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9월 마에다건설 판타지영업부에 두 번째 제안서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은하철도999의 기차역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이와사카 테루유키 박사, 노나카 모모코, 우에다 야스히로 등 판타지영업부 직원들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신비한 여인 메텔과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주인공 철이를 태우고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를 외치며 우주로 떠나는 은하철도의 기차역을 어떻게 만든다는 것인가.
마지막 교각 높이는 99.9m
제안한 쪽에서 기차는 만들어 온다고 했으니까 결국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열차 선로와 교각이 핵심이었다. 판타지영업부 직원들은 애니메이션을 돌려 보며 힌트를 찾기 시작했다. 마징가Z와 달리 이번에는 설계도가 없어서 애니메이션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직원들은 TV 화면에 각도기를 대 가며 선로의 각도가 20도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차역의 마지막 교각 높이는 어디에도 자료가 없어 판타지영업부에서 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은하철도 999를 상징하는 99.9m로 정했다.
선로 각도와 마지막 교각의 높이에서 총 길이가 260m로 나왔다. 교각은 모두 13개였다. 교각과 교각 사이는 20m로 정해졌다. 은하철도 999가 모델로 삼은 일본의 옛날 열차도 차량 하나의 길이가 약 20m였다. 무게는 215톤, 기관차의 길이는 27m였다.
보통 기차 다리는 교각과 교각 사이에 선로를 지탱하는 받침대가 있다. 그러나 판타지영업부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것처럼 선로만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현수교의 원리를 응용했다. 양쪽에서 줄을 잡아당겨 다리를 지탱하는 현수교처럼 은하철도의 선로도 양쪽에서 잡아당겨 지탱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은하철도 999의 전체 선로는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한 줄로 연결된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형태의 선로를 유지하기 위해 판타지영업부는 ‘파도를 타는’ 새로운 선로도 만들었다. 교각과 교각 사이의 선로를 약간 봉긋하게 만드는 것이다. 완전히 직선으로 만들면 열차의 무게 때문에 선로가 내려앉는다. 그러나 위로 약간 봉긋하게 만들면 실제 열차가 달릴 때 무게 때문에 거의 직선으로 내려앉는다.
애니메이션을 보면 은하철도 999는 선로 중간에서 떠서 우주로 날아가기 때문에 나머지 선로나 교각은 약하게 만들어도 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은하철도가 돌아올 때는 거꾸로 마지막 선로부터 착륙하기 때문에 역시 마지막 교각까지 열차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설계했다.
흔들리는 추로 지진을 이긴다
가장 큰 문제는 교각이 너무 가늘어 열차 무게를 지탱한다고 해도 바람이나 진동을 견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는 얇은 교각이 샤프심처럼 언제 뚝 부러질지 모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타지영업부는 만화영화에서 교각 윗부분에 달려 있는 타원 모양의 장식물을 이용했다. 이 장식물 안에 흔들리는 추를 넣은 것이다. 이 추는 교각이 흔들리는 반대방향으로 흔들려 균형을 맞춰준다. 이런 기술을 ‘액티브 댐퍼’(active damper)라고 하며 고층 건물의 내진 설계에 자주 쓰인다.
교각이 높을수록 왕복운동을 천천히 한다. 가장 높은 교각이 1회에 8초였다. 다른 교각에서 추가 왕복운동하는 시간도 모두 계산했다. 여기에 흔들리는 폭을 고려해 추의 무게를 결정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원작을 그린 만화가도 이 아이디어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있었다. 지진이 나서 전기가 끊어지면 동력을 이용해 충격을 상쇄시키는 액티브 댐퍼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판타지영업부는 마지막 7개의 교각에는 충격을 상쇄시키지 않고 흡수만 하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패시브 댐퍼’(passive damper)를 쓰고, 나머지 교각은 흔들림이 적어 전기가 끊어질 위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액티브 댐퍼를 사용했다.
건설비용은 얼마나 들까. 땅값은 빼고 모두 37억엔(약 307억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건설기간은 3년3개월로 예상됐다. 건설 장소는 원작에서 언급이 없었지만 고층건물이 즐비한 곳을 지나치는 장면을 고려할 때 도쿄 신주쿠(新宿)지역이 가장 적당해 보였다. 가장 높은 교각까지 무거운 자재를 운반하는 것이 공사에서 어려운 기술로 꼽혔다. 고층 크레인을 써야 한다.
도쿄 마에다건설 본사에서 만난 이와사카 박사는 “은하철도 999의 기차역이나 마징가Z 지하기지 프로젝트는 건설업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건설업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꿈이나 목표가 없으면 실제 기술도 발전하지 못한다”며 “일본에서 두발 로봇이 발전한 것도 바로 아톰의 영향”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과학 타고 지구 한 바퀴 현대 문명을 낳은 철도
1. 세계로 가는 철도
다시 열린 철의 실크로드
2. 모양은 같아도 기술은 진화한다
우주로 날아가는 999 기차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