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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참살이 약품 찍어내는 식물공장

먹는 백신 만들고 인공 산삼도 쏟아내

1796년 영국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를 예방하는 우두접종법을 개발한 이후 ‘백신=아픈 주사’라는 공식이 성립했다. 인류는 간염, 소아마비, 홍역, 독감, 디프테리아 등 수많은 병을 백신주사로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픈 주사 없이 예방 접종을 할 수 없을까. 치료 효과는 높고 고통은 제거한 ‘참살이(웰빙) 약품’의 해답은 식물에 달려 있다.
 

생명연 김현순 박사는 먹으면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 감자와 백신 토마토를 연구하고 있다. 먹는 백신은 저개발 국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씨감자 먹어 간염 예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현순 박사는 요즘 ‘먹는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먹기만 하면 B형 간염이나 유아설사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감자와 토마토다. 연구팀은 쥐에 백신 감자를 먹인 결과 실험한 쥐의 60%가 간염 예방 능력을 갖게 하는데 성공했다.

“백신 감자는 주사와 원리가 같아요. B형 간염 바이러스는 단백질로 이뤄져 있어요. 이중에서 항원 단백질의 유전자를 감자의 DNA에 넣습니다.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품고 있는 유전자 변형 감자를 만드는 것이죠.”

동물이 이 감자를 먹으면 일부 바이러스 단백질이 소화되지 않고 작은창자까지 내려온다. 이 단백질은 작은창자의 점막에 닿는데 그곳에서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항체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먹는 백신은 1990년대 초반 미국 과학자 찰스 안첸이 아프리카에서 백신 바나나를 연구하면서 시작됐어요. 가난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바나나를 먹으며 질병을 예방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주사 백신은 저장, 수송 과정에서 변하기 쉬워 저개발 국가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먹는 백신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바나나다. 안첸 박사는 지난해말부터 남아프리카에서 백신 바나나를 재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왜 김 박사는 바나나 대신 감자를 골랐을까. 그는 “감자는 껍질이 두꺼워 위 속에서 덜 파괴되고 유전자 조작도 쉽다”고 말했다. 생명연에서 개발한 씨감자는 사탕만큼 작아 쉽게 먹을 수 있다.

치매 막는 감자도 흥미롭다. 치매는 뇌에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쌓이면서 생긴다. 연구팀은 이 단백질을 담은 감자를 쥐에 먹인 결과 쥐에서 항체가 생긴 것을 확인했다. 위험한 치매 단백질은 몸에 직접 주사하기 어려워 먹는 백신이 주사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포항공대 벤처 제노마인이 자궁경부암을 대상으로 먹는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생명연 곽상수 박사는 돼지설사병을 막는 고구마를 개발하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지난해 “에이즈를 예방하는 옥수수나 담배가 개발돼 2009년에 남아프리카에서 임상시험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 박사는 “먹는 백신이 백신 주사 만큼 효과를 입증하려면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도 “저개발 국가와 기존 백신 주사에 효과가 없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 노화 막는 황금 오이

식물공장 시대가 열리고 있다. 식물 하나하나가 마치 공장처럼 사람에게 필요한 의약품이나 지금까지 없던 식품을 생산한다. 식물공장은 친자연 이미지에다 무수한 자원을 갖고 있고 대량 생산이 쉽다.화학공장대신 참살이 시대를 이끌 깨끗한 첨단 공장이다. 식물공장은 대개 식물에 필요한 물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넣어 완성한다. 유전자변형작물(GMO)의 한 종류다. 초창기 유전자변형작물이 해충이나 제초제에 강한 작물, 수확량이 많은 작물이었다면 2세대 GMO인 식물공장은 먹는 백신을 비롯해 화장품 작물, 황금쌀 등 참살이형 식물이 주류다. 벤처기업 넥스젠이 개발한 ‘화장품보다 더 좋은 오이’도 대표적인 식물공장 상품이다.

“피부를 이루는 상피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EGF(Epidermal Growth Factor)라는 단백질이 있습니다. 주름을 펴거나 피부노화 방지에 쓰이는 화장품 원료죠. 이 단백질을 오이에서 생산하는데 성공해 세계화장품원료협회에 등록했습니다.”

