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쿠폰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디지털화폐에 이어, 누구나 발행할 수 있는 암호화폐까지 등장해 금융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각국은 법정화폐*와 통용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톍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화폐, 암호화폐 그리고 CBDC 그 차이점은?
파운드 스털링(영국), 달러(미국), 유로(유럽연합), 원(한국), 위안(중국각 나라의 국민은 나라가 지정한 법정화폐의 가치를 갖는 지폐나 동전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실물화폐라 부른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화폐가 출현했다. 예를 들어 A가 편의점에서 발행하는 모바일 쿠폰 형태의 디지털화폐를 발급받는다고 하자. 이 편의점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디지털화폐의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보통 1만 원을 충전하면 1000원을 추가해 총 1만 1000원의 디지털화폐를 지급해 준다. 따라서 소비자는 이 디지털화폐를 발급받는 것이 더 이득이다. 하지만 이 경우 편의점에서만 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실물화폐처럼 모든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화폐는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각 나라의 법정화폐와 연결된 디지털화폐가 개발돼야 한다. 각 나라의 법정화폐와 교환할 수 있지만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는 디지털화폐로 2009년 처음 등장한 것이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생성과 관리 방식이 암호학에 기반하기 때문에 암호화폐(crytocurrene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데다, 그 가격이 급격히 변하면서, 금융당국의 우려가 커졌다. 이에 따라 법정화폐를 발행하고 총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각 나라의 중앙은행에서 CBDC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CBDC는 특수목적을 가진 암호화폐다. 보안성이 매우 뛰어난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5년간 1000여 명의 연구인력을 투입한 끝에, 2019년 중국이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중국인민은행 디지털화폐 ‘디지털화폐전자지불(DCEP디셉)’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법정화폐인 위안화와 직접적으로 통용되는 DCEP는 세계 최초로 도입된 CBDC로 디지털 인민화폐로도 불린다. 신청한 시민 중 당첨자에게 소정의 돈을 DCEP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2020년 1월부터 선전, 쑤저우 등 6개 대도시에서 사용하며 기술을 보완하는 중이다.
홍원기 포항공과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위조지폐가 많은 중국에서는 알리페이 등을 활용한 디지털화폐로 많은 거래가 이뤄졌다”며 “민간 기업이 거래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을 막고 중앙에서 관리하고자, 중국 정부가 발 빠르게 CBDC를 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CBDC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개인이 일상에서 쓸 수 있는 소매형 CBDC와 국가나 기관에서 쓸 수 있는 도매형 CBDC다. 중국은 소매형 CBDC를 모든 지역에서 쓸 수 있도록 확대하는 동시에 도매형 CBDC를 활용한 거액 결제 시스템도 완성해 나갈 계획이다. 중국이 CBDC를 국가 간 결제에 가장 먼저 활용할 경우 현재 기축통화*로써 갖는 중국 위안화 위상을 높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홍 교수는 “개발도상국에 투자를 많이 하는 중국이 이자를 받을 때 DCEP 결제를 요구하며 자국 CBDC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며 “디지털 기축통화의 위상을 중국에 넘겨줄 수 없는 미국도 보다 적극적으로 CBDC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2021년 6월 18일 기준 CBDC를 발행할 명확한 계획은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중요성은 점차 강조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2021년 2월 뉴욕타임스가 주최한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 발행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더 빠르고 안전하며, 저렴한 지불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현재 국가 간 해외송금의 경우 선진국 사이에서는 약 2일, 개발도상국과 거래할 경우 약 일주일이 걸리지만, 디지털화폐를 통해 그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며 “개인은 물론 기관 사이에서 폭넓게 쓸 수 있는 CBDC의 필요성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CBDC,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라
자본시장 연구원이 2021년 3월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중국 다음으로 가장 활발하게 CBDC를 개발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스웨덴과 캐나다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디지털 결제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스웨덴은 올해 여론 수렴을 거쳐 소매형 CBDC 발행 계획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나 싱가포르는 거액 지급 결제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매형 CBDC를 발행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CBDC를 개발하기 위해 주목하는 기술이 바로 ‘프라이빗 블록체인(private blockchain)’이다. 이를 알기 위해 시간을 10여 년 전 과거로 되돌려보자.
2008년 10월 신원불명의 컴퓨터 공학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이라는 신개념 암호화폐(crytocurrency)에 관한 논문을 공개했고, 2009년 비트코인이 실제로 등장했다. 비트코인을 거래하면 발생하는 모든 거래 과정이 ‘상자(블록)’에 담기며,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이 상자를 나눠 갖게 된다. 모두가 가진 상자를 ‘연결(체인)’해 망을 구축하기 때문에 블록체인으로 불리게 됐다.
덧셈과 곱셈 등 복잡한 수학연산의 조합으로 이뤄진 블록을 풀면 그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는다. 이 블록을 푸는 일을 광산에 비유해 채굴이라 한다. 암호학적으로 해시함수를 푸는 작업이다. 함수는 입력값을 넣으면 특정 연산을 거쳐 출력값을 내놓는다. 반면 채굴은 해시함수의 출력값을 알고 있을 때 적절한 입력값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고성능의 컴퓨터로 연산을 수천~수만 번 이상 시도해 입력값을 알아내면 해시함수를 바탕으로 한 블록을 풀 수 있게 된다.
오현옥 한양대학교 정보시스템학과 교수는 “모든 거래 참여자의 51% 이상이 갖고 있는 블록을 동시에 해킹해야 정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도난 위험으로부터 매우 안전하다”고 말했다.
현재는 비트코인에 들어간 블록체인 기술을 ‘퍼블릭(public) 블록체인’이라 부른다. 불특정 다수가 원하면 거래에 참여할 수 있어서다. 이와 달리 이탈리아 비탈릭 부테린이 2015년에 내놓은 이더리움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참여자에 제한을 둘 수 있다. 한 명(또는 기관)의 주체가 허가한 참여자만 블록을 생성할 수 있는 방식이다.
CBDC는 이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이나 증권사처럼 권한을 나눠 가질 참여자와 블록체인을 형성하게 된다. 기존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코인을 얻기 위해 채굴할 필요도 없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공개키와 암호키를 활용한 전자서명 방식으로 블록을 생성한다.
오 교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참여자는 보통 20~30곳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개하는 퍼블릭 블록체인보다 속도가 빠르다”며 “일상에서 발생하는 신용카드의 거래 건수가 초당 4000여 개인데 이미 그 이상의 거래 수를 프라이빗 블록체인 방식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 나눠 가진 참여자의 수가 20여 곳 안팎이면 보안에 구멍이 생기지 않을까? 오 교수는 “CBDC의 참여자 수는 적지만 그 참여자가 하나은행이나 국민은행 등 상당히 높은 보안성을 띤 기관”이라며 “이 기관들의 보안체계를 동시에 과반 이상 해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고 말했다.
용어정리
* 법정화폐
: 정부나 중앙은행이 법에 따라 발행하고 관할권 내에서 가치와 통용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화폐다.
* 기축통화
: 국제단위의 결제나 금융거래에서 기본이 되는 화폐. 현재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