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미국 뉴욕이나 워싱턴에 다녀온 적이 있나요? 그랬다면 자신도 모르게 비행기 안에서 우주방사선을 많이 맞았을 겁니다. 그 기간에 태양 폭발이라도 일어났다면 더 위험했을 거예요. 방사선을 비롯해 지구를 둘러싼 다양한 우주환경을 우주날씨라고 합니다. 오늘의 우주날씨는 과연 어떨까요?
“북극항로로 비행을 많이 하면 정말 암에 걸리나요?”
“지난번 비행 중에 오로라를 봤는데, 제가 얼마나 방사선을 맞은 거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나는 2009년부터 ‘북극항로 우주방사선 연구’를 하고 있다. 이 때 알게 된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지금도 나를 만나면 이렇게 묻곤 한다.
북극항로가 뭔데 이렇게 두려워할까. 북극항로는 북극 지역을 통과하는 비행기 항로다.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가면 지상보다 더 많은 우주방사선을 맞게 된다. 방사선량은 위도가 올라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에 북극에서 가장 많이 받는다. 일반 승객들이야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조종사는 계속해서 북극항로를 운항해야 하기 때문에 몸에 방사선이 쌓이는 것이다. 이들의 식단에 미역이나 다시마가 빠지지 않는 것도 이런 두려움 때문이다(미역이나 다시마에 들어있는 요오드는 몸 안에 방사선이 쌓이는 것을 줄여준다).
북극항로 갈 땐 우주방사선 조심해야
아래 그림은 현재 대한항공이 운항하고 있는 북극항로다. 현재 3개의 북극항로(polar 3, 4, 5 route)를 운항하고 있고, 한 개를 더 추진하고 있다(polar 7 route). 인천공항에서 뉴욕, 워싱턴, 시카고, 마이애미 등 미국 동부 지역을 갈 때 주로 북극항로를 이용한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비행시간이 1시간~1시간30분 단축된다. 기름값은 줄이고 승객과 수하물의 양은 늘릴 수 있어 항공사에 유리하다. 문제는 우주방사선이다.
북극항로를 가게 되면 적도 지역으로 지나가는 것보다 2~5배 더 많은 방사선량에 피폭된다. 그렇다면 미국 서부로 갈 때 흔히 이용하는 캄차크항로나 북태평양 항로와는 얼마나 다를까. 나는 2009년 직접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우주방사선을 측정해봤다. 그 결과 북극항로가 북태평양 항로보다 평균 15% 정도 더 방사선을 많이 받았다. 다만 측정실험이 3번뿐이었고, 개별 측정마다 편차가 있어서 그 차이를 심각하다고 말하기는 아직 힘들다.
지구 자기장과 우주 날씨
지구 주위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자기력선이 둘러싸고 있다. 마치 막대 자석 주위에 둥글게 생기는 자기력선과 비슷하다. 태양 폭발이 일어나면 입자, 전파, 그리고 자기장을 품고 있는 태양풍이 태양에서 터져 나와 지구로 흘러 들어온다. 지구 자기장은 태양풍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주는 고마운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지구의 북극과 남극 지역은 자기력선이 지구로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전하를 띤 입자들은 자기력선을 따라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태양풍은 사실 전하를 띤 거대한 플라스마의 흐름이다. 따라서 태양풍 입자들은 자기력선을 따라서 지구의 양 극지역으로 들어온다. 대기권 안으로 들어온 전하 입자들은 대기의 중성 분자들과 부딪히면서 아름다운 오로라를 만든다. 오로라는 대략 북위 65~72˚ 사이에서 관측할 수 있다.]
다만 미국 뉴욕을 왕복할 때 받는 방사선량이 가슴 X선 사진을 찍을 때 받는 방사선의 2~3배이니 아주 적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북위 60도 이상의 항로 즉 북태평양 항로나 캄차크 항로로 가든, 북극항로를 가든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한다. 한편 우주방사선량은 고도와 함께 증가한다. 비행기 고도인 9km에서 시간당 4μSv(마이크로시버트)이던 방사선량이 12km 고도에서는 9μSv로 2배 넘게 증가한다. 지상에서는 100분의 1 이하다.
