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 4일 러시아(옛소련 포함)가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궤도에 올려놓자, 이를 본 미국은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공간에서 미국에 대한 각종 정보를 빼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질세라 1958년 첫번째 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했고, 이어 정찰(사진촬영) 목적의 위성들을 쏘아올렸다.
초기 정찰위성들은 영상정보를 전파를 이용해 송부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제 필름으로 찍어 캡슐에 넣은 다음 대기권으로 떨어뜨려 회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미국의 정찰기들은 정찰위성이 발사된 후에도 수십년 동안 러시아와 동유럽 상공을 비행하면서 군사현황에 관한 사진들을 찍었다.
그러나 쿠바의 미사일 위기 때나 U-2 정찰기가 러시아 상공에서 격추될 때까지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1996년까지 미국은 정찰목적을 위해 약 1천억달러를 지출했다고 한다. 러시아도 이에 못지 않은 비용을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차량번호판도 읽어내
오늘날 첩보위성의 영상기술은 대단하게 발전했다. 미국 관리들은 블라디보스토크 해군기지 주차장에 서 있는 러시아 차들의 번호판(수 cm의 해상도를 갖음)을 읽을 수 있다고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첩보위성 프로그램들은 극비사항이어서 정확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과거의 첩보위성들은 악천후 때나 밤에는 영상촬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1988년 미국이 발사한 레이더 영상위성인 래크로스(Lacrosse)에서는 해결됐다. 래크로스는 일정지역에 전파를 쏘아 그 반사파를 읽어내는 합성개구레이더(SAR)를 사용해 구름이나 어둠 속에서도 영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옛소련이 붕괴된 이후 첩보위성에서 얻은 고해상도 영상자료들은 점차 상용화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1m 이하급의 지구관측은 기술도 어렵고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도 컸기 때문에 몇 나라에서만 활용돼 왔다. 그런데 1994년 미국 정부는 대통령령 제 23호에 의해 1m급 위성기술의 상용화를 허용했고, 1995년 미중앙정보국(CIA)은 1960년부터 1972년까지 수집한 80만장의 영상을 대중에게 공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고해상도 영상을 판매할 목적으로 위성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위성영상의 판매에 관심이 큰 민간업체로는 스페이스 이미징사, 어스워치사, 그리고 오브이미지사 등이 있다. 이들은 올해 말이나 내년에 각각 1m 고해상도 영상위성인 이코노스, 퀵버드, 오브뷰 3호 위성을 발사하려고 한다. 물론 미국의 국익과 관련된 경우 정부의 허락을 받는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이스라엘, 프랑스, 일본, 인도에서도 고해상도 위성영상을 판매하려고 추진 중이다. 초기의 프랑스 스폿(SPOT) 위성에서 찍은 영상은 해상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비쌌다. 그러나 위성영상 판매는 경쟁자가 생기면서 가격이 많이 내렸다. 특히 경제난에 허덕이는 러시아는 첩보급 위성영상을 판매해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위성영상의 해상도를 말할 때는 기하학적인 의미의 지상샘플링거리(GSD)를 기준으로 한다. 즉 몇 m짜리의 물체를 식별하느냐는 것이다. 영상을 분석해 어떤 물체의 존재 유무, 인식, 식별, 분석 등의 판독을 수행하려면 해상도가 높을수록 보다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고해상도 위성은 해상도가 10m 이하의 영상을 얻을 수 있는 탑재체(카메라)를 적재한 위성이다. 1m 해상도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1m×1m의 크기를 갖는 지표면의 물체를 영상자료에서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구체적인 정의는 없지만 첩보위성은 서브미터급(해상도가 1m 이하)의 위성영상을 이용한다. 이 정도는 돼야 적국의 군사동향과 작은 군사시설 등을 판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KH-11 위성은 약 15cm, 래크로스위성은 1m의 해상도를 얻을 수 있다. (표1)은 해상도에 따른 물체의 판독 정도를 나타낸 것이다.
첩보위성과 군사위성의 차이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위성에는 정찰위성(해상정찰위성 포함), 조기경보위성, 도청위성, 군사통신위성, 항행위성, 군사기상위성 등이 있다. 넓게 보면 모두 첩보위성(스파이위성)에 속한다. 그러나 좁게 볼 때 첩보위성은 정찰위성(‘세계 각국의 영상정찰위성’ 참조), 조기경보위성, 그리고 도청위성만을 가리킨다.
