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임신 여부를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틱형 임신진단시약에 소변만 묻혀보면 된다. 임신을 하면 성선자극호르몬(HCG, Human Chorionic Gonadotropin)이 소변에 섞여 있어 스틱에 묻은 시약의 색이 변하기 때문이다.
사실 1960년대 초반까지도 임신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토끼를 죽여야 했다. 임신부의 오줌을 토끼의 복강에 주입한 뒤 토끼의 난소에 황체가 생기면 임신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토끼의 난소를 확인하려면 토끼를 죽여서 부검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 탄생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던 셈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이런 동물실험을 대신할 실험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고등동물보다는 하등동물을, 하등동물보다는 무생물을 이용해 동물실험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기본 원칙은 ‘3R’을 따른다. 3R은 동물실험 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Replace), 실험동물의 숫자를 줄이며(Reduce), 실험동물의 고통을 완화한다(Refine)는 의미다. 영국의 동물학자인 윌리엄 러셀과 미생물학자인 렉스 버치가 1959년 출판한 ‘인도적인 실험 기술의 원리’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3R을 제시한 뒤 지금까지 지지받고 있다.
토끼 눈 대신 소 눈
동물실험을 대체할 가장 간단한 방법은 컴퓨터에 각종 물질의 화학구조와 함께 독성을 나타내는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테스트할 물질의 화학구조를 데이터베이스의 자료와 비교하면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도 독성을 예측할 수 있다. 또 바이오센서를 이용해 세포나 조직의 독성을 알아보기도 한다.
화장품을 개발할 때는 특정 성분이 눈에 들어가도 위험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전(前) 임상시험을 거친다. 이때 ‘드라이즈 테스트’(Draize test)라는 점막자극실험을 한다. 토끼의 눈에 시험물질을 투여하고 1시간, 24시간, 48시간째 결막이나 각막, 홍채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한다. 이를 대신해 최근에는 식용으로 도축된 소의 각막에서 특정 단백질을 추출한 뒤 시험물질과 반응시켜 단백질이 어떻게 변성하는지 관찰하는 대체법을 쓴다.
달걀을 이용한 ‘헷캠’(HET-CAM)이라는 실험도 드라이즈 테스트의 대체법이다. 열흘 정도 유정란을 부화시키면 혈관이 발달하는데 여기에 시험물질을 투여해 충혈되는지 보는 것이다. 소의 각막 실험만으로는 결막과 각막, 홍채의 변화를 동시에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헷캠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동물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마취하고 해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실습하기 전 살아있는 동물 대신 동물 모형이나 입체 영상으로 동물을 다루는 훈련을 충분히 받는다면 또 다른 동물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
일례로 ‘보이는 생쥐 프로젝트’(Visible Mouse Project)가 있다. 미국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대 의대 조세 갈베즈 교수가 미국 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생쥐의 3차원 영상을 제작해 교육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웹사이트(tvmouse.compmed.ucdavis.edu)를 열었다.
살모넬라균으로 밝히는 발암물질
무생물로 대신할 수 없는 경우에는 세균을 이용하거나 배양된 세포와 조직을 사용하는 시험관법을 고려한다. 시험관법은 동물실험에 비해 경제적이고 신속하며 대량 검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특정 독성시험에는 적용할 수 없으며 생체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피드백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시험관법은 실험동물의 수를 감소하거나 대체할 수 있을 때만 대체법으로서 의미가 있다.
시험관법에는 ‘에임즈 테스트’(Ame’s Test)가 대표적이다. 에임즈 테스트는 살모넬라균을 이용해 의약품이나 화학물질이 돌연변이나 종양을 일으키는지 검사한다. 1975년 에임즈 테스트를 통해 처음으로 발암물질 300여개가 밝혀졌다. 현재 에임즈 테스트는 동물실험과 대등한 실험방법으로 평가받는다.
세포를 배양해 사용할 수도 있다. 세포를 배양한 뒤 여기에 시험물질을 반응시켜 세포에서 분비되는 효소나 대사산물을 측정하는 것이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최근 갓난아기의 포피를 배양해 인공피부를 만들어 동물실험을 대신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세포로 충분한 결과를 얻을 수 없을 때는 동물의 조직을 배양해 실험에 사용한다. 예를 들어 실리카는 생쥐나 사람에서 폐섬유화를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졌다. 생쥐의 폐를 1~2mm로 잘게 절편을 만들고 이를 젤라틴 스펀지에서 60일 가까이 배양한 뒤 이 절편에 실리카를 투여하면 폐섬유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뇌, 간, 피부 등 동물의 장기 조직을 실험에 사용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장기 하나로 실험을 수십~수백 번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일석 삼조 제브라피시
동물실험을 대체할 최후의 수단은 생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단 포유류인 토끼, 개 같은 고등동물 대신 플라나리아, 환형동물, 어류 같은 하등동물을 사용한다. 이는 3R의 원칙에 입각해 실험동물의 고통을 최소로 만들기 위해서다. 하등동물은 고등동물에 비해 고통에 민감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어류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여러 어종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험용 쥐만큼 화학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테스트할 물질이 발암원인지 아닌지(발암성시험), DNA를 변성시켜 돌연변이를 일으키지는 않는지(변이원성시험), 생식에 관련된 독성은 없는지(생식독성시험) 알아보는데 많이 쓰인다.
하등동물은 경제적이기도 하다. 필자의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제브라피시는 성체가 되는 데 세 달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번에 200~300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번식력도 좋다. 실험용 쥐가 한번에 6~10마리 낳는 데 비하면 엄청난 번식력이다.
특히 제브라피시는 인간처럼 척추동물이고, 폐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가진 장기를 다 갖고 있어 최근 새로운 실험동물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형질전환동물이나 녹아웃(knockout) 동물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 유전자를 이식하거나 변형시켜 인간의 질병과 유사한 질병을 갖고 태어나게 만드는 것이다. 녹아웃 동물을 이용하면 정상적인 동물에 일부러 약물을 투여하거나 수술을 통해 원하는 모델을 만드는 수고를 덜 수 있다. 그만큼 동물의 고통도 줄어든다.
하지만 형질전환동물 하나로 원하는 형질을 나타내게 만들기까지는 많은 동물의 희생이 뒤따른다. 더구나 이렇게 인위적으로 조작된 동물은 정상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사육을 소홀히 하면 쉽게 죽을 위험이 있어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밖에 인간의 조직과 재조합한 동물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면역력이 결핍된 생쥐’(SCID mouse)에 사람의 백혈구를 이식하면, 에이즈 바이러스처럼 설치류에는 감염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의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유용하다. 이 방법이 개발되기 전에는 원숭이 같은 영장류를 이용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재조합 생쥐가 영장류의 희생을 막아주는 셈이다.
동물실험은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과정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동물실험으로 야기되는 많은 문제를 고려하면 3R 원칙에 따라 동물실험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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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동물 살 길 생겻다
PART1 실험동물 복지시대 열리나
PART2 3R을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