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커티!나를 당장 순간이동시켜 줘!”
낯선 행성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스타트렉’의 등장인물이 위험에 처하면 아무 때나 모선인 엔터프라이즈 호에다 대고 구조요청을 하는 방법이다.
보통 순간이동장치로 알려져 있는 전송장치(transporter)는 원작에는 없던 설정이다. 제작진은 매번 촬영장 세트를 바꿔가며 우주선이 행성에 착륙하는 장면을 찍기에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우주선의 이착륙장면이 스토리 전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주선에서 행성표면으로, 행성표면에서 우주선으로 옮겨 타는 일을 간단히 처리하는 방법으로 스타트렉에 전송장치를 등장시킨 것이다.
순간이동장치의 아이디어는 과학적 가능성을 따지는 논쟁을 일으켰다. 과학자들은 순간이동과 비슷한 양자원격이동을 이론으로 제시했고 간단한 실험에 성공했다. 결국 스타트렉의 순간이동장치가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셈이다.
순간이동의 순간은 동시가 아니다
순간이동이라고 하면 흔히 한 곳(A)에 있던 물체가 사라지고 멀리 떨어진 곳(B)에 바로 그 물체가 나타나는 상황을 떠올린다. 공간을 연속적으로 통과하지 않고, 한 곳에서 사라지고 다른 곳에서 나타날 수 있을까. 물체가 A에서 사라지는 ‘동시’에 B에 나타난다고 하면 질량보존의 법칙은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을 감안하면 그렇지 않다. 한 관측자가 ‘동시’라고 생각한 것이 다른 관측자가 보기에 동시가 아닐 수 있다. 시간 t=0일 때 x공간축 위의 x=0인 A에서 물체가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x=L인 B지점에서 물체가 나타난다고 하자. 이 상황을 A에서 B로 움직이는 우주선에서 보면 A에서 물체가 사라지기 전에 그 물체가 이미 B에 있던 것으로 관찰된다. 또 B에서 A로 향하는 우주선에서 보면 A에서 물체가 사라지고 나서 한참 후에야 B에 물체가 나타난다. 그러니 한 좌표계(관성좌표계)에서 질량보존의 법칙이 성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좌표계에서는 질량보존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 또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 지점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은 인과관계가 없다.
전송장치를 이용한 순간이동의 순간은 동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짧은 시간을 뜻한다. 스타트렉의 전송장치는 최대 전송거리가 4만km라고 한다. 빛의 속도(초속 30만km)로 전송한다면 0.13초가 걸리니 이 정도면 순간, 즉 눈 깜빡할 정도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 읽는데만 3억년 걸려
우주선의 물체를 형체 그대로 이렇게 빨리 행성의 표면에 보내는 일이 가능할까. 우주선 안에 가만히 있는 물체를 엄청난 힘으로 가속시키고, 다시 행성에 가만히 내려놓기 위해서 엄청난 힘으로 감속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물체가 받는 가속도는 지구 중력가속도(g)의 수천만배를 넘게 된다. 이 정도의 가속도를 내는 힘을 받으면 아마 형체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1kg을 전송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만 해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몇십개로도 부족할 것이다.
스타트렉의 순간이동장치는 물체를 물질에 형상정보가 포함된 형태로 전송한다. 철로 만든 칼(물체)을 예로 들면 물질은 철이고, 형상정보는 칼 모양이 된다. 물체를 형상정보와 물질로 분해해 빛의 속도에 가깝게 보낼 수 있을까. 형상정보는 당연히 광정보로 바꿔 보낼 수 있고, 물질도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식(E=mc²)에 의해 빛에너지로 바꿔 보낼 수 있다. 그렇지만 물질까지 빛으로 바꾸면 그 에너지가 너무 크다. 50kg의 물질은 1메가톤급 수소폭탄 1000개가 넘는 에너지로 바뀐다. 이보다는 그냥 물질로 보내는 편이 훨씬 더 다루기 쉽다. 하지만 물질도 원자폭탄 몇십개의 에너지로 가속·감속을 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형상정보는 어떤가. 우선 형상정보를 읽어들여야 하는데, 그 정보량이 어마어마하다. 몸무게 100kg정도의 사람은 원자 수만 따지더라도 약 ${10}^{28}$개다. 이만큼 많은 원자의 정보를 모두 제대로 측정하고 전송·재생하려면, 원자 하나하나의 위치, 에너지 상태 등을 고려해 1GB 하드디스크 ${10}^{22}$개가 필요하다. 테라비트급 전송장치로 이만큼의 정보를 보내려면 ${10}^{16}$초, 즉 3억년 가량 걸린다.
