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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트레스가 약이다

심근경색 잡고 암도 예방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할 수 있다.


2050년 8월. “심장에 스트레스를 줄 시간입니다.” 김무환 씨는 심근경색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갑자기 아버지의 심장혈관이 막혔고 가족은 미쳐 손을 쓸 틈도 없었다. 김씨는 최근 심근경색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만은 가족에게 아픔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일주일에 두 번 병원에 들러 심근경색 예방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아버지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심근경색을 예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심장전문의 최유비 교수도 “최선의 심근경색 예방법은 심장에 규칙적으로 약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OECD 국가 가운데 40대 돌연사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3월 돌연사의 첫 번째 원인으로 심근경색을 꼽았다. 심근경색 발병률이 OECD 국가 평균의 3배에 이른다.

심근경색은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의 벽이 두꺼워지면서 혈액의 흐름이 멈추는 현상이다. 심장근육으로 통하는 혈관이 막히면 심장근육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심장이 마비된다. 즉 심장이 허혈(虛血) 쇼크에 빠진다는 말이다. 이런 심근경색은 심장근육이 손상될 수 있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제까지는 심근경색 치료법은 수술이 최선책이었다


심장도 예열해야 건강해
 

프리컨디셔닝의 효과^관상동맥을 흐르는 혈액의 양이 줄면 산소가 부족해 심장근육이 파괴(어두운 부분)된다(01). 그런데 프리컨디셔닝으로 산소가 부족한 상황을 미리 경험시키면(02) 심근경색에 걸릴 때 근육이 파괴되는 양이 줄어든다(03).


경주용 자동차도 미리 엔진을 예열해야 순간 큰 힘을 내듯, 심장도 ‘워밍업’을 하면 큰 충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를 ‘프리컨디셔닝’(Preconditioning)이라고 한다. 미리(pre) 경험시켜(conditioning) 적응력을 키운다는 뜻으로 미국 듀크대 병리학과 찰스 머리 교수가 처음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머리 교수팀은 개를 대상으로 심장의 관상동맥을 5분 동안 막아 혈류를 흘리지 않다가 5분 뒤 다시 흘리는 작업을 4일간 반복했다. 그러자 이후 40분간 혈관이 막히는 상황이 발생해도 심근경색의 크기(심장혈관이 막혔을 때 혈액을 공급받지 못해 죽는 심장근육의 크기)가 기존의 1/4로 줄었다. 그는 이 결과를 미국 심장학회지 1986년 11월호에 발표했다.

혈액을 공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심근경색을 치료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일단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심장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ATP)의 양이 줄어든다. 에너지가 줄면 에너지가 있어야 세포막을 통과하는 이온의 흐름에 ‘비상’이 걸린다. 그런데 프리컨디셔닝으로 혈액의 양이 줄어드는 상황을 반복하면, 나중에 강한 스트레스가 와 에너지의 양이 급감해도 이온이 세포막을 잘 통과해 심장근육이 잘 죽지 않는다.

물리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이온의 흐름이 원활하도록 돕거나 심장근육을 보호하는 생체효소인 아이노스(iNOS)나 콕스(COX-2)도 최근 개발 중이다. 이 물질만 있으면 프리컨디셔닝을 받아 심장근육이 보호된 효과가 난다. 일종의 ‘반작용’을 응용한 것. 연세대 의대 김동구 교수는 “프리컨디셔닝은 지난 20년간 심혈관 분야에서 최고의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심혈관 질환은 재발할 경우 사망할 위험이 더욱 높다. 따라서 심혈관 질환을 치료하는 것보다 프리컨디셔닝을 통해 예방하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

‘매운’ 고추는 ‘좋은’ 스트레스
 

활성산소의 암 예방 과정^식물활성영양소가 소장의 융털로 흡수된다(01). 세포로 들어간 식물활성영양소가 활성산소를 만들어 NRF 단백질을 KEAP1단백질로부터 떼낸다(02). NRF가 해독효소를 만드는 DNA 부위를 활성화시킨다(03).


서울대 약대 서영준 교수는 매운 맛의 원인인 캡사이신이 세포에 활성산소를 축적시킴으로써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 지난 7월 국제 약학 저널인 ‘안티옥시턴트 산화환원’에 발표했다. 쉽게 말해 고추 1개를 먹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먹는 셈이고, 이 스트레스가 암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항산화작용을 하는 식품의 파이토케미컬 성분(식물활성영양소) 가운데는 활성산소를 만들어 생명체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산화적 스트레스를 일으켜 세포를 보호하는 경우도 있다.

식물활성영양소는 식물이 자외선을 받아 만들어 낸 성분인데 인체에 유익하다. 식물활성영양소가 체내에서 활성산소를 만들어 산화적 스트레스를 일으키면, 활성산소가 억제되는 메커니즘이 활성화된다. 일종의 역설이다.

활성산소는 에너지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인데, 세포막과 단백질을 공격해 세포 고유의 기능을 파괴한다. 일종의 자동차 배기가스와 같다. 그런데 이 활성산소가 어느 정도 모여야 항산화기능이 생긴다. 항산화 방어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일종의 ‘마중물’을 붓는 것이다.

이같이 세포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세포는 암세포가 생기지 않도록 해독효소를 만들어 세포를 보호한다. 그런데 해독효소를 만드는 단백질은 세포 속에 활성산소가 증가해 산화적 스트레스가 높아져야 활성화된다. 서 교수는 “캡사이신은 궁극적으로 세포의 보호 메커니즘을 튼튼하게 만들어 암을 예방한다”고 설명했다.

캡사이신 외에도 카레의 설파민, 브로콜리의 설포라판도 스트레스를 일으켜 암을 예방하는 성분이다. 서 교수는 “식물활성영양소가 산화적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시켜서 세포보호메커니즘을 작동시켜 암을 예방한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며 “식물활성영양소 연구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암 예방을 위해 식물활성영양소가 풍부한 과일과 야채를 하루 5번 이상 먹을 것을 권장하는 ‘Five a day’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제까지 스트레스는 우리의 ‘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스트레스가 우리의 ‘동지’로서 ‘건강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 낼 전망이다. 쇠가 담금질을 많이 받아야 더욱 단단해지듯이, 우리도 ‘좋은’ 스트레스에 단련될수록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이제부터 스트레스를 두려워하지 말자.
 

고추나 브로콜리는 햇빛을 받으면 식물활성영양소를 만든다. 이 영양소는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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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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