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기록되지 않았던 15종의 식물, 특히 참비비추 붉은고로쇠 흰알며느리밥풀의 발견은…
제5회 전국고교교사 자연생태계 학습탐사가 지난 7월31일부터 6일간 홍도지역에서 펼쳐졌다. '과학동아'와 '동아문화센터'가 공동주최하고 '쌍용'이 후원한 이번 행사에는 문교부 추천교사 9명등 16명이 참가, 주로 홍도의 식물생태계를 조사했다.
첫날 여의도 68빌딩 안에 있는 수족관을 관람한 뒤 열차편으로 목포로 향했다. 참가자들은 열차안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홍도의 식물상을 조사해 발표한 각종 논문들을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둘째날 쾌속선(2시간30분)에 몸을 싣고, 홍도로 향했다. 1시간 반쯤 지나자 배멀미를 하는 참가자도 나왔지만, 지도교수인 이정석씨의 식물을 이용한 즉석처방으로 이내 증상이 멈추어졌다. 홍도에서 여장을 풀고 나서 곧 작은 통통선을 이용, 탐사지 선정작업에 나섰다. 모두 홍도의 절경에 매료된듯 감탄을 연발했으며, 이런 오지의 절벽에서 살아남은 곰솔에 찬사를 보냈다.
셋째날 이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탐사에 들어갔다. '각오를 단단히 하라', '되도록 길이 아닌 곳으로 가야 뭔가가 나온다'고 '겁'을 주는 이교수를 필두로 먼저 홍도의 대표적인 봉우리인 남서쪽의 양상봉(2백36m)을 향했다. 식생조사표와 각종 채집장비로 무장한 참가자들은 식생조사를 3단계로 나누어 하기로 결정했다. 즉 양상봉의 상 중 하부위에서 한군데씩 정해 높이에 따른 식생의 변화를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양상봉의 '뿌리'에서는 동백나무 숲을 중심으로 탐사가 이루어졌다. 참가자들은 3조로 나뉘어 탐사에 들어갔는데, 측고기 직경테이프 등 평소에 별로 다뤄볼 기회가 없었던 장비사용법을 즉석에서 익혀 탐사에 임했다.
양상봉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데 양석철씨가 웬 꽃 하나를 들고 정신없이 달려왔다. 모양은 난초같은데 잎이 없었다. 자생으로는 꽤 드문 편인 무엽란이었다. 게다가 이 식물은 지금까지 다른 홍도탐사반에게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미기록종이다.
환갑을 눈앞에 둔 노학자인 이교수는 젊은 교사들보다 앞질러갔고, 길이 아닌 곳만 찾아드는 열성을 보였다. 모두들 그 진지한 모습에 감명을 받았음인지 경사가 60도도 넘어 보이는 '준'(準)절벽을 숨을 몰아 쉬며 기어 올라갔다. 또 가다가 의문이 나는 식물이 있으면 채집, 이교수에게 보이고 자문을 구했다. 노방에 깔린 하찮은(?) 풀한포기의 이름은 물론 그 생리나 용도까지 '좔좔'외는 이교수는 '걸어다니는 식물도감'으로 통했고, 때로는 다소 고집스런 성격탓에 '한국의 호메이니'로 불리우기도 했다.
산을 오르는 도중에 누구나 가시에 긁히고 모기에 '헌혈'하였지만, 식물을 이용한 즉석요법으로 금방 완치(?) 되었다. 내려오는 도중에 또 하나의 난초가 발견되었다. 새우란이었다. 이번에는 난에 극진한 관심을 보여 '난만이'로 불리웠던 한기표씨의 개가였다.
홍도에는 유난히도 꽃 며느리 밥풀이 많았다. 밥풀 2알을 훔쳐먹다가 시어머니에게 들켜, 맞아 죽은 며느리의 한이 서려있다는 이 꽃의 전설을 듣고 모두들 숙연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새로운 탄성이 이어졌다. 홍도 미기록종이고 희귀한 흰알며느리 밥풀을 찾은 것이다.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 일행은 일정으로 잡혀있던 '자유시간'을 반납하고 그 날 채집한 식물중 알쏭달쏭 했던 것들에 대한 검증을 하였다. 식물도감을 찾아보고, 토론을 해 정체를 파악해간 것.
넷째날 이날은 '보물찾기'가 목표였다. 탐사답게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했던 것일까? 코스는 홍도 1구에서 북쪽에 위치한 깃대봉(3백67m)을 넘어 홍도 2구로 가는 산길이었다. 곳곳에서 홍도색을 띤 홍도원추리가 발견되었다. 꽃도 예쁘지만 환경이 갖는 의미를 되새김질하기에 충분했다.