1997년 최초의 양자원격전송 실험 성공
또 형상정보를 읽어들일 때 측정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양자물리학에 나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스타트렉 제작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젠베르크 보정기’라는 물리적으로 실현불가능한 장치를 고안해냈다. 스타트렉의 순간이동장치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
‘양자원격전송’(quantum teleportation)은 스타트렉의 순간이동과 개념적으로 유사하다. 1993년 미국 IBM의 찰스 베넷을 비롯한 6명의 학자가 양자원격전송을 이론적으로 제안했다. 이 논문에 대한 첫반응은 스타트렉류의 SF쯤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의 근본을 연구하던 사람들은 이 제안의 중요성을 알아채고 실험에 들어갔다.
마침내 1997년 12월 ‘네이처’에는 오스트리아의 안톤 짜일링거 교수 그룹이 최초의 양자원격전송 실험에 성공한 논문이 실렸고, 거의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 프란체스코 디마티니 교수팀의 실험은 ‘피지컬 리뷰A’에 실렸다. 지난 2월에는 영국의 새뮤얼 브라운스타인 교수팀이 양자원격복사 실험에 관한 논문을 ‘피지컬리뷰레터’에 실었다. 이들 논문은 전부 광자를 전송하고 복사하는 실험에 대한 내용이었다.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모든 물체는 양자상태로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물체를 전송하려면 물질과 함께 양자상태를 제대로 전송하면 된다. 고전물리학에서 물체의 상태를 측정하는 일은 이미 정해진 물리량을 단지 읽어내는 역할일 뿐이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에서는 물리량이 측정될 때 정해진다. 양자상태는 물리량의 값이 어떻게 정해질지 확률을 줄 뿐이다. 스타트렉의 순간이동장치로 물체의 양자상태를 측정하면, 측정 전후의 양자상태는 달라진다. 설령 순간이동장치로 어떤 물체를 전송한다 해도 이 물체는 더 이상 전송 전의 상태가 아니다. 하이젠베르크 보정기가 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럼 양자상태를 읽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전송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 양자원격전송이다.
디지털정보의 기본단위가 0이나 1의 비트(이진수)인 데에 비해, 양자정보과학에서 다루는 가장 간단한 계는 큐비트(qubit) 또는 양자비트(quantum bit)다. 양자비트는 0이나 1뿐 아니라 0과 1이 중첩된 상태도 나타낼 수 있다. 북극을 1, 남극을 0이라고 한다면, 지구 표면의 어느 점이라도 0과 1이 중첩된 상태로 표현할 수 있다. 동경 127°, 북위 37.5°에 있는 서울은 1에 가깝지만 0의 성질을 어느 정도 가진 양자상태다. 북극 방향으로 측정하면 1이 나올 확률이 매우 높지만, 0이 나올 확률도 어느 정도 있다.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이심전심
양자원격전송은 스타트렉식 순간이동으로 전송할 수 없는 양자비트를 단 2비트로 전송할 수 있다. 여기에는 ‘양자얽힘’(entanglement)이 필요하다. 양자얽힘은 양자물리학적인 상관관계에 대해 슈뢰딩거가 붙인 이름으로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수많은 천재를 괴롭힌 양자물리학의 핵심이다. 양자물리학의 ‘확률놀음’을 싫어했던 아인슈타인은 1935년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양자물리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 저자 세 사람의 이름 첫자를 딴 이른바 EPR쌍이 가장 유명한 양자얽힘이다.
