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금강산 열기로 가득차 있다. 구비구비 1만2천봉마다 기암괴석(奇岩怪石)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금강산이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 금강산의 학술적 자료가 너무도 부족하다. 이미 나와있는 자료에 근거해 금강산의 지형·지질학적 특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금강산은 강원도의 북동부에 위치하며, 남북으로 달리는 태백산맥의 능선부를 따라 동서 폭 약 12km, 남북 연장 약 25km인 지대를 말한다.
금강산이 포함된 태백산맥 능선 동측에는 간성군(杆城郡)과 고성군(高城郡)이 각각 남쪽과 북쪽에 이어져 있고 고성군 북서쪽에는 통천군(通川郡)이 연속된다. 태백산맥 능선 서측에는 회양군이 있다. 태백산맥은 앞의 3군과 회양군의 군계를 이룬다.
금강산은 크게 4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외금강 내금강 신금강 및 해금강이 그것이다.
외금강은 금강산의 주요부로서 금강산 지역의 북동부를 이루며 동서 폭 약 8km, 남북 연장 약 20km인 남북으로 긴 지대를 말하며 북단부는 통천군의 남단에 걸친다.
내금강은 태백산맥 능선 서측에 위치하며 회양군 중동부에 있다. 동서 폭은 약 4km, 남북 연장은 약 15km인 지대이지만 좁은 의미로는 연장 6km 정도인 비로봉(1638m)에서 능허봉(1455m) 능선 남측의 지역만을 의미한다.
신금강은 외금강의 남쪽에 인접한 지역으로서 간성군 서북단부에 있으며 비로봉(1638m)─월출봉(1580m)─채하봉(1588m) 능선의 남측에 위치한다. 이 능선은 고성군과 간성군의 군계이기도 하다.
해금강은 고성군 고성읍 동북동방향 약 4km에 위치한 동해안 산지의 해안에 위치하여 금강산 본체와는 약 15km의 거리에 있다.
이상의 4개 금강지역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외금강으로서 금강산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외금강 내금강 신금강의 지형
외금강은 그 남반부가 남강의 서쪽 상류인 온정천과 신계천의 모든 지류와 지계에 의하여 개석(開析, dissection)되고 있는 지역이다. 외금강의 북반부는 고성군의 북서부를 점하여 장전만에서 통천군에 이어진 동해로 흘러드는 4~5개의 하천과 그 상류의 지계에 의하여 개석되고 있는 지역이다.
내금강은 황해로 흘러드는 한강의 북쪽 상류인 북한강의 상지류로, 유명한 금강천과 동금강천에 의하여 개석되고 있는 지역이다. 비로봉(1638m)에서 서쪽으로 뻗어 영랑봉(1601m), 능허봉(1455m)으로 이어지는 능선 남쪽이 좁은 의미의 내금강이며, 이는 주로 동금강천의 상지류로 개석되고 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내금강은 비로봉─능허봉 능선 북측의 지역도 포함하여 이 지역은 북한강 상류인 금강천에 의하여 개석되고 있다.
신금강은 남쪽으로 뻑은 남강의 본류의 상지류에 의하여 개석되고 있는 지역으로서 좁은 의미의 내금강의 동측(태백산맥 능원 동측)에 있다. (그림1)
태백산맥의 이름을 준 태백산은 금강산의 남남동방 약 1백90km에 위치하며 해발 고도는 1천5백61m로 비로봉(1638m)보다 77m, 대청봉(1708m)보다 1백47m 낮다. 그리고 태백산은 태백산맥의 능선에서 서쪽으로 약 15km나 떨어진 곳에 있다.
태백산맥은 한반도의 동쪽에 치우쳐 있는데 특히 태백산맥 능선에 자리잡은 금강산의 비로봉은 (그림2)처럼 서쪽으로 황해에 가장 가까운 거리가 1백70km인데 동해의 장전만까지의 거리는 11km이고 해금강까지의 거리는 22km이다.
