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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당나라 단맛의 새 역사를 쓰다

설탕왕의 후계자는 누구?

옛날옛적 당(糖)나라가 있었으니. 이 나라를 16세기부터 다스리고 있는 설탕왕의 단맛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백성들은 설탕왕의 단맛에 오랫동안 길들여졌다. 그야말로 설탕왕의 태평성대였다.

그런데 요즘 그에게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젊은 여성들은 비만의 주범이라며 멀리하고, 충치가 생긴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한데다, 당뇨 환자들까지 혈당을 높인다며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맛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설탕왕도 이런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 옥새를 물려줘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어느 늦은 밤, 고민 끝에 설탕왕은 아끼는 책사, 과당대감과 포도당대감을 은밀히 불렀다.
 

설탕공예 전문가 정영택 원장의 작품. 불투명한 부분은 설탕, 투명한 부분은 당알코올의 하나인 이소말트(파라티니톨)가 주재료다. 삼양제넥스 전분당연구소 김광수 부장은


# 01_세자책봉을 위한 회의

과당대감은 설탕왕보다 1.5배 더 달다. 그러나 자신의 단맛을 오래 끌지 않고 짧게 끝내 청렴결백하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포도당대감은 몸 안에 들어가 에너지를 내기 때문에 당나라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식품회사 다니스코코리아 조원장 사장은 “최근 인기인 저지방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이 대표적인 과당 제품”이라며 “담백하고 깨끗한 맛 덕분에 단 것을 먹었다는 ‘죄책감’을 금방 잊게 된다”고 말한다. 과당은 다른 당에 비해 몸에 빨리 흡수되므로 스포츠 음료에 들어간다.)

“과인이 후계자를 정할 때가 된 것 같아 불렀소. 요즘 뛰어난 당들이 많다고 들었소.”
포도당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하, 수크라로오스 세자 저하가 계시지 않사옵니까?”
“세자는 재능은 걸출하나 변덕이 죽끓듯하니 나라를 다스릴 만한 그릇이 못되오.”
(설탕을 변형한 수크라로오스는 단맛이 설탕의 600배나 된다. 그러나 농도나 온도 같은 주변 환경에 따라 맛이 쉽게 변한다.)

“그러하시면, 소신 듣기로 과당대감댁 자제가 탁월하다 하옵니다.”
“이 사람, 괜한 말씀이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소신의 자식놈 사이코오스는 아직 너무 어리나이다. 포도당대감댁 자제를 고려해보심이….”
(사이코오스는 과당을 변형해 만든다. 세종대 생물화학공학과 오덕근 교수는“사이코오스는 지방 합성효소의 활성을 떨어뜨려 살이 찌지 않게 한다”고 말한다. 오 교수는 미생물을 이용해 사이코오스를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전하, 소신에게 알로오스라는 자식이 있는데, 의술에는 재주가 있으나 단맛이 변변치 않사옵니다. 차라리 전국에 영을 내리시어 뛰어나다는 당들을 직접 궐로 불러 보심이 나을 걸로 사료되옵니다.”
(포도당을 변형한 알로오스는 현재 백혈병치료제, 장기보존액 등 의약품에 쓰이고 있다.)

다음날 방이 붙자마자 수많은 후보가 몰렸다. 과당대감과 포도당대감은 그 중 다섯을 뽑았다.
 

당 감미질 비교


#02_막상막하 단맛의 향연

드디어 면접시험 날. 설탕왕을 비롯한 원로대신들이 이른 아침부터 대전으로 들었다.

“경들은 각 후보의 기능성, 감미도, 감미질 등이 과인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평가하도록 하오.”
(감미도는 설탕 단맛을 1로 했을 때의 상대적인 강도를 말한다. 감미질은 단맛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뜻한다.)

첫 번째 후보는 올리고당 가문.
“전하, 소인들은 프락토올리고당, 갈락토올리고당, 이소말트올리고당이라 하옵니다. 장에 사는 유익균인 비피더스를 증식시키는 효과가 탁월하나이다.”
(올리고당은 단당류가 여럿 붙어 구조가 복잡하다. 그래서 소화효소가 분해하지 못해 장까지 내려간다. 비피더스균은 올리고당을 먹고 증식해 다른 유해균들이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감미도가 설탕왕의 절반 정도 아니냐? 게다가 내 알기로 말토올리고당은 비피더스 증식 효과가 없느니라.”

과당대감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올리고당은 물러가고 당알코올 가문의 솔비톨이 들었다.
“소인 역시 감미도가 전하의 절반밖에 미치지 못하나이다. 하오나 보습성이 뛰어나옵니다.”
(예전에는 치약을 짜고 뚜껑을 닫지 않으면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서 넣은 게 바로 솔비톨. 솔비톨을 빵에 넣으면 촉촉함이 오래간다.)

“그렇다면 사탕을 만들 때 끈적거리고 녹아내리지 않겠느냐? 다음 후보 들라.”
(말티톨이나 이소파라피니톨 같은 당알코올은 입안에 오래 남지 않는 산뜻한 단맛 덕분에 사탕을 만드는데 쓰인다. 삼양제넥스 전분당연구소 박성원 연구원은“당알코올류는 수분을 붙잡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당알코올 사탕은 보통 개별 포장해 공기를 차단한다”고 설명한다.)

