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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처럼 날개 펄럭이는 초소형 항공기

21세기 비밀정찰에서 활화산탐사까지

새 또는 곤충과 같은 크기의 항공기가 가능할까. 영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이런 초소형 항공기가 현재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초소형 항공기가 현실로 다가오면 전쟁터 비밀정찰에서부터 위험한 활화산탐사까지 이용될 전망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종이 비행기를 접으며, 이 작은 비행기가 하늘 높이 내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탁 트인 하늘이 우리네 답답한 현실에서 그래도 인내하며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주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보았던 ‘마이티’(원제 The Mighty)라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맥스가 끔찍한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자유를 회복하는 모습을, 새처럼 생긴 아주 작은 비행기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장면으로 표현했던 대목이다.

이렇게 새 또는 곤충처럼 날개를 펄럭이는 비행기는 오니솝터(ornithopter)라 불리는데, 바로 초소형 항공기(MAV, Micro Air Vehicle)의 일종이다. 영화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실제 비행장면이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해 합성한 화면임이 분명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에서도 컴퓨터 합성을 통해 탄생한 이런 초소형 항공기가 최근 여러 연구를 통해 점차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아주 작은 비행기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나는 꿈이 우리 눈앞에 현실로 이뤄지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현재 길이 15cm 항공기 1시간 체공

초소형 항공기는 길이, 날개폭, 높이 모두 15cm 이하인 항공기로 정의된다. 새 또는 곤충과 같이 날개를 펄럭이는 오니솝터형, 헬리콥터와 같은 회전날개형, 일반 비행기와 같은 고정날개형 등이 있다. 이런 초소형 항공기는 특수한 탑재장비를 이용해 전쟁에서 비밀스럽게 적지를 정찰하거나 사람이 접근하기 위험한 곳을 탐사하는 등 다양한 용도에 사용될 수 있다.

초소형 항공기의 군사적인 활용가치에 주목한 미국은 1997년부터 매년 1백억원 규모의 예산을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에 지원하고 있다. 즉 오니솝터형, 회전날개형, 고정날개형 등 다양한 형태의 항공기를 개발하고, 이에 필요한 동력원, 제어장치, 탑재장비와 관련된 기초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의 에어로바이런먼트(AeroVironment) 사는 1998년 4월, CNN을 통해 방송된 시험비행에서 리튬전지를 동력원으로 사용해 길이 15cm의 고정날개 항공기가 17분 정도 비행할 수 있음을 보였다. 최근에는 추진계통을 최적화해서 이런 고정날개 항공기가 1시간 가까이 체공하고 있다. 물론 날개 길이가 15cm, 무게가 10g 정도인 철새가 3-4g의 체내지방을 연료로 해서 3천km 정도를 쉬지 않고 비행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현재의 기술은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종합해서 미국의 록히드마틴 사는 실제 작전에 배치가 가능한 수준의 고정날개형 초소형 정찰기인 ‘마이크로스타’(Microstar)를 개발하고 있다.


자세와 회전속도 제어장치


1백-2백m 상공 비행하면 탐지불능

마이크로스타와 같은 초소형 정찰기가 실용화된 시점을 상상해보자. 공격목표를 5km 앞에 둔 소대장이 휴대한 고정날개형 초소형 정찰기를 발진시킨다. 소대장은 안경처럼 착용한 디스플레이화면에 비춰지는 항공정찰 영상을 통해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의심나는 지점에 대해 좀더 상세한 정찰을 명령한다.

1백-2백m 상공에 비행하는 15cm 크기의 항공기는 지상에서 육안으로 탐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레이더 상으로도 새의 신호나 잡음 신호와 식별이 곤란한 수준이 된다. 정찰 지점의 고해상도 영상과 함께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지구상 위치파악 시스템) 좌표가 소대장의 휴대장비에 기록되고, 소대장은 상급부대에 이 자료를 전송한 후 해당 위치에 대한 지원사격을 요청한다.

초소형 항공기는 계속 상공을 맴돌면서 지원사격중인 포탄의 명중여부를 관측한다. 만일 정밀한 공격이 필요한 경우라면 초소형 항공기에 탑재된 유도장치를 해당 목표에 투하하고 유도무기로 공격한다. 아군의 희생은 전혀 필요없다.

안전하게 목표건물에 근접한 소대장은 오니솝터형 초소형 항공기를 꺼내 깨진 창문을 통해 건물 내부로 투입한다. 생존한 적의 위치와 수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오니솝터에 탑재된 적외선 카메라와 마이크가 각각 송신하는 영상과 음성을 통해 적이 전투능력과 전의를 상실한 채 항복할 것을 합의하는 중임을 파악하고, 때맞춰 투항을 권유한다.

곧이어 손을 든 적군은 부상자를 부축한 채 줄지어 나오고 아군의 불필요한 희생없이 상황은 종결된다. 이때까지 건물 위를 맴돌며 작전상황을 상급부대에 전송하던 고정날개형 초소형 항공기는 소대장의 명령에 따라 다음 목표를 향해 날아간다.

몇년 전 유고 코소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군은 지상군 투입을 다각적으로 검토했지만, 막대한 미군의 인명피해가 예상됨에 따라 공중 폭격에만 의존했다. 산악지형과 시가지에서 게릴라전술에 능한 유고군이 숨어서 쏘아대는 총탄에 미 지상군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상황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초소형 정찰기가 실전에 배치돼 있었다면, 지상군이 바로 투입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산악지형과 도시지형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초소형 정찰기가 대단히 유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체르노빌 비극 막을 수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군사적 용도에 우선적으로 활용되는데 거부반응을 느끼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초소형 항공기는 군사적 목적 이외에 사람이 직접 확인하기에는 위험한 환경을 조사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산에 의한 인류의 재난을 정확히 예측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활동중인 화산 주변에서 분출 시기와 징후를 연구하는데 초소형 항공기는 더 없이 유용할 것이다.

