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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아파트를 지탱하는 과학

공간 수요 만족시키는 한국형 거주 빌딩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 인간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영역을 확보해야 한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건물이 계속 지어져 도시가 팽창한 이유다. 그러나 한정된 지표면 때문에 이제는 지상의 영역을 넘어 지하공간, 해저도시, 그리고 우주정거장의 실현까지 고려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구의 급증으로 인한 도시 공간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초고층 건물을 만들었다. 수평적인 확장에서 수직적인 확장으로의 전환을 가져온 초고층 건물은 자연과 공존해야 하는 지구환경을 고려할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각광받는 초고층 아파트를 지탱하는 과학을 살펴보자.


지난 6월 24일 중국 홍콩에 완공된 국제금융센터(4백20m). 최근 아시아 곳곳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서양에서 건너온 높이 경쟁

도대체 어느 정도 높은 건물에 초고층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 사실 초고층이란 용어는 명확히 획을 그어 구분할 수는 없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는 초고층은 건물의 높이가 폭에 비해 5배 이상인 건물을 말한다. 하지만 건축물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 비율만 갖고 초고층 건물을 구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건축물의 구조적 관점에서는 횡력, 즉 바람에 의한 가로방향의 힘에 저항하기 위해 특별한 구조를 사용하는 건물을 초고층이라 정의한다. 세계초고층학회(CTBUH, Council of Tall Building and Urban Habitat)에서 발표하는 세계 1백대 빌딩(약 50층, 높이 2백20m 이상)에 속하는 건물을 초고층이라 말하기도 한다.

초고층 건축물은 건축 기술의 발달과 함께 유리와 철강의 보급, 엘리베이터의 발명, 고강도 콘크리트의 출현 등의 공학 분야를 바탕으로 한다. 산업화로 인한 도시의 인구증가와 집중화에 따른 땅값 상승은 초고층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토지 이용률을 극대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사회적인 수요와 욕구를 만족시킨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고대와 중세의 종교적 건축물은 상징적으로 높은 높이를 갖고 있었다. 인간이 건물 내에서 공간을 활용하는 초고층 건물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의 뉴욕과 시카고에서 활발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1930년 뉴욕에 77층 규모의 크라이슬러 빌딩(3백19m)과 1931년 1백2층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3백81m)이 완공되면서 본격적인 초고층 건물의 역사가 시작됐다. 1972년 뉴욕에 지금은 9.11 테러로 붕괴된 1백10층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4백17m), 1974년 시카고에 1백10층의 시어스 타워(4백43m)가 건설되면서 최고층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한동안 서구 선진국에서 계속 되던 높이 경쟁은 1990년대에 아시아의 경제적 발전과 함께 중국과 동남아의 아시아권 나라들로 집중되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88층의 페트로나스 타워(4백52m)가 세계 최고 높이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6년 부산 롯데월드II(4백92m)와 2008년 서울 상암동 국제비즈니스센터(5백80m)가 들어서 세계 최고층 자리를 차지할 전망이다.


(그림) 대표적인 초고층 건물의 구조


바람을 견디는 튜브 구조

건축물은 작용하는 힘을 적절히 지탱해야 제대로 서있을 수 있다. 초고층 건물을 설계할 때는 건물의 자체하중 외에 바람, 즉 수평력에 대한 지지가 크게 고려된다. 건물이 높아지면 바람 세기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수평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건물 구조로는 골조 구조와 튜브 구조, 그리고 슈퍼 프레임 구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층수가 높고 규모가 크며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지닌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복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골조 구조란 수평방향의 보와 수직방향의 기둥을 접합해 사각형의 격자로 만드는 방법이다. 즉 입체적인 바둑판 구조가 외부 하중에 의한 모멘트로 인해 건물이 뒤틀리지 않도록 지지한다. 철골 구조로 했을 때 30층, 콘크리트 구조로 했을 때 20층 정도의 높이에 경제적이다. 상부와 하부의 형태가 일치하기 때문에 건물의 형태는 사각이 된다.

