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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실험동물 복지시대 열리나

국내 동물보호법 개정안 통과해

꼬마선충은 세포의 종류가 1000개가 채 안된다. 기관이 단순하고 유전자도 1만8000여개로 인간 유전자 수의 절반이다. 몸체가 투명해 현미경으로 관찰하기도 편하다. 그래서 꼬마선충은 생명과학 연구용 실험동물로 많이 쓰인다. ‘텔로미어’(염색체 말단에 존재하는 DNA 조각. 세포분열 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떨어져 나가 더 이상 분열할 수 없게 되면 노화가 일어난다는 학설이 있다.)의 길이가 점점 짧아져 노화가 일어난다는 가설이 꼬마선충 실험에서 나왔다.

꼬마선충뿐만이 아니다. 비만 쥐, 털 없는 쥐, 난쟁이 쥐 등 유전자 변형으로 태어난 생쥐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 토대가 됐다. 주삿바늘로 찔리고 배에 칼이 들어와도 그들은 인간의 생명과학 연구를 위해 몸바쳐왔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들의 공헌에 제대로 보답하고 있는가. 동물실험은 여전히 생명과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고, 실험동물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내 실험동물의 ‘권리’ 찾기에 물꼬가 트였다.
 

실험동물 복지시대 열리나


한마디로 ‘무법지대’?

“쥐꼬리를 잡아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죽인다더군요.”

한 수의학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은 실험동물을 다루는 생명과학자였다. 그는 “실험동물 다루는 법을 제대로 몰라 실험동물에 불필요한 고통을 준다”며 “자격이 없는 의사가 의료사고를 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한국실험동물학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실험연구용으로 쓰이는 동물은 연간 약 500만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작 실험동물의 사육이나 실험 지침에 대한 강제력을 띤 가이드라인은 최근까지 없었다.

농림부가 ‘동물보호법’을 만들어 운영해왔지만 동물실험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있는 상태였다. 농림부 축산국 가축방역과 김문갑 사무관은 “1991년 동물보호법이 제정됐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없어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연구기관이 자체적으로 동물실험에 관한 규정을 정해 운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필요할 경우 얼마든지 규정을 어기고 동물실험을 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수의학계의 한 관계자는 “현행 제도에서는 비(非)전문가도 필요하면 동물실험을 할 수 있다”면서 한국이 동물실험의 ‘무법지대’임을 암시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생명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인력을 10만명까지 늘린다는 ‘10만 양병설’이 나도는 마당에 동물실험에 관한 제도 마련과 교육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2년 전부터 실험동물에 대한 관심이 대두됐다. 2005년 3월 서울대에는 ‘동물실험위원회’가 설치됐다. 동물실험위원회는 단과대나 연구소가 실험을 하기 전 위원회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계획서에 동물 수와 실험 내용 등을 상세하게 기재하도록 했다. 그리고 계획서가 통과돼야 실험동물을 공급했다. 실험동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동물실험위원회는 실험동물의 수를 조절해 무분별하게 희생되는 경우를 줄였다. 동물실험위원장을 맡은 서울대 수의대 박재학 교수는 “서울대에서는 생쥐, 토끼, 개 등 1년 동안 4만마리 가량의 동물을 실험에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에는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실험동물 관리 법안을 발의했다. 장 의원은 연구기관에 동물실험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3R 원칙을 준수하며, 동물실험 시설을 등록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지난해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었다.

지난해 12월 초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은 ‘동물실험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동물보호법 개정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같은 달 22일 이 법안이 통과되면서 앞으로 실험동물 보호와 윤리적인 취급이 탄력을 받게 됐다.
 

최근까지도 실험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는 미약했다.


동물의, 동물에 의한, 동물을 위한

이번에 통과된 법안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동물실험을 할 때는 가장 먼저 실험동물의 복지를 고려하고, 이를 감시할 수 있는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하라는 것.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 동물실험에서는 동물의 존엄성과 복지, 고통정도, 실험의 유효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만약 동물실험을 하더라도 실험 중 고통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진통제나 진정제, 마취제를 사용해 실험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동물실험을 한 뒤 즉시 실험동물의 상태를 확인해 회복될 수 없거나 지속적인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으로 판단될 때는 가능한 빨리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안락사 시켜야 한다.