설악산의 대청봉에서 서해까지는 1백80km, 동해까지는 16km여서 비슷한 위치에 있다.(그림2)
접봉면도와 접곡면도
금강산이 어떤 지형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한반도 중부지역의 접봉면도를 작성하여 보았다. 접봉면도란 복잡한 지형이 침식을 받기 전의 지형으로 환원시킨 등고선도이다. 이는 (그림3) 및 (그림4)와 같다. (그림4)는 (그림3)에서 이끌어낸 접봉면도로서 한반도가 준평원에서 동쪽의 상승으로 이루어진 경동지괴(傾動地塊)임을 잘 알게 해준다.
(그림5)는 접곡면도이다. 이 그림은 한반도의 하천에 의한 침식 상황이 어떠한가를 알려주는 그림으로서 한반도가 최대한으로 침식된 상황을 보여준다. (그림2)에는 접곡면이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접봉면도 및 접곡면도는 태백산맥 서측 사면의 기울기가 대단히 느린 반면 동측의 그것은 대단히 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만약 충분히 긴 시간을 준다면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이 태백산맥의 위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동쪽 사면의 기울기가 급하므로 하천의 침식작용은 서쪽의 느린 사면에서 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결국에는 태백산맥이 한반도의 중심선부근에 오게될 것이다.
이런 사실은 또 다른 사실을 말해준다. 즉 동쪽 사면에 대한 하천의 침식은 그 역사가 오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태백산맥은 생겨난지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지질학적인 시간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마 수백만년에서 1천만년의 시간을 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즉 금강산이나 설악산은 그들이 깎여서 오늘의 절경을 이루게된 시간이 그정도라는 말이 된다.
준평원의 흔적
대단히 희미하기는 하나 험준한 금강산 꼭대기에는 몇몇 곳에 준평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비로봉 능선을 따라 영랑봉에 이르는 능선은 아주 평탄하다. 이 능선 북쪽의 사면은 해발 1천3백m 부근까지 산 사면의 기울기가 느리다. 영랑봉 서쪽 2백50m에 있는 능허봉에도 1천3백m보다 높은 곳에 기울기가 느린 곳이 있다. 이러한 곳은 월출봉(1580m)주위, 채하봉(1588m)부근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런 평탄한 지면은 하천의 상류가 그 평탄한 지면을 침식하다가 남겨놓은 것이며, 장차 침식하게 될 부분이다. 이보다 낮으면서 평탄한 산정부를 남겨둔 곳이 신금강 남쪽에서 발견된다. 1천3백m 이상의 준평원의 흔적이 그리 넓지 않은 것은 금강산이 태백산맥 동서 양측의 하천의 침식이 맹렬하게 계속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태백산맥 여러 곳, 특히 산맥 서측에 뚜렷한 준평원의 흔적을 남겨 가지고 있다. 이러한 준평원의 흔적을 융기준평원(隆起準平原)이라고 부른다. 금강산은 하천의 침식이 아주 심하여 절경을 만들고 융기준평원의 면적을 최소한으로 머물게한 곳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화강암이 주(主)
금강산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외금강과 신금강 동쪽에는 변성암이 분포한다. 그 경계선은 대체로 장전만 동변에서 남쪽으로 그은 직선과 거의 일치한다. 이 변성암은 마천령계로 알려진 것으로 함경도 마천령부근에 분포되어 있는 변성암에 대비되는 것이다. 또 금강산 북쪽에는 금강산 화강암과 변성암이 서로 교차한 곳이 있다. 이 변성암은 서울─오산 사이에 분포된 연천층군에 대비되는 것이다. 또 작은 분포지이지만 비로봉 북쪽 수km 지점에 섬록암의 분포가 있다.
금강산을 구성한 화강암을 여기서 금강산 화강암이라고 가칭한다. 금강산 화강암은 조립흑운모 화강암이다. 장석과 석영 입자들의 지름은 5mm정도이고 흑운모의 지름은 2mm 내외이다. 장석의 분량은 약 65%, 석영의 그것은 약 30%, 흑운모의 그것은 약 5%이다.
금강산 화강암은 비로봉 남쪽으로 약 40km에서 끝나지만 서쪽으로는 추가령을 지나 남남서로 방향을 바꾸어 서울에 있는 서울화강암에 연속된다. 그러므로 서울화강암을 따라 북북동으로 진행하면 금강산 화강암에 도달할 수 있다.