넥스젠 이선교 사장은 이 회사가 개발한 오이를 ‘밭에서 기른 의약품’이라고 말한다. 이 사장은 “세계 생물의약품 시장은 2004년 45조원에서 2011년까지 2배인 100조에 달할 것”이라며 “동물이나 미생물보다 안전하고 경제성이 높은 식물 의약품이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오이도 유전자변형 기술을 통해 만들어졌다. 인간의 EGF는 오이 속에서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여기에 알부민이라는 단백질을 붙여 새로운 유전자를 만들었다. 이 유전자를 오이 DNA에 넣은 것이다. 이 오이를 이용하면 고급 화장품을 훨씬 싸게 만들 수 있다.

이 사장은 “화장품은 의약품보다 규제가 적어 시장에 진출하기가 쉽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오이, 담배, 참외 등 여러 식물에 대해 90여개의 특허를 내고 식물공장을 확장하고 있다.

유전자변형 식물을 이용해 의약품을 만드는 연구는 예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식물공장으로까지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인간의 유전자를 동물에 넣으면 제대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데 식물에 넣으면 엉뚱한 것이 만들어지거나 유전자가 고장나기 일쑤였다. 싹이 틀 때는 필요한 단백질이 잘 만들어지다가 좀 자라면 단백질이 파괴되곤 했다.

이 사장은 “식물과 동물은 근본적으로 다른 생체시스템을 이용하는데 그것을 몰랐다”며 “과학자들은 최근 인간의 유전자를 식물에 맞춰 새로 합성하는 등 한계를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모유를 짜내는 젖소 등 동물에서 의약품을 만드는 연구가 일부 환경단체의 반대 및 동물과 인간간 질병 전염 문제 등으로 다소 주춤하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식물공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산삼도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 생산한다. 충북대 벤처기업인 CBN바이오텍은 2년전부터 100년 묵은 산삼을 배양용기에서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판매 가격은 시가의 수천분의 1 가격인 1kg당 20만원 정도다. 이 산삼은 먹거나 비누, 술, 화장품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지리산 심마니에게 산 100년 묵은 산삼의 조직을 떼어내 배양용기에서 대량으로 생산한다. 백기엽 사장(충북대 원예학과 교수)은 “산삼의 잔뿌리를 10t 규모의 배양기 안에 넣고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면 45~50일 뒤에 15~20배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다만 커다란 산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산삼의 굵은 잔뿌리가 대량으로 늘어난다.

백 사장은 “산삼의 약효 성분인 사포닌 함량을 조사한 결과 배양 산삼이 실제 산삼이나 홍삼보다 50%이상 더 많다”며 “DNA 조사에서도 산에서 캔 산삼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1998년 임업연구원에서 산삼 배양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한 손성호 박사가 세운 비트로시스사가 이 방식으로 산삼을 생산하고 있고, 삼양제넥스는 주목에서 추출한 항암제 탁솔을 배양기술로 생산하고 있다.
 

식물에서 값비싼 의약품이나 화장품, 기능성 식품을 대량 생산하게 되면서 식물이 살아 있는 공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황금쌀로 빈곤국 기아 퇴치

한국사람의 주식인 쌀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작물연구원 유전육종과 연구팀은 지난 2002년 ‘다이어트 쌀’인 고아미2호를 개발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일반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 쌀이 나온 것이다.

이 쌀은 식이섬유 함량이 일반 쌀보다 3배나 많다. 이점호 박사는 “식이섬유는 소화가 잘 안돼 이 쌀을 먹으면 배는 부르지만 살이 잘 찌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물연구원은 라이신 단백질의 함량이 높은 쌀 등 다양한 참살이 쌀을 개발하고 있다.

식물공장이 만들어낸 가장 유명한 쌀이 갖가지 영양소를 첨가한 ‘황금쌀’이다. 스위스연방기술연구소 잉코 포트리쿠스 박사팀은 쌀에 거의 들어 있지 않은 비타민A의 원료인 베타카로틴의 유전자를 쌀의 DNA에 넣어 2000년 ‘황금쌀’을 만들었다.

21세기 들어 황금쌀은 다양하게 발전해 각종 단백질 성분을 강화한 황금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당뇨를 막는 황금쌀 등이 개발되고 있다. 영국 과학저술가 마이클 화이트는 ‘가상역사 21세기’라는 책에서 2039년에는 황금쌀이 보급돼 빈곤국이 기아를 퇴치할 것으로 예상했다.

과학기술부 자생식물사업단 정혁 단장은 “식물 안에는 질병 치료 뿐만 아니라 성기능 강화, 노화 개선 등 삶을 윤택하게 하는 자원들이 무궁무진하게 들어 있다”면서 앞으로 식물공장이 참살이 시대의 대표 기술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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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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