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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포는 마음속에 있는 거죠

아직도 살아있는 할머니의 호랑이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두려움의 상징이다. 실제로 많은 동물들은 포식자인 호랑이를 보거나 냄새라도 맡으면 공포를 느끼고 피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호랑이’라는 말에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직까지 ‘호랑이’라는 정보가 우리 뇌에서 왜 공포를 유발하는지는 모르고 있다. 다만 동물실험에 따르면 이는 태어날 때부터 갖는 유전적 본능과 후천적 경험이 모두 작용하는 것이다. 고양이를 처음 보는 생쥐도 일단 냄새를 맡으면 줄행랑을 치는 건 본능이고, 전선을 물어뜯던 생쥐가 감전된 뒤 전선을 피하는 건 경험이다.
 

쥐가 고양이를 왜 무서워할까. 고양이에 대한 공포가 유전적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쥐 코에는 고양이 냄새만 맡는 부분이 따로 있다.


호랑아, 무섭게 생겨서 고마워

포식자와 피식자 간 공포유발 관계는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자연계에서 만일 고양이가 생쥐를 무서워한다면 굶어죽을 것이고, 생쥐가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멸종의 길을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자연계의 먹이사슬 관계가 유전적으로 뇌 속에 기록돼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그렇다면 이런 정보들이 뇌 속에서는 어떻게 존재할까? 고양이 냄새를 예로 들어보자. 생쥐 코에는 보통 냄새와 고양이 냄새를 맡는 부분이 따로 있다. 생쥐의 코 상피세포 중 보통 냄새를 맡는 부위를 주후각상피, 고양이 냄새를 맡는 부위를 보조후각상피라고 한다. 보조후각상피세포에는 고양이 냄새성분에만 반응하는 수용체들이 있는데, 이들 수용체가 반응하면 신경세포를 흥분시켜 뇌에서 공포 유발에 중요한 편도체를 자극한다. 따라서 생쥐가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고양이 냄새에 반응하는 수용체들이 있고 이 수용체들이 생쥐의 유전정보에 의해 자손 대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호랑이가 무섭다고 느끼는 이유는 피식자의 뇌 회로가 유전적으로 그렇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랑이는 그 모습도 무섭지만 사냥하는 동작도 무섭다. 피식자에게 공포감을 유발하려고 애를 쓰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토끼를 잡아먹을 때 호랑이는 살금살금 다가가 갑자기 덮친다. 화들짝 놀란 토끼는 도망가려 하지만 바로 호랑이 발에 채이고 진한 호랑이 냄새에 급작스런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이때 포효하는 호랑이 소리는 공포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그냥 ‘얌전히’ 잡아먹어도 될 것을 이렇게 피식자에게 공포를 유발하는 세리모니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증 연구에 따르면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이면 통증감각이 오히려 감소한다. 영국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 박사의 자서전을 보면 아프리카에서 사자에게 물렸을 때의 일화가 나온다. 원주민들의 사자사냥을 구경하던 중 궁지에 몰린 사자가 리빙스턴 박사를 덮쳐 어깨를 물었던 것이다.

그는 사건 당시 ‘놀랍게도 아프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포효하면서 자신을 공격한 사자의 행동과 요란한 울음소리에 리빙스턴 박사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고, 이로 인해 통증자극이 뇌로 들어오는 경로가 차단돼버린 것이다. 결국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포식동물은 피식동물을 상당히 ‘배려’하는 셈이다. 피식자가 느끼는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공포감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공포감이 생기는 이유와 역할에 관한 생물학적 의문에 대해 아직까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람과 같이 일반 먹이사슬에서 예외인 경우 공포감이 생겨나는 이유는 더욱 모호하다. 일례로 사람 코의 보조상피세포는 포식자들의 냄새에 관한 수용체가 망가져 있어 작동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만일 사람에게도 이런 수용체가 활동하고 있다면 어떨까. 휴일에 동물원에 놀러갔다가 내내 공포를 느낄 것이고 포식동물 우리 앞에선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뭔지 몰라도 미리 겁먹는다

그렇다고 사람의 뇌에 공포회로가 없는 건 아니다. 비록 냄새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공포회로가 존재한다. 장난으로 친구에게 몰래 다가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등을 치면서 깜짝 놀라게 한 경험이 몇 번쯤 있을 것이다. 장난치는 사람은 재미있지만 당하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호흡이 멈추면서 소름이 돋는다. 또 잠깐 동안이지만 상대방을 확인하기 전에 본인도 조절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이렇게 우리 뇌는 공포를 유발한 대상을 파악하기 이전에 먼저 공포감을 형성하는 회로를 갖고 있다.

우리 몸 곳곳에는 말단신경세포들이 퍼져있어 몸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이런 신호전달에 중요한 뇌 부위가 시상핵이다. 후각을 제외한 모든 자극은 시상핵을 통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시상핵은 대뇌피질과 연결돼 있어 우리 몸에서 일어난 일들을 대뇌피질세포에 전해준다. 하지만 공포자극을 받았을 때 시상핵은 대뇌피질로 전달하기 전에 편도체를 먼저 자극한다. 미국의 저명한 신경심리학자 조세프 르두 박사는 시상핵-편도체 경로가 무의식적인 공포를 유발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즉 대뇌피질이 자극을 분석하고 인식하기 전에 일단 편도체가 자극받아 먼저 공포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영국 탐험가 리빙스턴은 그의 자서전에 '사자에 물렸는데도 아프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공포가 통증자극이 뇌로 들어가는 경로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이유

그렇다면 편도체는 무엇이고 무슨 기능을 할까? 편도체(扁桃體)는 아몬드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편도체에는 여러 신경세포가 세 그룹을 이루며 매우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편도체의 대표적인 기능은 공포자극과 공포반응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공포관련 일차자극이 시상핵을 통해 편도체를 자극하면 우리 몸에서 공포에 관련된 생리학적인 이차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편도체가 손상된 환자는 공포영화를 봐도 무섭다는 사실은 알지만 공포반응이 정상인에 비해 현저히 낮다.

