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작년 11월 15일 포항지진이 발생한 뒤 김광희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와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지열발전이 포항지진을 유발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두 교수는 최근 그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논문 교신저자인 김광희 교수가 그 연구 내용을 직접 해설했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31초. 경북 포항시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은 우리나라에서 지진계로 지진을 관측하기 시작한 1978년 이후 2016년 발생한 경주지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지진이었으며,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지진이다.
지진의 크기를 측정할 때 대중에게 친숙한 리히터 규모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진이 발생할 때 방출되는 에너지의 크기를 측정할 때는 모멘트 규모를 사용한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이 발표한 경주지진의 모멘트 규모는 5.4이고 포항지진의 모멘트 규모는 5.5인 점을 고려하면, 포항지진은 경주지진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방출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지진이 잘 발생하지 않았던 포항 지역에 이처럼 큰 지진이 발생한 이유는 뭘까. 우리 연구팀은 근래 포항 지역에서 이례적인 지진들이 새로 발생한 원인을 파악하던 중 작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이 진앙 주변에 위치한 지열발전소의 유체(流體) 주입에 의해 발생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갖게 됐다.
이런 의혹을 가지고 시작한 연구에서 최근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을 위 한 유체 주입에 따 른 유발지진(induced earthquake·인간의 활동으로 발생한 지진)일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를 얻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4월 27일자에 발표했다.doi:10.1026/science.aat6081
인간의 활동에 의한 유발지진
대부분의 지진은 지각이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응력작용과 화산활동 같은 자연적인 원인으로 발생하지만, 인간 활동으로 유발될 수도 있다. 인간 활동으로 유발된 경우를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인간의 활동이 지진 발생에 방아쇠 역할만을 한 경우와, 인간의 활동이 지진 발생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을 각각 촉발지진(triggered earthquake)과 유발지진(induced earthquake)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구분이 매우 어려우므로 이 글에서는 인간의 활동과 관련된 지진을 모두 유발지진이라고 부르겠다.
지진을 일으키는 인간의 활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핵실험과 같은 대규모 폭파나, 댐이나 저수지를 건설해 대량으로 물을 저장하는 경우, 광산 개발, 인위적으로 지하에 유체를 주입하거나 배출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인간 활동으로 발생하는 유발지진의 대부분은 크기가 매우 작아서 사람이 느끼지 못하고, 보통은 지진을 관측하기 위해 설치해 둔 지진계에서만 관측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최근 석유와 셰일가스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이런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땅속에 유체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석유와 셰일가스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이들 에너지원의 경제성이 확보됐지만, 이 과정에서 주입한 유체가 지진을 유발하는 것이다.
지열발전에 필요한 물 주입
지구 내부의 온도가 지표보다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지구 내부에 저장된 열을 지열에너지라고 한다. 지열에너지는 다른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가동 효율이 높고, 지속가능한 재활용 자원이다. 특히 경제적 효율이 높아 지속가능한 신재생에너지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동남부 지역은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열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포항 지역은 지하 4~5km의 온도가 150도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땅속의 지열에너지를 지표로 끌어올려 전기 생산에 활용하는 것이 지열발전이다. 땅속의 열을 지표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열을 운반하는 매개체인 물과, 물을 뜨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2012~2015년 포항 지역에서 지하 약 4.5km에 두 개의 시추공을 건설했다. 한 개의 시추공(주입정)을 통해 물을 주입한 뒤 주입된 물이 다른 하나의 시추공으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주위의 지열을 흡수해 뜨거워지면, 뜨거워진 물을 다른 시추공(생산정)을 통해서 지표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시설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연 상태에서는 지하 4~5km에서 물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못하기 때문에 지하에 물이 이동하거나 머무르면서 주위의 지열을 흡수하는 지하공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줘야 한다.
이렇게 만든 지하공간을 ‘인공지열저류층(EGS·Enhanced Geothermal System)’이라 부른다. 인공지열저류층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지하의 암석을 깨트리기 위해 강한 수압으로 물을 주입해야 한다. 포항 지열발전소에서도 이 작업이 이뤄졌다.
