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흐르는 양을 측정해서 시간을 재는 물시계는 예로부터 나라의 공식시계로 많이 쓰여 왔다.하지만 자격루는 물의 양을 측정하는 물시계일 뿐만 아니라 북과 징을 쳐서 시간까지 알려주는 완전자동시계였다.15세기에 이룩한 첨단 제어공학의 원리를 탐구해보자.
1만원권 지폐를 들여다보자.앞면에는 세종대왕의 얼굴이 뒷면에는 경회루가 새겨져 있다.조금 더 자세히 보면 앞면의 세종대왕 왼쪽에 용이 새겨진 검은 기둥과 항아리 같은 것들이 놓여있다.무엇일까.그림 옆을 살피면 보일락 말락 작은 글씨로 '물시계'라고 쓰여 있다.이 유물이 최고액권 지폐에 새겨질 만큼 중요한 것은 왜일까.
사라진 기계장치
이 유물의 원래 이름은 자격루(自擊漏). 스스로 자(自), 칠 격(擊), 물시계 루(漏). ‘스스로 시각을 치는 물시계’라서 자격루이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이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검은 물 항아리 몇 개가 어떻게 자동으로 시간을 알린다는 말인가.
여기에 그려진 자격루는 원래의 완전한 모습이 아니다. 남아있는 유물은 물시계에 물을 공급하던 항아리 3개와 물의 양을 측정한 실린더형 물통 2개뿐이다. 자격루에서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던 정교한 기계장치는 지금 보이는 길쭉한 실린더형 물통 앞쪽에 따로 설치돼 있었다. 최근까지 10여년간 자격루의 복원에 매달려온 건국대 전기공학과 남문현 교수에 따르면, 물통 앞쪽으로 설치된 정교한 기계장치를 내장한 자동시보장치가 있어야 자격루의 진짜 모습이 살아난다. 지금 남아있는 유물만을 놓고 ‘물시계’나 ‘자격루’라고 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시계·별시계·물시계
오늘날과 같은 기계 시계가 없던 시대에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천체시계인 해시계와 별시계이다. 천체가 일주운동 한 각도를 측정하면 시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시계는 정확한 자연의 시간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맑은 날 낮 동안만 사용할 수 있다. 때문에 흐린 날이나 밤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가 있어야 한다.
밤에 사용할 수 있는 시계는 별시계이다. 하지만 지구의 공전으로 별들이 뜨는 시각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때문에 정확한 관측을 해서 시간을 정하는데 매우 복잡한 천문학지식이 요구된다. 일년 내내 관측을 해서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남중하는 별들을 정해두고 별들이 기준점에서 몇도 돌아갔는지를 측정해야 한다. 별시계는 일상적으로 쓰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시계다.
정확하기는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데 제약이 많은 천문시계와 더불어 인류가 가장 오래도록 사용해온 시계가 물시계다. 수도꼭지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을 보면 그 간격이 매우 일정하다. 늘 일정한 압력으로 물을 흘려보낸다면 물의 양은 흐른 시간에 비례하게 될 것이다. 하루종일 24L의 물이 떨어진다면 12시간 동안은 12L, 6시간에는 6L, 1시간에는 1L가 모일 것이다. 그러므로 실린더에 눈금을 새겨 물의 양을 측정하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알 수 있다.
물 흐름을 일정하게
물시계의 정확성은 흘러드는 물의 양이 얼마나 일정한가에 달려있다. 물의 압력이 일정하지 않으면 물통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양이 차이가 난다. 이 오차를 줄이기 위해 물시계에는 여러개의 물통이 필요하다. 보통 3-5개의 물통을 거치면서 수압을 조절하고 일정하게 한다.
자격루 그림에 보이는 물통들이 바로 이런 기능을 한다. 자격루에서는 원래 수압을 조절하며 물을 대주는 항아리가 넷이고, 물을 받아 시간을 측정하는 항아리가 둘이었다. 먼저 가장 큰 물통에다 물을 붓고 이것을 다시 두번째 물통으로 흘려보낸다. 두번째 물통에서는 다시 세번째 물통으로 일정한 수위를 조절해서 물을 흘려보내고, 규정 수위를 넘는 물은 외부의 또 다른 물통으로 빼내버려 항상 같은 수압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제 수압이 일정한 세번째 물통에서 시간을 측정하는 실린더로 물이 흘러들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수압을 맞춰도 물이 쌓이는 양을 완전히 일정하게 맞추기가 어려워 오래 쓰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 때 별의 운행을 측정해서 물시계의 틀린 시간을 보정해준다.
사이펀 이용해 물 퍼내
한시간에 해당되는 물의 양을 알았다면 이것을 12배 하면 12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쌓이는 물의 높이에 맞추어 시각을 나타내는 눈금자를 만들 수 있다. 물은 쌓이고 쌓여서 일정눈금에 이르면 한시간이 되고, 또 그만큼의 양이 더해지면 2시간이 된다(조선시대에는 하루가 12시이므로 1시간은 오늘날의 2시간이다). 이런 식으로 하루 12시간을 측정한다. 물시계 그림에서 앞쪽의 용무늬가 새겨진 2개의 물통이 시간 측정용 실린더이다.
각각 전날 정오에서 다음날 정오까지 측정할 수 있는 하루 12시(24시간)용이다. 한쪽의 실린더에 물이 가득 차면 물을 흘려주는 대롱의 방향을 바꾸어 다른 쪽 실린더로 물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의 하루동안의 시각을 측정한다.