금강산 동쪽 해안의 해금강도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 화강암은 해안에 작게 분포되어 있으나 장전의 금강산 화강암과는 불과 5km의 거리에 있어서 금강산 화강암과는 지하에서 연결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남쪽의 설악산 화강암과도 6km 정도의 자리를 두고 있어서 지하로는 설악산 화강암과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금강산 화강암은 장전만과 그 북서쪽 해안에서 끊겨 있는데, 동해 속으로 연속되어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 문제는 동해의 성인과 관련되어 있어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설악산 화강암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아마도 동해안과 평행한 단층이 가까운 동해 속에 있고 그 동측이 깊이 내려 앉아 동해 속에 있고 그 동측이 깊이 내려 앉아 있을 것으로 상상된다. 반대로 한반도의 동쪽은 솟아오른 것으로 생각된다.
금강산 화강암은 언제 생성된 것일까? 언제 관입(貫入)한 것일까? 불행히도 금강산 화강암의 연령 측정에 관한 보고를 들은 일이 없다. 금강산에 관한 북한 문헌을 접한 일이 없기 때문에 북한의 연구 결과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화강암은 그 대부분이 중생대에 관입한 것이다. 중생대에는 3번의 관입이 있었는데 중생대 초엽 중엽 및 말엽으로 대별된다. 그 중에서도 중생대 중엽인 주라기에 관입한 화강암이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고 다음으로는 중생대 말엽인 백악기 말 경에 관입된 것이 있다. 백악기 말의 화강암은 불국사 화강암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연령은 0.7억~0.6억 년이다. 금강산 화강암도 같은 화강암일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온 정리 온천도 그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금강산 화강암에는 수직절리가 잘 발달되어 있다. 이 절리가 금강산의 경관을 지배하는 것이다.
비로봉의 동쪽 약 10km(온정리의 동쪽 약 2km)를 남북으로 지나는 경계선을 가지고 금강산 화강암 동쪽에 남북으로 약 3.5km, 약 1km의 폭을 가지고 분포된 마천령계는 여러 종류의 편암을 포함한 석회암과 고회암(백운암, 돌로마이트라고도 한다)으로 되어 있다. 이 변성암은 금강산의 경관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이 변성암은 퇴적암에서 변한 것이며 퇴적암의 퇴적은 전캠브리아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아마도 25억년 내외의 연령을 가진 것이다.
금강산 북쪽에서 금강산 화강암과 번갈아 대상(帶狀)으로 분포한 변성암이 있다. 이는 경기도에 분포된 연천층군에 대비되는 것. 주로 편암, 각섬암, 혼펠스로 되어 있고 석회암이 없는 것이 마천령계와 다르다. 이 변성암은 전캠브리아기 후반(원생대)의 퇴적암이 변성된 것이다. 이 변성암도 금강산의 경관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그림6)
화강암의 수직절리
금강산의 뛰어난 경관은 금강산 화강암이 받은 특이한 풍화침식작용의 결과로 생겨났다. 화강암에는 수직절리가 발달되어 있어서 이 절리가 강조된 풍화침식이 진행되었다.
비로봉의 북쪽 능선의 동측은 거의 수직으로 선듯이 보이는 절벽인데, 절벽의 평균 기울기는 40˚이며 절벽의 수직 고도는 4백m이다. 이 절벽은 신계천의 남쪽 지류의 최상류에 의하여 개석되었는데, 신계천의 중류에서는 집선봉(1351m)과 세존봉(1133m)이 개석되어 엄청난 경관을 조성하였다.
옥녀봉(1423m)과 관음연봉(1132m, 봉을 포함한 동서 방향의 능선, 비로봉의 북동방 4km) 사이의 신계천 상류는 그 북쪽 및 남쪽 사면에 기울기가 45˚인 절벽을 형성하였는데, 그 절벽의 높이는 6백m에 달한다.
온정천은 동쪽으로 거의 일직선으로 흐르는 계천인데 온정리 부근 상류쪽의 양쪽 사면의 기울기는 앞에서 말한 절벽에 비하면 느린 편이나, 곡제에서 능선까지 높이가 7백m에 가까운 양쪽 사면이 특이한 경관을 이룬다. 특히 온정천 상류인 온정령 고개에서 북동쪽에 펼쳐진 만물상은 수직 4백m의 절벽에 나타난 풍화침식의 결과이다.
