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제주도 서북부의 한 바닷가. 차에서 내리자 신문을 못 펼 정도로 강한 바람이 계속 불어왔다. 해안에는 우뚝 솟은 커다란 바람개비가 “윙”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독수리가 토끼를 낚아채듯 커다란 날개가 기자에게 달려들었다가 멀어졌다. 돈키호테가 풍차에게 달려드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곳이 국내에서 가장 큰 풍력발전소인 제주 행원단지다.
석유 위기가 심화되면서 깨끗한 재생가능에너지(재생에너지) 열풍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2001년 기준으로 아이슬란드가 전체 에너지 중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72.9%로 높인 것을 비롯해 오스트리아(22.4%), 핀란드(23.0%), 캐나다(15.8%), 덴마크(11.1%) 등에서 재생에너지 이용이 활발하다. 독일도 현재 3%인 재생에너지 비율을 2020년까지 20%로 높일 계획이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소각열과 수력을 포함해 지난해말 현재 2.06%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 비율을 2011년까지 5%로 올릴 계획이다. 특히 풍력과 태양, 수소 에너지가 미래 재생에너지의 3대 축으로 꼽힌다.
기자가 찾아간 제주 행원단지에는 모두 15개의 풍차가 세워져 있다. 가장 큰 풍차는 높이가 45m, 바람개비의 지름은 48m나 된다. 흰 풍차들이 해안을 따라 늘어선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곳의 전력생산용량은 10MW(메가와트)로 제주도 전체 전력의 1%를 차지한다.
제주 서부 한경단지에는 이곳보다 2배나 큰 풍차 4대가 돌아가고 있다. 제주도청 김동성 사무관(미래산업과)은 “제주도의 풍속은 평균 초속 7.1m로 육지보다 경제성이 앞선다”며 “2011년까지 제주도 전력의 10%를 풍력으로 충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백두대간에 풍력 열풍
제주도의 성공에 자극받아 풍력발전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백두대간 대관령 단지에 풍차 4대가 설치됐으며 태백시도 매봉산 기슭에 5대의 풍차를 건설하고 있다. 강원도는 2006년까지 바람이 거센 대관령에 2천kW(킬로와트)급 대형 풍차 49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밖에 강원도 양구군을 비롯해 전남 새만금, 경기 시화호, 포항에서도 풍력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청 부정환 씨는 “외국은 5천kW급 풍차를 개발하고 있는데 우리는 7백50kW급 풍차를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풍차는 대부분 외국 제품이어서 수리도 쉽지 않다.
풍력발전은 최근 육지를 넘어 바다로 나가는 추세다. 덴마크 폴스 지역에는 육지에서 13km 떨어진 바다 위에 대형 풍력발전기가 80대나 설치돼 있다. 풍차가 바다로 나가면 건설 비용이 커지지만 바람이 빨라 육지보다 10-20%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공간도 넉넉해 많은 풍차를 건설할 수 있다. 한국은 서해와 남해가 후보 지역이다.
그러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과연 석유를 대체할 수 있을까.
한전이 풍력발전에서 나온 전기를 사는 가격은 1kW당 1백7.66원이다. 햇빛에서 전기를 얻는 태양광 발전은 7배나 더 비싼 7백16.4원이다. 화력이나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는 평균 48원이다. 풍력의 절반 이하, 태양광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
산업자원부 김홍길 사무관은 “전기를 얻는 비용만 볼 때 화력과 원자력이 가장 싸고 풍력과 태양광의 순서로 비싼 셈”이라고 말했다. 이 결과만을 보면 유가가 2배로 올라도 재생에너지가 경쟁력이 없다. 화석 연료를 없애고 재생에너지만 이용하면 전기료가 2배 이상 오르게 된다.
그러나 시민 단체 등은 의견이 다르다. 화석연료의 발전 비용에는 환경 비용이 빠져 있으며,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국제 기후 협약과 ‘석유 시대의 종말’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풍력 발전의 환경 비용은 kW당 7-14원으로, 화력 96원, 원자력 34원보다 싸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에너지대안센터 염광희 간사는 “국내에 존재하는 태양광, 풍력, 소수력(작은 댐을 이용한 발전), 해양에너지만 개발해도 연간 발전량이 2백56TW(테라와트)에 달해 2001년에 한전이 판매한 전력량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에너지대안센터에 따르면 전체 재생에너지 잠재량 가운데 태양광발전이 54%를 차지하며, 풍력 36%, 해양에너지가 7%, 소수력이 3%다.
반면 한국이 수입한 원유의 7%만이 발전에 이용되기 때문에 풍력과 태양광이 많이 보급돼도 석유 사용량을 줄이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도 재생에너지를 화석연료의 보조 수단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려면 에너지 소비도 따라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저명한 환경언론인 프란츠 알트는 지난해 국제포럼에서 “2050년에는 전체 에너지 소비 중 태양이 40%, 바이오매스가 30%, 풍력 15%, 수력이 10%를 차지하며 석유는 5%뿐”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적인 석유회사 쉘도 현재 2%인 세계재생에너지 비율이 21세기 중반에는 65%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며 석유회사에서 재생에너지 회사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수십 년 안에 재생에너지가 석유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주력에너지로 떠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전국 10만 가구 태양광발전소로 바뀐다
경상북도 상주에 사는 공형석(공무원) 씨는 요즘 옥상에 올라갈 때마다 흐뭇하다. 그의 집 옥상에는 새파란 태양전지판이 60장이나 설치돼 있다. 2002년말 1천여만원을 들여 옥상을 작은 태양광발전소로 바꾼 것이다.
