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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네덜란드에서 수학상담소를 구독하는 닉네임 '미수년'씨가 보낸 사연인데요, 미술과 수학을 사랑하는 미소년이라며 자기소개를 하셨네요. "네덜란드에 유명한 미술 작품이 많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훼손되지 않을까 너무 걱정돼요."

 

맞습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 좋은 환경에서 보관된 그림들도 20~30년이 지나면 작품에 윤기가 사라지고 캔버스가 울퉁불퉁해집니다. 그래서 미술품 복원 전문가가 생겼죠. 저마다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미술품을 복원하는데 그 때문에 복원하고 난 뒤에는 원본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살려냈는지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경우가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대표적인 사례죠. 1977년부터 22년 동안 신중하게 복원 작업을 진행한 끝에 완성했는데 일부 전문가들은 “원작의 20%만 살아남아 영혼을 잃어버린 작품이 됐다”며 비판했습니다.


이런 논란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복원이라는 작업과 미술품을 감상하는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복원을 통해 원작을 100% 재현할 수 없을뿐더러 복원 전후의 작품을 보고 내리는 평가도 사람마다 다르거든요.

 

수학으로 되살아난 명화


원작을 100% 재현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최대한 원작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더 객관적으로 작품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2019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을 수상한 수학자 잉그리드 도브시 미국 듀크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여기에 명쾌한 답을 내렸습니다. 바로 수학을 이용해 미술품을 분석하고, 복원하는 방법입니다.


도브시 교수는 2006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 참석했다가 미술품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제안 받았어요. 그때부터 최근까지 미술품 분석과 복원에 수학을 도입해 객관적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복원하는 연구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도브시 교수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수학적 원리를 적용해 훼손된 미술품을 복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술품의 특징을 수학적으로 분석해 위작을 가려내는 연구입니다.


미술품을 복원한 대표적인 사례는 2016년에 완성된 ‘성 요한 제단화’입니다.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쿠초 기시가 14세기에 그린 이 작품은 100여 년 전에 톱으로 9등분돼서 흩어졌습니다. 9개의 조각 중 8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미국의 미술관 몇 곳에서 나눠 소장하게 됐지만 나머지 하나는 자취를 감춰서 완전체를 볼 길이 없었죠.


미술품 복원 전문가들은 도브시 교수팀과 힘을 합쳐 나머지 한 작품을 복원했습니다. 우선 역사적인 기록을 토대로 전문가가 나머지 한 조각에 들어갈 그림을 그렸어요. 14세기 당시와 같은 제작 방식으로 그림을 완성했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요. 다른 8개의 그림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색이 변하거나 마치 피부에 생긴 주름처럼 자글자글하게 갈라진 틈이 생겼거든요. 


반면에 새로 그린 그림은 너무 선명하고 깨끗해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어요. 도브시 교수팀은 이 그림을 스캔한 뒤 오래돼 보이도록 변환하는 작업을 맡았습니다. 다른 그림에서 갈라진 틈을 파악하고 그 틈의 패턴을 이용해 새로 그린 그림이 다른 그림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갈라진 틈을 만들어 넣는 데 수학을 활용한 거죠.


우선 그림에서 갈라진 틈을 찾아내기 위해 X선으로 그림을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분석했습니다. 갈라진 틈은 X선 사진에서 더 진하거나 밝게 나타나는데, 그 점을 이용한 거예요. 컴퓨터는 사진을 모니터 화면에 나타낼 때 픽셀이라고 부르는 작은 사각형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나타냅니다. 이때 픽셀의 색이나 밝기는 숫자로 표현돼요. 쉽게 말해 컴퓨터는 그림을 사각형 모양의 수 배열로 인식하고 나타내는 거죠. 이를 수학적으로는 ‘행렬’이라고 불러요. 물감에 생긴 갈라진 틈은 행렬에서 주변 수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가늘고 긴 수 배열이라고 할 수 있죠. 연구팀은 물감의 틈을 찾아낸 뒤 그 패턴을 이용해서 새로 그린 그림에 세월의 흔적을 더했습니다. 이렇게 성 요한 제단화를 복원할 수 있었죠.

 

진품과 위작 가려내는 수학

 


도브시 교수팀의 또 다른 업적은 미술품을 수학적으로 분석해서 위작을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겁니다. 성 요한 제단화를 복원한 것보다 먼저 했던 작업이었죠.


대상 작품은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고흐의 작품들을 수학적으로 분석해서 특징을 찾아낸 뒤 진품과 위작을 가려내는 겁니다. 연구팀은 위작 작가에게는 원작자와 다른 ‘주저함’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그 주저함을 그림에서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저함은 그림의 아주 세부적인 영역에서 나타나는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직선을 긋다가 잠시 주저하게 되면 머뭇거린 지점에서 미세한 차이가 생기게 되죠. 이런 주저함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비교해 머뭇거린 지점을 찾아내는 겁니다.


우선 그림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픽셀의 집합을 행렬 정보로 변환합니다. 그런 뒤 ‘웨이블릿’이라는 기법을 이용해서 그림을 분석합니다. 웨이블릿은 행렬로 표현된 여러 수들을 대푯값으로 변환해 주는 함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웨이블릿 계산을 그림 전체를 나타내는 행렬에서 시작해 점차 그림의 범위를 좁히고, 위치를 바꾸면서 반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전 단계와 다음 단계에서 계산한 값의 차이가 그림에서 해당 영역의 특징을 알려주는 정보가 되기 때문입니다.


진품과 위작에서 똑같은 계산을 한 뒤 양쪽의 결과를 비교하면 주저함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생깁니다. 예컨대 특정 영역에서 전후 단계의 계산값 차이를 비교했을 때 그 영역에 머뭇거린 흔적이 있다면 진품과 위작의 계산값에 차이가 생기죠. 도브시 교수팀은 이런 식으로 6개의 그림 중에서 고흐의 작품 5개와 위작 1개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김대경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응용수학과 교수는 “고흐의 여러 작품을 인공지능에 학습시킨 뒤 새로운 그림을 입력해서 위작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2019년 06월 수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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