이 양자얽힘의 특성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개체 사이에 뭔가 통하는 게 있다는 말이다. 양자비트 a와 b가 서로 얽혀 EPR쌍 상태에 있다고 하자. 예를 들어 a가 측정 축과 같은 방향으로 측정되면 b도 측정 축과 같은 방향으로 측정되고, a가 반대방향이면 b도 반대방향으로 측정된다. 마치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갑돌이에게 “너 빨간색 좋아해?”하고 물어 “예”라는 답을 얻으면, 갑순이에게도 같은 질문을 할 때 “예”라는 답이 나온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떤 질문이라도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이 나온다. 물론 어떤 답이 나올지는 여전히 확률에 달려있다.
갑돌이가 어떤 색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갑순이도 그 색을 좋아한다고 답한다니? 이건 정보 전달이 빛보다 빠르다는 말인가.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어떤 것도, 정보까지도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문제를 제기한 부분이다. 1964년 벨이 이런 의문을 검증할 수 있는 이론을 ‘벨의 부등식’이라는 형태로 만들었고, 1980년대 프랑스의 알랭 아스뻬가 이와 관련된 실험을 통해 양자물리학이 옳다는 사실을 밝혔다.
마음은 아무도 읽을 수 없다
양자원격전송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a와 b의 EPR쌍을 사용해 양자상태를 모르는 양자비트 x를 전송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EPR쌍 중의 하나(a)는 x가 있는 A지점에, 다른 하나(b)는 x를 보내고자 하는 B지점에 둔다. A와 B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a와 b 사이의 얽힘 상태만 유지되면 양자원격전송이 이뤄진다. A지점에서 양자비트 x와 a에 대해 ‘벨 측정’을 한다. 이 측정에서 얻은 2비트의 고전정보(디지털정보)를 B지점으로 전송한다. B지점에서 이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히 양자 조작하면 원래의 양자비트 x를 복원해낼 수 있다. 양자비트 x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원격 이동한 것이다(더 자세한 사항은 양자원격전송의 비유를 보라).
양자원격전송은 마지막 단계에서 고전정보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빛보다 빨리 이뤄질 수는 없다. 물론 빛의 속도에 가깝게 전송할 수는 있다. 양자얽힘만 전달된다면 거리에 관계없이 가능하다는 점이, 전송거리가 4만km로 제한되는 스타트렉의 순간이동장치보다 낫다. 또 고전정보는 팩스를 이용하는 것처럼 복사해 전달하기 때문에 원본 정보를 저장했다가 또 복사할 수 있지만, 양자정보는 복사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양자원격전송은 복사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전송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을 양자원격전송하는데는 여러 기술적 난점이 있다. 양자비트 하나를 전송하는 일에 비해 ${10}^{28}$개나 되는 원자를 양자원격전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자얽힘 상태에 있는 쌍둥이를 이만큼 만들어야 하고, 엄청난 고전정보를 오차 없이 전송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의 기술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언젠가 아주 간단한 분자 정도는 양자원격전송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술적인 난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스타트렉에서 순간이동 대신 양자원격전송을 채택할지는 모를 일이다. 2004년 개봉된 영화 ‘타임라인’에서는 양자원격전송으로 사람을 전송한다. 그래도 물체가 아닌 사람을 전송할 때 사람의 마음이나 영혼도 전송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고전정보에는 물체의 정보조차도 충실히 담을 수 없지만, 양자정보에는 물체의 정보를 충실히 담을 수 있다. 만일 양자정보에 사람의 마음까지도 담을 수 있다면, 다행인 점이 있다. 양자원격전송 때 사람 마음이 양자정보의 형태로 전송된다 해도 여전히 그 마음을 아무도 읽거나 복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양자정보는 읽거나 복사할 수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