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풀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본다. 친구랑 공포영화를 보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스크린을 압도했던 무서운 장면이 금방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다. 공포는 기쁨이나 슬픔처럼 사람이 느끼는 기본적인 감정. 사람은 높은 장소, 거대한 동물, 큰 소리, 고통에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영화를 보며 무섭다고 느끼는 대상이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공포영화 속에서 우리를 무섭게 하는 요소들을 만나보자.
일상과 영화의 경계 사라지다
† 인적이 드문 지하철역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분홍 구두. 이 구두를 본 여자들은 미치도록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구두를 신으면 하나같이 발목이 잘려 죽는다. - 분홍신
†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삭발한 여인. 가발을 쓰기 시작하면서 언니의 예전 애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 가발
최근 개봉된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소재는 구두나 가발처럼 주변에서 쉽게 보는 것이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던 게 왜 무서워질까. 공포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고려대 심리학과 최준식 교수는 “영화가 끝나도 일상생활에서 같은 시청각 자극을 계속 접하게 돼 공포의 여운이 오래 남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상 소재가 공포에 ‘현실감’을 더한다는 얘기.
심리학을 전공하고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인 장근영 박사는 “분홍 구두에 병적으로 탐욕을 느낀다는 설정이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고 지적한다. 비슷한 정신질환으로 특정 제품을 사 모으는 쇼핑중독이 있는데, 이는 제품 자체가 아니라 그 제품이 주는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 장 박사는 “차라리 발레리나의 이미지나 분홍이라는 색깔에 집착하도록 설정했다면 더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가발’의 소재는 머리카락. 하수구에 뭉쳐있는 머리카락을 보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한때 내 몸의 일부였다가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은 일면 나이면서도 더이상 내가 아닌 일종의 ‘분신’. 영화에서 머리카락이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설정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나랑 똑같이 생긴 또다른 나와 마주쳤다면 반가울까요? 아니죠, 섬뜩할 겁니다. 인간은 진화하는 동안 자신보다 다른 존재와의 의사소통에 익숙해져왔기 때문이죠.”
장 박사의 설명이다. 쥐가 사람이 잘라 버린 손톱을 먹고 그 사람이 돼 해를 끼친다는 우리나라 옛날이야기도 비슷한 설정이다.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는 뭐니뭐니해도 청각과 시각을 자극하는 요소다. 영화 ‘첼로’에서는 평소엔 아름답기만 하던 첼로 소리가 음산한 분위기를 발산하며 죽음을 암시한다. ‘여고괴담4’에선 친구의 목소리, ‘착신아리’에선 전화벨 소리가 들리면 무서워진다. 하지만 단순히 소리만으로 무서움을 느끼는 건 아니다. 영화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소리 이외의 다른 요소들을 함께 사용한다.
눈과 귀를 닫아라
단, 사람이 특별히 잘 듣는 주파수는 따로 있다. 최준식 교수는 “사람은 주파수가 2~3kHz인 소리에 특히 예민하다”고 설명한다. 이는 소프라노 가수의 목소리 정도로 보통 대화하는 톤보다 상당히 높다. 왜 낮은 소리보다 높은 소리에 예민할까. 대개 비명을 지를 때는 높은 소리를 낸다. 비명은 위험하다는 신호니 높은 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도록 청각시스템이 진화해왔을 거라는 게 최 교수의 추측.
붉은 피도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다. ‘아나토미’ 같은 메디컬 호러 영화가 좋은 예. 피를 무서워하는 건 인간에게 내재돼 있는 감정이라고 한다. 최 교수는 “신호등이나 경고표시처럼 위험을 나타낼 때 보통 붉은색을 쓰기 때문에 붉은색이 공포를 의미한다고 뇌에 학습됐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 우물 속에서 귀신이 나타난다. 우물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나온다. 그런데 귀신이 갑자기 화면 밖으로까지 손을 뻗친다. 이 화면을 본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간다. - 링
화면에서 나온 귀신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절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른 영화의 귀신도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왜 그럴까. “우리 뇌에는 얼굴만 전문으로 처리하는 세포가 따로 있습니다. 그만큼 얼굴이 긴요한 정보란 얘기죠.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얼굴 표정으로 상대방의 기분이 어떤지, 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같은 정보를 얻어왔잖아요. 그래서 얼굴을 지각하지 못하게 했을 때는 심리적으로 부담이 커집니다. 얼굴인식세포가 아무 일도 못하는 상태니까요.”
