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에서 대칭과 관련이 깊은 수학 연구 분야인 ‘군론’을 연구하고 있는 이승재 박사후연구원입니다. 오늘은 저를 수학자로 이끌어주신 제 은사님, 마커스 드 사토이 교수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드 사토이 교수님을 직접 인터뷰했으니재밌게 읽어주세요!
수학자의 길로 안내한 단 하나의 강연
제가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된 건 순전히 드 사토이 교수님 덕분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7년 3월 15일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강연을 듣습니다. 오죽하면 아직도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겠어요. 당시 제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영국에서 유명한 수학자가 근처 오클랜드대학교에 수학 대중강연을 하러 오니 같이 가자고 꼬드겼고 저와 몇몇 학생을 인솔해 갔습니다.
그때 뉴질랜드로 강연을 왔던 수학자가 바로 드 사토이 교수님이었습니다. 강연에서 교수님은 아주 열정적으로 당시 교수님의 베스트셀러 도서인 <;소수의 음악>;에 담긴 소수 이야기를 재밌게 들려주셨고, 저는 강연에 감명받아 그 책을 사서 2일 동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결심했지요. ‘저런 분 밑에서 수학을 배우고 싶다’라고요.
저는 이 강연을 통해 진정한 수학의 즐거움을 맛보고 수학자의 꿈까지 갖게 됐습니다. 실제로 드 사토이 교수님의 학생으로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으니 진짜 ‘성덕’이랄까요. 그래서인지 드 사토이 교수님도 저를 보면서 되게 뿌듯해하세요!
드 사토이 교수님도 저처럼 수학 선생님이 추천한 수학책 때문에 수학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하는데요. 교수님이 어떻게 수학자가 되셨는지 지금 바로 알려드릴게요.
수학은 과학과 예술의 다리
Q. 교수님은 언제, 어떻게 수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으셨나요?
만 13살 정도 됐을 때였어요. 저는 학교에서 수학을 그렇게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학교 수학 선생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드 사토이, 너는 진정한 수학이 뭔지 배워 봐야 할 것 같다’라면서 학교 정규 수업 내용이 아닌 이야기가 담긴 수학책을 몇 권 추천해 주셨어요. 그 책을 읽고 처음 학교에서 배우는 계산 위주의 수학을 넘어선 ‘진정한 수학’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수학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Q. ‘진정한 수학ʼ의 어떤 부분이 교수님의 관심을 끌었던 걸까요?
항상 관심 있고 좋아하는 두 분야가 ‘과학’과 ‘예술’인데요.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셨던 책을 보면서 수학이 그 둘의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어요. 먼저 과학은 우리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고 이뤄져 있는지 이해하는 학문인데, 과학은 수학의 언어로 이뤄져 있어요. 그 때문에 수학은 실제 우리 세상과 아주 밀접한데, 학교에서 수학을 배울 때는 그 사실을 몰랐어요. 그걸 알게 되자 진정한 수학을 배우고 싶어졌지요.
그렇지만 저를 정말 수학의 길로 이끌었던 건 ‘수학의 아름다움’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예술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 지금도 연기나 음악 활동을 취미로 하는데, 수학의 추상적인 본질이 추구하는 상상력과 창의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단순히 계산을 잘하고 방정식을 잘 풀고 시험을 잘 보는 게 수학의 본질이 아니었던 거지요.
Q. 수학 선생님이 왜 교수님께 수학책을 추천했다고 생각하세요?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그 당시 전 수학 과목을 되게 지루해했어요. 아무래도 계산 문제를 반복해서 풀다 보니 흥미가 떨어졌지요. 교수가 되고 나서 은사님을 찾아가 어떻게 제가 수학을 좋아하게 될 줄 알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 선생님은 제가 수학의 추상적인 부분에 반응하는 걸 보고 수학을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었대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제 인생을 바꿨던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요.