편도체의 중요한 또다른 기능은 공포를 학습하는데 있다. 즉 이전에는 공포를 유발하지 않던 대상이 특정 사건 이후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경우다. 흰쥐에게 물리면 아픈 자극과 흰쥐를 구성하는 모든 자극들이 편도체에서 연합이 일어난다. 통증을 느꼈던 기억과 흰쥐의 모양이나 색깔 같은 정보가 섞인다는 얘기다. 그러면 그 후에도 나를 물었던 바로 그 쥐가 아니라 아무 흰쥐가 나타나더라도 무서워하게 된다. 심지어 까만 쥐나 흰 토끼를 봐도 무서운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도 일리가 있다.

이 같은 과정을 ‘공포조건화’(Fear conditioning)라고 한다. 대개 시간이 지나면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감이 점차 약해지지만 공포조건화가 심하면 정신질환에 이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생존자 중 많은 사람들은 지하철 타기를 꺼린다고 한다. 지하철역 근처에만 가도 호흡과 심박수가 증가하고 과거의 기억들이 영화를 보듯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증상을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한다. 공포와 자극의 관계가 너무 강화돼 시간이 지나도 대상에 대한 공포감이 약화되지 않는 정신질환이다.

그렇다면 공포조건화가 일어나는 동안 도대체 편도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흰쥐에게 물리면 통증자극과 흰쥐에 관한 다양한 자극이 편도체로 들어와 편도체 신경을 자극한다. 이렇게 두 가지 이상의 신호가 들어오면 다양한 입력신경과 편도체 신경을 연결하는 부위인 시냅스가 ‘강화’(Potentiation)된다. 여기서 시냅스 강화란 같은 자극에 대해 신경세포가 더 크게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시냅스가 강화되면 예전엔 편도체를 자극할 수 없어 공포를 유발하지 않던 자극들이 편도체를 충분히 자극할 수 있게 돼 출력신호인 공포반응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편도체의 시냅스 강화 결과 흰색이 전에는 편도체 신경의 출력신호를 유발할 수 없었으나, 흰쥐에게 물린 뒤에는 흰색을 볼 때마다 또는 쥐의 모습을 볼 때마다 출력신호를 유발해 공포를 느끼게 된다.

편도체는 원인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대뇌와 따로 작동한다. 우리의 의지로 공포감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버드대 슈바르츠 박사팀이 측정한 낯선 얼굴을 봤을 때 노이ㅢ 반응. 편도체(Amy)와 후두측두피질(OTC) 영역이 활성화 됐다.
 

성격 형성 좌우하는 편도체

지금까지 공포감은 편도체를 포함하는 복잡한 신경회로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이전에 두렵지 않았던 사물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학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봤다. 그렇다면 우리 뇌는 왜 공포감을 생성해 두려움을 자초하는 것일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편도체는 공포감뿐 아니라 사회성이나 성격 등 인간의 고등 기능에 두루 관여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칼 슈바르츠 박사팀은 2003년 ‘사이언스’에 인간의 성격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발표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엄한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새로운 물체나 사람이나 환경에 대한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 연구팀은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모르는 사람의 얼굴사진을 보여준 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를 찍어 비교해봤다. 실험결과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낯선 얼굴에 대해 편도체가 과민하게 반응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반응은 사람의 성격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미국의 클레어 클로닝거 박사는 ‘자극추구형’(novelty-seeking) 성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극추구형 성격은 새로운 경험이나 자극을 얻기 위해 위험한 행동을 감수하는 일종의 ‘기질’(Temperament)을 뜻한다. 번지점프나 래프팅,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자극추구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성격은 알코올 중독과 같은 약물남용, 쇼핑중독, 범죄와 같은 사회문제성 성향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것에는 우리에게 더 많은 보상을 줄 가능성과 위험을 줄 가능성이 모두 내재돼 있다. 따라서 우리 뇌에 두 가지 정서적 반응, 즉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유발하게 된다. 결국 이 두 가지 성향의 비율에 따라 사람의 성격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편도체는 단순히 공포감을 형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에 따라 행동을 조절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편도체는 지금도 부지런하게 세상 사람들과 다양한 사물에 대한 평가를 하고 정보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보들은 사람이 성장하면서 성격과 자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재료가 된다. 따라서 공포감을 형성하는 신경회로를 심도있게 연구하면 우리 뇌가 어떻게 성격이나 자아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얻게될 것이다.

공포감은 필요에 의해 뇌가 만들어낸 것이고, 오랜 기간 뇌 속에 남아 우리의 정서와 성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이야기해주신 호랑이가 뇌 속에서 신경과 신경 사이의 시냅스를 포효하며 아직도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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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대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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