동물실험연구자에 대해 일정한 자격과 교육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동물실험을 할 때 수의사가 참여해 지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올해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손질한 뒤 내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관련 학계에서는 이번 법안 통과를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실험동물의 복지가 결과적으로 국내 동물실험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박재학 교수는 “‘사이언스’ ‘네이처’ 등 국제 유명 과학저널에 논문을 싣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물실험위원회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며 “윤리적인 동물실험이 연구결과의 과학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데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물실험 근거 없다 주장도

오히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관련 업계다. 업계에서는 이번 법안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은 당장 2009년부터 동물실험을 통해 생산한 화장품과 동물실험을 거친 원료로 제조한 화장품의 수출과 판매를 금지한다. 이 밖에 2005년 발표한 ‘브뤼셀 선언’을 통해 화장품뿐만 아니라 화학합성물에 대한 동물실험도 금지하기 위해 대체법을 연구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은 감소하는 추세”라며 “동물실험에서 대체실험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굴지의 화장품 업계도 아직은 대체실험을 제한적으로 도입한 상태다.

동물실험을 둘러싼 불씨도 여전히 남아 있다. 동물실험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다. 즉 네발 달린 동물이라는 외양의 유사성에서 출발한 동물실험이 얼마나 믿을만한 결과를 내놓겠냐는 것이다.

미국의 마취학자인 레이 그릭과 수의사인 진 스윙글 그릭 부부는 지난해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이라는 책에서 “동물실험은 비과학적이며, 동물은 인간의 질병을 연구하는데 부적절한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그릭 부부는 대표적인 사례로 ‘탈리도마이드’를 들었다. 탈리도마이드는 부작용 없는 수면제로 개발돼 쥐, 토끼, 개 등 동물실험을 거쳐 안전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임신부가 먹으면 팔, 다리가 없는 기형아를 출생하는 부작용이 있어 1950년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학자들 역시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 과학적인 목적과 동물의 고통 사이에서 늘 저울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네이처’는 생명과학과 의학 분야에 종사하는 전세계 연구자 1682명에게 동물실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 결과 70%가 넘는 응답자는 실험동물의 권리에 관한 공공연한 논의가 동물실험에 편견을 갖도록 만들어 연구 환경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응답했다.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동물실험을 계속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동물실험을 대신할 좋은 방법만 있다면 어느 연구자가 사용하지 않겠느냐”는 푸념도 들렸다.

국내에서는 동물실험을 둘러싼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동물보호법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과학연구와 실험동물의 복지 사이에 절충점이 찾아지길 기대해본다.
 

‘아, 이 답답한 유리병을 박차고 나가고 싶어라…’ 생쥐는 가장 많이 쓰이는 실험동물 중 하나다.


동물실험의 역사

문헌상 최초로 동물실험을 한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을 해부해 동물마다 장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기원전 3세기 인물인 에라시스트라투스는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해 처음으로 실험을 했는데, 돼지를 해부해 기관지가 호흡기도고 폐가 호흡장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2세기 갈렌은 돼지와 원숭이를 해부했으며 “실험은 진리를 밝히기 위한 길고 힘든 작업”이라고 말했다. 실험에 의존하지 않은 결과는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죽은 동물이나 사람을 해부하는 일이 금지돼 ‘실험의 암흑기’라 불린다.

16세기 벨기에의 베살리우스가 개, 돼지 등을 부검하면서 동물실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겼다. 이후 17세기 영국의 윌리엄 하비가 동물의 혈액과 심장의 움직임에 관한 역할을 밝혀냈고, 19세기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는 개의 광견병, 누에의 미립자병 등 동물의 감염성질병을 연구했다.

한편 의학과 과학이 발전하면서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의 수가 증가하자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생겼다. 과학 연구에 실험동물 사용을 반대하는 최초의 움직임은 영국에서 일어났다. ‘동물학대방지학회’(SPCA)라는 단체가 영국에 설립된 뒤 1860년대 미국에 도입됐다.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으로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동물을 잔혹하게 죽여서는 안된다는 이유였다.
 

국내에는 ‘실험동물기술사’ 제도를 통해 실험동물 전문가를 양성한다. 지난해 여름 충북대 수의대 실험동물의학교실은 실험동물기술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동물실험 찬반론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을 놓고 찬반양론이 거세다. 동물실험을 찬성하는 진영에서는 실험동물이 인간의 질병 치료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실험동물도 삶에 대한 기본 권리가 있다고 반박한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영국 BBC 방송이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찬반 주장을 정리했다.
 

영국 BBC 방송이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한 동물실험 찬반 주장
 

텔로미어*
염색체 말단에 존재하는 DNA 조각. 세포분열 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떨어져 나가 더 이상 분열할 수 없게 되면 노화가 일어난다는 학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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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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