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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세계의 토끼 사냥

확률이 큰 곳을 향해 여러번 총을 쏴야

상자 속에 넣어 둔 피자가 튀어나오고 움직이는 자동차들이 간섭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자연계에 존재하는 플랑크 상수가 매우 커지면 가능한 일이다.일상생활에서 양자역학적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양자세계와 고전세계의 차이점

손톱보다 1억배 작은 원자 크기의 입자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물리법칙과는 다른 규칙을 따른다. 이렇게 매우 작은 세계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을 ‘양자역학’이라고 한다. 양자역학적 세계는 날아가는 야구공, 굴러가는 바퀴,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처럼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세계와는 어떻게 다를까. 이 세상이 양자역학적 세상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양자역학적 세계가 가지는 특징은 여러가지 물리량이 매우 작다는 것이다.어느 정도 작을까.자연계에 존재하는 상수 중 h로 표현되는 플랑크 상수(6.63×${10}^{-34}$J초)수준이다.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플랑크 상수는 매우 작다.그런데 플랑크 상수가 1J초정도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세상은 완전히 양자역학적 세계가 될 것이다.그렇다면 양자역학적 세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이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양자역학의 특징을 살펴보자.

원자 정도의 작은 세상을 기술하는 방법과 눈에 보이는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뉴턴의 고전적인 방법 사이에는 크게 두가지 차이점이 있다.첫째는 고전적인 경우에는 입자의 운동을 그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구해 기술할 수 있지만,양자역학에서는 이와 달리 입자가 있을 확률만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둘째는 고전적인 경우에는 측정되는 물리계가 관측자와 분리될 수 있다고 여기지만,양자역학에서는 본질적으로 관측을 하는 행동 자체가 관측되는 물리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입자가 존재할 확률만 알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어느 곳에서 입자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거지.입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입자의 운동을 어떻게 말할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것은 고전적인 생각이다.양자역학에서는 생각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입자가 어디 있는지는 측정해봐야 안다.똑같은 물리계를 한 곳에서 N번 입자의 위치를 측정하고 그 곳에서 n번 발견됐다면 그 곳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을 구한 것이다.」이러한 방법을 모든 공간에서 적용해보면 입자가 존재할 확률을 구할 수 있다.

고전적으로는 물론 한 곳에서만 입자를 발견한 확률이 1이고 다른 곳에서는 모두0이다.하지만 양자역학적으로는 이러한 확률이 공간에 퍼져 있다.물론 입자가 공간에 골고루 퍼져 있다는 말은 아니다.만일 입자를 어떤 위치에서 발견했다면 입자 전체가 그 한점에서 발견된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입자가 존재할 확률이 한 곳에서 점점 넓게 퍼지게 된다.

"그러면 입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입자의 운동을 어떻게 기술한다는 말인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과학자들은 입자의 확률분포를 파동함수만으로 기술한다.입자의 존재가 확률적이라고 해서 모든 물리량이 불확실한 것은 아니다.뉴턴 역학에서는 뉴턴 방정식으로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구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소위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파동함수를 정확히 구할 수 있다.그리고 모든 물리량들은 확률적인 방법을 사용한 기대값으로 표현할 수 있다.

눈 감고 축구장에서 축구공 찾기

고전적으로 생각할 때 입자의 운동은 입자의 속도와 위치를 측정해 그 입자의 궤도를 구해 기술한다.경찰이 과속차량을 단속할 때 레이더 건을 이용하는 것이 입자의 속도를 측정하는 예다.또한 그 입자의 위치도 측정하는 기계만 정확하다면 우리가 원하는 정확도로 구할 수 있다.이런 상황은 우리가 관측한다는 사실이 입자의 운동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예를 들어 레이더 건에서 나오는 전파는 물체에 부딪쳐서 반사되는 파동의 도플러효과를 이용해 속도를 측정한다.이때 레이더 건에서 나오는 전파의 에너지는 매우 작아서 자동차의 속도에 거의 양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원자 정도 크기의 세계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미시적 세계에서는 아무리 관측의 영향을 작게 해도 그 영향이 극적으로 커진다.예를 들어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경우를 살펴보자.레이더 건과 마찬가지로 빛을 전자에 쏘여 반사된 빛의 반사각도를 측정하면 전자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그러나 빛도 운동량을 가지고 있다.따라서 전자에 빛이 충돌하고 나면 전자는 빛의 운동량의 일부를 가지고 튕겨 나간다.이렇게 측정과정에서 전자에 전달된 운동량은 전자의 움직임에 영향을 줘 그이후에는 전자의 속도가 불확실해진다.

