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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청진기, 의료영상

CT, MRI, PET에서 진화한 3차원 아바타

약지에 결혼반지를 낀 아내 안나 베르터의 손가락 뼈가 드러난 사진


X선을 발견한 공로로 1901년 노벨물리학상을 탄 빌헬름 뢴트겐은 1895년 기자회견에서 “드디어 아내가 보인다”고 소감을 밝혔다. 약지에 결혼반지를 낀 아내 안나 베르터의 손가락 뼈가 드러난 사진을 두고 한 말이다.

1895년 말 뢴트겐은 아내의 손을 들여다본 것을 시작으로 사람의 몸속을 들여다보는 기술을 개발했다. 비결은 X선. 뢴트겐은 일간지 ‘비엔나 프레스’가 그의 연구결과와 사진 한 장을 실은 덕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사진이 부인 안나의 손 X선 사진이었다. 전자를 발견한 조세프 톰슨은 이를 두고 “뢴트겐은 외과의사에게 X선을 알려줘 인류의 고통을 줄이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뢴트겐이 부인의 속을 봤듯, 현대 의사도 환자의 속을 보기 시작했다.

CT의 촬영원리^CT는 인체 부위마다 X선을 투과하는 양이 다른 성질을 이용해 인체의 단면을 영상으로 구현한다. CT 촬영기 안에서 X선을 방출하는 빔이 360。회전하며(1) 인체의 단면을 만든다(2). 컴퓨터는 단면을 모아(3) 입체 영상으로 재구성한다(4).


X선과 자기장이 그리는 몸속 세상

두 눈으로 몸속을 보기 전, 의사들은 문진(問診), 소리, 냄새로 진찰했다. 마치 ‘공이 여러 개 든 종이 상자’를 흔드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이런 경우 공이 이리저리 부딪히는 소리는 들리지만 그 공이 무엇인지, 어떤 재질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추측만 할 뿐. 둔탁한 소리가 들리면 골프공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고, 가벼운 소리가 들리면 탁구공이라고 추측하는 방식이다. 감각의 80%를 시각에 의존하는 인간에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일종의 한계다.

그런데 눈으로 몸속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의사는 물론 환자, 보호자까지 진단에 확신을 갖게 됐다. 과학자들은 몸을 투과하는 X선이나 자기장을 이용했다. X선이나 자기장은 인체를 투과할 뿐 아니라 각 조직의 성분과 밀도에 따라 투과되는 에너지 양이 다르다. 이런 차이가 영상으로 드러난다.

요즘 병원에서 인체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는 방법으로는 X선 촬영 이외에도 CT(컴퓨터 단층촬영, Computer Tomography), MRI(자기공명영상법, Magnetic Resonance Imaging), PET(양전자단층촬영, Positron Emission Tomography) 등이 있다. 모두 20세기 후반에 개발된 기술이다. 골절, 근육통, 암 같이 메스로 몸을 열어 봐야 알 수 있었던 질병을 외부에서 촬영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진단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환자와 의사의 수고도 줄었다.

CT는 인체 주위를 돌면서 X선을 투사한 뒤 그것이 투과된 정도를 컴퓨터로 분석해 내부의 자세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X선에 자주 노출되면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 때문에 인체의 공명현상을 이용한 MRI라는 의료영상이 고안됐다. 자기장 환경에서 고주파 에너지를 받은 원자는 자기장이 사라지면 받은 에너지만큼 내놓는다. 이렇게 에너지를 방출하는 과정을 ‘공명’이라 한다.

MRI는 몸속에 가장 풍부한 수소 원소(H)에 3 테슬라(T)의 자기장을 건 뒤 128mHz의 고주파를 쏜다. 그런데 신체 부위는 단단한 정도에 따라 내놓는 에너지에 미묘한 차이가 난다. KAIST 전자전산학과 박현욱 교수는 “간경화 부위가 내놓는 에너지는 정상인 간 부위에서 발산하는 에너지 양과 다르다”며 “이 차이를 MRI기계가 감지해 영상으로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MRI는 인체에 해가 없고 영상의 해상도도 CT보다 높은 장점이 있다.

CT와 MRI가 형태를 보는 영상이라면, PET는 분자수준에서 영상을 보는 방식이다. PET는 혈관에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약품을 주사해, 방사성 의약품이 몸속에서 방출하는 방사선을 감지한 영상이다. 양전자는 방출되자마자 반(反)물질인 전자를 만나 소멸하면서 감마선 2개를 정반대 방향으로 내놓는다. 두 개의 감마선을 동시에 검출하면 몸속에 있는 방사성의약품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PET가 ‘카메라’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알츠하이머의 경우 MRI로 촬영하면 뇌의 크기가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아밀로이드-β 가 뇌의 어느 부위에 쌓여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때 유용한 것이 PET다. 서울대 의대 정재민 교수는 “탄소동위원소(11C)를 붙인 PIB(Pittsburgh)라는 방사성 물질을 정맥에 주사하면 몸속을 이동하다가 뇌의 아밀로이드-β 단백질에 달라붙는다”며 “질병 초기단계라서 질병부위가 미세할지라도 PET은 이를 잘 잡아낸다”고 설명했다. 영상에는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한 부위가 반짝거리는 듯 보인다. 영상에 알츠하이머병 부위가 정확하게 드러나므로 진단과 진료가 쉽다는 말이다.