튜브 구조는 마치 튜브처럼 건물의 외부를 기둥으로 둘러싸 바람에 저항하는 방식이다. 굵은 소나무는 바람에 부러지지만 가는 갈대 다발은 휠지라도 부러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해하면 된다. 튜브 구조는 오늘날 여러 초고층 건물에 사용됐다.

이중 튜브는 내부 튜브와 외부 튜브가 함께 작용해 하중을 분담함으로써 세로 방향의 연직 하중뿐 아니라 가로 방향의 수평력을 지탱하는 방법이다. 묶음 튜브는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에 적용된 개념으로 여러개의 튜브를 서로 연결해 더 튼튼하며 높이에도 거의 제한이 없다.

슈퍼 프레임 구조는 가로와 세로 방향의 힘을 지탱하기 위해 거대한 크기의 대형 기둥과 트러스(수평 골조) 형태의 부재를 연결해 만든다. 뼈대가 거대하기 때문에 메가 구조(Mega Structure)라 부르기도 한다. 튼튼한 뼈대로 전체 건물을 지지하기 때문에 내부공간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카고의 존행콕 빌딩(3백44m)은 튜브구조와 거대한 X자 브레이싱(대각선으로 지탱하는 구조물)의 슈퍼 프레임이 결합된 형태다.

초고층이 띠를 두른 이유


미국 시카고의 존행콕 빌딩(3백44m). 튜브구조와 거대한 X자 브레이싱의 슈퍼 프레임이 결합된 건물이다.


흥미롭게도 다른 나라의 초고층 건물의 용도는 업무시설, 즉 오피스(사무실)인데 반해 우리나라에서의 초고층 건물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초고층 건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 다른 아시아권의 국가들과 같이 초고층 건물은 오피스 빌딩 위주로 검토됐다. 그러나 외환위기라는 돌발적인 경제 상황이 발생하면서 초고층 건물은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주상복합의 주거건물, 즉 상가, 사무실과 아파트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게 됐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들어선 것은 1950년대지만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62년 서울 마포에 대단위 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이후 아파트는 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를 잡고 발전했다.

1980년대 중반 분당과 일산의 신도시 개발때 30층 아파트가 대규모로 지어지면서 고층에서의 거주 개념이 보급됐다. 그러다 우성 캐릭터빌과 대림 아크로빌을 시작으로 도곡동 타워 팰리스와 트럼프월드, 목동 하이페리온 등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대거 등장해 초고층 거주 시대가 열렸다. 69층인 타워 팰리스(2백61m)는 현재 국내 최고층 빌딩이다.

국내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경우는 일반적인 초고층과 다른 복합적인 형태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벽식 철근콘크리트(RC, Reinforced Concrete)로 된 코어와 이를 중심으로 하는 타워형 철골조(SRC, Steel Reinforced Concrete)를 채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건물 자체의 무게를 줄이고 수평하중에도 효과적이다.

중간층과 최상층에는 아웃트리거(Outrigger)가 설치돼 있다. 아웃트리거는 건물 가운데의 엘리베이터 코어와 건물 외관의 골조를 서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수평의 구조체다. 건물이 40층 이상의 높이를 갖게 되면 코어와 골조만으로 수평하중에 저항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벨트 트러스가 설치돼 있다. 이는 건물 외부를 둘러싼 구조체로 타워 팰리스의 중간층에 보이는 띠 부분이다. 이 공간에는 초고층에 필요한 설비가 들어선 중간 기계실이 배치돼 있고, 남은 공간에는 거주자를 위한 체육시설, 연회시설 등 공동시설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 초고층 아파트에 RC 코어와 아웃트리거 시스템 등이 혼용돼 있는 이유는 초고층 건물로서의 구조적인 측면 외에도 주거 공간으로서의 개방성을 고려해서다. 즉 외벽에 막힘 없는 창의 설치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외곽에 기둥을 두른 튜브 구조나 X자 브레이싱 등은 외벽 창문이 작아지거나 시야가 막히는 단점을 지니고 있어 주거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공간 마련 위한 자연발생적 추세