넓은 운동장에 축구공 하나를 놓아둔 상태에서 눈을 가리고 두 손을 뒤로 묶은 채 축구공을 찾는 경우를 생각해보자.이와 같은 상태에서 축구공을 찾으려면 발길질을 하며 운동장을 누빌 수밖에 없다.계속 헛발질을 하며 운동장을 누비다가 드디어 발에 축구공이 차였다고 하자. "야호,드디어 축구공을 찾았다!"고 환호할 때 운동장 밖에 있는 사람이 묻는다. "자,이제 축구공은 어디 있는가?"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이 짓을 다시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 발길질은 측정행위에 해당하고,이로 인해 축구공의 운동상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물론 발길질을 살살하면 축구공을 찾은 뒤에도 그 주위를 더듬으면 찾을 수 있지만,양자역학적 세계에서는 아무리 작은 발길질도 호나우도가 센터링하는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

미시세계에 적용되는 불확정성 원리

측정하는 행동 자체가 관측되는 물리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라고 이름 붙였다.불확정성 원리란 입자의 위치에 대한 불확정성과 속도의 불확정성을 동시에 어느 한계 이하로 작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앞에서 전자의 위치를 측정한 경우 위치를 측정하려고 하면 측정 행위 자체가 전자에 운동량을 주어서 운동량이 불확실해진다.이러한 제한은 측정기계의 부정확도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에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제한이다.이를 식으로 나타내면 ⊿p·⊿x 〉h로 (운동량의 변화량과 위치의 변화량의 곱은 항상 플랑크 상수보다는 큰 값을 갖는다)쓸 수 있다.여기서 나타나는 기본적인 상수h를 플랑크 상수라고 하며,그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물체의 크기가 큰 경우에는 이러한 제한을 무시할 수 있다.이와 같이 플랑크 상수를 무시할 수 있는 경우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뉴턴 역학을 사용할 수 있고,이를 무시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양자역학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원자핵의 주위를 도는 전자의 궤도는 알수 없다.궤도를 측정하기 위해 전자의 위치를 아는 순간 측정 행위에 의해서 전자는 운동량을 받아 다른 곳으로 튀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처럼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다는 말은 좋은 비유이기는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이다.전자는 다만 원자핵 주위에 존재할 수 있는 확률로만 기술할 수 있다.

반사하고 굴절하는 전자
 

(그림1)전자의 터널링 효과^양자역학적 세계에서는 역학적 에너지가 포텐셜 에너지보다 작은 경우에도 이러한 포텐셜 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


전자기파의 일종이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이 있다.가시광선은 굴절률이 다른 매질을 통과할 때 일부는 반사하고 일부는 굴절한다.반사와 굴절 현상은 파동의 근원이 무엇이든 간에 파동이 있으면 항상 일어나는 현상이다.따라서 음파도 파동현상이므로 소리도 반사와 굴절의 효과가 있다.또 파동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간섭과 회절이 있다.

미시세계에서 입자를 파동함수로 표현한다고 했으니 입자에서도 반사,굴절,간섭,회절 현상이 일어날까.놀랍게도 그러한 현상은 양자역학적으로 나타난다.전자는 빛과 마찬가지로 간섭과 회절 등의 파동현상을 나타낸다.한편 빛을 양자역학적으로 생각하면,빛은 연속적인 에너지 분포를 가지지 않고,기본적인 양자인 광자가 모여 있는 것이다.고전적으로 전자기파의 진폭의 제곱은 전자기파의 에너지에 비례한다.광자가 매우 많이 모여 있어서 생기는 빛은 에너지가 큰 곳에 광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따라서 전자기파의 진폭의 제곱은 광자를 발견할 확률에 해당한다.

빛이 유리판을 통과하는 경우 빛이 입사하면 공기-유리의 경계면에서는 반사되는 파동과 굴절되는 파동이 생긴다.이 중 굴절되는 파동은 다시 유리-공기의 경계면에서 반사되는 파동과 굴절되는 파동으로 갈라진다.유리 너머에서 빛을 보면 이렇게 두 개의 경계면을 통과한 빛을 보게 된다.