미술심리를 연구하는 한성대 미디어디자인컨텐츠학부 지상현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개를 처음 키우는 사람은 이 개가 저 개 같고, 저 개가 이 개 같다. 계속 키우다보면 자기 개를 구분할 수 있게 되는데, 개 얼굴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이 사람 얼굴 처리 영역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백인의 경우 일반적인 지각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데, 유독 흑인 얼굴을 지각하는 능력은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다. 많이 볼수록 얼굴 처리 영역이 더 능숙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얼굴 지각 메커니즘은 상당히 전문적으로 발달해 있다. 이를 차단했을 때 느끼는 부담이나 답답함이 바로 공포를 유발하는 요소가 된다.
‘링’에서 귀신이 걷는 동작을 유심히 살펴보라. 보통 사람이 걸을 때는 양쪽 팔다리가 서로 엇갈려 움직인다. 그런데 이 귀신은 오른쪽 팔이 나올 때 오른쪽 다리가, 왼쪽 팔이 나올 때 왼쪽 다리가 함께 움직인다. 기괴하다. 이것도 공포영화의 주요 소재다. ‘에일리언’에 나오는 괴물도 마찬가지다.
에일리언의 또다른 특징, 도무지 통제가 안된다. 이렇듯 내 힘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존재나 환경도 공포를 유발한다. ‘남극일기’에서 한치 앞도 보기 힘든 눈보라 속을 헤매는 탐험대원들, ‘우주전쟁’에서 어마어마한 괴력의 외계생명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지구인들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
공포영화 속 조명의 비밀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진 않지만 영화 ‘큐브’도 공포를 선사한다. 사방이 똑같은 모양의 벽으로 막혀있는 공간에 갇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막혀있는 공간을 극도로 두렵게 만드는 장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명이다.
“우리는 돌발상황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잠재적 기능성’에 대한 정보를 찾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빨리 탈출할까 하고 말이죠.”
지상현 교수는 조명이 공포를 유발하는 이유에 이렇게 접근한다. 잠재적 기능성의 중요한 정보 중 하나가 바로 태양의 위치. 우리는 태양이 한 쪽에 있는 게 익숙하다. 그런데 ‘큐브’ 안에는 조명이 사방에서 비친다. 심지어 주인공이 앉아있는 바닥에서도 조명이 올라온다.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과 관객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무서운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주택가의 밤 장면이 나오면 자세히 관찰해보라. 분명 가로등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게다.
기괴한 동작, 통제 불가능한 존재, 낯선 상황 등은 모두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불확실성은 공포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처음 보는 음식을 선뜻 먹기 꺼려하고,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컴퓨터를 두려워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귀신의 실체가 밝혀지면 누가 공포를 느낄 것인가. 실체를 알 수 없을 때 두려움이 생긴다.
† 차를 몰던 남자. 피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여자를 치고는 두려움에 달아나버린다. 그 후 남자가 찍는 사진에 귀신의 모습이 담기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그 현장에는 어떤 사고도 보고되지 않았다. - 셔터
장근영 박사는 최근 개봉한 ‘셔터’를 두 가지 면에서 전형적인 동양적 공포영화로 꼽는다. ‘셔터’를 비롯한 동양 공포영화 속 귀신은 대부분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죽음을 당해 원한이 맺혀 있다. 그 원한을 푸는 게 귀신의 목표. 공동체 개념이 강한 동양문화에서는 공동체 내의 누군가가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서양문화는 개인주의가 강하다. 뱀파이어가 원한 있는 사람만 골라 물던가? 피해자는 그저 ‘재수가 없어’ 당할 뿐이다. 이유가 있든 없든 얼마나 아프고 잔인하게 당하느냐로 공포를 유발하는 게 전형적인 서양 공포영화다. 태풍이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가 동양보다 서양에서 많이 나오는 이유도 비슷하다. 원한에 의한 공포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공포인 셈.
처녀귀신과 뱀파이어의 차이
‘셔터’의 귀신은 사진으로만 보인다. 동양문화에서 카메라는 외국서 들어온 일종의 마술 같은 존재다. 그러니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귀신이 사진에는 찍힌다. 반대로 서양문화에서 카메라는 합리주의의 결과물로 있는 그대로를 반영한다. 그러니 비합리적 존재인 귀신이 사진에 나올 리 만무하다. 뱀파이어가 사진이나 거울로 보이던가.
