이나 화성에서 농사를 짓는 일에 앞장섰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엔데버에 탑승한 우주인들의 주임무는 2주 동안 ISS에 새 지붕틀을 붙이고 위아래가 없는 우주정거장에서 방향을 통제하는 일을 돕는 자이로스코프를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최초로 실시간 우주수업을 하며 우주개발의 주역이 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미국처럼 다른 나라도 우주개발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는다. 1992년 첫 우주인을 배출한 일본은 ISS에서 둥둥 떠다니는 물방울 안에 벚꽃이나 공기를 넣는 실험과 CD플레이어 3개로 자이로스코프를 만들어 비디오카메라를 고정하는 실험을 했다.
또 2002년 벨기에 우주인은 ISS에서 라디오파를 이용해 지구의 학생들과 ‘우주 공간에서 신체가 어떻게 변하는가’ 같은 물음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전화수업’을 했고, 스페인은 2003년 ‘세르반테스 미션’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돼지뼈에서 뽑은 연골 조직을 가져다가 ISS에서 다시 새로운 연골로 성장시키는 실험을 했다.
2006년 첫 우주인을 배출한 브라질도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무중력 환경에서 크로마토그래피(색층분석)로 엽록소의 성분을 분석한 것. 크로마토그래피의 원리가 되는 모세관 현상은 중력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더 잘 일어나기 때문에 ISS에서 한 실험에서 지상 환경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물방울 속에서 피는 ‘우주무궁화’
내년 4월 첫 우주인을 배출하는 우리나라도 ‘우주꿈나무’를 위한 교육실험을 개발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교원대 물리교육과 김중복 교수팀은 지난해 전국의 초중고교생이 제안한 실험아이템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교육실험을 준비했다.
지난 7월말 러시아에서 일시 귀국해 우주실험 훈련을 받은 우주인 후보 고산(32) 씨와 이소연(30) 씨는 8월 17일 진행된교육실험 훈련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우주볼펜’ 실험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볼펜은 잉크가 아래 방향으로 중력을 받으며 조금씩 새 나오기 때문에 글씨를 쓸 수 있다. 따라서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우주공간에서는 볼펜을 쓸 수 없다. 거금의 연구비를 들여 우주볼펜을 자체 개발한 미국과 달리 러시아는 ISS에서 연필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 씨는 “실제 알고 보면 러시아 우주인들은 연필의 흑연가루가 공중에 날려 ISS 내부의 기계를 오염시킬 위험이 있고, 연필을 깎아서 써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기름과 잉크를 섞어 만든 특수펜을 쓴다”고 말했다.
김 교수팀이 만든 우주볼펜은 실험을 제안한 학생의 아이디어에 따라 일반 볼펜의 뒤쪽에 풍선을 달아 풍선 속 공기가 중력 대신 잉크를 적절히 밀어주는 원리다. 우리 우주인은 ISS에서 일반 볼펜과 우주볼펜을 비교해 글씨를 쓰는 실험을 할 예정이다.
이 씨는 “우주공간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액체가 공중에 떠있는 일”이라며 “특별한 장치 없이 손쉽게 할 수 있는, 물을 이용한 실험이 가장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상에서 일정한 형태가 없는 물은 ISS에서는 완벽한 공 모양으로 공중에 떠있다. 중력이 매우 작은 공간에서는 물 분자 사이의 인력만이 물의 형태를 결정하는데, 이때 구형이 가장 안정한 상태다.
우리 우주인은 주사기를 이용해 커다란 물방울을 공중에 만든 뒤 여기에 종이로 만든 무궁화 꽃을 넣어 꽃이 피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또 큰 물방울을 하나 만들고 주사기를 이용해 물방울 내부에 공기를 넣거나, 물방울 속에 갇힌 공기에 주사기로 또 다른 물방울을 만드는 실험도 할 예정이다.
관성의 법칙이나 작용?반작용의 법칙 같은 물리 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실험도 한다. 예를 들어 투명한 플라스틱 공 안에 쇠구슬을 넣고 흔들어 안에 있는 쇠구슬이 제멋대로 움직이도록 한 뒤 공을 던져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2개의 용수철에 각각 다른 무게의 추를 매달아 가속도만으로 추의 무게를 가늠하는 방법을 찾는 실험이 준비돼 있다.
또 공중에 뜬 채로 양손에 부채를 들고 ISS 내부를 ‘헤엄쳐’ 다니며 작용?반작용 법칙을 설명하는 장면도 연출할 예정이다.
물 얼리는 실험 못해 아쉬워
이날 약 4시간 동안 진행된 교육실험 훈련에서 두 사람은 김 교수팀이 개발한 실험도구의 조작방법을 익히면서 실험의 개선방향을 함께 논의했다. 이 씨는 “ISS에 이미 갖춰져 있는 펜치나 식량용 캔 같은 여러 가지 도구를 활용하면 물체의 회전운동을 보여주는 간단한 ‘즉흥실험’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ISS에 있는 장비를 마음대로 쓸 수 없어 그동안 준비했던 실험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지난해 한 초등학생이 제안했던 ‘우주에서 물을 얼리는 실험’은 중력이 거의 없어 대류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우주에서 물이 어떻게 어는지 알아보는 실험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김 교수는 “ISS에 있는 냉장고를 이용해 물을 얼리는 장치를 자체적으로 만들었지만 러시아 측이 냉장고를 우주인 혈액과 소변 샘플을 보관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기 때문에 실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고 씨는 “가장 기대했던 실험을 하지 못하게 돼 아쉽다”면서도 “나침반 여러 개를 공중에 띄우면 지구의 자기장을 입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지 않겠냐”며 새로운 실험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인개발단 최기혁 단장은 “재미있고 의미있는 교육실험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 측과 좀더 협의하고, 모건이 했던 화상통신 수업도 검토해 보겠다”며 “한국 최초 우주인이 ISS를 신나는 ‘과학교실’로 만들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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