“당알코올 가문의 자일리톨이라 하옵니다. 감히 전하와 감미도가 비슷하다고 아뢰옵니다. 소인은 충치균을 죽이는 탁월한 능력이 있사옵니다. 또한 혈당이 높아지는 정도를 나타낸‘당지수’가 낮아 당뇨 환자도 먹을 수 있지요. 일부 대신은 당지수가 상당히 높다고 들었나이다.”
포도당대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

“무엄하다! 뉘 앞에서 당지수 운운하느냐? 여기 계신 과당대감이 당지수가 훨씬 낮거늘. 썩 물러가거라.”
(설탕의 감미도가 1이면 자일리톨은 0.7~0.8. 설탕보다 단맛이 빨리 느껴진다. 그러나 적당히 갈변(갈색으로 변함)돼야 먹음직스럽게 보이는데, 자일리톨은 갈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뒷맛이 싸하다. 자일리톨로 만든 빵, 파이가 상업화되지 못한 이유다.)
 

당 감미도 비교


다음 후보는 설탕왕보다 200배 이상 단 아스파탐과 스테비오사이드. 하지만 모두 설탕왕의 눈에 들지 못했다. 아스파탐은 분자 크기가 설탕왕의 1/200밖에 안돼 입안에 계속 남아 단맛이 오래 가기 때문이다. 스테비오사이드는 뒷맛이 쓴데다 물에잘 녹지 않는다.

(분자량이 큰 당이 몸에 들어가면 효소가 잘게 잘라야 흡수된다. 그런데 어느 효소가 어느 부분을 자르는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열쇠는 미생물. 서울대 농대 식품화학공학과 박관화 교수는 “미생물에서 당을 자르는 효소를 찾아낸 다음, 그 유전자를 이용해 효소를 대량생산 한다. 이렇게 만든 효소가 당을 합성하고 분해하는데 쓰인다”고 설명한다. 박 교수팀은 분자량이 수백만에 달하는 녹말을 자르는 효소를 연구하고 있다. 효소마다 인지할 수 있는 당이 다르다. 구조가 조금만 변해도 효소는 그 당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면 당이 합성 또는 분해되지 못해 에너지를 낼 수 없다.)
 

시간에 따른 감미도의 변화^광리의 주성분인 과당은 설탕보다 달지만 단맛이 오래가지 않는다. 포도당은 설탕보다 덜 달고. 단맛이 지속되는 시간이 설탕과 과당의 중간 정도다.


#03_설탕왕 뒤이을 단맛의 제왕

“과당대감, 전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후보가 하나도 없으니 큰일 아니오.”

“염려 놓으시게, 포도당대감. 전하, 소신이 뛰어난 후보를 더 추천해 올리겠사옵니다. 이 후보는 감미도가 전하에 버금가옵니다. 밖에 타가토오스 와 있느냐? 어서 들라.”

“타가토오스라 하옵니다. 소인은 열량이 1.5kcal에 불과하온데, 이마저도 인체가 이용할 수 없는 열량이라 살찔 걱정을 덜 수 있나이다.”
“당지수도 낮아 당뇨 환자에게 주사하기도 하지요. 작고하신 갈락토오스대감의 자제이옵니다.”

“오, 왜 이제야 일러주는가? 젊고 능력도 출중한 당을 보니 참으로 든든하오.”
(미국과 동남아시아에서는 타가토오스 제품이 이미 팔리고 있다. 스웨덴 식품회사 알라푸드도 우유를 가공하고 남은 폐액으로 타가토오스를 생산한다. 우유 1L에서 얻을 수 있는 타가토오스는 수mg. 이래서는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못한다. 오덕근 교수팀은 높은 온도에서 사는 미생물에서 타가토오스를 생산할 수 있는 효소를 찾아내‘응용환경미생물학’지에 제출했고, 지난해 11월 게재 승인을 받았다.)

“뛰어난 당이 많으니 짐은 만 가지 시름을 던 듯하오. 식량이 부족했던 먼 옛날, 사람들은 곡물을 먹으면 힘이 나는 걸 깨달았소. 그런데 먹을 때 단맛이 나는 거였소. 그래서 점점 본능적으로 단맛을 찾게 됐지. 이제 세상이 바뀌었소. 에너지를 내는 음식이 많아졌으니까. 단맛도 변해야 하오.‘ 생존’이 아니라 ‘참살이’(웰빙)를 위한 단맛으로 말이오. 또한 널리 구할 수 있어야 하오. 과인은 기능성과 보편성을 갖춘 당으로 타가토오스와 사이코오스를 지목하겠소. 사이코오스는 아직 어리나 그 가능성을 높이 샀소. 후계자를 확정할 때까지 두 당은 계속 맛을 연마하라. 다른 당들도 기회가 있으니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게을리하지 말라.”

(몸 안에서 분해돼 에너지를 내는 당은 사람들이 찾아 먹게 하기 위해 단맛이 나도록 ‘진화’했다는 설이 있다. 이제 사람들은 화학합성이나 효소를 이용해 구조를 바꿔 에너지를 덜 내는 대신 여러 가지 기능을 갖춘 새로운 당을 개발하고 있다. 당 진화의 나침반을 거꾸로 돌린 셈이다.)
 

01 대전에 있는 삼양제넥스 전분당연구소에서 유당에 유당전이효소를 넣고 반응시키는 중이다. 유당이 분해되면 갈락토올리고당을 얻는다. 02 당은 시간이 지나면 보통 갈변된다. 삼양제넥스 연구원이 갈변 전(오른쪽)과 후(왼쪽)의 당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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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가고 새 당 온다
특집1. 당은 비만의 주범이 아니다
특집2. 당나라 단맛의 새 역사를 쓰다
특집3. 사람 살리는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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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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