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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첨단과학에 코드 맞춘 SF '스타트렉'

과학자보다 먼저 블랙홀과 나노로봇 전파

어떤 TV연속극의 팬들이 수십만통의 편지를 정부에 보낸 일이 있었다면? 요즘처럼 간편하게 e메일이나 온라인 댓글을 작성하는 얘기가 아니다. 30년 전 미국에서 최초의 우주왕복선이 제작됐을 때 SF시리즈 ‘스타트렉’의 광적인 팬들이 워싱턴의 미국 행정부로 40만통에 가까운 편지를 보낸 일을 말한다.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우주왕복선의 이름을 ‘엔터프라이즈’호로 붙이도록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압력을 넣으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 호는 스타트렉의 주인공격인 우주선이다. 결국 최초의 우주왕복선은 원래 예정된 ‘컨스티튜션’(Constitution)이라는 이름 대신 ‘엔터프라이즈’로 명명됐다.

이렇듯 열성적인 ‘스타트렉’ 팬들은 이미 고유명사가 된지 오래다. 영어사전에도 올라간 ‘트레키’(trekkie)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정작 골수팬들은 이 단어에 냉소적인 어감이 담겼다고 해 ‘트레커’(trekker)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23세기 엔터프라이즈 호의 모험담

‘스타트렉’은 진 로덴버리가 기획한 미국의 SF TV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6년 9월 첫편인 ‘맨 트랩’(The Man Trap)이 미국 NBC 방송을 타면서 시작됐다. 원래 시험 프로그램은 1964년에 제작된 ‘우리’(The Cage)였으나 방송국에서 퇴짜를 놓는 바람에 창고에서 계속 잠자다가 1988년에야 뒤늦게 전파를 타는 기회를 얻었다.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 ‘스타트렉’은 개척정신과 미래의 진취성을 대변하는 신화처럼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탄생부터가 미국식 모험정신의 산물이라고 봐도 좋다. SF시리즈를 영상 매체에 등장시킨 일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모험이었다.

그러나 ‘스타트렉’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그 뒤 수십년간 TV시리즈는 기본이고 극장용 영화시리즈, 만화영화시리즈, 그리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SF작가들이 모두 참여한 소설시리즈로 이어져 현재까지 미국은 물론, 전 지구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기본 설정은 2266년부터 5년간 먼 우주로 탐사를 떠나는 우주선 엔터프라이즈 호와 승무원들의 모험담이다. 특히 외계인 스폭 박사와 우주선 엔터프라이즈 호의 인기는 대단했다.

1966년 9월에 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는 1969년 6월까지 모두 78편의 에피소드가 NBC를 통해 전파를 탔다. 이 최초의 ‘스타트렉’이 3년 만에 끝난 이유는 제작비 부담이 컸기 때문이었다. 미리 종영을 예고했다가 극성맞은 팬들의 항의전화가 끊이지 않는 바람에 1차 시도는 실패했고 방송국은 결국 기습적으로 마지막 회를 방영하는 게릴라식 전술로 끝을 맺었다.

오리지널 시리즈가 종영된 뒤 1973년부터 2년 동안 만화영화로 각색된 시리즈가 선을 보였고 원작도 각지의 지방방송을 통해 꾸준히 재방영됐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스타트렉의 팬들은 계속 늘어났는데, 1987년에 새롭게 시작한 ‘스타트렉:그 다음 세대’ 시리즈는 그런 추세를 더욱 가속시켰다. 두번째 시리즈의 설정은 전작에서 70년 뒤인 24세기가 배경. 엔터프라이즈 호도 새로운 모습으로 재등장하고 승무원도 새로운 얼굴로 물갈이됐다. 새 시리즈는 1994년까지 장장 7년이나 이어지면서 많은 트레키가 나타나는 원동력이 됐다.
 

1966년 9월 첫 방영된 뒤 수많은 후속편을 쏟아낸 '스타트렉'의 출연진들. 특히 스타트렉 시리즈 중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두번째 시리즈 '그 다음 세대'에서 엔터프라이즈 호를 지휘한 대머리 선장 피카드가 돋보인다.


11번째 극장판 2008년 개봉 예정

‘스타트렉:딥 스페이스 나인’(Star Trek: Deep Space Nine)은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이어진 세번째 스타트렉 시리즈다. 첫번째 외전이라 할 수 있으며, 우주선이 아니라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제작연대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발달된 특수효과(SFX)기술에 힘입어 무척 화려한 그림을 보여줬다.

‘스타트렉: 보이저’(Star Trek: Voyager)는 1995년부터 시작됐으며 기존의 스타트렉 배경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을 설정해 별개의 이야기를 전개했다. 보이저라는 우주선이 까마득한 우주 저편으로 날아가 버리는 사고에 휘말린 뒤 다시 지구로 귀환하기까지의 여정이 펼쳐지며 2001년까지 방송됐다. 또 ‘스타트렉:엔터프라이즈’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방송된 가장 최근의 TV시리즈다. 설정 상으로는 가장 앞선 시대 배경을 채택하고 있다.

