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하늘공원의 비탈을 가득 덮은 가시박의 마른 덩굴에서 열매(씨앗)를 채취하고 있는 강병화 교수. 강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은 가시박의 생태와 방제법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막 시작했다.]
“여기 좀 보세요. 이게 다 가시박입니다.”
드넓은 억새밭이 장관인 하늘공원은 과거 이곳이 쓰레기매립장이었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억새밭을 벗어나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남향의 비탈에 이르자 풍경이 180도 바뀌었다. 땅은 물론 나무까지 온통 수채통에 걸린 국수면발처럼 말라비틀어진 식물로 덮여있었다.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로 알려진 가시박의 잔해다.
“가시박은 1년생 덩굴식물입니다. 지금은 시들어 죽고 열매가 달려 있지요.”
수 년 전부터 가시박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해온 강병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가 바짝 마른 덩굴에 매달려 있는 열매 송이를 따서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겉이 우둘투둘한 수박씨만한 열매 2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사이에 미세한 가시가 잔뜩 박혀있다.
“이런 모습 때문에 가시박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찔리면 꽤 아픕니다. 살에 박힌 가시를 찾기도 쉽지 않고….”
강 교수는 준비해간 고무장갑을 끼고 본격적으로 가시박 열매를 따 모으기 시작한다.
[가시박 열매 송이(오른쪽)에는 미세한 가시가 많아 살에 박히기 쉽다. 열매(가운데)의 과피를 벗겨내면 수박씨처럼 생긴 씨앗(왼쪽)이 모습을 드러낸다.]
잡초 찾아 전국 누벼
1985년 고려대에 부임한 뒤 지금까지 강 교수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야생 풀, 즉 잡초의 종자를 받아왔다. 채집을 간 날이 총 3880일에 이른다. 1년에 평균 139일을 산과 들을 누빈 셈이다.
“1989년 경기도 포천의 한 숲에서 가시박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이듬해 가 보니 더 많이 보이더군요. 처음 본 식물이라 씨앗을 받았죠.”
[우리나라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대표적인 덩굴식물인 가시박(➊), 환삼덩굴(➋), 칡(➌). 덩굴식물에 덮힌 식물은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자라지 못하고 결국에는 죽고 만다.]
뜻밖에 원예과 곽병화 교수가 이 식물을 학교 온실에서 재배하는 걸 발견했다. 문의하니 경북 안동에서 오이대목으로 개발해 쓰는 식물이라고 알려줬다. 이 식물에 오이를 접붙이면 병에 잘 안 걸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험재배를 하고 있었던 것. 얼마 뒤 이 식물이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burcucumber임이 확인됐고 가시박이란 우리말 이름이 붙었다(접두사 ‘bur-’는 가시란 뜻이다). 가시박이 귀화식물이고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전국 곳곳에 가시박이 퍼져 있었다.
“가시박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됐는지는 아직 미스터리입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에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지원 아래 교수 7명을 포함한 연구원 20여 명이 가시박의 생태, 친환경 방제법, 자원으로서의 이용성 등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햇빛을 좋아하는 가시박은 하루에 최대 30cm까지 자라는 왕성한 성장력으로 덩굴손을 이용해 다른 풀이나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따라서 가시박 덩굴과 잎에 뒤덮인 식물은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된다. 하늘공원에서 남향 비탈이 특히 가시박의 피해가 큰 이유다.
“잘 모르는 분들은 여름에 푸른 융단처럼 숲을 뒤덮은 가시박 덩굴이 보기 좋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가시박 때문에 식물의 종 다양성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어요.”
특히 가을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식물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생태계 건전성의 지표인 생물다양성, 유전자다양성이 감소한다. 강 교수가 조사한 양재천의 경우 2005년 429종이던 초본식물이 불과 5년 뒤인 2010년에는 318종으로 줄어들었다. 사실 문제는 가시박 뿐만이 아니다. 환삼덩굴이나 칡 같은 덩굴식물도 국토를 급격히 잠식하면서 다른 식물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 덩굴식물은 예전에도 있었는데 왜 최근에 이렇게 문제가 될까.
“정상적인 생태계라면 덩굴식물이 이렇게 번창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온 국토가 개발 열풍에 시달리다 보니 생태적으로 취약한 곳이 많아졌어요.”
예를 들어 4대강 공사로 파헤쳐진 강 주변에 새로 풀과 나무를 심어 가꿀 때 가시박은 거침없이 자라며 다른 식물들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한다. 일단 덩굴식물이 자리를 잡으면 퇴치하기가 무척 어렵다.
“물론 제초제를 쓰면 되지만 이 경우 다른 식물들도 죽습니다. 결국 손으로 일일이 뽑아내야 하는데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죠”
가시박은 5월에 싹이 트는데 6월쯤 뽑아주는 게 가장 좋다고. 일단 장마철이 오고 덩굴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자라면 손쓰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덩굴이 말라 비틀어져 있는 겨울에 걷어내면 어떨까.
“죽은 덩굴을 없애려다가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발아될 가능성만 높일 수 있지요.”
