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맹장, 정확하게 말하면 맹장 끝에 붙어 있는 작은 돌기인 ‘충수’가 있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론을 세웠다. 그는 유인원의 먼 조상은 잎사귀를 먹고 살았기 때문에, 섬유소를 소화할 수 있는 미생물이 사는 큰 맹장이 필요했다고 가정했다. 시간이 지나 유인원의 조상들은 소화하기 쉬운 과일을 주식으로 먹게 됐고, 쓸모없어진 맹장은 점점 작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충수는 맹장이 수축할 때 접히면서 남은 주름살 중 하나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기관이라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가수 윤종신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개복 수술을 할 때 의사가 충수를 서비스로 떼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멀쩡한 충수라도 어차피 기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맹장염의 정확한 이름은 급성 충수염
쓸모없어 보이는데 골치는 아팠다. 대표적인 게 맹장염, 정확하게는 ‘급성 충수염’이다. 맹장은 대장과 소장이 연결된 부위 아래쪽으로 오동통하게 부풀어 오른 대장의 일부로, 맹장에 붙어 있는 새끼손가락만 한 돌기인 ‘충수’가 막혀서 생긴 염증이 급성 충수염이다. 충수가 막히는 원인은 충수 주위의 림프 조직이 과다 증식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며(60%), 딱딱한 대변이 충수 입구를 막아서 생기는 경우도 있다(35%). 또 이물질이나 기생충이 충수를 막기도 한다.
급성 충수염은 아주 흔한 질병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간한 ‘2015년 주요수술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한 해 동안 8만9620명이 충수 절제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 인원이 전체 수술 중 다섯 번째로 많았고, 특히 10대의 경우에는 1위(1만6930명)를 차지했다. 10대가 충수 절제술을 많이 받는 이유는 이 시기에 충수 내의 림프 조직이 과도하게 형성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가수 윤종신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개복 수술을 할 때 의사가 충수를 서비스로 떼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멀쩡한 충수라도 어차피 기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맹장염의 정확한 이름은 급성 충수염
쓸모없어 보이는데 골치는 아팠다. 대표적인 게 맹장염, 정확하게는 ‘급성 충수염’이다. 맹장은 대장과 소장이 연결된 부위 아래쪽으로 오동통하게 부풀어 오른 대장의 일부로, 맹장에 붙어 있는 새끼손가락만 한 돌기인 ‘충수’가 막혀서 생긴 염증이 급성 충수염이다. 충수가 막히는 원인은 충수 주위의 림프 조직이 과다 증식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며(60%), 딱딱한 대변이 충수 입구를 막아서 생기는 경우도 있다(35%). 또 이물질이나 기생충이 충수를 막기도 한다.
급성 충수염은 아주 흔한 질병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간한 ‘2015년 주요수술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한 해 동안 8만9620명이 충수 절제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 인원이 전체 수술 중 다섯 번째로 많았고, 특히 10대의 경우에는 1위(1만6930명)를 차지했다. 10대가 충수 절제술을 많이 받는 이유는 이 시기에 충수 내의 림프 조직이 과도하게 형성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충수의 ‘이유 있는’ 존재
이렇게 질병을 자주 일으키는 충수지만, 멀쩡한 충수를 잘라내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충수의 존재 가치가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미국 듀크대 의학센터의 윌리엄 파커 교수팀은 충수가 유익한 장내미생물의 피난처라는 연구 결과를 ‘이론생물학저널’에 발표했다. 대장이 병을일으키는 미생물에 감염된 경우, 설사로 대장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나면 충수에 숨어 있던 기존의 미생물들이 나와 다시 원래대로의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급성 충수염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충수 주위의 림프 조직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면역 글로불린 A(IgA)와 뮤신 단백질이 장내미생물의 성장을 돕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doi:10.1016/j.jtbi.2007.08.032). 파커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건강한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충수와 면역체계, 장의 구조, 조직의 주름 등 많은 것들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수가 병의 재발을 막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윈스럽대학병원 소화기내과의 제임스 그렌델 박사팀은 장염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Clostridium difficile)에 감염된 환자 254명을 연구했다. 그 결과 충수가 없는 사람은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에 의해 장염이 재발하는 경우가 48%나 됐지만 충수가 있는 환자의 재발률은 11%였다. 충수가 없는 환자는 장염이 재발할 가능성이 4배나 높은 것이다(doi:10.1016/j.cgh.2011.06.006).