한편 1979년 처음 발표된 극장판은 수많은 트레키의 호응에 힘입어 TV와는 별도로 ‘007’시리즈처럼 계속 제작되고 있다. 지난 2002년에 나온 ‘스타트렉:네메시스’가 10번째로 만들어진 극장판이었고, 현재 2008년 개봉을 예정으로 11번째 극장용 장편영화의 제작이 진행 중이다.

좀 과장해 말하자면 ‘스타트렉’이 없었을 경우 현대 미국의 과학기술 관련 문화가 과연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69년 6월 첫 TV시리즈가 종영되고 나서 바로 그 다음 달인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은 역사적인 타이밍도 한몫했지만, 아무튼 ‘스타트렉’이 일반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과학기술적 프런티어’의 이미지는 상당히 깊고 뚜렷했다. ‘합리적이고 진취적이며 건전한 심신을 지닌 인간들의 우주 진출’이야말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라는 점에 확실한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스타트렉' TV 시리즈의 역사


인공지능 로봇의 미래상 제시

무엇보다도 실질적인 공헌은 과학적 상상력의 고취를 꼽을 수 있다. 물질(승무원)의 순간이동이라는 아이디어는 원래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나온 고육지책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과학자들에게 자극이 됐다. 스타트렉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미국과 오스트리아의 연구진들이 물질의 원격이동이라는 과제에 꾸준히 매달린 끝에 1997년 광자(빛 알갱이)의 원격이동 실험에 성공했다.

또 다른 예의 하나로 인공지능 분야의 선구적인 전망도 이 시리즈에서 태동됐다. ‘스타트렉:그 다음 세대’의 등장인물 중에는 안드로이드인 데이터 소령이 있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인 그는 등장할 때마다 항상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몰두하면서 인간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데이터 소령은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의 무시무시한 기계와 달리 인공지능 로봇의 미래상을 거론할 때 모델로 적합하다.

‘스타트렉’의 수많은 에피소드는 하나하나가 모두 독립된 과학기술 아이디어의 보고나 다름없을 정도로 풍부한 상상력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물리학자 존 휠러가 ‘블랙홀’이란 용어를 제안하기 1년 전인 1966년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에서는 빛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별을 ‘블랙스타’라고 부르는 선견지명을 발휘했다.

특히 1980~90년대로 넘어오면서 스타트렉은 훨씬 세련된 상상력으로 고차원적인 내용을 선보였다. 나노로봇이 좋은 예. 나노기술의 개념이 대중에게 확산되기 전인 1989년 스타트렉 에피소드에는 이미 나노벌레(nanite)를 신체에 투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늘날 과학기술 분야의 세계적 강국 미국과 일본에는 각각 ‘스타트렉’과 ‘우주소년 아톰’으로 대표되는 고유의 SF가 존재한다. 폭넓은 팬을 확보한 유명한 SF는 분명 구성의 재미와 별개로 과학적 상상력의 풍부함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좋은 SF가 과학문화 확산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우리도 절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스타트렉의 빛과 그림자

‘스타트렉’ 오리지널 TV시리즈의 방송기간인 1966년 9월부터 1969년 6월까지는 미국 역사상 매우 흥미로운 시기였다. 밖으로는 월남전이 한창인데다 안으로는 범죄율이 증가하는 한편 반전평화운동의 물결이 거셌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가계 빚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스타트렉의 23세기 미래세계는 사회 갈등이 거의 없이 완벽한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우주선 엔터프라이즈 호는 그 자체로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실현시킨 작은 이상향이나 다름없었다. 말하자면 월남전 이후의 장밋빛 미래상을 스타트렉에서 미리 보여준 셈이다.

1967년 4월에 방송된 ‘영원의 끝에 있는 도시’는 오늘날 오리지널 TV시리즈 중에서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팬들의 반응이 좋았던 에피소드이지만, 사실은 원작의 극본이 심하게 훼손된 사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커크 선장 일행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시간여행을 해 1930년대의 뉴욕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에디스 키일러라는 천사 같은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헌신적인 사회사업가이자 빈민들의 벗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만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미래에 일어날 일의 개연성과 상관관계를 미리 알 수 있는 장치로 분석한 결과, 그녀는 곧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지 않도록 도와줄 경우, 미래에는 커크 일행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는다. 에디스가 나중에 거대한 평화운동 조직을 만드는데, 그 영향력 때문에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고, 결국 나치 독일이 세계를 정복해 커크가 사는 23세기의 행복한 미래세계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의 원래 대본은 방송 내용과 상당히 달랐다. 원작은 시간여행과 역사 왜곡의 딜레마에 빠진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멜로에 가까웠을 뿐, 에디스가 평화운동가라던가 반전운동 때문에 세상이 더 부정적으로 바뀌어버린다는 식의 설정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방송을 보고 난 시청자들에게는 아무리 숭고한 동기에서 비롯된 일이라도 역사를 그르칠 수 있으며, 그걸 막기 위해 때로는 내키지 않는 일도 불사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전달됐다. 물론 월남전에 뛰어든 미국의 입장을 은연중에 정당화하려는 의도였다.
 

스타트렉의 무대와 등장인물을 경험할 수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힐튼호텔. 우주선 엔터프라이즈 호와 외계인 페렝기(왼쪽에서 두번째)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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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박상준 SF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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