평상시의 우주방사선량은 (1)위도 (2)고도 (3)태양활동 등 세 개의 원인에 좌우된다. 그런데 주의할 게 하나 있다. 지금 사용하는 우주방사선 예측 프로그램은 연중 변화가 거의 없이 일정한 은하방사선만 고려한다. 즉 태양에서 나오는 고에너지 양성자와 X선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 폭발이 일어나면 급작스럽게 분출되는 고에너지 양성자들이 지구로 대량 유입된다. 이러면 한꺼번에 많은 우주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는데, 현재의 예측 프로그램에서는 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그래서 계산해봤다. 1989년 10월 태양폭발 당시 워싱턴DC-인천 노선을 비행한 경우에 누적방사선량은 711μSv였다. 일반인의 연간 방사선 허용량이 1000μSv(=1mSv)인 것을 감안하면, 1회 편도 비행에 1년 허용치에 달하는 엄청난 방사선량에 피폭될 수도 있다. 이 양은 가슴 X선 촬영을 7~8회 한 양에 맞먹는다.
앞서 비행 중에 오로라를 보았다고 걱정했던 조종사에게 내가 말해준 답변은 다음과 같다. 지구에서 오로라를 보았다는 것은 지자기 폭풍이나 태양폭발이 일어났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오로라는 지구 밖에서 들어오는 태양풍 입자와 지구 대기의 공기 분자가 충돌해서 빛을 내는 현상이다. 오로라가 발생했을 때, 태양 양성자가 함께 들어왔다면 우주방사선도 증가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로라를 만드는 입자들은 에너지 범위가 수십~수백 KeV에 해당하는 전자들이고, 우주방사선들은 이보다 에너지가 훨씬 높은 수십 메가전자볼트(MeV) 이상의 양성자이다.
사실 우주방사선 피폭이 승무원이나 승객결과들의 건강에 미치는 관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핵의학 전문의들은 1회에 다량으로 맞는 방사선도 인체에 치명적이지만, 조금씩 축적되는 낮은 방사선도 인체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비행기를 타고 가며 받는 저선량의 방사선도 시간이 꽤 지나면 암, 백혈병, 수명단축, 유전적 결함을 일으킬 수 있다.
승무원들에게 특정 암이 일반인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다는 보고서들이 이미 나와 있다. 하물며 임산부나 어린아이는 더할 것이다. 항공사는 임산부나 어린이 승객에게 이런 위험 가능성을 미리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법안이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이다. 이 법은 2009년 국회에 상정돼 올해 7월 26일자로 시행이 확정되었다. 이 법의 18조는 항공기 승객과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안전관리에 대한 것이다. 내가 우주방사선을 온 몸으로 받아가면서(?) 북극항로를 연구한 것도 이 조항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3년이 지나 드디어 그 결실을 맺게 되어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북극항로는 통신 문제에도 매우 취약하다. 극 지역은 지구 자기력선이 직접 지구로 들어오는 곳이어서 자기장이 매우 강하다. 이렇게 지구 자기장이 강한 지역에서는 통신에 장애가 일어난다. 보통 비행기 조종사들이 사용하는 통신 수단은 HF(단파)통신과 위성통신(SATCOM)이다. 북위 82도 이상에서는 HF통신이 불가능하다. 위성통신마저 태양폭발이 일어나면 사용할 수 없어 일시적으로 북극 지역을 지날 때 모든 통신이 먹통이 돼버린다. 이렇게 되면 조종사들은 오로지 경험에 의존해 항로를 결정해야 해 매우 위험하다. 사실 필자는 북극항로 우주방사선 실험을 하면서 이러한 경험을 비행기 조종실에서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더구나 내년 즉 2013년은 다시 돌아오는 태양활동 극대기이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대규모 태양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 11월 “태양관측위성(SDO)이 관측 사상 가장 거대한 태양 흑점 폭발을 포착했다”면서 이 흑점에 ‘AR11339’라고 이름 붙였다. 이 흑점은 길이가 9만km, 폭은 5만km로 지구보다 3배 이상 크다. 태양물리학자들은 이 거대 흑점이 내년에 가장 활발하게 폭발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라면 내년에는 북극항로로 여행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의 우주날씨가 궁금하세요?