이렇게 질병을 자주 일으키는 충수지만, 멀쩡한 충수를 잘라내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충수의 존재 가치가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미국 듀크대 의학센터의 윌리엄 파커 교수팀은 충수가 유익한 장내미생물의 피난처라는 연구 결과를 ‘이론생물학저널’에 발표했다. 대장이 병을일으키는 미생물에 감염된 경우, 설사로 대장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나면 충수에 숨어 있던 기존의 미생물들이 나와 다시 원래대로의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급성 충수염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충수 주위의 림프 조직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면역 글로불린 A(IgA)와 뮤신 단백질이 장내미생물의 성장을 돕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doi:10.1016/j.jtbi.2007.08.032). 파커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건강한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충수와 면역체계, 장의 구조, 조직의 주름 등 많은 것들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수가 병의 재발을 막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윈스럽대학병원 소화기내과의 제임스 그렌델 박사팀은 장염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Clostridium difficile)에 감염된 환자 254명을 연구했다. 그 결과 충수가 없는 사람은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에 의해 장염이 재발하는 경우가 48%나 됐지만 충수가 있는 환자의 재발률은 11%였다. 충수가 없는 환자는 장염이 재발할 가능성이 4배나 높은 것이다(doi:10.1016/j.cgh.2011.06.006).
다윈이 틀렸다! 진화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은 충수
파커 교수는 미국 미드웨스턴대 생물인류학 헤더 스미스 박사와 함께 충수의 기능을 진화적으로 살피는 연구를 시작했다. 포유류의 맹장과 충수의 계통 발생 분포를 연구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2009년 ‘진화생물학저널’에 첫 번째 연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더 상세한 내용의 논문도 내놓았다.
포유류 533종을 연구한 결과, 충수는 영장류, 설치류와 토끼, 오리너구리와 같은 단공류 그리고 일부 유대류만 가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충수가 8000만 년 동안 유지됐으며, 30여 차례에 걸쳐 따로 진화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대부분의 경우 한번 충수를 갖게 되면 진화 계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밝혀냈다. 충수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진화했으며, 진화 계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관이라는 점을 의미한다(doi:10.1016/j.crpv.2016.06.001). 스미스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충수가 있는 동물은 내장 내 림프조직의 밀도가 높다”며 “다른 포유류의 충수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면역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어떤 종은 충수가 있고, 어떤 종은 없을까. 스미스 박사는 “장내 미생물 환경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충수의 진화를 주도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며 “예를 들어 깨끗한 식수를 얻기 어려워 설사병에 쉽게 걸리는 동물, 서식지가 좁거나 집단의 크기가 커서 병원균에 쉽게 노출되는 동물이 충수를 진화시켰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충수 보존 치료 방법도 있어
충수가 건강에 유익한 장기라면, 우리는 충수 제거 수술을 중단해야 하는 걸까. 파커 교수는 “급성 충수염에 걸렸을 경우 반드시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충수를 무작정 절제하는 것에 대해 의사와 환자가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최근 소아를 중심으로 충수를 잘라내지 않고 보존하는 치료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충수에 천공이 없는(충수가 터지지 않은) 단순 충수염에 한해서 항생제를 이용해 충수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방법이다. 수액을 통해 항생제를 주입하면서 12~24시간 관찰한 뒤, 필요하면 제거 수술을 한다. 지난 2011년 최금자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급성 충수염이 의심돼 입원 치료한 12세 이하의 환자 650명을 분석했다. 그 결과 보존적 치료를 하는 중 복통이 심해져 수술을 받은 환자는 충수 절제술을 받은 환자 283명의 25.1%인 71명이었다. 중요한 점은 보존적 치료 중 염증이 심화돼 수술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바로 수술을 결정한 경우와 합병증이나 입원 기간, 진료비 측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doi:10.4174/jkss.2011.80.3.226).
2015년에 발표된 미국 네이션와이드아동병원의 연구 결과는 좀 더 극적이다. 병원 연구센터 소속 피터 미네시 박사팀은 복통이 시작된 지 48시간이 경과하지 않은 초기 단순 급성 충수염에 걸린 7~17세의 소아·청소년 102명을 대상으로, 환자 부모들에게 환자의 상황을 설명하고 수술과 보존적 치료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그러자 65명은 수술을, 37명은 보존적 치료를 선택했으며, 보존적 치료를 선택한 소아·청소년의 95%는 24시간 안에 증상이 호전돼 수술 없이 퇴원했다. 또 1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보존적 치료를 한 경우의 75%는 급성 충수염의 재발이 없었다(doi:10.1001/jamasurg.2015.4534).
