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질주는 계속된다_
뜨거운 햇볕이 모든 것을 녹여버릴듯 이글대는 7월의 오후. “안전운전하십시오”라는 GPS 음성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운동장을 박차고 달리는 자동차 한 대가 있다. 레이서는 바로 KAIST 산업디자인학과 3학년 조대용(21) 씨. 그에겐 KAIST도, 세계도 127만km2다. 대한민국 이공계의 거인, 카이스트의 어깨를 딛고 세계로 질주하는 그의 뒷모습에 자신감이 서린다.
대용이의 8월 스케줄
●●오는 9월에 있을 자동차대회를 준비해 체력을 다질 계획. 드라이버로 참가하려면 체중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수영과 조깅에 매진 중.
●●KAIST 산업디자인학과 디지털미디어혁신센터에 창업 관련 사업계획서와 제품개발 제안서를 낼 계획. 산업자원부나 중소기업청에서 10억원 정도의 정부투자자본금을 받으면 얼마 전 설립한 벤처회사 ‘레볼루션 모터스’를 정식으로 꾸려갈 수 있을 전망.
08:00am ‘꿈’ 하나로 내민 도전장
침대 머리맡에는 어젯밤 그리다만 자동차 도안이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인천과학고를 졸업한 뒤 KAIST로 진학한 결정적인 이유는 산업디자인학과에 가기 위해서였다. 미술의 ‘미’자도 몰랐고 예체능 과외 한번 받은 적 없지만 내 손으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꿈 하나로 도전했다.
1986년 KAIST는 당시 이공계 대학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산업디자인학과를 만들었다. 설립 20년만인 2006년 10월에는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월드베스트 디자인스쿨 명단에 이름을 올릴 만큼 눈부시게 성장했다.
11:00am 여름방학 반납한 엔지니어 드라이버
KAIST 실습동에 위치한 자작자동차 동아리 ‘질주’의 작업실. 1년 가운데 9월은 가장 바쁜 달이다. 6~8일에 열리는 제1회 KSAE대학생자작자동차 대회에는 드라이버로, 14~15일에 열리는 제3회 자작하이브리드자동차경진대회에는 엔지니어로 참가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새로운 하이브리드카를 만드느라 후배들과 작업실에서 밤을 새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이브리드카는 가솔린엔진에 전기모터를 결합한 친환경자동차다. 기계공학과 2학년인 광필이와 1학년인 막내 재현이도 이젠 능숙하게 엔진을 수리하고 용접을 해낸다.
14:00pm ‘애플’ 디자인을 넘어
산업디자인학과 배상민 교수의 방. 그동안 산학협력으로 ‘PC프레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컴퓨터 본체 디자인과 개폐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해왔다. 오늘은 이 프로젝트를 의뢰한 업체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날이다.
사각형의 네모난 컴퓨터 본체가 부드러운 곡선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대각선으로 쪼개지기도 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고, 한편에서는 냉철한 비판이 오갔다. 미팅이 끝난 뒤 배 교수는 “아직 갈 길이 멀어.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더 새롭고 기발한 ‘촉매’가 필요한 거니까”라고 말했다. 언젠가 나의 디자인이 애플사의 디자인보다 더 사랑받을 날이 올 거다.
18:00pm ‘평생지기’ 만나는 기숙사
KAIST 입학생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보통 1학년 때는 무작위로 룸메이트가 정해지지만 2학년부터는 원하는 친구와 방을 함께 쓸 수 있다. 요즘은 오는 9월 2일 증권투자상담사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책과 동영상 강의를 오가며 공부에 한창이다.
산업디자인이라는 학문 자체가 시장의 판세와 경제의 흐름을 읽으면 유리할 거라는 생각에 부전공으로 경영공학도 공부하고 있다. “맛있는 것 먹을 때마다 오빠 생각이 난다”며 여동생이 밥 잘 챙겨먹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면 가족이 몹시 그리워진다.
‘양정아’ 표 연구는 이미 시작됐다!_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4학년 양정아(23) 씨는 방학이지만 고향인 청주에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았다. 지난 학기도 지겹도록 학교 안에서 공부했을 텐데 뭔가 신나는 일이라도 남은 걸까. 무더운 여름 그녀가 캠퍼스에서 꾸고 있는 꿈을 하루 동안 좇아봤다.
대학 4년 동안 외국 경험을 못한 학생은 ‘게으름뱅이’
●● 포스텍은 단기유학, 어학연수, 문화탐방, 해외인턴십 같은 국제화 프로그램으로 80%가 넘는 학부생이 해외 연수 경험이 있다. 조금 부지런을 떨면 학부시절 동안 3~4번도 다녀올 수 있으니, 대학 4년 동안 외국 경험을 못한 학생은 ‘게으름뱅이’로 취급받을 정도다. 3~8주 동안 해외대학에서 여름 계절학기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3학년생 20~30명은 미국 UC버클리, 일본 도쿄공대 등 해외 자매결연 대학에서 단기유학 생활을 할 수 있다. 여기서 취득한 학점은 그대로 인정받는다.
07:00am 자명종 없이 눈뜨는 별종 포스테키안
“아함~ 잘 잤다.” 아침 7시. 방학인데도 매일 아침 이 시간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걸 보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밤낮을 잊는다는 포스테키안 중에서 나는 별종임에 틀림없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아침에도 나와 함께 어김없이 체육관에서 운동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같은 과 친구 진아도 나 못지않은 별종일 테지. 진아는 요즘 댄스스포츠 연습에 한창이다. 지방도시라 춤을 가르쳐 줄 강사를 찾기 힘들다고 툴툴대면서도 혼자서 연습하는 스텝이 나날이 그럴듯해 보인다.