지상현 교수도 “귀신이나 뱀파이어는 이미지가 만들어낸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는 문화가 만들어낸다. 우리에게 뱀파이어보다 처녀귀신이 무섭게 느껴지는 건 공동묘지나 죽음에 대한 동양문화의 이미지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며 공감한다.
대부분의 공포영화는 이런 여러 소재들이 섞여 있다. 사람마다 무섭다고 느끼는 소재가 다르기 때문이다. ‘엑소시스트’에서 침대에 묶인 소녀의 기괴한 표정이 무섭다는 이도, 뭔지 모를 게 침대를 마구 흔들어대는 상황이 무섭다는 이도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화가 주는 공포는 순수한 의미의 공포가 아닌 셈이다. 원래 공포는 자신이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느끼는 원초적 감정이다. 실제 상황이라면 사진 속 희끄무레한 귀신이 무섭겠는가, 바로 앞에서 총을 난사하고 있는 괴한이 더 무섭겠는가. 사실 액션영화가 원초적 공포에 더 가깝다.
결국 우리가 영화를 보고 느끼는 공포는 답답함, 예민함, 혐오감, 낯설음 같은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진 새로운 감정이다. 여러 재료와 조미료를 버무려 만든 음식처럼 말이다.
인체는 공포를 알고 있다
공포반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다. 편도체가 자율신경계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자율신경계는 뇌에 일일이 보고하지 않고 알아서 공포반응을 연출한다.
공포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은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무섭다’고 말한다. 정말 털이 서는 걸까. 건국대 의대 해부학교실 고기석 교수팀은 독일 과학전문지 ‘세포조직연구’에 이를 증명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현미경으로 성인의 두피조직 사진을 찍어 컴퓨터에서 확인해봤다. 그 결과 털세움근이 3~4개의 털을 동시에 잡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율신경계가 털세움근을 수축시키면 누워있던 털이 거의 수직으로 일어서는 것이다. 이러면서 피부에 오돌오돌 ‘소름’이 돋는다.
공포를 느끼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자율신경계가 심장에서 나오는 피를 장기나 근육 쪽으로 몰아주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장기에 피가 원활히 흐르게 하고, 여차 하면 도망가거나 싸워야 하니 근육에 피를 많이 공급해두자는 전략이다. 그래서 피부에는 핏기가 없어진다. 공포에 떠는 사람 얼굴을 보면 하얗게 질려있지 않나.
땀샘이 수축하면서 땀이 나는 것도 자율신경계의 작용이다. 땀이 식으면서 체온을 빼앗기 때문에 몸이 오싹해진다. 땀샘뿐 아니라 근육도 수축한다. 무서울 때 ‘오금(무릎 뒤쪽)이 저린’ 이유가 이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 갑자기 귀신이 등장한 순간 비명을 지르는 것도 마찬가지. 자율신경이 성대 근육을 자극해 소리를 내게 하는 것. 성대를 경직시키기도 하는데, 그러면 아예 “억” 소리조차 못 낸다. 무서워서 입도 못 여는 게 이런 상황.
방광도 수축된다. 그래서 영화에는 머리에 총을 겨누면 소변을 흘리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학자들은 공포에 질렸을 때 소변이 마려운 이유에 대해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소변을 배출하면 몸이 가벼워져 도망가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 또는 잡아먹히는 동물의 경우 지저분한 냄새를 풍겨 적이 ‘밥맛’ 떨어지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무서운 장면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누가 불러도 잘 듣지 못한다. 공포를 느낄 때 뇌가 마치 수면상태처럼 의식을 차단하는 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지는 것. 이때 의식이 너무 많이 차단되면 기절하고 만다. KAIST 김대수 교수는 “공포를 느끼고 기절하는 메커니즘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뇌에서 시상핵과 편도체가 상호작용해 의식이 차단되도록 유도하는 게 아닐까”라고 추측한다.
편도체는 스트레스를 인식하는데도 중요하다. 그래서 무서울 때와 스트레스 받았을 때 인체는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공포자극을 받으면 받을수록 공포반응이 커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민감화’라고 한다. 어린아이가 주사를 맞을수록 무서워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편도체가 손상된 사람에게 공포자극을 줬더니 일반인보다 자율신경계 반응이 훨씬 덜 나타났다. 반대로 어떤 대상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뇌를 촬영한 결과 편도체가 일반인보다 더 활발히 반응했다는 연구도 있다. 여간해서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을 흔히 ‘간이 부었다’고 하는데, 사실 ‘뇌가 말랐다’고 하는 게 더 적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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