포항지진, 물 주입 결과일 가능성 높아
포항 지열발전소 현장의 물 주입으로 포항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물 주입과 발생한 지진 사이에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
경주지진의 여진을 조사하던 우리 연구팀은 2016년부터 포항 흥해 지역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작은 지진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특히 지난해 4월 15일 규모 3.0의 지진이 발생한 뒤 지열발전소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먼저 과거 포항 지역의 지진 자료를 조사했다. 기상청은 1978년 이후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의 발생 위치와 시간, 그리고 규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포항 지열발전소 부근 반경 10km 이내에서 1978~2015년에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이력이 없었다.
하지만 인공지열저류층 생성을 위한 물 주입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16년 1월~2017년 9월 5회에 걸쳐 2개의 시추공을 통해 물이 주입됐는데, 물 주입이 시작되면서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하다가 물 주입이 중지되면 지진 발생이 확연히 줄어드는 현상이 4회의 물 주입 과정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우리 연구팀은 포항 지열발전소 주위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정확히 관측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10일, 지진이 발생하기 5일 전에 지열발전소 주변에 8개의 지진계를 설치했다. 당시 우리가 큰 지진이 발생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진이 발생한 뒤 미리 설치한 지진계를 통해 관측한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규모 5.4의 포항지진 본진과 6회의 전진이 발생한 위치는 물 주입을 위해 뚫은 두 개의 시추공 위치와 거의 일치하고, 지진의 발생 깊이는 시추공의 깊이와 거의 일치했다.
포항지진 이후 발생한 여진의 분포를 통해서는 포항 지진과 함께 활성화된 지하 단층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를 주입정과 생산정의 위치와 비교한 결과 두 개의 정(井)은 단층대 부근 혹은 단층대를 관통해 건설된 것으로 파악됐다. 물이 직접 단층에 주입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결과다.
즉, 지열발전을 위한 유체 주입정과 생산정이 우연의 일치로 단층을 관통해 건설됐고, 여기에 주입한 물이 단층에 주입되면서 포항지진이 유발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스위스-독일 연구팀, 유발지진 가능성 주장
우리 연구팀의 논문과는 별도로 슈테판 비에머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교수팀과 토어스텐 담 독일 포츠담대 교수팀은 포항지진이 유발지진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 4월 27일자에 동시에 발표했다.doi:10.1126/science.aat2010
연구팀은 원거리 지진자료와 인공위성 레이더 원격탐사 자료를 이용해 역시 포항지진이 유발지진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지진이 발생한 위치가 지열발전소와 가까울수록, 지열발전과의 연관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리고 본진과 최대 여진들은 지열발전소 2km 이내에서 발생했으며, 2017년 11월 15~30일에 관측된 본진과 46회의 여진의 깊이가 3~7km 지점에서 발생했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또한 이 심도는 포항 지역에서 발생했던 자연지진에 비해 특이하게 얕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연구팀이 위성자료를 분석한 결과, 본진이 최대 4cm의 지표의 변위를 일으켰으며, 지진을 발생시킨 단층은 경사가 매우 가파른 역단층으로 지열정의 바닥 아래를 직접 통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 규모 5.4의 포항지진이 주변 지열발전 프로젝트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포항지진은 아주 적은 양의 물이 지하에 주입되면서 큰 지진을 일으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포항지진은 국내 지진 피해 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남겼다. 이로 인해 지열개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지열에너지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포항지진으로 인해 지열발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열만 고려하고 지열발전에 수반해 발생할 수 있는 지진과 그 피해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지 않았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지열발전소뿐 아니라 대규모 지하공간 활용을 위한 사업을 진행할 때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지질재해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광희_kwanghee@pusan.ac.kr
미국 멤피스대에서 지질학/지구물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만 중앙대 연구원과 대만 중앙과학원 지구과학연구소 연구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2014년부터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육지과 바다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특성, 지진과 단층의 상관성, 지하구조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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