위에 적은 지역의 경관은 수직절리를 주로한 풍화침식의 결과인데 이와 비슷한 경관은 신금강과 외금강 북부 및 내금강에서도 발견된다. 다만 내금강의 북부만은 금강산의 험준한 지형에 비하면 유순한 산지의 양상을 보인다.
절리로서는 수직절리에 관하여만 언급 하였지만 곳에 따라서는 수평절리가 잘 발달된 곳이 있고 어떤 곳에는 경사를 가진 절리가 발달된다.
절리는 보통 화강암이 식을 때에 생기는 것이나 이런 절리는 수십m~수백m의 간격을 두고 생긴다. 금강산 화강암의 절리는 수십cm 내지 수m의 간격이어서 주로 수평방향의 큰 압력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해석된다. 아마도 한반도 남부와 중부에 북동─남서방향을 가진 조산대의 축이 압력을 받았을 때에 생성된 절리로 해석된다.
금강산 지역의 침식작용은 하천의 상류에 의한 것으로만 생각되지 않는다. 1만년 전에 끝난 최종 빙기와 과거 약 2백만년 동안에 내습한 수차의 빙기에 눈이 쌓이고 얼음으로 변한 빙하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무런 증거도 없는 환상적인 추측이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빙식지형 존재 여부에 유의하자는 노파심에서 나온 말로 생각해주기 바란다.
해금강의 삼각주
고성의 해금강도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이 부근에서 고성 부근의 삼각주에 주목하기 바란다. 고성 부근에서 3~4갈래로 갈라진 남강 하구의 분류는 고성 삼각주를 형성하였는데, 이 삼각주가 생기기 전에는 그곳이 얕은 바다였다. 그러므로 해금강은 그때 섬이었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암석의 부스러기가 고성만을 메워서 고성 삼각주를 만들고 해금강의 산지를 육지화한 것이다.
해금강에 포함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성읍 북쪽 45km인 통천 해안에는 현무암이 분포한다. 현무암은 통천 해안에서 바다쪽으로도 분포되어 있었고 그 육지는 수백m의 높이를 가졌었으나 동해의 물결이 이것을 깎아서 바다로 만들고, 깎다 남긴 현무암이 기둥으로 남아 있다. 그중 4개의 기둥이 유명하다. 돌기둥이 수직으로 서 있는 것은 현무암의 기둥절리와 관계가 있다. 현무암의 용암이 식을때에 생긴 육각기둥은 풍화작용을 받으면 한개씩 끊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여러개의 육각기둥이 아직 뭉쳐서 총석정(돌기둥이 모여 된 정자의 기둥)이 된 것이다. 해안 절벽에는 언젠가는 돌기둥을 남기고 더 육지쪽으로 쫓겨갈 현무암이 남아 있다.
온정리는 온천으로 유명하다. 온천 여관 대문에는 수정의 큰 결정으로 된 수정기둥이 서 있다. 아름드리 수정 결정의 길이는 1~2m이다. 이들 수정은 부근에서 파낸다. 흙 속에 묻혀 있던 것이다. 온정리 북쪽에는 수정봉(773.3m)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에서 수정이 떨어져 그 밑에 생긴 흙에 묻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온정리의 온천은 온정천에 따라 존재하는 단층에서 새어나오는 것으로 보이며 해방전에는 온천수가 42˚~45℃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금강산 화강암이 새로운 화강암 즉 백악기 밑에 관입한 것일 가능성을 말해준다.
비로봉 남남동 10km 지점에 있는 유점사 부근의 삼가리(남강 본류가 U 자형으로 휘어서 일출봉으로 접근하는 계류)의 3개소에서도 26℃인 온천이 솟아 오르고 있다. 지하수가 섞여 수온이 낮을 것으로 보이므로 시추를 시행하면 더 높은 수온의 온천이 기대된다.
김봉균교수에게 금강산과 설악산을 비교하되 숫자로 나타내 보라고 하였더니 한참 생각한 후에 설악산 : 금강산 = 1 : 5라고 하였다.
그 후 설악산과 금강산의 1 : 50,000(축척) 지형도를 보고 놀랐다. 지도에 의하면 설악산 : 금강산 = 1 : 10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아직까지는 가지못할 금강산이지만 명산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