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지이론에서는 퍼지(Fuzzy)를 '애매하다'는 뜻으로 여기고 사용한다. '이론'은 명쾌한 논리로 일관돼 있는 체계다. 따라서 '퍼지이론'을 '애매한 이론'이라고 하면 말도 안될 것 같지만, '애매성에 관한 이론'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17세기 파스칼이 확률개념을 처음으로 주장했을 때 그 '우연성의 이론'이 수학체계를 형성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현재 확률은 수학이론의 중요한 한 분야다. 그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애매성은 실용성뿐만 아니라 수학이론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원래 인간의 본질은 애매한 부분이 많다. 학문이 인간성에 깊이 관련돼 있는 이상 인간사회의 현실 속에서 퍼지이론이 인정받는 것은 필연적이다. 특히 인간의 사유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인공두뇌의 연구는 퍼지이론 없이는 발전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주관성을 도입하는 퍼지이론은 새로운 과학혁명을 전개할 수 있는 매우 다이내믹한 것이다.
1965년 자데 교수가 창안
주차장에 두 대의 차가 그 사이에 겨우 한대의 차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을 띄어 놓고 있다. 만일 그 사이에 차를 집어 넣는다면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처음부터 그 속에 똑바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우선 그 가까이에 차를 대고 상황을 보면서 방법을 택한다. 한번으로 안되는 것이 보통이며 몇번씩 핸들을 돌려 후진하면서 서서히 그 자리에 넣는다.
퍼지이론은 1965년 미국 버클리대학 교수 자데(L.A. Zadeh)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그 때의 논문에서 주차하는 방법을 언어표현으로 알고리듬(Algorithm·계산순서, 算法)화시켰다.
'애매하다'는 것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또 명확하다는 것은 Yes, No로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컴퓨터의 연산은 모든 것을 객관화시키고 0 또는 1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인간의 현실 생활에서 Yes도 No도 아닌, 흑도 백도 아닌 것이 있다. '밉기도 곱기도 하다' '미워하면서도 정이 든다'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의 의사 결정은 처음부터 좁은 공간에 똑바로 차를 댈 수 없는 것처럼 좌(좋다) 우(싫다), 왔다갔다 하다가 마지막에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근대과학은 애매성을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 추진돼 왔다. 그러나 과학의 한계가 자주 거론되는 것은 인간 이성의 본질이 명백성, 즉 단순한 흑백논리만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이 과학기술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현상의 수학적인 모델이 분명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것을 할 수 없을 때는 우선 억지로라도 적당한 수학모델을 가정하고 정밀한 계산을 하면서 시행착오적으로 모델을 수정해 가야 한다. 현상의 질적인 성격을 충분히 알아도 결과적으로 흔히 문제의 본질과는 다른 대답이 나오는 것이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과학의 한계를 의식하게 되면 곧 엄밀한 수학모델을 만들 수 없는 구조를 다루는 이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언어로 표현돼야만 한다. 우리가 명백하다고 억지로 여기고 있지만 '좋다' '싫다'와 같은 언어는 저마다 주관이 개입되는 것이므로 애매한 경우가 많다. 얼마나 좋은지 싫은지 그것을 수치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종래의 컴퓨터로는 인간의 지식을 충분히 처리할 수 없다.
인간의 애매한 주관에 근거
과학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종전의 과학방법론은 '객관성'에 있었다. 과학 또는 보편 타당성이란 누구도 납득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는 전제 아래 성립돼 있었다. 그것은 곧 주관성의 배제를 뜻한다.
그러나 퍼지는 인간의 주관에 관련되는 애매함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주관성 '이 있기에 인간이고 기계와 다른 점이다. 애매한 주관성을 객관성만으로 구성되는 과학에 결부시킨 것이 퍼지이론이다.
종래 수학의 대상인 집합은 어떤 것이 그 집합에 속하느냐 아니냐의 판단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흑백 논리로 처리 가능한 것이었다. 이때 미인의 집합, 또 부자(富者)의 집합이란 있을 수 없다. 미인이나 부자는 보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지이론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수학대상이 될 집합이다. 분명히 집합으로서 성립한다. 가령 퍼지이론에서는 '큰 수의 집합'이니 '낮은 온도 범위'와 같은 집합이 성립된다.
이런 대상은 그에 관련되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돼 있는데, 이런 집합에 대응해 특수한 함수(멤버십 함수)를 살릴 수 있게 한 것이 퍼지이론이다. 그러나 실지로는 주관 경험 등이 수량화돼 있는 것이므로 멋대로 주관이 반영, 또는 개입돼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으로서의 주관을 살리는 것을 모색한다.
0과 1만으로 설명 못한것
퍼지이론의 수학적 근거는 퍼지축도(길이 넓이 부피 무게 등), 퍼지집합, 퍼지논리로 구성돼 있다. 종래의 집합은 가령 1보다 큰 자연수의 집합과 같이, 어떤 수에 대해 그것이 그 집합에 소속하는지 않는지 분명했다.