좋은 수학자의 덕목은 인내심과 끈기
Q. 좋은 수학자가 되기 위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수학자는 ‘규칙을 찾는 사람’이라고 종종 얘기해요.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부터 숨어있는 규칙을 찾아내는 사람이지요. 얼핏 보면 불규칙해 보이고 상관없어 보이는 숫자나 현상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추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직관력’이 수학자의 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또 다른 덕목 중 하나는 ‘인내심’이라고 봐요. 많은 사람이 수학은 매우 어려운 과목이라고 생각하지요. 저도 동의해요. 저한테도 수학은 어렵거든요. 수학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으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 중 하나는 연구하는 동안 99%의 시간은 풀리지 않는 문제에 막혀있다는 거예요. 그러다 문제가 풀리는 그 1%의 순간, ‘유레카의 순간’들을 겪다 보면 그 쾌감에 중독돼 계속 연구하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수학의 본질적인 어려움은 수학의 즐거움 중 하나이기도 해요. 어려워서 그만큼 성취감이 있거든요. 그 깨달음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끈기와 인내심이 좋은 수학자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Q. 수학 대중화 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세요. 이 활동에 열정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제가 받은 기회를 다음 세대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되게 컸어요. 당장 저도 제게 진정한 수학을 알려줬던 은사님 덕분에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것처럼, 저도 다음 세대에게 같은 즐거움과 행운의 기회를 나눠주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이승재 연구원이야말로 저의 수학 대중화 활동의 대표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지요.
두 번째로 지금 우리는 수학이 아주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현시대에 과학과 수학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고, 앞으로 더 커질 텐데 그만큼 많은 사람이 수학에 겁먹지 않고 수학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질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제겐 학생만큼이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수학 대중화 활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학교 시험이나 대입 준비를 떠나서 ‘수학적 독해력’이 일상생활에도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수학의 아름다움 엿볼 수 있는 책 <;어느 수학자의 변명>;
Q. 수학 대중화 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많지요. 첫 번째로 대중과 소통하는 글을 쓰려면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 신문에 글을 썼을 때가 아직도 기억나요. 당시 필즈상에 대한 글을 썼었는데, 고작 1000자짜리 기사를 쓰기 위해 몇 달이 걸렸어요. 그렇게 힘들게 쓴 제 원고를 보고 담당 편집자가 신문 기사는 이렇게 S 쓰면 안 된다고 알려주더라고요.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는 건 힘든 일같아요.
그리고 처음 이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제가 수학 대중화 활동을 하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는 책 중 하나가 영국 수학자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의 <;어느 수학자의 변명>;인데, 이 책의 첫 문단에서 하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학자가 수학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우울한 경험이다. 수학자의 역할이란 새로운 정리를 증명하면서 수학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지, 자신이나 다른 수학자가 이룬 업적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저는 수학자로서 당연히 하디를 존경하고, <;어느 수학자의 변명>;이 대중에게 수학의 추상적인 아름다움과 ‘수학자’라는 직업의 사고방식을 보여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수학자가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기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당장 저 이야기를 한 하디의 책이 대표적인 수학 교양서로 남게 된 것만 봐도 그렇고요.
Q. 지금도 하디처럼 생각하는 수학자가 많나요?
제가 처음 수학 대중화 활동을 하게 된 2000년대 초만해도 많은 연구자가 하디처럼 생각했었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 수학을 알리고 소통하는 역할의 중요성에 훨씬 더 많이 공감하고, 그런 활동을 인정해 주는 기관도 점점 많아지고 있지요. 연구 활동만큼이나 대중과의 소통이 인정받고 대우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학자의 의무일 테니까요. 제가 그런 변화에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교수님은 지금도 전 세계를 돌며 활발한 수학 대중화 활동을 하는데, 혹시 한국에도 갈 의향이 있나요?
물론이지요. 2007년 한국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이라는 이름의 수학 강연을 했었는데 정말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한국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 즐거운 마음으로 갈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수학동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인터뷰 시작 때 말했듯이, 저는 수학이 우리 세상에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달았던 순간부터 수학을 좋아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분들이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던, 그 속에는 분명 수학이 숨어있을 거예요. 그걸 연결 지을 수 있다면 수학과 훨씬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겁니다.
저의 이번 영국 출장은 드 사토이 교수님과 함께 하는 공동연구를 위해 갔던 것인데, 교수님을 보며 수학의 길을 꿈꿨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교수님을 직접 인터뷰해 <;수학동아>;에 소개할 수 있어 정말 뿌듯하고 기분이 묘하네요 .
앞으로 교수님을 한국에 초청해 여러분과 같이 만나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저는 교수님 같은 수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진 채 계속해서 열심히 소통하는 수학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