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환경부는 악어 거북이라는 파충류를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했다. 외래생물 가운데 생태계에 미치는 혹은 앞으로 미칠 영향이 큰 종으로 불류된 것이다. 악어 거북은 미국 남서부 습지 토착종으로, 뾰족뾰족한 등과 물속에 숨어 사냥감을 노리는 모습이 악어와 닮았다. 성체의 경우 무게가 80kg까지 나가는 세계 최대 민물 거북이다. 2011년 경북 구미에서 처음 발견된 뒤 2019년 광주에서도 7.6kg의 작은 개체가 발견됐다. 환경부는 “현재 국내에 악어 거북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인구가 많고, 이들이 유기됐을 경우 토착 수생 종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며 악어 거북을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한 이유를 밝혔다.
인간의 활동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넓어지고 이동이 잦아지면서 원래의 생태계를 벗어나 다른 생태계에서 발견되는 동식물이 늘고 있다. 인간 활동에 의해 다른 생태계로 간 이 같은 생물을 도입종 또는 외래종이라고 한다. 지난해 미국과 덴마크 공동연구팀이 전 세계 410개의 생태계 군에서 약 5000종의 동식물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외래종 유입은 지난 75년간 7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대륙마다 혹은 나라마다 고유하게 유지되던 생태계 다양성이 사라지고 전 세계가 비슷한 생태계를 형성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사연도 각양각색 국내 침입종
외래종 가운데 생물 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종인 침입종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1년 현재 34종의 생태계교란 생물 가운데 33종이 외래종이다. 이 가운데 곤충과 식물 종은 대부분 우연히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에서 실려 온 물류에 종자나 유충 형태로 붙어와 유입 경로가 명확치 않은 경우가 많다. 포유류와 양서파충류, 어류, 무척추동물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한국에 도착했다. 황소개구리는 1971년 식용 목적으로, 뉴트리아는 1985년 식용, 모피 생산을 위해 들여왔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사례로 전문가들의 우려를 낳고 있는 경로는 관상용 또는 사육용으로 반려동물로 들여왔다 야생에 유기하는 경우다. 최근 전국 작은 하천까지 장악해 화제가 된 미국가재가 대표적이다. 새로운 거북 종도 있다. 동남아에서 온 중국줄무늬목거북과 미국에서 온 붉은귀거북, 리버쿠터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줄무늬목거북은 남생이와 교잡종을 형성해 후대 남생이의 유전자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악어 거북 역시 최근 발견돼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됐다. 원래 한국에 서식하는 민물 거북은 남생이와 자라 2종뿐이었는데, 이제는 외래종 수가 토착종 수를 넘어섰다.
생태계교란 생물을 관상용 또는 사육용으로 기르는 일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추가적인 침입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구교성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된 종을 사육하고 있을 경우 지정 6개월 이후에는 지방(유역)환경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라며 “현재 악어거북 사육자 중 허가를 피하기 위해 몰래 유기하는 사례가 늘어날까 봐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발견은 되지 않았지만 다른 외래종이 유기될 가능성도 있다. 구 연구원은 “2019년 총 25개의 온라인 펫샵을 조사한 결과 판매되는 외래 양서파충류가 677종에 달했다”며 “현재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된 양서파충류는 총 6종뿐으로 황소개구리를 제외하곤 모두 거북이다. 도마뱀이나 도마뱀붙이, 뱀 등은 눈에 안 띄어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국내·해외 가리지 않는 침입종 피해
국내 생태계교란 생물 중에는 다른 나라 생태계를 위협하는 종도 있다. 뉴트리아, 큰입배스, 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 아르헨티나개미, 긴다리비틀개미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한 100대 악성침입외래종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번식력과 적응력이 뛰어나다.
가령 미국 동부 토착종인 큰입배스는 전 세계에 퍼져 있고, 남아메리카 토착종인 뉴트리아는 북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대륙을 점령했다. 북아메리카 토착종인 황소개구리는 아메리카 대륙과 서유럽, 동아시아를 장악했다.
한국에서는 생태계 한 축을 이루지만, 외국에서 침입자 신세가 된 종도 있다. 미국으로 건너가 토종 생물을 먹어 치우는 가물치, 최대 1000개의 알을 낳고 수질과 상관없이 어느 곳에나 잘 적응해 유럽까지 뻗어 나간 피뿔고동,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양식 작업을 방해하는 중국 참게 등이 대표적이다.
생태계교란 종에 대처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직접 제거하는 것이다. 김수환 국립생태원 외래생물연구팀 전임연구원은 “뉴트리아는 전문 포획단을 운영하고 있고 황소개구리나 붉은귀거북, 가시박 등은 지자체나 지방유역환경청에서 퇴치나 제거 행사를 한다”라며 “식물은 자연 생태계에서는 농약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뿌리 채 뽑거나 줄기를 자르는 등 물리적인 방법을 쓴다”고 말했다. 중장비를 이용해 토양을 엎으면 오히려 씨앗 발아율이 높아져 주의해야 한다.
천적을 찾아 풀어주는 방법도 있다. 가로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국립수목원과 미국 동식물검역소 공동 연구팀은 국내 토착종으로 해외에서 피해를 입히는 유리알락하늘소의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는 종을 찾았다. 유리알락하늘소는 1.7~3.9cm 크기의 곤충이다. 국내에서는 강원도, 경기도, 경상북도에 분포하며 6월부터 8월까지 버드나무나 단풍나무에서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96년 뉴욕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에도 퍼졌다. 외국으로 건너간 유리알락하늘소는 가로수를 먹어 치워 IUCN 세계 100대 악성침입외래종에 등재됐다. 유충이 나무껍질 아래의 수피 내부를 파먹으며 나무 중심으로 파고 들어가는데, 구멍을 따라 곤충과 해충이 침입하고 나무는 결국 제대로 생장하지 못한다. 미국 농무부의 조사에 따르면 유리알락하늘소의 가로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면 매년 3000만~4000만 달러(335억~446억 원)에 달한다. 미국 가로수의 30.3%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도 있다.
연구팀은 한국 광릉숲에서 유리알락하늘소의 유충에 기생하는 기생벌(Leluthia honshuensis)을 최초로 발견했다. doi: 10.1016/j.japb.2017.12.001 기생벌의 숙주는 양분을 빼앗겨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갉아먹히기 때문에 유리알락하늘소 개체 수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수십 년은 생태계가 적응하기엔 너무 짧은 기간
여러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일단 들어온 침입종을 생태계에서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1998년 최초로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된 황소개구리, 큰입배스, 파랑볼우럭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김 전임연구원은 “토착종은 수만 년 이상을 한반도에서 살아온 생물로 20년은 새로운 생물이 일으킨 변화에 적응하거나 대응하기에 아주 짧은 시간”이라며 “황소개구리 수가 줄었다는 보도도 있지만 전국 곳곳에서 수생태계에 미치는 피해는 여전하다”라고 말했다. 구 연구원도 “외래종이 생태계로 들어오면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가 약간 감소하며 안정 상태로 접어든다”라며 “‘안정’은 생태계에 적응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수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