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땀을 뻘뻘 흘리며 산에 올라 샘에서 물을 떠 마신다. 갈증이 싹 가신다. 그런데 샘에서는 어떻게 물이 계속 솟아날까.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든 뒤 아주 천천히 다시 땅위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하에 스며든 물이 바로 지하수다. 땅속에는 어느 곳에나 물이 있다. 그래서 지하수를 ‘숨겨진 바다’라고 부른다.

생수는 수질검사에서 마셔도 좋다고 판정받은 지하수다. 그럼 지하수는 과연 언제쯤 내린 빗물일까?

땅속이 자갈이나 모래층처럼 입자가 크고 균질하면 물이 방해를 덜 받아 빨리 흐를 수 있지만, 진흙이나 암반층처럼 입자가 매우 작거나 빈 공간이 없으면 느리게 흐른다. 빗물이 스며들어 지하수가 된 뒤에 느리게 흐를수록 땅속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된다. 땅속에 머문 시간이 바로 지하수의 ‘나이’인 셈이다. 지하수의 나이를 알면 생수가 언제 내린 빗물로 만들어진 건지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면 변화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리면 공기 중의 화학물질이 빗물에 섞여 널리 퍼진다. 땅속에 들어간 빗물은 대기와의 접촉이 줄거나 아예 없어진다. 물속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은 보통 공기에서보다 더디게 확산된다. 따라서 시간에 따라 화학물질이 확산되는 속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측정하면 지하수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다.

화학물질 가운데는 시간이 지나면서 양이 일정한 속도로 감소하는 것이 있다. 바로 방사성 동위원소다. 지하수에 들어있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얼마나 감소했는지를 측정하면 지하수의 나이를 추적해낼 수 있다. 고고학자들이 유물이 사용되던 시기를 알아낼 때 쓰는 방법과 같은 원리다.

시간에 따라 농도가 변하는 화학물질도 지하수 나이 측정에 쓰인다. 대표적인 것이 염화플루오르화탄소(CFCs)다. 프레온가스로 더 잘 알려진 이 물질은 냉장고의 냉장 또는 냉동 장치에 주로 이용된다. 1990년대까지는 대기의 프레온가스 농도가 계속 증가했다. 따라서 지하수의 프레온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대기의 프레온가스가 언제 같은 값을 기록했는지 비교해보면 물이 땅속으로 스며든 시기를 알 수 있다. 최근 필자의 연구팀은 이와 같은 방법들로 제주도 지하수의 나이를 조사했다.

제주도 지표 부근 현무암층에서 채취한 지하수의 나이는 대부분 20년 이하로 나타났다. 반면 해안에 가까운 지역의 깊이 100m 내외의 땅속에서 얻은 지하수는 나이가 50년 이상이었다. 일반적으로 깊은 곳으로 갈수록 지하수의 나이는 증가한다. 이는 하부의 지하수가 상부와 다른 특성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 이유는 지하수를 담고 있는 그릇인 대수층의 암석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제주도 현무암층 밑에는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응회암층이 존재하는데, 응회암층은 현무암층에 비해 물을 잘 통과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응회암층이 있는 하부 지하수는 나이가 많아진 것이다.

나이가 수십 년이면 지하수치곤 그래도 젊은 셈이다. 아주 건조한 지역의 지하수는 나이가 수만~수백만 년에 이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주 대찬정분지의 지하수 나이는 5만년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석기시대 선조들이 봤던 빗물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니, 이 지하수는 고고학적 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수의 나이가 다양하게 분포한다는 사실은 물이 땅속에서 한 덩어리로 같이 움직이지 않고 지역이나 깊이에 따라 다른 경로와 이동 속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된 지하수는 지상에서 일어나는 홍수나 가뭄 같은 기상 변화에 그리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 오염물질들이 자연정화작용을 거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따라서 나이든 지하수가 젊은 지하수보다 보존 가치가 높다.

지하수의 나이는 물의 화학적 특성과도 관계가 있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면서 주변 암석과 만나는 동안 암석의 주요 구성성분들이 지하수에 녹는다. 일반적으로 젊은 지하수는 물에 녹아있는 물질의 총량인 총용존고형물(TDS) 값이 작고 칼슘 함량이 높은 칼슘-중탄산(Ca-H${CO}_{3}$) 유형이다. 반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총용존고형물 값이 크고 나트륨-중탄산(Na-H${CO}_{3}$) 유형으로 바뀐다. 지하수를 이용하는 생수의 물맛이 지표수를 이용하는 수돗물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은 지하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가 지표로 나온다. 이 사실은 우리가 지금 오염시킨 환경에서 만들어진 지하수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 땅에 살고 있을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임을 의미한다. 지상 환경뿐 아니라 지하 환경까지도 잘 보존해야 하는 이유다.
 

제주도 지하수의 나이^제주도 서부에서 지하수를 채취한 다음 CFCs를 이용해 나이를 측정했다. 대략 10~60년 전 내린 빗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 동부에는 해수가 많이 들어와 주로 서부에서 지하수를 개발한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물문맹률 제로에 도전하라
기획1. 물 한 잔 갖고 짜게 군다?
기획2. 오늘 마신 물은 어제 내린 비?
기획3. 산성비 맞으면 대머리 된다?
기획4. 손가락 사이로 물 새듯 관리한다?
기획5. 깊은 바닷속은 잔잔하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6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용제 선임연구원

🎓️ 진로 추천

  • 환경학·환경공학
  • 지구과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