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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와 해양의 상호작용 해석하는 기후학자, 기상청 기후예측과 윤원태 박사

“기상청이 장기예보 선도센터로 지정됐습니다. 이제 전세계 예측모델이 계산한 자료를 기상청이 분석해 지구 전체의 기후 변화를 그려볼수있을 거예요.”

서울에서 세계기상기구(WMO) 총회가 열리고 있던 11월 8일. 기상청 기후예측과 윤원태 박사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999년 그는 서울대 대기환경연구소와 공동으로 엘니뇨 예측시스템을 만들었다. 대기와 해양 그리고 그 사이의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물리 법칙을 단순화해 예측모델의 정확도를 높이고 계산시간도 줄였다. 그 결과 올해 6월 미국이나 영국의 예측모델이 간과한 열대 중태평양의 수온 상승 움직임을 한발 먼저 읽어냈다.

직접 만든 예측모델로 엘니뇨의 징후를 읽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걱정이 앞섰어요. 우리나라에 어떤 피해를 줄지 정확하게 예측해 국민들이 잘 대처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거든요. 시간이 지나며 엘니뇨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자 긴장감도 더했죠.”

하루하루 변하는 날씨를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기는 변덕이 심해 닥치는 대로 바람을 몰아오고 소용돌이를 일으켜 혼돈상태로 빠져든다. 그래서 현재 일기예보의 한계는 길어야 2주다. 그러나 바다는 부피와 열용량이 크기 때문에 대기처럼 호들갑스럽게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다는 과거의 기후는 물론 앞으로 다가올 변화까지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엘니뇨가 오기 몇 달 전부터 예보가 가능한 이유도 이런 바다의 우직함 때문이다.

“엘니뇨는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아프리카 남부에 가뭄이 들고 북대서양을 통과하는 허리케인 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원격상관(teleconnection) 때문이죠. 매우 강한 엘니뇨가 발생하면 열대 지방뿐만 아니라 온대 지방의 기압 배치까지 변할 수 있거든요. 이처럼 기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지구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이해한 뒤 이를 꿰뚫는 키워드를 찾아야 하죠. 바다와 대기, 지각, 빙하를 뒤지며 보물찾기하듯 실마리를 찾는 일, 비록 만만치 않지만 기후학자에게는 도전해볼 만한 과제랍니다.”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호주에서 푸르렀던 목장이 황무지로 변했다. 내리쬐는 태양아래 놓인 양들의 운명이 위태롭기만 하다.


수많은 변수로 경제를 읽는 이코노미스트, SK증권 송재혁 이코노미스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높은 기온과 함께 강풍이 몰아쳐 50여 곳에 산불이 났습니다. 인도네시아에도 몇 달째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도가 6년 만에 처음으로 밀을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나와 외신보도를 훑는 송재혁 이코노미스트의 눈빛이 예리하다. 얼마 전 그는 국제곡물시장에서 수상한 기미를 읽었다. 밀과 옥수수 같은 주요 곡물 가격이 지난 해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꾸준히 오른 것이다. 그는 첫 번째 원인으로 아시아 국가의 빠른 경제성장을 들었다. 세계 인구의 37%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는 이제 곡물을 빨아들이는‘블랙홀’이 됐다. 여기에 엘니뇨 효과도 더해졌다. 심한 가뭄으로 미국과 호주의 밀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세계 경제시장에 나타난 변화를 해석하고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는 사람이 바로송이코노미스트다. 국제곡물시장의 숨은 이야기를 해석한 그의 보고서는 기업이나 국가가 앞으로의 경기를 전망하고 적당한 대응 방안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어느날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는데 가격이 500원 올랐어요. 경제학자는 자장면 가격에 영향을 미친 모든 가능성을 분석합니다. 물가가 오르며 생산비용이 증가했거나 원재료인 밀가루 값이 뛰었을 겁니다. 초점을 후자에 맞춰 볼까요. 밀가루 값이 오른 이유로는 개발도상국의 수요 증가와 기후변화에 의한 공급 감소를들수있어요. 특히 엘니뇨로 밀생산량이 줄었고, 내년까지 가뭄이 계속된다면 한동안 밀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송 이코노미스트는‘경제의 나비효과’라는 말을 썼다. 엘니뇨 때문에 벌어지는 기후 변화는 지구 전체의 상품 가격에 영향을 준다. 과거 페루에서 엘니뇨가 발생하면 한류 어종인 엔초비가 자취를 감췄다. 엘니뇨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 덥고 척박한 환경으로 변하는 탓이다. 엔초비를 갈아 만들던 동물성사료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농부들은 콩을 심어 사료를 만들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밀 대신 콩으로 생산품종을 바꾼 농부들의 변심으로 세계는 유례없는 식량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베이징에서 생긴 나비의 날갯짓이 한달 뒤 뉴욕에 폭풍을 불러오듯 엘니뇨가 지구 반대편에 기아를 몰고 온다. 퍼즐조각을 맞추듯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수많은 변수로 경제의 흐름을 읽는 송 이코노미스트. 엘니뇨는 분명 세계 경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퍼즐 조각 하나임에 틀림없다.
 

엘니뇨와 자장면^엘니뇨로 호주에 가뭄이 들면 밀 가격이 오르고 자장면 가격도 따라 오른다. 엘니뇨라는 도미노가 세계 경제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엘니뇨 예측해 돈 버는 에너지기업 대리, 한국지역난방공사 전략경영실 김온돌

한국지역난방공사에서 일하는 김온돌 대리는 올 겨울 엘니뇨가 싫지 않은 표정이다. 난방연료를 생산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니뇨 덕분에 겨울철 기온이 올라간다면 난방을 하는데 드는 에너지가 줄어든다.

