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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의 과학기술 교류, 모험연구 장려 앞장선다”



‘21세기 정보산업의 시대’, ‘과학기술 최첨단 수준으로’, ‘인재가 많아야 나라가 흥한다’. 언뜻 우리나라에서 만든 표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북한에서 수많은 인원이 펼친 카드섹션의 내용이다. 북한에서도 정보산업, 과학기술, 인재를 강조한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평양 릉라도 5월 1일 경기장에서 이 카드섹션을 배경으로 집단 체조공연 ‘아리랑’을 관람했는데, 카드섹션의 내용이 평양과학기술대를 염두에 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지난 9월 중순 평양과기대 ‘1단계 준공식’에 참석하느라 북한에 다녀온 한국연구재단 박찬모 이사장은 남북한 합작 대학인 평양과기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평양과기대 설립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평양과기대 준공을 도우며 지난 10년 가까이 남북한 과학기술 교류에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포스텍 총장, 대통령 과학기술특별보좌관을 역임한 뒤 지난 6월 26일 새롭게 출범한 한국연구재단의 초대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11월 13일 한국연구재단 서울 청사 이사장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북한과의 과학기술 교류, 연구재단의 청사진에 대해 들었다.

평양과기대, 내년 4월 대학원 중심 국제대학으로 출범

“통일되기 전 남북한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정보기술(IT)을 포함한 과학기술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박 이사장은 북한과의 IT 교류에 관심을 갖고 노력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990년 중국 연변대에서 북한과학원의 려철기 교수를 만나면서 북한의 IT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뒤 2000년 평양 김책공업종합대와 평양정보센터에서 특강을 했고 7년간 평양정보센터와 공동연구를 추진했다.

그가 평양과기대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2001년 연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석하러 갔다가 연변과학기술대 김진경 총장을 만난 일이다. 당시 북한 당국은 연변과기대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걸 보고 평양에 연변과기대와 같은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할 뜻을 내비쳤는데, 이에 김 총장은 ‘평양과기대 설립 추진 제안서’를 준비 중이었다. 그는 김 총장의 요청으로 제안서에서 IT와 관련된 내용을 밤새도록 꼼꼼히 검토했고 평양과기대 설립을 함께 추진해 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그해에 북측으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았다.



2001년 남북 정부의 승인을 받은 평양과기대는 2004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건축공사를 시작했고 착공 5년 만에 ‘1단계 준공식’을 갖게 됐다. 평양과기대는 평양 시내에서 남쪽 외곽으로 평양개성고속도로 변에 위치하며, 100만m2 대지에 본관, 학사동, 기숙사, 연구개발(R&D)센터, 국제 수준의 화상회의실과 영상강의실 등이 들어서 있다. 내년 4월 1일에는 대학원(석·박사과정)만 마련한 연구중심대학으로 출범할 예정이다.

박 이사장은 “북한 당국이 김책공대, 김일성종합대 등을 졸업한 최고 엘리트들을 평양과기대 대학원생으로 이미 선발한 것으로 안다”며 “내년 4월 정보통신공학부, 산업경영학부, 농업식품생명공학부에 50명씩 총 150명의 학생을 입학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수진은 한국인, 외국 국적의 한국인, 외국인 교수를 골고루 영입해 50명으로 구성할 예정이고 모든 강의는 영어로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북한의 우수한 과학자가 국제무대에 나와 한국을 포함한 세계 석학들과 교류하고 공동연구하며 국제화의 필요성을 몸소 체험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는 또 “평양과기대는 일종의 특구 형태로 운영되는데, 대학 안에 ‘지식산업복합단지’를 조성해 북한과의 공동연구를 원하는 국내 및 해외 기업체와 연구소를 적극 유치할 계획”이라며 “이곳에 입주하는 기업과 연구소가 지불하는 비용은 전액 평양과기대 운영비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평양과기대가 남북한과학기술 교류를 체계적으로 진행할 교두보이자 남북 과학자 간 교류협력의 허브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패 두려워 말고 창의적 모험연구에 뛰어들라”

“21세기 융·복합 시대에 학문 간의 융합, 특히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간의 융합 연구를 지원하는 데 힘써 미래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뜻입니다.”
박 이사장은 과학재단, 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통합돼 한국연구재단이 탄생한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구재단은 기술 분야 간의 융합 연구에 대한 지원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정보기술 등을 융합해 고위험·고수익형 융합원천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추진하는 ‘미래유망파이오니어사업’의 예산을 지난해 60억 원에서 올해 120억 원으로 2배 늘렸다.

연구재단은 지난 10월 15일 발표한 ‘기초·원천연구 선진화 방안’에 따라 3가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즉 창의적, 도전적인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고,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연구행정에 대한 부담을 대폭 줄이며, ‘R&D성과혁신센터’를 설치해 연구자들의 특허와 같은 성과물을 보호·확산시킬 계획이다.

특히 그는 기초연구사업에서 처음 시도하는 ‘모험연구사업’과 ‘성실실패제도’를 강조했다. “모험연구는 국가적,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막대할 것으로 예상돼 국가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성실한 연구자의 실패를 허용하고 격려하는, 즉 성실실패를 인정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며, 일률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지적 탁월성과 영향력을 판단하는 새로운 평가방식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모험연구는 위험 부담이 크지만 혁신적인 연구가 높은 성과로 이어지는 과제로,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발상에 대한 사전연구와 기존 연구주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및 응용 연구를 의미한다. 기존의 과학, 공학 이론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안케 하는 아이디어, 발견과 수단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는 “연구자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해 모험연구에 마음껏 도전하다 보면 훌륭한 연구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이런 흐름이 노벨상 수상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노벨상 자체가 연구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며 “노벨상은 수십 년 전의 연구업적을 평가받는 상이기 때문에 신진 스타 과학자를 적극 발굴하고 육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청소년에게도 너무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고 장기적으로 진로를 결정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넓은 시야로 세계를 보고 의학 분야를 뛰어넘어 IT와 융합된 분야도 주목하라”며 “어려서부터 모험심을 갖고 대담하게 생활하라”고 말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꿈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면 과학동아 독자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지 않을까.

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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