많은 화산학자들이 용이 불을 뿜듯이 거칠게 활동하고 있는 화산 가까이에서 연구를 수행하던 중에 목숨을 잃었다. 21세기 화산학자들은 안전한 거리에서 초소형 항공기에 측정장비를 탑재하고 화산을 향해 날려보내면 된다. 크기가 작아 화산재 등에 맞을 확률이 낮기 때문에 화산의 중심부에 접근하기 쉽다. 화산가스의 성분을 측정해 송신하던 초소형 항공기는 분출하는 용암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용암 속으로 뛰어든다. 녹아 없어지기 직전에 송신한 온도를 토대로 화산학자들은 용암의 초기온도, 냉각속도 등을 결정하고, 용암이 덮을 지역을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체르노빌과 같은 원전사고나 생화학 오염지역이 발생할 때, 오염정도와 범위를 파악하는데도 초소형 항공기가 사용될 수 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경우에는 상황에 대한 사전 정보와 대비가 없이 초기에 투입된 복구 인력들이 방사능 피해로 목숨을 잃고, 사고의 처리가 늦어져서 피해가 컸다. 앞으로 초소형 항공기가 현실화되면 체르노빌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조난 사고에 있어서도 조난자를 찾아내거나 조난피해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신속하고 경제적인 항공수색을 수행할 수도 있다.

잠자리 비행기 10년 후나 가능


(그림) 오니솝터형 초소형 항공기의 개념도^곤충처럼 날개를 펄럭이는 오니솝터형 초소형 항공기는 고정날개형보다 3배 정도의 동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날개를 펄럭이는 왕복운동을 하는데 운동에너지 손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초소형 항공기 개발은 10년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새 또는 곤충과 같은 초소형 항공기를 개발하는 것이 어려운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진화하며 적응해온 자연을 관찰하면 그 답을 얻게 된다. 필자는 사무실 천장에 매달린 채 미라가 된 잠자리를 떼어내 저울에 달아보고는 0.2g도 되지 않는 것에 탄복한 적이 있다. 이는 항공기를 새처럼 작게 만들려면 새만큼 가벼워야 하고, 곤충처럼 더 작게 만들려면 곤충만큼 가벼워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 또는 곤충처럼 작은 항공기에는 이처럼 가벼운 구조물 이외에도 새 또는 곤충의 근육처럼 효율적인 동력원, 그들의 신경계처럼 반응속도가 빠른 제어계통 등이 필요한데 이 모두가 가까운 시일에 해결할 수 없는 기술적인 한계다. 빠르게 발전하는 인류의 과학기술로도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을 가진 잠자리 형태의 항공기를 이렇게 작고, 가볍게 만드는 일은 21세기 중반이 돼서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까지 축적된 연구결과와 비행에 필요한 동력규모를 고려하면, 고정날개형이 가장 멀리 또한 오래 날 수 있으며 실용화 시기도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회전날개형은 고정날개형 항공기에 비해 복잡한 제어계통과 2.5배 정도의 동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점이 있다. 오니솝터형 항공기는 3차원 날개 주위의 유동 현상에 대한 학문적인 이해가 아직도 부족하고 동력 또한 고정날개형보다 3배 정도 더 드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오니솝터형을 구동하려면 왕복운동을 하는 추진기관이 필요한데, 왕복운동에 따른 추진기관 자체의 운동에너지 손실로 인해 효율이 좋지 않다. 따라서 5년 이내에 이들 형태의 초소형 항공기 개발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높은 동력소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초소형 엔진을 비롯해, 연료전지, 화학전지, 고분자 인공근육 등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초소형 엔진은 매사추세츠공대에서 반도체 제조 공정에 기초한 ‘초소형 전기기계 시스템’(MEMS, 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기술을 사용해 개발중이다. 인공근육은 오니솝터형 항공기의 추진기관으로 적합한데, 캘리포니아공대에서는 박쥐형태의 초소형 항공기를 개발해 17초간 비행하는데 성공했다. 오니솝터형 항공기는 파리 정도인 1cm 이하를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항공에서 생물학까지 다양한 분야 협력해야

국내에서도 초소형 항공기 연구가 개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다양한 학문분야와 연구기관의 협력을 도출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연구지원은 미흡한 상태다. KIST는 제어계통, 탑재장비, 초소형 터빈을 개발하고 있으며, 국방과학연구소, KAIST, 건국대학교, 대한항공 등에서는 초소형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KAIST에서는 MEMS 초소형 엔진 연구를 최근 진행중이다. 국내 개발인력들은 과학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미세 비행체 연구회(mfo.kaist.ac.kr)를 통해 활발하게 정보와 기술을 교환하고 있다. 국내의 이런 연구 노력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 다양한 연구기관과 학문분야의 협력에 기초한 공동 연구과제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초소형 항공기는 21세기를 선도할 초소형 시스템기술의 결정체로서 다양한 기술 및 학문 분야의 협력을 통해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항공∙기계∙화학∙재료∙전자∙생화학∙생물학 등의 각 분야별로 따로 발전돼온 학문과 기술이 초소형 항공기라는 주제 하에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는 물론 각 분야별로 답보 상태에 있는 부분에 돌파구를 제시해 줄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개발중인 박쥐형태의 초소 형 항공기‘마이크로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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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안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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