“겨울철 평균 기온이 1℃만 올라가도 가구당 절약되는 난방비가 한달에 6438원입니다. 우리 공사에서 열을 공급하는 83만여 가구가 지난 3년 간 사용한 열을 기준으로 계산한 값이에요. 우리나라 전체가구 수를 1500만이라고 하면 무려 한달 동안 965억7000만원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죠.”

실제로 미국 노던일리노이대(NIU) 데이비드 섀넌교수는 한발 앞선 엘니뇨 예측으로 큰돈을 벌었다. 1997년 그는 학교 당국에 천연가스를 변동가격으로 계약할 것을 건의했다. 엘니뇨로 겨울 기온이 올라가면 난방 수요가 줄어 천연가스 가격이 떨어질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때 평소처럼 고정가격으로 천연가스를 구입한다면 손해를 볼 게 뻔하다. 섀넌 교수의 예상은 적중했고 그해 겨울 엘니뇨로 노던일리노이대는 50만달러의 난방비를 줄일 수 있었다.

“20세기 마지막 엘니뇨가 발생했던 지난 1997~1998년 겨울을 기억하세요? IMF의 칼바람 속에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겨울이 평년보다 따뜻했다는 점이에요. 엘니뇨도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엘니뇨의 악몽 따윈 꾸지 않습니다.”

엘니뇨 스타일로 겨울옷 만드는 디자이너, (주)신원 디자이너 한감각

얼핏 패션 디자이너와 올겨울 엘니뇨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엘니뇨’라는 이름의 새로운 브랜드라도 선보이려는 걸까.

“올해 날씨, 좀 이상하죠? 가을에도 여름처럼 덥다가 갑자기 추워졌잖아요. 가을 제품들은 모두 재고처리됐어요.”

(주)신원의 디자이너 한감각 씨는 2000~2004년 9월 가을제품 판매 비중이 전체의 80% 정도였으나 올해는 65~70%에 그쳤다고 말했다. 가을의 절정인 10월에도 전체 상품의 절반 정도만 팔렸고, 오히려 겨울상품의 매출은 10% 정도 늘었다.

“의류업체는 시즌 타이밍을 어떻게 잡느냐가 매우 중요하죠. 변수는 바로 기온이에요. 기상청은 보통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순간 겨울이 시작됐다고 발표해요. 하지만 과거 판매 데이터와 기상 데이터를 분석해봤더니 겨울옷이 팔리기 시작하는 시점은 기온이 3℃일 때더군요.”

민간기상정보회사인 케이웨더가 1998년 엘니뇨시기에 뉴욕타임스의 광고면을 분석했더니 항공이나 숙박 관련 광고가 2배 이상 늘었고, 스포츠와 레저 광고도 7배 늘었다. 엘니뇨로 겨울 기온이 올라간 만큼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의류업체인 노스페이스(North Face)를 예로 들었다. 따뜻한 겨울, 등산이나 스키를 즐기는 사람을 위해 노스페이스는‘엘니뇨재킷’을 선보였다. 날씨가 좋은 날은 지퍼로 연결된 모자를 떼 가볍게 입을 수 있고, 폭설이 내릴 때는 바람 잘 통하는 여러 겹의 방수소재가 몸을 축축하지 않게 해 준다. 이름부터 엘니뇨라는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디자이너가 날씨에 민감해야 하는 이유를 이제 아시겠죠? 7~8월쯤 겨울옷을 기획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이미 라마나 알파카 같은 고급원단을 사용해 가벼우면서 보온성 좋은 옷을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엘니뇨 디자인’을 시작한 셈이죠. 또 여러 겹으로 겹쳐 입을 수 있어 활동하기 좋도록 디자인했어요. 더이상은 전략상 비밀이에요.”
 

말라리아와 기온^파키스탄 북서부에서 발생한 말라리아와 그 해 11월 기온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 겨울철 기온이 올라가면 말라리아 발병률이 치솟는다.(자료:WHO)


해외전염병까지 물샐틈 없이 막는 전문가,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 청결해

“올겨울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로 떠날 거라면 꼭 기억하세요. 올해는 엘니뇨의 해예요. 준비 없는 여행, 낭만은 짧고 고통은 길답니다.”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의 청결해 씨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2006관광동향 연차보고서를 보면 해마다 해외여행자 수가 꾸준히 늘어 2005년에는 1007만명이 우리나라를 빠져나갔다. 여행지는 전통적으로 선호하던 중국과 일본, 태국 외에도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같은 대륙으로 다양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러나 해외여행의 낭만에만 젖어있다가는 큰 코 다칠지도 모른다고 그는 경고한다. 좁아진 세계를 내집 드나들듯 할 수 있기에 전염병에 노출될 위험도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올겨울은 엘니뇨 때문에 말라리아나 뎅기열, 황열병 같은 질병을 감시하는 체계에 빨간 불이 켜졌다.

“엘니뇨와 전염병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엘니뇨 때 내리는 폭우로 수인성 전염병이 유행하고 덥고 습한 기후는 모기의 개체수를 늘리죠. 올해는 이미 인도와 필리핀, 쿠바에 뎅기열이 퍼지고 있는데, 마땅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청결해 씨는 올겨울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꼭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라리아나 황열병은 출국 전 예방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어야 한다. 뎅기열은 아직 적당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모기에 물리지 않는 수밖에 없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2006 엘니뇨 리포트
PART1 크리스마스 악몽에서 깨어나라
PART2 엘니뇨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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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신방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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