홍도2구는 1구에 비해 훨씬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서인지 산림이 자연 그대로 보존된 곳이 있었다. 클라이맥스, 즉 극상림이었다. 적어도 50년이상 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육지에서는 보기힘든 광경이었다. 한 참가자는 "잘잘한 것만이 눈에 띄어 평소에 관목(灌木)으로 여겼던 나무들이 실제로는 교목(喬木)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런 것이 바로 참교육"이라고 힘을 주었다.
이날은 오후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탐사가 진행되었다. 비옷을 입고 탐사하는 광경이 한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모두 흠뻑젖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없이 '보물찾기'에 열중했다. 특히 깃대봉은 뱀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곳인데, 별난 식물이 있으면 뱀출현 가능지대도 거리끼지 않았다.
홍도 2구에서 1구로 돌아오는 뱃길은 다소 불안한 항해였다. 태풍이 가까이 근접한 탓인지 풍랑이 거세게 일었다. "캠프"에 돌아오자 모두들 기진맥진. 그러나 검증시간만은 생략하지 않았다.
다섯째날 목포로 돌아가기로 예정된 날이었지만 폭풍주의보 때문에 꼼짝없이 홍도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이왕 홍도에 묶게 되었으니 탐사를 하루 더 하자는 제안이 자연스레 나왔다. 특히 풍란과 백동백 등 홍도 특산물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조직된 것이 '풍란특공대'. 이름은 거창했지만 '작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큰 나무위에 꼭꼭 숨은 풍란의 자취를 끝내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대신 홍도서덜취를 찾는데 만족해야 했다. 홍도서덜취는 심장부의 잎과 상부의 꽃대가 길게 갈라지는 점이 서덜쉬와 다른 다년초.
높이가 7m에 달하고, 홍도에 한 그루밖에 남아 있지 않아 보호대상이 된 백동백을, 일정에 쫓겨 보지 못한 것은 참가자들 대부분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 홍도의 명물 풍란과 나도풍란이 그동안 많이 육지로 내돌려져, 탐사대의 눈에 띄지 않은 것도 유감이었다.
일정을 사실상 마감하는 '과학동아'좌담회도 이날 이뤄졌다. 좌담에 앞서 이교수는 이번에 새로 발견한 미기록종 15종을 발표했다. 각시고사리 조아제비 좀겨풀 참비비추 진황정 좀굴거리 당단풍 큰애기나리 붉은고로쇠 싸리냉이 진달래 상동잎쥐똥나무 큰꼭두선이 흰알며느리밥풀 도래가 차례로 불리우자 참가자들은 뜻밖의 큰 수확에 모두 흐뭇해하는 눈치였다. 이교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풀린다"고 운을 뗀 뒤 "발표는 검증을 더 거친 뒤에 할 예정"이라고 신중함을 보였다.
대개 전문 자연탐사팀이 10일 정도 일정으로 특정지역의 식생을 조사하면 30여종의 미기록종을 찾는 것이 평균 수준이다. 이 정도면 학술논문을 한편 발표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반면 이번 홍도팀은 비전문가들로 구성돼 있고, 일정도 실제로는 3일에 불과했으나 기대밖의 성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저녁에는 함께 회식을 하면서 그간의 회포를 풀었고, 일부는 밤 3시까지 '생물과 인간'을 주제로 결론없는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좌담'에서 참가자들은 이런 기회가 확대되기를 이구동성으로 지적했고, 탐사범위도 더욱 넓어지기를 소망했다. 즉 식물에 국한하지 않고 곤충 해양식물 육상동물 지질 등으로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면 더 알찬 탐사가 될 것이라고 충고.
여섯째날 폭풍주의보가 해제되자 일행은 목포로 가는 배에 옮겨 탔다. 목포에서는 남농전시관을 잠깐 들린 뒤, 곧 해산했다. 각기 자신의 행선지를 향해 떠나면서 그동안 정들었던 사람들과 석별의 아쉬움을 나누었다.
섬전체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홍도에는 난대성 해양성 식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기자도 탐사대와 함께 다니면서 30여개의 식물이름을 외우고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들은 빈도수가 하도 많아 저절로 외우게 된 식물로는 모밀잣밥나무 구실잣밥나무 붉가시나무 동백나무 굴거리나무 황칠나무 상동나무 부처손 측백나무 섬향나무 산기장 큰천남성 소사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종가시나무 섬모시풀 며느리배꼽 돈나무 괭이밥 녹보리똥나무 보리밥나무 쥐똥나무 누리장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