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보츠와나. 이곳에서는 돈을 세는 단위로 ‘풀라’(pula)와 ‘테베’(thebe)라는 말을 쓴다. 둘 다 ‘빗방울’을 뜻한다. 빗물을 돈처럼 소중하게 여긴다는 얘기다. 이 나라 사람들은 학교나 집에 커다란 수조를 두고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을 모아서 마신다. 독일 등 유럽에서도 주거단지에 빗물저장시설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대규모 빗물저장시설이 들어섰다.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한무영 교수팀은 공대 행정동 지하에 320t짜리 빗물저장조를 설치해 필터로 거른 뒤 빗물을 모았다가 이 건물의 화장실이나 조경용수로 공급할 계획이다. 2년 전부터 빗물수조를 운영하던 기숙사는 200t짜리 빗물저장조를 설치해 1년간 1800t의 수돗물을 절약했다. 수도요금으로 치면 36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절약했다.
한 교수는 “많은 수자원을 확보하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데도 사용을 꺼리는 건 빗물에는 이물질이 많고 산성비는 해롭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속 이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지표로 총용존고형물(TDS)을 쓴다. 눈에 보이는 이물질을 걸러낸 물 1리터(L)를 증발시키고 남는 이물질의 양을 밀리그램(mg) 단위로 환산한 값이다. 우리나라 수돗물의 TDS는 50~250mg/L다. 땅에 떨어지기 직전의 빗물은 TDS가 10~20mg/L고, 오랫동안 비가 와서 대기의 오염물질이 씻겨나간 뒤에는 이물질이 더 줄어든다. 우리나라는 마시는 물의 TDS를 500mg/L가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니 빗물이 더럽다는 건 편견이다.
한 교수팀은 땅에 떨어지기 직전의 빗물을 모아 pH를 측정해봤다. 5.6이다. 사람들이 가장 해롭다고 생각하는 막 내리기 시작한 빗물은 pH4 내외였다.
“샴푸는 pH가 3.5, 요구르트는 3.4, 오렌지주스는 3.0, 콜라는 2.5 정도에요. 일본의 어떤 온천물은 pH가 2.9나 되죠. 일상에서 접하는 액체들이 훨씬 산성이에요. 그러니 비를 맞아서 머리가 빠진다는 얘긴 근거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2~3일 동안 빗물을 모아뒀더니 이물질도 가라앉고 pH도 7~7.5로 중화됐다.
드라마 ‘대장금’에도 장금이가 제주도에서 빗물을 모아 약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한 교수는 “모아두면 언젠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게 빗물 관리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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