파동의 성질을 가진 전자를 가지고 굴절률이 다른 매질을 통과하는 실험을 해보자.전자의 경우에 굴절율이 공기와 유리에 해당하는 것은 적당한 전기 포텐셜로 만들 수 있다(그림).이렇게 생긴 포텐셜의 모양을 포텐셜 장벽이라고 한다.이때 고전적으로는 입자의 역학적 에너지가 포텐셜 에너지보다 작은 경우에는 입자는 이 포텐셜을 절대로 통과할 수 없다.하지만 양자역학적 세계에서는 빛이 유리를 통과하는 것처럼 전자는 이 장벽을 통과할 수도 있다.이러한 현상을 '터널링 효과'라고 한다.

입자가 빛과 같이 행동하는 터널링 효과는 사실 자연계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예를 들어 원자핵이 붕괴하는 경우 포텐셜 에너지에 갇혀 있다가 터널링 효과에 의해서 핵자가 핵 안에서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또한 터널링 현상을 이용한 전자 터널링 현미경도 있다.만약 고체의 표면 구조에 대한 아름다운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전자 터널링 현미경을 이용해 만든 사진일 것이다.이렇게 포텐셜 장벽 밖으로 튀어나올 확률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포텐셜 에너지의 크기와 길이를 곱한 양에 -부호를 붙이고 플랑크 상수 h로 나눈 양을 지수로 갖는 감소하는 지수함수의 형태를 가진다.따라서 에너지가 h보다 매우 큰 고전적인 경우에는 이러한 터널링 효과는 우주의 나이만큼 긴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플랑크 상수가 1인 이상한 나라

이제 양자역학적 세상과 뉴턴의 고전역학적 세계를 플랑크 상수 h를 무시할 수 없는가,혹은 무시할 수 있는 가를 구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러면 h가 1J초정도로 굉장히 큰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우선 구슬을 상자 안에 가두어 보자.그리고 상자의 크기를 점점 작게 만들어보자.이 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p·⊿x 〉h≈1 J초가 되므로 상자의 길이를 작게 만들어 ⊿x를 줄이면 운동량의 불확정성은 더 커진다.예를 들어 상자의 한 변을 10cm로 줄이면 구슬이 가지는 운동량은 10kgm/초 이상의 값을 가질수 있다.따라서 작은 상자에 갇혀있다는 것만으로 구슬은 큰 에너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이를 전문적인 용어로는 영점 에너지라고 한다.그리고 그 구슬을 발견할 확률은 상자 안에 골고루 퍼져있다(구슬이 퍼져 있다는 말은 아니다).그리고 잠시 후에는 터널링효과에 의해서 구슬이 상자 밖으로 튀어나온다.따라서 피자를 작은 상자 안에 보관하면 언젠가는 밖으로 튀어 나오게 된다.동물원 안에 사자와 같은 맹수를 가두어 놓는 것이 더 이상 안전한 일은 아니다.차고 안에 있는 자동차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벽을 뚫고 튀어 나올 수도 있다.

양자역학적인 세계에서 토끼 사냥을 나가보자.우선 토끼를 찾아야 할것이다.토끼의 위치는 확률적으로 주어지므로 먼저 토끼의 확률분포를 알아야 할 것이다.그리고 확률이 제일 큰 곳으로 총을 겨누어 쏘면 된다.토끼가 나무들 사이로 뛰어가면 토끼는 간섭현상을 일으킨다.토끼가 있는 확률은 빛의 간섭현상처럼 어떤 곳은 크고,다른 곳은 작은 간섭무늬를 이룰것이다.그러면 한번 쏘아서 토끼를 맞출 수 있을가.당연히 그렇지 않다.여러 번 쏘아서 그 중 어떤 경우에는 토끼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토끼의 입장에서는 양자역학적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이와 같이 플랑크 상수가 매우 커지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은 많은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난다.인류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기술도 발달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많은 현상들을 탐구할 수 있다.양자역학이 발견됐던 것도 20세기초에 원자 정도의 크기를 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기 떄문이다. 이제는 이러한 양자역학적 효과는 더 이상 물리학자들만의 놀이가 아니다.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한 기구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휴대전화에 있는 컴퓨터 칩들도 양자역학적으로 그 구조가 연구되어 개발된 것이다.조금만 세월이 흐르면 양자역학적인 효과들이 우리에게 친숙한 상식의 일부가 될 것이다.

200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이경국
  • 최준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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