공형석 씨는 태양전지를 설치한 뒤 매달 6-7만원의 전기료를 덜 내고 있다. 특히 해가 긴 여름에는 거의 내지 않는다. 그는 “아직 고장 한번 난 적 없고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태양광발전은 실리콘 반도체와 비슷한 태양전지를 이용해 햇빛을 전기로 바꾼다. 태양전지에 빛이 들어오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자유전자(음전하)와 양전하를 띠는 정공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른다.
한국에서 태양광발전이 가정에 도입된 것은 1-2년 전부터다. 산업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20여 가구에 태양광발전설비가 설치됐다. 올해는 3백여 가구에 태양광발전기가 설치된다. 대개 3kW급 발전기가 설치되는데 각 가정이 실제 부담하는 비용은 1천만원을 조금 넘는다.
정부는 2011년까지 10만 가구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고 상업·산업용으로 7만 개를 보급해 전국을 거대한 태양발전소로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1년까지 2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특히 정부는 한국의 앞선 반도체 기술을 이용해 태양전지를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태양광발전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쓰이는 실리콘 태양전지가 비싸다는 것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송진수 박사는 “비싼 실리콘을 지금보다 1백분의 1 두께로 얇게 만든 박막 태양전지 개발이 가장 뜨거운 이슈”라고 말했다. 싼 유기물이나 화합물로 태양전지를 만들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박막 태양전지나 유기 태양전지는 10-20년 지나야 널리 보급될 전망이다.
태양열을 한 곳으로 집중해 더욱 뜨거워진 열로 발전하는 방식도 있다. 땅에 반사경을 많이 설치한 뒤 반사된 빛을 중앙에 집중시켜 전기를 얻는 것이다.
사막처럼 햇빛이 강하고 비가 적은 곳에서 대량으로 발전을 하는 방식도 구상되고 있다. 송 박사는 “한국, 중국, 일본, 몽골 등 네 나라가 고비 사막에 대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는 국제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다”며 “수십 조원이 들지만 발전소 한곳에서 현재 세계 태양광발전 용량의 10배 이상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조력발전으로 새 생명 얻는 시화호
한때 죽은 호수로 불렸던 경기도 시화호에서는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조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시화방조제에 25만4천kW급 조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했다. 현재 가장 큰 조력발전소인 프랑스 랑스 발전소(24만kW급)보다 크다.
수자원공사는 11월쯤 공사에 들어가 2008년 6월 조력발전기 10개를 가동할 계획이다. 시화 발전소는 50만명이 사는 도시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조력발전은 밀물과 썰물의 높이차가 클수록 경제성이 높은데 시화호는 5.64m나 된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전남 울돌목에는 한국해양연구원의 시험용 조류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땅위에서 바람이 불듯 바다에도 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조류가 있다. 이 조류로 ‘바다물레방아’ 를 돌리면 전기를 얻을 수 있다.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은 배 12척을 갖고 울돌목의 빠른 조류를 이용해 왜선 수백척을 격파했다. 또 바다에서는 윗물과 아랫물의 온도차를 이용하는 수온차발전, 파도를 이용하는 파력발전을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도 신한에너지 등이 콩기름과 폐식용유에서 차량용 바이오디젤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바이오디젤은 생물로 만든 연료 ‘바이오매스’ 의 일종이다. 회사원인 김정수 씨는 “올들어 바이오디젤을 쓰기 시작했는데 매연도 줄고 엔진도 부드러워졌다”고 말했다.
콩기름으로 자동차 굴린다
한국의 바이오 디젤은 식물 경유와 일반 경유를 2:8로 섞어 만든다. 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식물성 경유 비율이 30-50%며 독일은 1백% 식물성 경유로만 바이오 디젤을 만든다. 유채, 해바라기 등 다양한 식물이 이용되며 식물기름에 촉매를 넣어 바이오디젤을 만든다.
외국서는 알코올을 휘발유와 섞은 ‘알코올 휘발유’ 를 이용한다. 이밖에 배설물과 음식 쓰레기에서 메탄 가스를 추출하는 기술도 이용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재생에너지의 대부분은 폐기물 에너지다. 폐기물 에너지는 쓰레기를 태우거나 재활용하는 것으로 전체 재생에너지의 70%에 달한다. 정부 계획대로 2011년에 재생에너지 비율이 5%로 높아져도 폐기물 에너지는 56%로 절반이 넘는다. 태양광과 풍력, 바이오매스 등 ‘진짜’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높여야 장기적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첨단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
정부는 87년 ‘대체에너지기술 촉진법’ 을 만들어 재생에너지 육성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정부가 투자한 돈은 1천8백억원으로, 일본의 한 해 투자비보다 못하다.
석유 위기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재생에너지에 대한 열기가 식었다. 한 예로 90년대 초중반 인기를 모았던 태양열 온수장치는 외환위기 이후 관련회사들이 부도가 나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재생에너지의 성공 여부는 정부와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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