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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280만 년 전 최초 인류, 세상의 빛을 보다

인류 진화의 비밀 밝혀지나

280만 년 전 최초 인류, 세상의 빛을 보다
 
[‘최초의 호모 속 조상’은 이렇게 생겼다 | 280만 년 전 첫 호모 속의 턱뼈를 자세히 뜯어보자. 어떤 특성이 있을까. 이 화석은 원시적인 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특성과, 진화한 종인 호모 속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 된 호모 속 초기 인류를 밝혀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초기 인류를 밝히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사례부터 차례로 살펴본다.

논란의 초기 인류 후보, 세디바

“‘세디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난 2011년 10월 초, 한국을 방문한 미국 하와이대의 고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배 교수가 기자에게 대뜸 물었다. 배 교수는 학술대회 참석차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전곡선사박물관을 찾은 상태였다. 생전 처음 보는 기자에게 생뚱맞게 물어볼 만큼 세디바는 당시 고인류학계의 커다란 화제였다.

세디바(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는 2011년 9월 초, 과학잡지 ‘사이언스’를 통해 정체가 밝혀진 새로운 조상 인류의 이름이다. 비록 우리 인류가 속한 호모(Homo) 속은 아니었지만 신체 특성이 상당히 비슷했고, ‘사이언스’의 표지를 장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 해 말에는 ‘올해의 연구’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세디바가 이렇게 주목을 받은 것은 우리의 조상이었을 가능성 때문이다. 우리가 속한 호모 속은 여러 가지 면에서 ‘원인(猿人, 유인원과 인류의 중간 존재)’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다르다. 두뇌가 크고 치아가 작으며 입 주위가 앞으로 덜 돌출돼 있다. 이마는 위로 곧게 서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둘은 서로 다른 ‘가문’에 속한 것으로 분류돼 왔다. 그렇다면 가문이 다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어떻게 초기 호모 속으로 진화했을까. 두 가문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중간 단계의 화석이 필요했지만, 그 동안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세디바는 바로 이런 때에 세상에 나온 귀한 화석이었다. 세디바는 200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위트워터스랜드대 리 버거 교수가 발견했다. 버거 교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서 수십km 떨어진 지역을 17년째 탐색하던 화석사냥꾼이었다. 무명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평범한 고인류학자였다. 깜짝 놀랄 성과를 낸 적도 없고 기대한 적도 없었다. 그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화석을 찾아 길을 나섰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화석 사냥을 다니던 중에 태어난 9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갔다는 점뿐이었다. 아들은 키우던 개와 함께 아빠의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화석을 찾는 흉내를 냈는데, 곧 진짜로 화석 하나를 발견해 냈다. 버거 교수는 그저 아들을 기쁘게 해주려 그 화석을 발굴하는 시늉을 했지만, 곧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들이 발견한 화석은 오래 전 인류의 쇄골이었다. 급히 추가 발굴이 이어졌다. 연구팀은 근방에서 220개의 뼛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들은 새로운 종의 화석으로 밝혀졌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의 골격. 한때 호모 속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사이를 연결해 줄 유력한 후보였지만, 최근 발견된 새로운 초기 호모 속 화석으로 빛이 바랬다. 작은 머리는 이 종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임을 보여준다. 배경은 세디바의 손 골격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의 골격. 한때 호모 속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사이를 연결해 줄 유력한 후보였지만, 최근 발견된 새로운 초기 호모 속 화석으로 빛이 바랬다. 작은 머리는 이 종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임을 보여준다. 배경은 세디바의 손 골격.]


새 화석에는 기묘한 특징이 있었다. 하나의 화석 안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속의 특징이 뒤섞여 있었다. 예를 들어 손의 경우, 엄지가 길고 손가락이 짧았다. 물건을 잡기 좋은 호모 속의 특징이다. 하지만 강력한 근육이 붙었던 흔적은 이 종이 걷기 외에 나무 타기에도 능했다는 뜻으로, 원시적인 특징이었다. 두뇌의 경우도 구조는 호모 속에 가까웠지만, 크기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비슷하게 작았다. 버거 교수는 이런 연구들을 바탕으로, 2011년 4월 미국 미네아폴리스에서 열린 고인류학회에서 “세디바가 호모 속의 조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버거 교수의 주장은 최초의 인류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던 고인류학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학자들은 곧장 논쟁에 빠졌다.

대표 인류 화석 정리
21세기 벽두에 찾아온 강력한 후보, 가르히
세디바는 2013년에도 다시 한번 ‘사이언스’의 표지를 장식했다. 연구팀은 치아와 턱뼈, 팔뼈, 척추 등에서 호모 속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특징을 동시에 갖는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혔다. 하지만 이런 연구에도 불구하고, 세디바의 위상은 조금씩 떨어져갔다. 체질인류학자인 우은진 연세대 치대 BK연구교수는 “세디바는 호모 속의 조상이 되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며 “연대가 190만 년 전으로, 호모 속의 조상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늦었다”고 말했다.