조기경보위성은 미사일이나 핵폭탄의 발사를 조기에 감지해 적의 공격을 대비하도록 돕는다. 미국의 대표적인 조기경보위성인 DSP(Defense Support Program) 위성은 미사일이나 로켓에서 뿜어나오는 배기가스의 열을 적외선센서를 사용해 감지한다. 1997년 2월 미국은 미사일 조기경보위성인 DSP 18호를 고도 3만5천km에 올려 놓았다. 이 위성은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경보와 방어, 미사일에 대한 기술 정보, 전장(戰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목적으로 발사됐다.
조기경보위성은 1970년대 초부터 중단 없는 조기경보체제를 제공해왔다. 걸프전 때에는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의 발사를 미리 감지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구밀집 지역이나 군사지역에 알려줘 피해를 최소화했다. 따라서 조기경보의 속도와 정확성은 기습공격의 가능성을 줄여주고 전쟁을 억제하는데 중요한 수단이 된다. 21세기에는 전세계를 모두 지켜볼 수 있는 SBIRS(Space-Based Infrared System) 위성이 일부지역만 정찰했던 DSP위성을 대체할 예정이다. 한편 러시아도 미사일 공격과 원자핵 시험을 감시할 수 있는 오코위성과 프로뇨츠위성을 결합한 조기경보위성시스템을 운용해오고 있다.
도청위성은 적국의 전파나 통신을 도청하는 일을 맡는다. 미국에는 점프시트, 볼텍스, 오리온 등이 있으며, 미 공군이나 중앙정보국을 대신해 국가정찰국(NRO)이 관리하고 있다. 국가정찰국은 1992년 일반에게 알려질 때까지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다.
매그넘/오리온 계열의 위성은 미사일 시험 중에 전송되는 원격계측 정보를 도청하고, 볼텍스 위성은 여기에 음성도청을 가미했다. 샬리트/볼텍스 위성은 비밀정보 도청을 수행했다. 1996년 4월 미 공군은 타이탄 4호 로켓으로 첩보위성을 발사했는데, 고급형 볼텍스 계열의 통신도청위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은 마이크로파 신호, 전파 신호, 장거리 전화 및 워키토키 대화내용 등을 도청할 수 있는 대형 통신 집진기를 갖추고 있었다.
비밀정보 도청위성은 기본적으로 군사지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전파 및 레이더 전송내용을 기록해 지상국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TRW사가 개발한 르욜리트/애쿼케이드 위성은 러시아의 미사일 시험에서 나오는 신호를 집어내고, 무기개발을 감시한다. 러시아가 무기통제협정을 제대로 준수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러시아는 비밀정보를 얻기 위해서 첼리나위성을 1960년대 말부터 운용해왔다.
군사용 통신위성은 소형의 지상터미널과 통신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통신위성보다 높은 전력을 요구한다. 미국의 군사통신위성은 DSCS와 밀스타(Milstar)로 대표된다. 밀스타는 DSCS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육·해·공군 사이의 상호 통신을 제공한다. 이것은 원자폭탄이나 에너지무기(레이저)의 공격에서 발생하는 복사선에도 끄떡없을 만큼 단단하게 설계돼 있다.
러시아는 10여기의 군사통신위성(정지궤도의 라두가위성과 포토크위성, 타원궤도의 몰니야위성)을 가지고 있다. 스트렐라 계열의 전략통신위성은 최근까지 발사돼 해상과 지상군 사이의 VHF/UHF 통신에 활용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1989년부터 1994년까지 24기의 위성을 발사해 전투기나 탱크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목표물로 정확히 유도할 수 있는 무선 항법유도장치를 갖춘 위성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것이 위성위치측정시스템(Navstar GPS)이다. GPS는 지도제작, 공중 급유, 랑데부, 구조활동 등에서 사용된다. 걸프전 때는 연합군이 아무런 표지도 없는 사막을 항행할 때 위치를 알려주는 GPS를 이용해 큰 덕을 봤다. 현재는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민간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이와 유사한 글로나스시스템(Glonass)이 있으며,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미국의 위성보다 정밀도가 높다고 한다.
방위기상위성프로그램(DMSP)으로 대표되는 군사기상위성은 가시광선과 적외선 영역에서 구름 영상을 찍어 폭풍, 모래바람, 허리케인, 태풍 등의 현황을 파악한다. 이러한 정보는 군사훈련이나 실제 전쟁을 치를 때 유용하게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