초고층 건물은 그 자체가 거대한 규모이기 때문에 일반건축물보다 복잡한 내용이 포함된다. 안전한 건축물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전기, 기계설비, 방재와 피난계획 등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 노화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설에 대한 리노베이션(renovation)을 감안해야 한다. 기존의 아파트와는 달리 초고층 건물은 철거하는 재건축보다 오랜 기간 유지되고 관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초고층 건물은 초고층 아파트를 중심으로 기술적인 면에서 짧은 기간에 급진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우리 특유의 거주문화를 담기 위한 건축적인 측면과 선진 시공기술이 결합돼 초고층 주거건물 분야에서는 세계를 선도할 만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초고층 아파트라 해도 건물의 외형을 기준으로 내부공간을 나누는 반면 우리나라는 세대 공간을 기준으로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로 발전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경향은 건축 측면에서 훨씬 복잡하고 어렵지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그만큼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짧은 기간으로 인해 아직 거주성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가 심도 있게 이뤄지지 않았다. 거주성은 미세한 진동이나 소음, 생활환경에 대한 문제로 이미 완공된 건물이 시간을 지나면서 평가를 통해 검증된다.

최근 일각에서는 초고층 아파트가 상류층의 문화권을 형성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초고층 아파트 역시 특정 사회 계급과의 연관성은 없다. 다만 분양할 때 현재 우리나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첨단화, 고급화 전략이 구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초고층 아파트 생활을 유도하기 위한 홍보 전략 때문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초고층 아파트는 도시의 팽창 속에서 공간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키려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건물이다. ‘바벨탑’처럼 허망한 높이 경쟁을 위한 피상적인 건물이 아니라 좀더 우리의 생활을 내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건축적인 대안이다. 물론 앞으로 그 실질적인 가치를 검토하고 검증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초고층 살면 실내오염 더 주의해야

서울 도심에 자리잡은 초고층 아파트의 아찔한 높이는 보는 사람의 탄성을 자아낸다. 동시에 이처럼 거대한 초고층 아파트에 살면 생활환경이 쾌적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좁은 면적에 지어진 높은 건물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건물은 다양한 오염물질로 실내공기가 오염된다. 우선 벽지, 바닥재, 단열재 등 건축자재에서 라돈, 석면, 포름알데히드 등 화학물질이 나올 수 있다. 이들 오염물질은 독성이 강하고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방출된다는 특성을 갖는다. 인간이 활동에 의해서도 먼지와 이산화탄소의 양이 증가한다. 연소기구를 이용할 경우에는 일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이 생성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세균과 곰팡이 같은 미생물이 번식하면서 실내공기를 오염시킨다.

일반적인 아파트의 경우 앞뒤가 트여 있어 쉽게 환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초고층 아파트는 사무실 빌딩처럼 자연적인 실내공기 교환이 어렵다. 따라서 실내공기를 바꾸는 강제 환기시스템이 중요하다. 만약 실내공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초고층 아파트에서도 사무실 빌딩처럼 빌딩 신드롬(SBS, Sick Building Syndrome) 같은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빌딩 신드롬은 만성피로, 눈 충혈, 어깨통증, 현기증, 기침,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보인다.

초고층 아파트에 살면 주변 환경에 유의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좁은 면적인데 많은 사람들이 오가기 때문에 교통 체증이 자주 발생하고, 결국 자동차 배기가스가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상공에서 부는 바람이 초고층 건물에 부딪혀 곧바로 지상으로 내려오는 빌딩바람도 문제다. 빌딩바람은 도시에 떠다니던 먼지를 건물 주변으로 가라앉게 한다. 전문가들은 초고층 아파트를 설계할 때 이와 같은 환경 영향을 미리 평가해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심재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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