애초에 급성 충수염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없는 걸까. 파커 교수는 “충수가 있는 다른 동물들은 사람처럼 급성 충수염에 쉽게 걸리지 않는다”면서 “급성 충수염은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과 같은 서구화에 의한 현대병”이라고 지목했다. 실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타민D 결핍이나, 섬유소는 적고 지방이 많은 식이습관, 운동부족, 스트레스,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장내미생물의 불균형 등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하찮게 여겼던 충수를 지키기 위해서 치료 방법부터 생활습관의 변화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
파커 교수는 미국 미드웨스턴대 생물인류학 헤더 스미스 박사와 함께 충수의 기능을 진화적으로 살피는 연구를 시작했다. 포유류의 맹장과 충수의 계통 발생 분포를 연구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2009년 ‘진화생물학저널’에 첫 번째 연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더 상세한 내용의 논문도 내놓았다.
포유류 533종을 연구한 결과, 충수는 영장류, 설치류와 토끼, 오리너구리와 같은 단공류 그리고 일부 유대류만 가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충수가 8000만 년 동안 유지됐으며, 30여 차례에 걸쳐 따로 진화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대부분의 경우 한번 충수를 갖게 되면 진화 계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밝혀냈다. 충수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진화했으며, 진화 계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관이라는 점을 의미한다(doi:10.1016/j.crpv.2016.06.001). 스미스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충수가 있는 동물은 내장 내 림프조직의 밀도가 높다”며 “다른 포유류의 충수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면역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어떤 종은 충수가 있고, 어떤 종은 없을까. 스미스 박사는 “장내 미생물 환경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충수의 진화를 주도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며 “예를 들어 깨끗한 식수를 얻기 어려워 설사병에 쉽게 걸리는 동물, 서식지가 좁거나 집단의 크기가 커서 병원균에 쉽게 노출되는 동물이 충수를 진화시켰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충수 보존 치료 방법도 있어
충수가 건강에 유익한 장기라면, 우리는 충수 제거 수술을 중단해야 하는 걸까. 파커 교수는 “급성 충수염에 걸렸을 경우 반드시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충수를 무작정 절제하는 것에 대해 의사와 환자가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최근 소아를 중심으로 충수를 잘라내지 않고 보존하는 치료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충수에 천공이 없는(충수가 터지지 않은) 단순 충수염에 한해서 항생제를 이용해 충수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방법이다. 수액을 통해 항생제를 주입하면서 12~24시간 관찰한 뒤, 필요하면 제거 수술을 한다. 지난 2011년 최금자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급성 충수염이 의심돼 입원 치료한 12세 이하의 환자 650명을 분석했다. 그 결과 보존적 치료를 하는 중 복통이 심해져 수술을 받은 환자는 충수 절제술을 받은 환자 283명의 25.1%인 71명이었다. 중요한 점은 보존적 치료 중 염증이 심화돼 수술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바로 수술을 결정한 경우와 합병증이나 입원 기간, 진료비 측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doi:10.4174/jkss.2011.80.3.226).
2015년에 발표된 미국 네이션와이드아동병원의 연구 결과는 좀 더 극적이다. 병원 연구센터 소속 피터 미네시 박사팀은 복통이 시작된 지 48시간이 경과하지 않은 초기 단순 급성 충수염에 걸린 7~17세의 소아·청소년 102명을 대상으로, 환자 부모들에게 환자의 상황을 설명하고 수술과 보존적 치료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그러자 65명은 수술을, 37명은 보존적 치료를 선택했으며, 보존적 치료를 선택한 소아·청소년의 95%는 24시간 안에 증상이 호전돼 수술 없이 퇴원했다. 또 1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보존적 치료를 한 경우의 75%는 급성 충수염의 재발이 없었다(doi:10.1001/jamasurg.2015.4534).
애초에 급성 충수염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없는 걸까. 파커 교수는 “충수가 있는 다른 동물들은 사람처럼 급성 충수염에 쉽게 걸리지 않는다”면서 “급성 충수염은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과 같은 서구화에 의한 현대병”이라고 지목했다. 실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타민D 결핍이나, 섬유소는 적고 지방이 많은 식이습관, 운동부족, 스트레스,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장내미생물의 불균형 등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하찮게 여겼던 충수를 지키기 위해서 치료 방법부터 생활습관의 변화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