우주방사선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 여행을 미치는 다양한 우주환경의 변화를 우주날씨라고 한다. 태양에서 나오는 전파 때문에 생기는 ‘태양전파환경(R)’, 태양에서 나오는 입자 때문에 생기는 ‘태양방사선환경(S)’, 태양에서 나오는 자기장 때문에 생기는 ‘지자기폭풍환경(G)’이 우주날씨의 3요소이다. 우주날씨 3요소가 지구에 도달하는 순서대로 놓으면, ‘전파(R)-입자(S)-자기장(G)’이다. 각 요소들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수 분~수 일로 서로 다르다. 보통 수 분 안에 도달하는 전파는 예보가 어려운 반면, 수 일 뒤에 도달하는 자기장은 상대적으로 예보가 쉽다. 우주날씨에 대한 더 깊은 내용은 최근 펴낸 ‘우주날씨를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책에 자세하게 소개했다.
우주날씨는 비행기뿐만 아니라 인공위성이나 지상 전력망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태양에서 나오는 입자(S) 때문에 우주에 떠 있는 인공위성의 반도체 부품 하나가 고장 나서 인공위성이 갑자기 고장이 난다. 태양에서 온 전파(R)는 지구의 전파 신호를 교란시키고, 인공위성의 위치를 바꿔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휴대폰이나 단파(HF), 초단파(VHF) 등의 무선 통신이 끊길 수도 있고 전파 신호 간섭이 일어나 통화 품질이 나빠질 수도 있다.
태양에서 오는 자기장(G) 때문에 지구의 전력망이 고장 나서 전류가 지나치게 많이 흐를 수도 있다. 송전선에 과전류가 생겨서 전선이 끊기면, 도시 전체에 정전이 발생한다. 또 대륙간 통신케이블이 고장 나서 통신장애가 일어날 수도 있다. 실제로 1989년 3월 큰 지자기폭풍 때문에 캐나다 퀘백주 전역의 송전 시설에 문제가 생겨서 약 600만명 주민이 9시간 동안 전력 공급을 받지 못했다. 태양 폭발이 일어나고 나서 송전 시설이 마비되기까지 단 90초 밖에 걸리지 않아 대처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이 때 일본은 통신위성 절반이 파손됐다.
이처럼 우주날씨는 지구에 사는 우리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일으킬 수 있어 우주날씨 예보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항공사, 위성운용사, 전력회사 등을 위해 한국천문연구원은 우주날씨를 매일 예보하고 있다. NASA 위성과 보현산 태양플레어 망원경, 태양흑점 망원경 등을 통해 언제 태양폭발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이다. 태양폭발이 발생한 후에는 태양플레어와 코로나물질 방출 등이 동반되는지 조사해 이들이 지구에 도달할 것인지 비켜나갈 것인지 예측한다.
우주날씨는 로켓을 발사할 때도 필수다. 나로호(KSLV-1)를 발사할 때도 우리 연구팀은 우주환경 종합 감시시스템을 만들어서 항공우주연구원과 협력했다. 미국 항공협회(FAA)는 50MeV 이상 태양 고에너지 양성자의 양이 100pfu(단위 면적당 들어오는 입자의 개수) 이상이면 위성의 발사 연기를 권고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한국천문연구원 태양우주환경 연구자들이 모두 우주환경 감시실에 모여 지난 일주일의 우주환경을 토의하고 이번 주의 우주날씨를 예측하는 회의를 갖는다. 태양, 태양풍, 우주방사선, 지구전리층, 오로라 등 우주환경의 구성 요소들에 대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마다 분석한 의견들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2012년 7월 18일자의 예보일지는 내가 직접 작성한 것이다. 이 날은 전날인 7월 17일 발생한 M급 플레어 때문에 ‘태양 양성자 이벤트’가 일어났다. 태양 양성자가 지구에 쏟아진 이번 이벤트는 대략 36시간 동안 지속될 것이고, 최대 세기는 S2 등급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는데 실제로 적중하였다. 현재 많은 우주과학자들이 우주날씨 통합 예보 모델을 개발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우주날씨도 지상 날씨처럼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