불과 10여 분 만에 가시박 열매로 비닐봉지를 가득 채운 강 교수의 얼굴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아무도 하지 않기에 내가 한다
강 교수가 전국을 누비며 잡초의 씨앗을 모으게 된 것은 아무도 이런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아직 종 다양성의 중요성도 부각되지 않았고 식물 자원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 사실 강 교수도 다른 마땅한 일이 없었기에 이 일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독일 호헨하임대에서 제초제를 연구했던 그는 막상 고려대에 교수로 부임했지만 이렇다 할 연구장비가 없어 연구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런데 씨앗을 채취하면서 ‘이게 내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루 종일 숲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치기도 하고 몸도 파김치가 되지만 마음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게다가 채집을 다녀올 때마다 연구실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우리 풀의 씨앗을 보면 마음이 뿌듯했다. 지금까지 강 교수는 1700여 종의 씨앗을 모았다. 우리나라에서 씨를 받을 수 있는 초본식물의 90%에 이른다. 그런데 지천에 깔린 게 풀인데 씨앗을 받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식물을 발견했다고 해서 늘 씨앗이 달려 있는 건 아니죠. 일단 어떤 식물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제대로 여문 씨앗을 얻을 때까지는 몇 차례 와 봐야 해요.”
강 교수는 요즘 들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에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개발, 탐욕스런 귀화식물의 등장이 겹치며 우리나라 생태환경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 게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떤 식물 종을 발견해 GPS로 장소를 기록해 둔 뒤 이듬해 다시 가보면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제주도에만 서식하던 노랑하늘타리, 야고 같은 식물이 서울에서도 발견된다. 강 교수의 연구실 바로 앞에 있는 조팝나무는 12월 중순인데도 꽃을 피우고 있다. 한마디로 생태계가 뒤죽박죽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강 교수의 연구실 한 구석엔 흰 쓰레기봉투가 잔뜩 쌓여있다. 자세히 보니 모두 슬라이드 필름이다.
“갖고 있던 슬라이드 15만 장 가운데 추려내고 남은 10만 장입니다. 버리려니 눈물이 다 나더군요.”
씨앗을 채집하기 전에 식물의 사진을 찍어 둬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어떤 종의 씨앗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디지털카메라를 쓰지만 예전에는 필름카메라로 찍었고 현상한 필름은 일일이 슬라이드로 만들어 채취 날짜와 장소를 써서 보관해왔다.
“지금 선별한 5만 장을 스캔해 디지털화하고 있습니다. 이 일만 2~3년 걸릴 겁니다.”
2월이면 정년퇴직하는 강 교수는 해오던 연구를 마무리할 곳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대학 총장이 3년 동안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주기로 약속했다.
사실 강 교수는 자신이 평생 모은 씨앗을 고려대에 기증하기로 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생물자원을 후학들을 위해 선뜻 내놓은 것이다.
[➊ 필름카메라를 쓰던 시절 씨앗을 채취할 때 종을 확인하기 위해 찍은 식물 사진은 슬라이드로 만들어 보관해왔다.
➋ 강 교수가 2011년 채취한 씨앗들.
➌ 채취한 씨앗은 잘 말려 영하 20℃에 보관한다. 강 교수의 실험실엔 씨앗을 보관하는 대형 냉장고가 8대 있다.]
[강 교수가 2008년 자비로 펴낸 ‘한국생약자원생태도감’을 펴놓았다. 책이 잘 안 팔려 지금도 파주출판단지 창고 보관료로 매달 40만 원씩을 내고 있지만 책을 낸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자비 출판으로 휘청
말벌에 쏘이고 뱀에 물리면서도 건강을 자신하며 들판을 누비던 강 교수는 2004년 어느 날 과로로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급성당뇨병이라며 상당히 심각한 상태라고 경고했다. 20여 년 동안 수없이 사진을 찍고 씨앗을 모았지만 제대로 정리할 시간이 없었던 강 교수는 문득 이러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 그는 본격적으로 사진과 씨앗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자신도 놀랄 정도로 우리 식물에 대한 엄청난 정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몇몇 출판사를 찾아가 책을 내자고 제안했어요. 다들 내용은 너무 좋지만 엄두가 안 난다며 거절하더군요. 그래서 결국은 제 돈을 들여 출판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8년 3권으로 된 ‘한국생약자원생태도감’이 나왔다. 총 3696쪽, 무게 15.5kg에 이르는 이 책에는 2037종의 식물에 대한 정보가 실렸고 사진자료의 대부분은 강 교수가 직접 찍었다. 책에 싣기 위해 슬라이드 2만3000장을 스캔하는 비용만 7000만 원이 넘게 들었다. 강 교수는 재산 대부분을 책 출간에 쏟아 부었다.
“책 한 세트의 가격이 80만 원입니다. 저로서는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닌데 도서관들조차 부담스럽다며 사지 않는 거예요.”
500부 정도만 찍자는 출판사 사장의 권유도 뿌리치고 1500부나 찍었지만 예상과 달리 판매는 신통치 못했다.
“그래도 이곳저곳에서 꾸준히 책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책은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보기 힘드니까요. 적금을 들어 책을 구입하는 농민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두고 ‘잡초 같이 사는 잡초학자’라고 말했다며 웃던 강 교수는 잡초는 상황에 따른 말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즉 벼는 작물이지만 국화밭에 벼가 있으면 벼도 잡초라는 것.
“Pflanzen haben keinen Sonntag!(식물에게는 일요일이 없다)”
독일 유학 시절 일요일도 없이 학교에 나와 연구에 몰두하던 지도교수가 하던 말이 늘 기억에 남았다는 강 교수는 그 자신도 일요일도 없이 지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2001년, 17년 만에 호헨하임대를 찾았을 때 그는 학교 주변이 각종 식물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제초제를 연구하던 박사과정 시절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풍경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름 없는 잡초란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름을 모를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