가득 찬 실린더는 어떻게 다시 비웠을까. 중국에서는 바닥에 구멍을 내서 물을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렇게 하면 구멍이 살짝 막혔을 경우와 꽉 막혔을 경우에 따라 전체 실린더의 물 양이 차이가 날 수 있다. 때문에 실린더는 어떠한 상태에서도 용적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무거운 실린더를 엎어 물을 빼내고 매번 수평을 맞추어 다시 설치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다.
이 때문에 사용된 것이 사이펀이다. 알다시피 사이펀은 위치에너지에 의한 압력차를 이용해 높은 곳으로 올렸다가 다시 빼낼 수 있는 장치다. 자격루의 실린더처럼 깊은 용기에서 용기를 숙이지 않고 밖으로 물을 빼내는데 제격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것을 ‘갈오’(渴烏), 즉 ‘목마른 까마귀’라고 불렀다. 목마른 까마귀가 물을 먹듯이 조금씩 물을 빨아들여 빼내는 장치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졸다가 놓쳐버린 시간
자격루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밤 동안 관상감의 관원이 물시계를 살펴 시각을 읽으면 이 소식은 즉각 종로의 종루에 전달됐다. 그리고 종루에서는 백성들이 들을 수 있게 종을 쳐주었다. 종루에서는 밤 시간 동안 야간 통행금지 시작에 해당되는 인정(초경 3점, 한성의 성문을 닫는 시각)과 통행금지 해제시각인 파루(5경 3점, 한양의 성문을 여는 시각)에 종을 쳐서 알려주었다.
물시계에는 실린더 안에 거북모양의 나무를 띄우고 여기에 살대를 꽂는다. 물이 쌓이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살대(부전 孚箭)가 물의 부력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면 살대의 끝에 달린 눈금침이 실린더 위쪽에 장치된 측정자의 시간을 가리키게 된다. 눈금침이 가리키는 측정자의 눈금을 읽으면 시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직 관원이 밤을 새면서 시각마다 눈금을 정확히 읽어 보고한다는 것은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물시계를 살피던 관상감 관원은 졸다가 시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시간을 놓쳐버리는 일이 많았다. 국가 표준시를 혼란하게 했으니 엄한 벌이 뒤따르곤 했다. 때문에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장치는 당시 시계제작자들 모두의 숙원이었다.
인형들이 알려주는 시간
자격루가 바로 이러한 불편을 없애고 완전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준 기계였다. 자격루에는 시각 눈금자 근처에 정교한 쇠구슬 구동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그리고 시침이 구동장치를 건드리면 연속적으로 기계장치가 작동해서 시간을 알리게 돼 있었다.
실린더에 물이 쌓이면서 살대는 물의 부력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면 살대의 끝에 달린 침이 쇠구슬 구동장치를 건드려 구슬을 떨어뜨린다. 이 쇠구슬은 정해진 통로를 타고 굴러 자동시보장치 안으로 들어간다. 작은 쇠구슬은 시보장치 안에서 도미노처럼 다시 다른 구동장치를 건드려 더 큰 쇠구슬을 떨어뜨린다. 이제 커다란 쇠구슬의 무게로 기어장치를 돌려서 그 시간에 해당되는 인형이 올라와 북을 치고 징을 치게 된다. 자시에는 쥐 인형, 축시에는 소 인형이 올라와 북을 치는 식으로 하루 12시각을 어김없이 자동으로 알려주었다.
여기에 더해 자격루에는 밤 시간을 알리는 시보장치가 하나 더 필요했다. 밤 시간의 통금과 해제 시간을 알려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밤낮의 길이는 계절마다 달라진다. 여름철 하지 근처에 전체 밤 시간이 9시간이라면 겨울철 동지 근처의 전체 밤 시간은 13시간이다. 때문에 여름철의 통금해제는 새벽 4시 근처이지만 겨울철의 통금해제는 새벽 6시 근처가 돼야 한다. 결국 자격루에는 밤의 길이가 변하는 것에 따라 밤 시간의 경점을 치는 눈금자와 구동장치를 하나 더 배치했다. 물론 이 눈금자는 절기에 맞추어 바꾸어주었다.
기술시대의 서곡
보통 물시계에서 시간 측정은 물 양을 재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자격루에는 물의 양을 신호로 시침이 건드려 떨어뜨린 쇠구슬 하나가 수많은 기계장치를 거쳐 북을 치고 징을 치게 만든 정교한 제어공학 기술이 결합돼 있었다. 자격루와 같은 정교한 자동 시보장치는 당시의 기술로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근래에는 시계가 너무나 흔하고 집마다 괘종 시계나 뻐꾸기 시계를 갖추고 있어 자동시보장치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자격루가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백년 전의 15세기였다.
세종 3년(1421)에 세종은 자격루를 만들기 위해 장영실을 중국으로 파견해서 중국과 아랍의 물시계에 관한 모든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도록 했다. 장영실은 이에 보답하듯 피나는 연구 끝에 세종 16년 숙원이던 자동물시계를 완성하고 경회루 앞에 설치할 수 있었다.
과학사학자 전상운 교수(성신여대)는 자격루로 인해 “조선왕조는 완벽한 정밀기계 장치의 자동물시계를 국가 표준시계로 정확하게 시보하는 기술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만하면 국보 229호 자격루가 1만원권 지폐에 세종대왕과 함께 새겨질 자격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