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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지구 치료할 녹색 처방전

사막에 꽃 피우고 검은땅 씻어낸다

매년 봄이면 중국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 때문에 숨조차 쉬기 힘들다. 여름에는 땅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비가 오지 않다가 갑자기 게릴라성 폭우가 퍼붓기도 한다. 가을에는 때 이른 서리나 우박으로 한 해 농사가 한순간에 사라진 적도 많다. 지구온난화, 기상이변, 엘니뇨. 지구가 이상 징후들로 몸살을 앓을 때마다 등장하는 말이다. 지구에 닥친 이런 재앙들은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것이라고 하지만 지구의 생태계를 ‘되감기’해 처음부터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가지 밖에 없다. 병든 지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처방전’을 지어주는 것. 도대체 약효가 가장 뛰어난 처방전은 뭘까? 전 세계 ‘명의’들은 ‘식물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3월은 꽃 피고 새 우는 봄,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4월은? 언제부턴가 4월은 모래바람의 달이 돼버렸다. 중국에서 오는 황사 때문이다. 중국에서 황사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뭄으로 인해 건조지역에 계속해서 사막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무리하게 개간하고 방목한 것도 큰 이유다. 한반도의 4배에 달하는 사막과 황토고원이 매년 2330km2씩 늘어나고 있다. 한 해에 제주도보다 넓은 땅이 사막화되는 셈이다. 몽골은 국토의 90% 이상이 사막화위기에 놓여 있다.

수분과 온도 다스린다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사막이 되기 쉬운 지역에 심는 겁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환경생명공학연구실 곽상수 박사는 식물이 황사의 처방전이라고 말했다. 건조한 모래 언덕에서 식물이 자랄 수만 있다면 황사도 막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곽 박사는 5년 전부터 식물의 유전체 정보를 이용해 가뭄이나 냉해 등 환경스트레스에 내성을 가진 식물을 개발하고 있다.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고마운 산소를 독성인 활성산소로 바꿔버린다. 활성산소에 의한 세포의 피해를 산화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인간에게는 암과 같은 질병의 원인이 되고, 식물에게는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수분이 없는 건조한 사막은 식물에게 이런 스트레스를 주는 대표적 환경이다.

곽 박사는 고구마에서 SWPA2라는 항산화효소 유전자 프로모터를 분리해 개발했다. 이 프로모터는 평소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대상 식물이 산화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때부터 가동되기 시작한다.

항산화 효소인 CuZnSOD와 APX 유전자를 엽록체에 동시에 발현시켜 산화스트레스에 잘 견디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곽 박사는 SWPA2를 이용한 유전자 변형 감자와 고구마를 대상으로 SWPA2가 높은 온도에서 잘 견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이용하면 가뭄과 같은 환경스트레스를 이겨내는 식물을 개발할 수 있다. 사막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지난해부터 곽 박사는 중국과학원 물토양보전연구소, 일본 돗토리대 건조지연구센터 등과 공동으로 사막화방지를 위해 건조에 잘 견디는 식물 개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최근에는 국립산림과학원과 함께 바람도 막아주고 물이 부족한 마른 땅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형질전환 포플러를 개발하고 있다.

경상대 생화학과 이상열 교수도 식물의 특정 단백질이 환경과 스트레스의 종류에 따라 적절한 기능으로 변신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프록시레독신이라는 단백질은 평상시에는 필요이상 세포내에 있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다가 활성산소가 너무 많아지면 죽어가는 고분자를 보호하는 샤페론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 식물의 이런 생체 방어 기전을 응용하면 가뭄이나 냉해 등 환경스트레스를 견디는 식물을 개발할 수 있다.

곽 박사는 “한 가지 유전자로 여러 종류의 환경스트레스에 견디는 식물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상대 윤대진 교수는 항산화효소 유전자를 조절하는 NDPK2 유전자를 애기장대에 도입해 저온과 염류 등의 스트레스에 내성을 가진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건조한 지역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사막이 되기 쉬운 지역에 심어 사막화를 예방할 수 있다.


