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씨앗이 수 km까지 날아가는 원리를 이용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소형 비행체를 개발한 사람. 각기 다른 줄무늬 패턴으로 얼룩말을 구분한다는 점에 착안해, 디지털 인증보안 기술을 개발한 사람.
창의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꾸준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주인공은 김봉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 및 기계전자공학과 교수다. 4월 3일 DGIST에서 그를 만났다.
김 교수는 세계 최초로 무동력 3차원 마이크로 비행체를 개발했다. 수십~수백 μm(마이크로미터μm는 100만 분의 1m)의 비행체는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가 떨어진다. 2018년 나오미 나카야마 영국 에든버러대 유체역학 교수팀의 민들레 연구는 김 교수에게 큰 영감을 줬다. 민들레 씨앗의 깃털 위로 압력이 낮은 소용돌이가 생성돼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고 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이 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소형 비행체가 바람을 탈 때 만들어지는 미세 난류를 측정해 비행 효율을 극대화한 비행체 디자인을 개발했다.
비행체는 바람을 타고 움직이며 임무를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2차원 박막 형태인 전자소자를 3차원 구조로 구현해 마이크로 비행체를 만들었다. 또 대기 중의 미세 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비행체를 개발해 2021년 네이처에 논문을 실었다. 현재는 수소이온농도(pH)를 감지하는 센서를 개발 중이다. 김 교수는 “대기질을 복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개발해 기후변화와 대기오염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비행체가 수집한 데이터를 옮기는 방법도 개선 중이다. 과거엔 NFC 기술을 사용했는데 NFC는 통신 유효거리가 1~2m 수준으로 매우 짧아 한계가 많았다. 김 교수는 보다 강한 에너지를 갖는 전파를 활용해 통신 유효거리를 늘리려고 한다.
퍼트린 비행체가 환경 오염원이 되지 않도록 생분해되는 소자 연구도 하고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크기의 비행체를 날려 보내면 회수가 어렵다. 내구성이 떨어지지 않고 전자소자로서 기능을 하되, 땅으로 떨어진 후 적절한 시간 내에 썩어 없어지는 비행체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기능과 환경,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줄무늬의 불규칙성을 본딴 복제 방지 기술
얼룩말은 각기 다른 무늬 패턴을 갖는다. 패턴의 불규칙성은 얼룩말을 구분하는 데 사용된다. 인간이 신원을 확인하는 데 지문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김 교수는 박사학위 과정을 마무리하던 2012년, 한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로부터 11년 뒤 현재 김 교수팀은 블록 공중합체(BCP)를 재료로 디지털 보안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BCP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고분자를 연결한 사슬 구조로 다양한 나노 구조를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다. 특히 BCP로 만든 나노 구조는 5nm 수준이다. 이는 5억 분의 1m 크기로 얇은 회로를 새길 만큼 정밀한 구조다.
BCP는 재료 원가도 저렴해 기존 반도체 공정 설비와 비교해 가격경쟁력이 뛰어나다. 그렇지만 BCP는 쉽게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BCP로 나노 구조를 만들면 패턴이 무질서해지기 때문이다. 나노공학자들은 BCP 패턴을 정렬시키기 위한 연구를 오랫 동안 해왔다.
김 교수는 BCP의 무질서한 패턴에서 얼룩말을 떠올렸다. 얼룩말처럼 나노 구조 패턴의 무질서함을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 ‘복제 방지 기술’이 등장하던 찰나였다. 김 교수팀은 성균관대, KAIST 등 공동연구팀과 함께 BCP 나노 패턴을 이용한 IoT(사물인터넷) 보안인증 기술을 개발해 2022년 7월 26일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 게재했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얼룩말의 패턴에 영감을 받았을 때 불규칙성과 무작위성을 활용한 소재 개발 연구에 바로 착수했더라면 복제 방식 기술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 교수는 주변에 연구 아이디어를 자문했는데 모두 냉담한 반응을 보여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먼 길을 돌아 자신의 연구를 하고 있는 김 교수는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면 뛰어난 과학적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가질 때 혁신적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