S={n:n>;1, n∈정수}
0과 1만 있는 것이 종전의 집합이며, 또 어떤 집합에 소속하는 법칙은 0과 1중 하나의 수치로 나타내는 방법이 있다. 완전히 소속할 때는 1, 완전히 소속하지 않을 때는 0, 소속하는 율(率)로서 그 중간의 값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곧 퍼지이론의 기본이다.
그 발상법은 시험 성적을 0-100까지의 점수로 주는 것, 또 확률과 같이 0%에서 100%로 나타내는 것과도 같다. 그 소박한 생각이 퍼지이론의 근본이다. 이렇게 보면 0 아니면 1, all or nothing의 발상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집합 U를 돌쇠 길동 몽룡 춘향 심청 홍련이라는 사람이라 가정하자. 이때 전체 집합은
U={돌쇠 길동 몽룡 춘향 심청 홍련}
이다. 남자의 집합 M={돌쇠 길동 몽룡}이 분명하다.
그런데 미인의 집합이라면 그리 간단치 않다. 가령 춘향이는 분명히 미인이지만 심청은 중간정도, 또 홍련은 겨우 밉상이 아니라고 할 정도다. 이것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춘향은 분명히 미인인데, 심청은 그저 그런 정도로 정수로는 0.6, 홍련은 겨우 밉상이 아닌 정도로 0.2다.
멤버십 함수와 퍼지집합의 보기
전체집합 U의 퍼지집합 A에 대해서 A의 멤버십함수 ${U}_{A}$가 있다. ${U}_{A}$는 U의 각 요소인 0과 1사이의 값을 그 소속 비율에 따라 정한 함수다.
${U}_{A}$:U→[0, 1]
앞서 보기로 든다면
U미인(춘향)=1, U미인(심청)=0.6, U미인(홍련)=0.2
이때 의문이 생긴다. 멤버십함수 ${U}_{A}$의 값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퍼지집합을 사용하고자 하는 본인이 그 자신의 주관에 따라 정하게 된다.
전자제품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사용자로 전제할 때는 앙케이트 또는 여론조사를 해서 수치를 정해도 좋다. 하지만 기본적인 입장은 사용자 본인의 의견이다. 멤버십함수를 객관화 시키는 방법은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애매함(Fuzzy)일 수 있는 이유다.
날씨에 대해 춥다, 따뜻하다, 덥다로 표현할 수 있다. 따뜻하다는 느낌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이 기온(℃)을 객관화시키면
따뜻하다={X:15≤X≦28}
춥다={X:X<;15}
덥다={X:X>;28}
와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이때 0과 1밖에 없는 1차 함수로 생각한다면
이 되고 이 범위는
이 된다. 직사각형이다.
14℃일 때 따뜻하지 않던 것이 1℃ 높아지면서 15℃가 돼 갑자기 따뜻해진다. 그러나 28℃에서 따뜻했던 것이 1℃ 높아졌다고 해서 급격히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주관에서 보면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따뜻한 기온을 퍼지집합으로 표현하면 25℃일 때는 따뜻하게 느낀다. 즉 ${U}_{A}$(25℃)=1, 15℃일 때는 0.5, 즉 ${U}_{A}$ (15℃)=0.5가 된다. 단 1℃의 차이(경계선의 선은 0.1℃의 차이가 될 수도 있다)로 급격히 1에서 0으로 변하는 부자연스러움은 극복된다. 이 집합은 곡선이 된다.
아름답다, 따뜻하다, 기분좋다… 등은 모두 주관적이며 흑백논리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퍼지수학은 이런 문제에 적절히 이용된다.
퍼지이론의 응용
1980년대에 퍼지제어(Control)의 기술이 현실화됐다. 맨처음 시멘트를 만들던 과정에서 이용됐다. 석회 모래 점토 등을 혼합해 시멘트를 만들었는데, 이 자동화는 균질적인 것이어서 미묘한 점을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퍼지이론으로 성공하게 된 것이다.
가령 규격화된 식당 음식은 항상 같은 맛이며 미묘한 맛이 나지 않는다. 진짜 요리맛은 재료 양념 등을 사용하는 데서 나오는데, 이때 재료 양념의 배합은 단순한 산술적인 배합이 아니다 '손 끝에서 맛이 난다'는 말은 마지막 단계에서 요리사의 주관 육감 같은 것이 작용한다는 말이다.
시멘트의 혼합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시멘트를 섞는 과정에도 그것을 사용하는 대상에 따라 요리사의 솜씨같은 육감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에 와서 퍼지의 응용은 눈부시다. 샤워기 에어컨 세탁기 청소기 등에 퍼지가 등장한지 오래다. 이들은 일률적으로 기계를 움직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강약을 적절히 조절해가며 움직인다.
제어 이외의 분야에서도 패턴인식(법칙성, 특성의 파악), 음성의 판별, 정보검색, 고장의료진단, 인공지능 등이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Yes, No(0, 1)로만 양분하는 판단이 아니라 그 중간에 있는 다양한 항목을 선택하면서 일을 진행한다.