09:00am 세 번째 떠나는 해외연수
청암학술정보관에서 북유럽 국가의 여성복지정책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면 마음은 벌써 비행기를 탄 것 같다. 7월 19일~8월 14일 ‘방도시에 세계문화탐방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스웨덴과 덴마크, 핀란드를 방문할 예정이다. 비용은? 1인당 350만원의 활동비를 학교에서 다 대준다.
학교의 지원을 받아 외국에 나가는 일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이번 여행은 평소 관심 있었던 여성복지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다. 스웨덴과 덴마크, 핀란드의 여성복지 관련 정부부서와 단체를 방문해 그곳 여성들이 직업활동, 가사와 육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12:00pm 미래의 한국과학자 양정아
점심을 먹은 뒤 실험실로 가는 길에 노벨동산에 들렀다. 이곳에는 미래에 노벨상을 받을 한국인 과학자를 위한 흉상대가 2개 마련돼 있다. 이 중 하나는 내가 입학할 때 ‘찜’해 놓은 자리다.
13:00pm 학부졸업 논문을 저명한 학술지에!
나른한 오후에는 책을 붙잡고 있기보다는 실험실에서 피펫을 잡는 게 더 재미있고 생산적이다. 실험실 생활을 한지는 벌써 1년이 됐다. 대학원생도 아닌데 혹시 실험실에서 잔심부름만 하는 거 아니냐구? 천만에. 내가 하는 실험은 엄연히 학기당 4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수행하는 ‘양정아’표 연구란 말씀. 지금 하고 있는 연구는 약물이 서서히 방출되게 하는 나노크기의 구멍을 갖는 재료를 개발하는 일이다.
하루에 한번 또는 일주일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맞던 주사를 몇 달에 한번 몸에 약물 칩을 삽입하는 일로 대신하면 번거롭지도 않고 꾸준히 약물을 투입할 수 있어 치료효과도 크다. 학부 때부터 이런 수준 높은 연구를 하니 학사졸업논문이 저명한 학술지에 실리는 일도 종종 있다.
물리학과 출신인 김세중 씨가 2006년 학부를 졸업하며 발표한 논문이 미국 물리학회가 발간하는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 2007년 5월호에 실렸다. 2008년에는 ‘사이언스’나 ‘네이처’에서 내 이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2008학년도 KAIST 입학전형 어떻게 바뀌나
정답 없는 ‘2차원’ 인성면접
미래의 아인슈타인이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되길 원하는 학생이라면 최적의 면학 분위기에 ‘빵빵한’ 지원까지 아끼지 않는 KAIST를 노려볼 만하다. 단 2008년부터 KAIST의 입시전형이 인성면접 위주로 바뀌는 점을 유념하자.
지난 7월 10일 취임 1주년을 맞은 KAIST 서남표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기존의 신입생 선발 방식이 성적 위주였다면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인성면접의 비중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을 뽑기보다는 문화와 예술 같은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이 있거나 창의적이고 리더십이 뛰어난 학생을 뽑겠다는 포부다.
KAIST 입학본부장인 기계공학과 권동수 교수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성공한 동문들을 찾아 그들이 과연 어떤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역추적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면서 “그 결과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학창시절 호기심이 왕성했고 매사에 논리적이었으며 특정 분야에 영재성을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KAIST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학업성취도와 학생 개개인의 인성평가를 축으로 하는 ‘2차원’ 입시전형을 내놨다.
1차 서류전형에서 합격 인원의 2~2.5배수를 선발한 뒤 2차 심층면접을 치르는데, 3명의 교수가 15명의 학생과 하루 동안 합숙을 하며 학생의 성격이나 특기를 파악한다. 당일의 프로그램은 교수들이 협의해 결정하기에 정해진 일정이나 정답이 있을 리 없다. “KAIST의 시도는 국내 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쳐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권 교수는 내다봤다.
아는 만큼 가고 싶은 포스텍
심층면접으로 최강 ‘300’ 뽑는다
“포스텍은 상위 1% 학생을 뽑아 0.1%의 인재로 키우는 대학입니다. 준비된 학생은 도전하세요.”
포스텍 학생처장 강인석 화학공학과 교수 말에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포스텍은 개교 이래 학부생을 300명만 뽑고 있다. 일단 합격을 하면 졸업할 때까지 생활과 학업, 진로까지 1:1로 관리하며 책임진다. 물론 적은 수의 상위권 학생에게 최상의 면학 환경을 만들어주는 만큼 선발기준도 까다롭다.
포스텍은 전체 신입생 가운데 230명을 대학 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보지 않는 수시전형으로 뽑는다. 이 가운데 210명을 선발하는 수시 2학기 모집에서 ‘준비된’ 학생을 골라내는 강력한 ‘체’는 바로 면접구술고사다. 전체 평가 반영비율의 40%를 차지하는 면접구술고사는 물리, 화학, 생물 중 1과목과 수학에서 문제를 낸 뒤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강 교수는 “한 사람당 70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지원한 학생을 모두 면접 보는 데만 2~3일이 걸리지만, 학생의 지식과 창의력, 의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면접구술고사에서는 과학지식보다 창의력, 문제해결력, 과학자가 되고 싶은 열의를 중요하게 평가한다. 판에 박힌 답을 이야기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또 짧은 시간에 학생의 자질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교사의 추천서도 꼼꼼히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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