중금속 먹고 소화시켜

“경남 고성의 폐광지에는 10년이 지났지만 풀 한포기 자라지 않아요.” 국립산림과학원 노은운 박사의 얘기다. 양분과 수분이 없고, 무엇보다 토양에 중금속이 많기 때문이다. 폐광지는 돌멩이 색도 검다. 여름에는 계란프라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온도가 높다. 최악의 조건이다. 과연 이런 땅도 식물이 치유할 수 있을까?

“박달나무가 적격입니다.” 노 박사는 폐광 지역처럼 중금속에 오염된 토양도 박달나무를 심어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달나무가 중금속을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해바라기가 우라늄을 흡수하고, 클로버가 기름을 섭취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예다. 자연 상태에서 식물 자체의 능력을 이용해 환경을 정화하는 것.

그런데 최근 식물학자들은 식물 자체의 정화 능력보다 유전자 조작을 이용해 그 능력을 몇 배로 늘리는 것에 훨씬 관심이 많다. 식물은 뿌리에서 수분과 양분을 끌어올리고, 뿌리와 줄기, 잎 등에서는 이를 흡수하고 축적하며, 오염물질을 영양분으로 사용하기 위해 분해하는 등 체내에서 여러 작용을 한다. 식물의 이런 특성을 이용한 것이 바로 ‘식물을 이용한 환경정화’(phytoremediation)다.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이영숙 교수는 식물의 흡수와 축적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발굴했다. YCF1은 식물이 중금속을 흡수하면 이 중금속을 액포 등 세포 내에 상대적으로 해가 적은 곳에 축적한다. 이 교수는 “효모에서 YCF1을 얻은 후 이를 애기장대에 넣었더니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이 식물의 몸 안에 있어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교수의 연구결과는 지난해 생명공학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식물 생리학’(Plant Physiology)에 발표돼 주목을 받았다.

식물이 중금속을 흡수하면 아예 중금속과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도 있다. 파이토킬레틴(phytochelatin)과 메탈로타이아닌(metallothionein)이 대표적 예다. 이들은 아미노산 내의 황산기를 중금속과 결합시켜 중금속의 독성을 감소시킨다.

국내 환경정화벤처기업 화이젠의 김태령 박사는 “중금속을 환원시키는 유전자도 있다”고 말한다. 독성이 강한 수은 이온을 독성이 없는 수은 원소로 환원시켜 대기로 증발시켜 버리는 것이다. 수은 이온을 환원시키는 merA와 유기 수은을 환원시키는 merB는 조지아대 연구팀이 발굴했다. 김 박사는 “현재 이 유전자들을 포플러, 담배, 벼 등에 삽입해 실제 효능을 실험 중”이라고 밝혔다. 조지아대는 에피젠사와 공동으로 유전자 조작 포플러를 이용해 미국 코네티컷주의 덴버리 지역 폐금광의 수은을 정화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애기장대에 YCF1 유전자를 넣으면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액포가 중금속을 흡수해 축적하기 때문이다.


시간 오래 걸리는 것이 흠

식물 처방전에도 약점은 있다. 식물이 자라서 정화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짧아야 몇 달이고 길게는 몇 년까지 필요하다. 포플러는 다 자라는데 10년이나 걸린다.

유전자 변형 식물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영숙 교수는 “현재 유전자 조작 식물에 대한 안전성을 테스트 중”이라며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세계적으로 녹지를 만드는 추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식물을 이용한 환경정화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환경정화 기술을 응용해 환경오염 감지용 식물이 개발되기도 했다. 지뢰밭을 찾아내는 식물이 대표적 예다. 지뢰에서 이산화탄소가 조금씩 유출되면 이에 반응해 잎의 색이 바뀌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호주 멜버른대 앨런 베이커 교수에 의하면 중금속을 저장하는 능력이 있는 식물이 세계적으로 440종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해 집계를 보면 약 10%인 44개의 식물을 이용한 환경정화 기술이 특허를 받았거나 특허 심사 중인데, 이 중 중금속 정화에 관련된 기술이 절반을 차지한다.

지금 식물학자들이 약용식물을 찾아 전 세계를 헤매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는 중금속을 먹어치울 유전자와 식물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헤맬지도 모르겠다.
 

포플러의 형질 전환 기술을 개발한 국립산림과학원의 노은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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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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