G.E.(General Electric)에서는 기관차의 고장 진단에도 퍼지이론을 이용해서 성공했다. 기관차에 고장이 생길 때는 어느 부속품 하나만에 의한 것보다 다른 부분과의 관련에서 생길 때가 많다.
같은 이유로 인간의 의료 진단에서도 퍼지이론이 더욱 효과적이다. 음식점을 경영하는 회사는 요일과 일기에 따라 메뉴를 결정하는데, 어느 요리를 어느 정도로 준비해야 하는가도 퍼지이론으로 결정한다.
현재 이용되는 퍼지이론의 응용 범위는 대부분 시스템공학분야에서 비롯됐다. 기계 만능의 미신이 무너지고 인간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 사회와 과학의 접점이 많아지고 본래 인간이 지니는 비기계적인 특성이 오히려 새로운 과학의 길을 열게 된 것이다.
수학의 흐름에서 본다면 60년대까지만 해도 집합과 조작(Cooperation) 중심의 구조주의적인 수학이었는데, 차를 퍼지 프랙탈 카오스와 같은 현실중심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컴퓨터를 이용함으로써 다양한 변화를 쉽게 파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노벨 경제학상은 시카고 대학 베이커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의 경제이론은 케인스나 사무엘슨 경제학처럼 대국적인 정책을 위한 경제학이 아니다. 낱낱이 사회구성원의 심리를 대상으로 삼는다. 수학에도 경제학 사회학의 경우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한때 과학기술의 일반적 경향은 기계만능주의였다. 인간이 기계화되고 나아가서 인간이 기계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기계적이란 On, Off 또는 Yes, No의 흑백논리에 따른 것이다. 사회의 일반적 경향이 인간중심이 되면 오히려 애매하고 주관적인 면이 중시된다.
퍼지이론의 기본입장과 결과
현재 퍼지이론의 응용은 크게 3가지로 분류돼 있다.
(1) 제어(Control) 및 진단에 관한 퍼지, 숙련 시스템(Fuzzy Expert System).
(2) 제 5세대 컴퓨터에 이어 제 6세대 컴퓨터 후보로서의 퍼지 컴퓨터.
(3) 패턴 인식과 자연 언어처리를 중심으로 하는 퍼지정보처리.
퍼지제어는 숙련 기술자의 경험과 지식을 퍼지논리로 표현하고 계산기에 입력해 제어에 이용한다. 실제로 무인전차의 자동기계와 가전제품에 이용한다.
퍼지컴퓨터는 뉴로 컴퓨터(Neuro Computer)와 함께 제 6세대 컴퓨터다. 지금까지의 컴퓨터 논리 연산은 흑백 (1, 0) 논리 연산이 기본으로 Yes No And Not Or 등을 결합해 최고 17개 정도의 연산이 가능하다.
한편 퍼지논리의 연산은 Yes(0)와 No(1)사이에 얼마든지 많은 종류의 값이 있을 수 있다. 실질적으로는 연산 종류가 무한히 많다. 따라서 이 기계(Hard)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곤란한 작업이다.
지금까지의 연산에서는 2항 계산(Binary Operation)으로 그쳤으나 퍼지이론의 연산에서는 2항계산이 보다 훨씬 복잡해진다. 퍼지 컴퓨터에서는 이 두가지 장치를 함께 작동해야 한다.
대뇌 생리학에서는 좌뇌와 우뇌의 역할이 다름이 입증돼 있다. 퍼지 컴퓨터에서는 이를테면 좌·우의 뇌를 연결시키는 것과 같은 기계가 되는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의 언어가 실제 생활에 이용되고 자연 언어가 됨으로 엄청난 문제가 야기된 것이다. 요컨대 퍼지 컴퓨터가 목표로 하는 것은 인간과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지능을 갖는 컴퓨터다. 설령 그 일부분이 고장이 나도 전체로서는 별로 큰 지장이 없도록 시스템 전체로서 고장을 최소화시킨 것이 퍼지컴퓨터다.
속담에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기계는 부분이 고장나면 그만이다. 그런 일은 컴퓨터가 하도록 한다. 종전의 컴퓨터는 일부가 고장나거나 입력에 다소 잘못이 있어도 엉뚱한 답을 내는데, 퍼지 컴퓨터는 그것을 보안하도록 돼 있다.
퍼지 정보처리에서는 자연 언어가 기본이다. 단순한 수치적인 것보다 효율이 훨씬 좋다. 애매한 키워드를 사용해도 바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소설, 뉴스의 번역기계, 동시 통역, 문장요약에도 이용될 수 있다.
무엇이든 수학적인 모델화가 일단 성공하면 물리 화학 생물 생화학 등 모든 과학 분야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중요한 수학 원리는 철학적이다. 고전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비약할 때 '불확정성 원리'의 철학이 제기됐다.
고전 논리(Yes, No의 2차적인 것)에서 퍼지를 전개하면서 퍼지철학이 대두될 것이 기대된다. 특히 인식론의 애매성 문제가 반영될 것이다.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퍼지이론으로 조정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기본문제가 재검토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