최초의 호모 속으로 꼽히는 호모 하빌리스는 240만 년 전부터 살았다. 따라서 호모 속의 조상이 되려면 적어도 이와 비슷하거나 앞선 시대에 살았어야 한다. 하지만 세디바는 더 후에 살았기 때문에, 후손이 조상보다 먼저 태어나는 시간적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1999년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역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속을 이어 줄 후보로 꼽힌다. 이번 연구에서는 가르히도 조상 위치에서 밀려났다
[1999년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역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속을 이어 줄 후보로 꼽힌다. 이번 연구에서는 가르히도 조상 위치에서 밀려났다.]

고인류학자들은 이미 알려져 있던 다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주목했다. 21세기가 되기 직전에 발표됐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이하 가르히)’다. 가르히는 1999년 ‘사이언스’ 논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 화석은 1990년에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됐고, 1996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어지며 큰 주목을 받았다. 가르히를 발굴한 팀은 화려했다. 미국 시카고대의 팀 화이트 교수와 일본 도쿄대 스와 겐 교수, 미국 켄트대 오언 러브조이 교수 등 스타급 고인류학자들이 즐비했다. 이들이 발굴한 화석은 흥미로운 특징이 많았다. 1.4m의 큰 키와 쭉 뻗은 다리를 지녀 상당히 진화한 인간처럼 보이기도 했고, 긴 팔과 작은 두뇌를 지녀 진화가 덜 된 원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속의 중간 특성을 지닌 것이다. 연구팀은 새로운 화석에 그 지역 말로 ‘놀랍다’는 뜻의 이름을 붙이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속의 중간 단계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가르히가 호모 속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이어줄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생존 연대 때문이었다. 초기 호모 속이 등장하기 직전인 약 250만 년 전에 살았다. 하지만 가르히는 호모 속으로 진화한 경로를 추적하기에는 여전히 불분명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로 분류됐다.
 
발견 당시의 모습. LD350-1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아래턱뼈 화석은 미국 애리조나대의 에티오피아인 대학원생이 최초로 발견했다
[발견 당시의 모습. LD350-1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아래턱뼈 화석은 미국 애리조나대의 에티오피아인 대학원생이 최초로 발견했다.]

280만 년 전 새로운 호모 속 후보 등장

이제 이번 기사의 주인공을 만날 차례다. 인류학자들은 2013년 에티오피아 레디-게라루 지역에서 발견된 새로운 화석에 주목했다. 연대를 측정한 결과 호모 하빌리스와 원인의 중간에 해당하는 280만 년 전이었던 것이다. 호모 속의 조상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어 뼈의 특성을 분석했다. 왼쪽 아래 턱뼈 하나가 발견됐는데, 모양이 특이했다(60쪽). 우선 현대인의 ‘턱’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었다. 우리 인류의 입술 바로 아래를 만져보면 움푹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이 턱이다. 턱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 보다 원시적인 종으로 갈수록 사라지는데(둥글납작함), 이 화석도 턱 부분이 둥글고 납작해 원시적이었다.

반대로 치아는 호모 속에 가까웠다. 화석에는 앞니 약간과 송곳니의 뿌리 부분, 그리고 일부가 깨지긴 했지만 앞어금니 세 개와 뒤어금니 세 개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맨 뒤의 앞어금니가 뒤어금니보다 더 닳아 에나멜질이 벗겨져 있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반대로 뒤어금니가 더 많이 닳는다. 또 가장 뒤의 어금니가 둘째 뒤어금니보다 작아지는 특징이나 ‘턱뼈가지’라고 부르는 턱뼈 부분이 마지막 어금니 뒤에 오는 것도 호모 속에 가까운 특징이다. 치아에 난 돌기는 호모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특성을 고루 보이고 있었다.

혹시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종일 가능성은 없을까. 당시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크고 초식을 했던 원인 ‘파란트로푸스 속’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턱뼈에서는 파란트로푸스의 고유한 특성이 발견되지 않아 그럴 가능성은 제외됐다.

연구팀은 이런 연구 결과를 종합해 이 화석이 호모 하빌리스 이전에 살았던 초기 호모 속 인류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유력한 두 후보인 세디바와 가르히를 후보에서 제외했다. 세디바는 연도가 여전히 문제였고, 가르히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속 중간에 놓으면 불과 수십만 년 사이에 치아 크기가 급격히 커졌다가 다시 줄어드는 기이한 진화 패턴을 보이게 된다. 고인류학에서는 진화 과정이 이렇게 오락가락하지는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가르히 역시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기는 어렵다.

연구팀은 주변 지층을 분석해 이 시기에 왜 초기 호모 속이 갑자기 등장했는지도 밝혔다. 지층에서 발견되는 동물의 종이 급격히 바뀌었다. 원래 이 지역에는 사슴류, 코뿔소류 등이 살았는데, 대부분이 10만~20만 년 사이에 급격히 사라지고 악어나 영장류, 기린 등이 새로 나타났다. 이들은 오늘날 세렝게티 등에서 볼 수 있는, 넓고 개방된 사바나의 동물이다. 연구팀은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이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재촉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발견이 인류 역사를 다시 쓸까. 중요한 발견이지만 아직은 두고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이상희 교수는 “인류 계통수를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은 과장이라는 고인류학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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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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