PET가 질병이 있는 부위에 축적되는 방사성의약품의 분포를 영상화해 병의 근원지를 알려주듯 가까운 미래에는 영상에 나타난 형광색을 추적해 질병을 치료할 전망이다.
 

MRI의 촬영원리^MRI는 몸속 특정 원소(주로 수소를 이용)의 공명 에너지 차이를 영상으로 구현한다. 몸속 부위마다 수소 원자의 밀도가 다르다(1). 자기장을 약 3테슬라 강도로 걸면 수소 원자핵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된다(2). 고주파를 쏘면 수소 원자핵이 공명한다(3). 고주파를 멈추면 수소 원자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데 이때 내보내는 신호를 분석해 영상을 만든다(4).


컴퓨터 속 3차원 아바타

1980년대부터 CT를 시작으로 PET 등 다양한 단층촬영 장치들이 개발됐다. 몸속을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 더불어 의사들의 시선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넓어졌다. 3차원 영상은 인체의 내부를 2차원으로 찍은 사진을 수천 장 모아 인체 내부를 3차원으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몸 안의 구석구석을 잘라보듯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

서울대 의대 김세형 교수는 “병원 현장에 3차원 영상장비가 도입된 뒤 진료가 쉽고 정확해졌다”고 말하면서 “대장을 2차원으로 촬영하면 대장이 서로 겹쳐 진단을 내리기 힘들었는데, 3차원 영상은 대장을 입체로 보여줘 의사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까지 치료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3차원 영상이 2차원 영상의 한계를 극복한 셈이다.

최근에는 3차원 영상을 뛰어넘는 4차원 영상도 도입되고 있다. 일명 ‘가상영상’이라 불리는 이 영상은 일종의 ‘컴퓨터 속 아바타’다. 환자를 3차원 CT로 촬영한 뒤 컴퓨터 속에서 장기와 혈관, 피부 등을 재구성한다. 단순 CT 영상으로는 볼 수 없는 동맥이나 정맥까지도 관찰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혈관 내부모습을 보는 혈관 내시경도 시도되고 있다. CT는 현재 1mm이내의 물체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고해상도를 자랑한다. 또 초당 프레임 속도가 10~30장 정도다.

만약 환자가 암에 걸렸는지 알아볼 때, 앞으로는 굳이 살아있는 조직을 떼어내는 조직검사를 할 필요 없이 가상영상만으로 장이나 위의 내벽을 샅샅이 볼 수 있다. 또한 내시경 검사를 할 때도 외부에서 기도나 항문으로 카메라를 넣을 필요 없이 가상 아바타의 소화기 내벽을 보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기존의 내시경은 화면이 진행하는 방향을 중심으로 180° 영상만 볼 수 있으므로 나머지 180°에서 벌어지는 일은 의사가 알아챌 수 없다”며 “가상내시경을 이용하면 영상을 360°로 자유롭게 돌려가며 장 속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상내시경은 크기가 1cm 이상인 종양일 경우 판독률이 90%가 넘을 정도로 실제 모습을 정확히 보여준다. 1cm보다 작은 용종은 암이 될 확률이 1% 이하이므로 1cm 이상의 용종을 잘 찾아내는 것이 진단의 핵심이다.

의료영상 덕분에 의사는 확신을 가지고 진단을 내릴 수 있게 됐고 진단의 정확도도 높아졌다. 환자는 영상을 통해 자신의 질병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서울대 의대 최병인 교수는 원격진료의 가능성도 점친다. 그는 “어디서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유비쿼터스 헬스(U헬스) 세상이 오면 의료영상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영상유도수술이나 가상 수술은 의료영상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3의 의술(醫術)인 의료영상은 인류의 건강을 뒷받침하는 파수꾼으로 불릴 만하다.
 

PET 영상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질병부위에 모여 색을 나타내는 원리를 이용했다. 이 사진은 간질환 환자의 PET 영상으로 노란색 원이 질병부위다.


알쏭달쏭 의료영상 콕 집어보기!

병원에 가면 “CT는 찍어봐야죠”, “MRI도 해봅시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CT와 MRI는 어떻게 다를까. 질병의 조기 진단에는 PET가 좋다는데…. 이제 21세기 청진기 역할을 하는 다양한 의료영상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다양한 의료영상의 특징


테슬라*
공간의 한 지점에서 자기장의 크기를 나타내는 국제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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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기자
  • 진행

    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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